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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정원을 보여주는 법』
  • 환경과조경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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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알레그랭(Etienne Allegrain), ‘베르사유 정원의 북쪽 파르테르 쪽에서의 루이 14세의 산책 (Promenade de Louis XIV en vue du Parterre du Nord des jardins de Versailles)’, 1688년경. 그림 하단 중앙 하얀 상의에 붉은 스타킹을 신은 이가 루이 14세다. 『베르사유 정원을 보여주는 법』 네 번째 버전의 첫 페이지. 루이 14세의 필적을 볼 수 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omenade_de_Louis_XIV_en_vue_du_ Parterre_du_Nord_vers_1688.jpg

 

책을 읽는 방법은 많고 많지만, 묘사된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책을 읽는 현장 독서는 단연코 최고다.1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현장에서 읽으며 묘사된 분위기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고 나면 그 책은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정원 답사 길에 현장 독서를 하면서 그 시절 사람들의 뜻을 좇아 보려 했는데 아직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읽을거리가 마땅찮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내 능력이 못 미치거나 하는 등의 이유다. 교토에서는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몽중문답夢中問答을 읽고 사이호지西芳寺를 거닐었지만 과문한 탓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를 스마트폰에 담아 창덕궁에 갔는데, 해설사를 따라 정해진 코스를 조금 빠르다 싶게 다녀야 하니 강세황이 감탄했던 후원의 풍취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베르사유에서도 현장 독서를 시도해보았다. 워낙 당대의 기록이 많아 읽을거리를 고르는 것부터 큰일이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과 정원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절대 왕정 체제를 강화하려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성의 2층 중심에 위치한 왕의 침실에서 시작해 무한을 향해 뻗어 나가는 중심축과 태양빛처럼 방사선으로 뻗은 알레allee는 강력한 왕권을 시각화하고, 정원 곳곳에는 태양왕을 암시하는 도상이 가득하다. 이 복잡하고 방대한 권력의 극장을 이해하는 일은 당시에도 어려웠는지 여러 인물들이 정원을 거니는 법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전제 군주의 행보는 일거수일투족 모두 주시의 대상이 되고, () 또한 이를 통치 수단에 활용했다. 그들에게는 정원 산책이라는 여가 활동도 중요한 정치적 활동이었다. 언제 누구와 어느 정원에 가는지가 중요하다. 이 활동의 무대가 되는 정원, 특히 르네상스 및 바로크 시대 정형식 정원의 축을 통한 정치적 풍경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루이 14세는 이러한 공간 통제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베르사유 정원 산책 경로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직접 집필했다.

Maniere de montrer le jardin de Versailles베르사유 정원을 보여주는 법은 제목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몇장짜리 문서에 가깝다.2 하지만 조원가나 정원을 방문한 이의 기록이 아니라 정원의 주인인 왕이 작성한 정원 안내서로는 (아직까지) 유일무이하고, 한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수정을 거듭할 정도로 루이 14세가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후략)

 

1. 앤 패디먼, 정영목 역, 『서재 결혼시키기』, 지호, 2001.

2. 후대 사람들이 편집하고 삽화를 덧붙여 만든 책(Manière de montrer les jardins de

Versailles par Louis XIV, Art Lys eds, Collectif, 2013) 등은 베르사유 궁의 기념품점이나 프랑스 내 대형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 397(2021년 5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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