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호 돌아보기’란 숙제를 끌어안고 시작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일단 나눴다. 그래서 8과 50이란 숫자를 얻었고, 나누기를 먼저 주장한 탓에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 나는 역으로 편집부 막내인 윤정훈 기자를 적극 추천했지만, 편집주간이 나를 지목하자 윤기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던 것 같다.”(남기준, “4.12m 이어달리기”, 2021년 1월호)
부하 직원을 꿰뚫어 보는 상사의 눈이 이렇게나 무섭다. 400호 돌아보기 순서를 정한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해 초. 편집부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 너머의 내 표정이 어떻게 읽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나는 웃고 있었다. 천연스러운 눈에 그렇지 못한 입꼬리. 그래도 스타트는 편집장이 끊어야 하지 않냐는 편집주간의 말은 대학 시절 과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주는 교수님의 은혜로운 선언처럼 들렸다(할렐루야). 단지 순서가 미뤄져 기쁜 건 아니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1980년대의 잡지를 리뷰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막막했으니까. 그리하여 돌아본 호수는 301호부터 350호까지(2013년 4월호~2017년 6월호). 공교롭게도 이 시기의 나는 한창 퀭한 눈으로 설계실을 드나들던 조경학과 대학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나마(?) 조경에 가장 관심이 많던 때였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
2학년 1학기. 지방으로 가는 첫 답사였다. 학교 정문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정원박람회는 낯선 말이었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이자 ‘국가정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이었을까? 수도권에서 거리가 상당함에도 사람들이 바 글바글했다. 조경 내부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판단했는지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그해 『환경과조경』에 줄기차게 등장했다. 그야말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모든 것을 다뤘다. 세 달(300호~302호)에 걸쳐 박람회장 실시설계안을 소개했고, 별도의 특집을 꾸려 301호(2013년 5월호)와 302호(2013년 6월호)에 나눠 수록했다. (보는 사람은 영 부담스럽지만) 조충훈 순천시장이 단독으로 302호 표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4월 초부터 기자들은 현장을 찾아 다양한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정원 조성에 참여한 조경가는 물론이고 시공을 담당한 조경 회사 직원, 박람회 조직위원회 소속 화훼관리팀장까지, 다양한 역할에 고루 주목했다(‘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시공일지’라는 꼭지가 있을 정도다). 박람회장의 메인 공간을 설계한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그 나선형의 언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순천호수정원’에 대해서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좀 생뚱맞다고 생각한 순간 방문객들이 빙글빙글 돌며 언덕을 올라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즐기고 있었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잠깐 생각했던 것 같 다. 다가오는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다시 열린다. 10년 만에 찾는 박람회장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잡지가 예뻐졌다
“예쁘면 다야.” 괜히 발끈(?)하게 되는 말이지만, 어떨 땐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전공 수업 시간, 한 친구가 발표를 하다 교수님에게 파워포인트 디자인도 설계의 일부라며 한 소리를 들었다. 디자인이라는 게 타고난 감각이 따라야 하는 법이라, 조경학과에서 이 ‘감’이 없는 학생들은 상당히 애를 먹기도 했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대학 4년 동안 얻는 건 PPT 만드는 스킬이라고 할 정도로 디자인은 힘이 셌다. 청중의 시선을 잡아끌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더욱 근사하게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덤으로 교수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고). 책도 그렇다. 2012년도에 조경학과에 첫발을 들였지만 『환경과조경』을 제대로 펼쳐본 건 잡지가 예뻐졌을 때부터다. 2014년 1월호(309호)부터 판형, 서체, 콘텐츠, 표지 및 내지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특히 표지에 박힌 ‘laK’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이 강렬한 제호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환경과조경’보다 ‘엘에이케이’라고 불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락’이라고 부르는 애도 있었다). 이따금 잡지를 펼쳐보며 생각했다. 이런 멋진 잡지를 열심히 보다 보면 나도 근사한 설계를 할 수 있겠지? 슬프게도 헛된 기대였지만. (후략)
* 환경과조경 399호(2021년 7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