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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스포트라이트와 서포트
  • 환경과조경 2022년 10월

학교를 다녀오면 야구 좋아하는 아빠 때문에 매일같이 TV에 삼성라이온즈 경기가 틀어져있었다.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게 됐고 종종 부모님을 따라 야구장을 찾았다. 첫 야구 직관은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와 해태타이거즈 경기였다. 어느 팀이 이겼고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세세한 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회색빛 출입 통로를 지나 만났던 광활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느낀 감정을 책의 한 구절로 표현해본다. “3루 쪽 특별 내야로 가는 계단을 다 올라간 순간 우리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시야가 확 트이면서 그 끝에 부드럽고 거뭇거뭇한 그라운드,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베이스, 똑바로 그어진 하얀 선, 정성스럽게 손질된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 그리고 그때 마침 우리의 도착을 기다렸다는 듯이 조명이 켜졌다. 칵테일 광선을 받은 구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우주선 같았다.”1 잊을 수 없는 풍경 때문인지 야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야구팬이 됐다.

시간이 된다면 직접 경기장에 가 야구를 관람하는 편이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은 선수와 코치, 감독이다. 승패를 가르고 팬들의 일희일비를 결정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수많은 관중의 시선이 모이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반면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이런 사람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림자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운영자, 티켓 발권과 확인을 하는 매표소 직원, 관중들이 다치지 않게 지켜보고 보호해주는 사람 등, 하나의 경기에는 스포트라이트와 서포트가 공존한다. 이 두 가지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경기가 만들어진다.

몇 년 전 방영한 TV 드라마 ‘스토브리그’(SBS)는 서포터들의 애환을 잘 담았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으로 계약 갱신과 트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이 드라마는 만년 리그 꼴등 팀 ‘드림즈’에 새로 부임한 단장과 구단 사람들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보통의 스포츠 장르 드라마나 영화라면 꼴찌 팀이 대회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하는 내용으로 흘러가겠지만, 스토브리그는 야구 선수들의 이야기보다는 구단을 운영하는 프런트들의 사연과 스토브리그에 펼쳐지는 사건을 다룬다. 뒤에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광주에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가 개최됐다. 나는 사전 행사인 학생샤레트 진행을 위해 대회 일정보다 일찍 광주로 향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의 숙소 체크인을 돕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려갔는데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자꾸 불시에 터져 몹시 당황했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으로 소통까지 잘 되지 않으니 프로그램을 잘 마칠 수 있을지 무서워지기도 했다. 모든 슬픔에는 끝이 있다더니 시간은 흘렀고 마지막 일정인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무사히 도달했다.

스토브리그는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드림즈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기 위해 그라운드로 향하고, 그 뒤편에 선 구단 사람들이 응원의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흘간 진행된 학생샤레트가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 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상장 수여를 위해 무대 위로 수상자들을 인솔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와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그때 친 박수는 학생샤레트를 큰 탈 없이 끝낸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상이자 격려였다. [email protected]

 

각주 1. 주인공인 노수학자와 그의 가사도우미 나, 나의 아들 루트가 함께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타이거즈 경기를 보러간 야구장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한 구절이다. 오가와 요코, 김난주 역,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현대문학, 2014,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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