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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어떤 종류의 상상력
  • 환경과조경 2021년 10월

할아버지의 단짝 친구인 고물상 아저씨는 가끔 자신의 파란 트럭 아래를 살핀다. 거기에는 동네 고양이들을 위한 작은 그릇 두 개가 있다. 하루는 그 습하고 어두운 곳의 풍경이 궁금해 트럭 아래를 들여다봤다가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생각과 달리 아주 아늑했고 배를 불린 채 누운 고양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날 이후 가끔 골목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간식을 주는 사람이 많은 독서실 앞 쉼터가 그들에게는 자판기 같은 공간일까, 무릎 높이 정도 되는 화분이 옹기종기 모인 곳은 작은 공원 같을까. 작은 상상력을 동원하면 지겹기만 했던 일상 공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의적 힘을 상상력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사실 상상력의 범주는 더 넓고, 타자의 삶에 나를 이입해 세계를 넓히는 데도 상상력이 쓰인다. 내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골목을 이해하려 애쓴 것처럼 말이다. 황현산은 이를 어떤 종류의 상상력이라고 불렀는데, 이 능력은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 가령 세상에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은 구의역의 수리공을 진실로 제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위선자가 아닌지 자문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비록 위선적일지라도 그 생각을 마음에 새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1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이며, 슬퍼할 줄도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들과 가장 작은 감정까지 간접화2된 사람들의 차이이다. 사이코패스를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이 독특한 능력을 키우고 싶을 때 전시장에 가곤 한다. 물론 작품에 담긴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대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전시장의 작품들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예술에서의 조경을 다룬 작품을 여럿 실은 이달에는 꼭 한 번은 전시장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추석 연휴를 틈타 기형적인 단절이 일어나는 세계 속의 두 남자를 만나러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3

한 남자가 눈이 잔뜩 내린 산길을 오른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외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곳의 이름은 자유의 마을.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한도 북한도 아니게 된 이 지역은 외부와의 통행이 제한된, 자유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주민들은 서른두 살이 되면 마을에서 계속 살아갈지 밖으로 떠날지 결정해야 한다. 줄곧 땅만 보며 걷던 남자는 돌연 무릎을 꿇고 앉아 눈 속에 파묻힌 식물을 소중히 캐낸다. 채집된 식물들은 얼마 뒤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난다. 마을에 남는 쪽을 택한 남자가 바깥 세상에 가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보내는 식물이다. 둥실둥실 떠오른 식물은 먼 미래 또 다른 고립된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에게 가닿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무균실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매일 같은 일과를 보

내던 그는 우연히 하늘을 떠돌던 식물 표본을 접하고, 있는 줄 몰랐던 바깥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두 남자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모니터에서 상영된다. 고립된 세계를 암시하듯 모니터는 서로 등을 맞대고 있지만, 조명과 스피커는 공유되기에 경보음이 울리거나 느닷없이 불빛이 점멸할 때면 건너편 세계가 곧장 이쪽 세계를 침범한다. 이런 장치는 영상과 더불어 자유의 마을의 이야기를 팬데믹으로 수많은 단절을 경험하게 된 우리의 현실로 확장시킨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미래의 남자가 식물을 통해 그린 세상의 모습이 궁금했다.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 펼쳐졌기에 안온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졌을까. 아마 그 역시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 식물이 사라진다는 건 그와 연관된 복합 생태계와 인류 문화유산의 한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김아연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34). 시시각각 망가지는 지구를 조금씩이나마 치유해주는 건 아마 작은 씨앗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얹혀 간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때때로 골목을 길고양이나 돌 틈에 핀 잡초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서

 

1. 황현산, “간접화의 세계”, 「한겨레」 2016년 7월 14일.

2. 황현산은 사람들이 수많은 인터페이스를 거쳐 실제 상황을 접하며 우리가 삶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위험, 치욕, 때로는 죽음까지도 간접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3. 문경원과 전준호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2년 2월 20일까지 열린다.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한 두 작가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탐구했다. 그중 ‘미지에서 온 소식’은 2012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로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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