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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사진가의 비밀
그라운드시소 성수, ‘비비안 마이어’ 전
  • 환경과조경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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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 롤라이 플렉스의 장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15만 장의 필름. 많은 수식어로 불리는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우연히 그의 작품이 경매장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지난 세기 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의 사진가였다.

 

숨겨진 명작은 한 남자의 안목과 우연에 의한 발견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John Maloof)는 집필 중이던 시카고 역사책에 넣을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경매장에서 380달러에 낙찰받은 필름이 담긴 상자에 흥미를 느낀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그는 이제껏 세상에 공개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마음먹는다. 플리커, 전시 등을 통해서 세상에 공개된 그의 사진에 대중은 열광했고, 이후 각종 서적과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남긴 사진을 한국에서도 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 8월 4일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렸다.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과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및 소품, 영상, 오디오 자료 등을 선보였다. 특히 거울, 쇼윈도, 그림자 등을 통해 자신을 숨기듯 표현한 그의 감각적인 셀프 포트레이트는 요즘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셀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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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거리의 사진가

생전에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유지했던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적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50년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과 시카고를 오가며 살았다. 어릴 때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부모가 이혼했고, 그들은 오랫동안 마이어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오빠는 마약 중독에 빠졌고,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그는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로 오랫동안 일정한 거처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며 유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살았다. 이모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샀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카메라는 2009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마이어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시카고와 뉴욕 일대를 누비며 거리의 사진을 찍었던 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비견된다. 로버트 프랭크처럼 일상 속 찰나의 미학을 포착할 줄 알았으며, 사회의 소수자에 주목했던 다이안 아버스처럼 흑인, 어린이, 노숙인 등 인종과 연령, 남녀의 구별없이 거리의 모든 이를 사진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진 속의 거리는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극장과도 같다. 사진에는 상냥함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리의 아이러니가 한 편의 드라마로 펼쳐진다. 그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 놓고 이미지를 찾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렀다.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풍선이 절묘하게 한 남성의 얼굴을 가린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 찍은 사진으로 일종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뉴욕공공도서관’에서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우아한 한 여성의 옆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도를 이용하면서도 재치, 사랑, 빈곤, 우울 등 다채로운 감정의 이미지와 피사체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환경과조경 413(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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