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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제국시대의 경마
  • 환경과조경 2022년 6월

19세기 인상파 회화의 감상 포인트는 빛을 고려한 화사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붓 터치에 있지만, 화폭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을 보는 재미도 특별하다. 빛을 쫓는 데 진심이었던 인상파 화가들은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이젤을 들고 야외로 뛰쳐나갔고, 화폭에는 마치 사진을 찍듯 포착한 순간의 장면이 담겼다. 그들의 그림에는 일출과 일몰의 장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풍경 등 오묘하고도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모습도 있지만, 증기 기관차가 들어오는 기차역, 거대한 배들이 가득한 항구, 군중이 가득한 공원 등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도시의 풍경도 종종 등장한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 등이 즐겨

그린 파리 볼로뉴 숲의 롱샹 경마장(l’hipodrome de longchamp)도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낯선 근대의 풍경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마가 더 이상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 경마는 유럽에서 왕족이나 귀족 자신들이 소유한 마필(馬匹)의 능력을 견주는 데 주로 이용됐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경마가 하나의 오락으로 여겨지면서 경마장은 부르주아 시민 계급이 모이는 사교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열린 나폴레옹 1세 때는 군사력에 직결되는 마종 개량이나 혈통 보전, 마필 산업 육성 등이 중요했기 때문에, 전쟁에 투입될 빠르고 힘 좋은 말을 선별하는 것이 경마의 최우선 목적이었다. 그러나 경마는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에 경쟁이 라는 흥미진진함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경마장은 유희 시설로 더할 나위가 없었다. 크고 중요한 경주가 열릴 때면, 사람들은 잔뜩 꾸민 화려한 모습에 부푼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경마장을 찾았고 이곳은 패션과 유행을 선도하는 문화 중심지가 됐다.

유럽에서 진화한 경마장의 이중적 기능, 즉 군마 개량과 위락 기능을 적절히 수용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11세기부터 제전경마祭典競馬라고 하여, 궁중 의례나 종교 의식을 할 때 말과 함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식 경마는 이런 전통과는 무관하게 오직 위락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경마를 도입한 주체가 거류지의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첫 서구식 경마는 1962년 봄 요코하마의 명승지 슈히벤텐샤(洲干弁天社) 뒤 서쪽 해안 매립지에 있던 무사의 마장에 환형의 트랙과 경주를 위한 정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오직 거류 외국인이 즐기기 위한 곳이었다. 내국인을 위한 경마장은 1866년부터 1867년까지 요코하마 네기시(根岸)에 조성된 것이 시초다. 막부에 의해 계획·준공된 서구식 경마장인 ‘네기시경마장’을 시작으로, 관영 종묘 회사인 미타육종장(三田育種場)의 미타경마,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 호안에서 실시된 공동 경마 등 전국의 마산지(馬産地)마다 다양한 경마장이 속속 생겨났다. 그러나 서양 경마를 도입한 직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경마장을 단순한 위락 시설로 보았기 때문에, 마산지마다 다양한 경기를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는 많지 않아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여 경영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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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롱샹의 경주, 1866, 시카고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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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시노바즈노이케 경마장, 일본 도쿄

 

 

참고문헌

한국마사회, 『한국경마60년사』, 1984.

山崎有恒, “近代日本の植民地と競馬場”, 『第85回 學術大會 韓國日本硏究團體 第1回 國際學術大會』, 2012, pp.222~225.

박희성, “신설리경마장 건설과 1920-30년대 동대문 밖 도시개발”, 『서울학연구소 심포지엄 발표자료』, 2018.

"대규모의, 8만 9천 평 되는, 경성에 大競馬場, 기본금은 60만 원으로, 경마장은 청량리나 의정부?”, 「매일신보」 1910년 6월 18일.

 

환경과조경 410(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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