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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돌보는 조경
  • 환경과조경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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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어린이 놀이정원’ 초기 마스터플랜. 공간 배치나 공놀이 공간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빗물 정원과 트리하우스 등 많은 프로그램이 현실화되었다.

 

연재를 진행하며 정작 조경가를 인터뷰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조경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해온 한 조경가를 만났다. 다니엘 윈터바텀Daniel Winterbottom30년 가까이 워싱턴 대학교에서 조경을 가르치며 도외시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평면이나 완공된 공간의 사진만으로는 그의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없다.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많은 대화와 관계를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연구와 실무를 오랫동안 병행하면서 누적된 경험의 폭과 깊이를 짧은 인터뷰에 다 담기에 역부족이었지만, 몇 가지 대표 프로젝트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며 그의 디자인 철학과 치유 도구로 조경이 갖는 강력한 힘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27년째 재직 중이다. 1995년에 학부생 대상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지금은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어 학부 졸업 전에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캡스톤capstone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윈터바텀 디자인Winterbottom Design’이라는 개인 설계사무소를 열어 다양한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1995년에 만든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이니 오랜 시간 동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쌓였을 것 같다.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디자인/빌드 프로그램은 설계와 시공을 융합하는 스튜디오 과목이다. 요즘의 설계 과목은 대체로 이론 쪽에 치우쳐져 실무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조경 윤리의 적용과 이론만큼 경험을 통한 배움도 중요하다. 구조물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모른다면 시공이 가능한 설계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디자인/빌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학부에서 조소와 회화를 전공했는데, 16살 때부터 시공 현장에서 일하며 작품 활동에 필요한 돈을 벌었었다. 시공 기술을 접목한 미술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970년대 환경 미술이라는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조경과의 인연이 그때 시작되었다.

공예적 관점에서 조경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재료를 다루는 일의 장점을 알고 있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이 설계 분야에서 존중받기 어려웠지만,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고 현장에 나가면 큰 강점이 되었다.

또 디자인/빌드는 지역 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특권으로 느꼈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 조경이나 빗물 정원을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정신병원, 참전 용사 주거 공간, 피난민 커뮤니티 등 취약 계층을 위한 프로젝트를 더 많이 한다. 이런 작업에서 다양한 참여 방식과 대화를 시도하며 사람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참여 디자인 기법을 선호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을 위한 설계를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진 전문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석사 논문 몇 편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 학대 피해자, 피난민 공간을 다룬 연구의 전부인 상황이었다.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참여 디자인의 또 다른 장점은 사용자가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곳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지역 사회에서 주인 의식에 관심이 없다면, 나 역시 굳이 설계안을 그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프로젝트는 주로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발주되는가.

 

프로젝트마다 다른데, 대부분 필요한 공간이 있는 NGO나 시민 단체의 의뢰로 시작된다. 이러한 중간 조직들은 이미 수년 동안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그들의 요구를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에 훌륭한 연결 창구가 되어준다. 또한 프로젝트 기금을 마련하고 협력할 이들을 모으는 데도 힘써준다. 단체와 연결되었다고 해서 설계와 시공에 바로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첫해에는 주로 신뢰 관계를 쌓는 데 집중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되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중간 단체에 의지해서 소통을 이어나가는 편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4년 전에 크로아티아 로비니Rovinj의 공립 정신병원과 치유정원을 설계했는데 여전히 실현하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소통을 워낙 자주하다 보니 병원장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2010년에 완성된 시애틀 어린이 놀이정원Seattle Children’s Play Garden’을 인상 깊게 보았다. 커뮤니티가 원동력이 되어 조성된 공간의 아주 좋은 사례인데, 구체적인 과정과 역할을 이야기해달라.

 

이 프로젝트를 위해 4년이나 무료 봉사를 했다. 비영리단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단체에게는 처음으로 공립 공원과 연계해 공간을 만드는 시도이기도 했다. 지역의 언어 치료사들이 자폐나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바깥 공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공간 확보를 위해 시애틀 공원녹지과와 20년 기한 임대 계약을 맺었다. 시 입장에서도 공원을 무료로 개선해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애틀 시가 내어 준 공간은 공놀이 공간이 있는 어린이 놀이터였는데, 주민들은 운동 공간이 사라지는 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공원을 디자인하다 보면 여러 이해 관계자가 생각하는 공원의 모습이 각기 달라서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운동 공간을 우선해야 할지 치료 공간을 우선해야 할지 갈등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두 의견을 모두 충족하는 안을 만들게 됐다. 다섯 단계로 나뉘어 시공이 진행됐는데, 원안대로 조성된 부분도 있지만 다른 단체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바뀐 부분도 많다. (후략)


환경과조경 401(2021년 8월호수록본 일부 


다니엘 윈터바텀(Daniel Winterbottom)은 워싱턴 대학교의 조경학과 교수이자 윈터바텀 디자인(Winterbottom Design)의 대표다장소 만들기치유 정원커뮤니티 참여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연구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1995년에 개설한 조경학과의 디자인/빌드 스튜디오를 통해 학생들과 미국을 비롯해 해외의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조경 설계를 하고 있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 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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