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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철쭉과 억새 사이
  • 환경과조경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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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오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 조경 계획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황매산은 영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합천의 대표적 관광 명소다. 이곳이 철쭉과 억새로 대표되는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84년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황매산 입구부에 180헥타르에 달하는 대규모 목장을 조성해 360여 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젖소와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기고 주변의 풀을 먹는 바람에 자연스레 대규모 철쭉 군락이 형성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농가들이 낙농업을 포기하고 나간 자리에 억새가 무성히 자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기에 입구부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조경 계획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황매산이 가진 독특한 경관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보다 철쭉제 등 일회성 행사를 지원하는 이질적 요소를 조성해 오히려 원 경관을 훼손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반응이 적층된 황매산의 역동적 경관을 더욱 선명히 드러낼 것, 황매산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고 원 경관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물리적 계획을 세울 것. 기본계획과 기본설계는 JWL, 실시설계는 그람디자인이 진행했다. 공사 중 변수가 너무 많이 발생해 재설계에 준하는 공사용 샵드로잉을 매주 작성하고 이를 현장에서 시공 소장과 논의하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시켰다.

 

절반의 성공, 식재 설계

황매산에 올라서면 사방에 펼쳐진 억새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를 입구부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상지에 자생하는 억새류와 수크령류, 새풀류, 파니쿰류를 띠 형식으로 병치해 방문객들에게 각 식물이 지닌 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전달하고자 했다. 실제로는 의도한 바의 50% 정도만 구현되었는데, 대상지의 기후 조건과 그라스류의 생장이 갖는 관계를 깊게 분석하지 않고 미적인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새풀류는 생장이 더뎌 질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반면 압도적인 생장 속도를 보인 파니쿰류의 질감이 지배적 경관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으로 그라스 군락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공들여 설계한 지형의 아름다움이 묻힌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략)

 

환경과조경 399(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경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날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실험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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