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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역 고가 공원, 그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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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다보면 놓치고 지나가는 풍경이 너무 많다. 늘 자동차로 지나던 거리를 산책할 때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풍경, 회색빛 건물 사이로 드러나는 푸른 산자락과 하늘, 그리고 옥상에서 바라본 도시의 색다른 얼굴. 늘 다니던 길과 반복되는 시선을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그간 전혀 보지 못했던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만든 획일화된 도시의 구조는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표정과 상상력을 심각하게 차단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만든 도시 공간의 물리적 구조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은 경제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이는 토지와 자연, 그리고 공동체적 생활 방식에 크게 의존해오던 인간의 삶이 도시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 새롭게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토색 땅, 그리고 산과 하늘을 바라보던 우리의 삶은 자동차와 도로, 간판, 좁고 번잡한 보행로에 익숙해졌으며, 휴가철이라도 되면 도시는 ‘떠나야 할’ 숨막히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도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많은 도시계획가와 조경가의 오랜 화두였다. 도시를 종횡으로 가르는 비인간적 스케일의 빌딩과 도로 등 르 코르뷔지에식 도시 건설에 반기를 들며 도시를 인간이 중심이 되는 ‘무대’로 만들자는 미국의 도시사상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자동차 중심의 무차별적 도시 확산에 반대하며 고밀도 복합개발과 보행로 활성화 등을 주장하며 도시 공간의 새로운 재편을 주도하는 뉴어바니즘New Urbanism, 산업사회의 한계를 아우르는 그린 인프라스트럭처의 구축과 공원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 등은 경제성과 효율성에 매몰되어가는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진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도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미국 등 도시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가진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실험 중에 있다. 지금도 많은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조경가가 일그러진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사회를 담을 수 있는 건강한 도시 공간의 재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미국의 하이라인High Line을 벤치마킹한 서울역 고가 공원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야심찬 발표에 학계는 물론 업계와 대중매체가 연일술렁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월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한 뒤, 길이 938m의 서울역고가를 녹지 공원으로 재생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를 위해 관련 전문가와 일반 시민의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나섰다. 뉴욕의 하이라인은 지난 2006년부터 높이 9m, 길이 2.5km의 고가 폐선 철로 위에 조성된 선형 공원으로 해마다 5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세계적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93년 고가 폐선 철로를 공중 정원으로 조성한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를 모티브로 한 하이라인은 버려진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새롭게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서울시는 고가가 서울역과 연접해 있으며 4층 높이에서 한 눈에 서울도심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경관을 제공하는 관광 명소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건설 산업의 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관련분야가 도시재생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물론 서울역 고가 공원에 대한 비판도 없지는 않다. 교통 문제와 상권 붕괴를 우려하는 주변 상인들의 반대 의견도 적극 제기되고 있다. 공사 기간만 8년이 넘게 걸린 하이라인과 달리 2년 여만에 국제 설계공모부터 준공까지 모두 마무리하겠다는 서울시의 무리한 일정도 결국 시장의 임기 내치적 쌓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흉물로 남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을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하는 것, 혹은 철거를 통해 도시 공간의 새로운 구조 개혁을 주도하는 것이 서울 도시의 미래 비전과 어떻게 부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프롬나드 플랑테와 하이라인이 반드시 서울역 고가의 운명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과거 자동차와 함께 도시를 점령했던 높고 육중한 구조물이 시민에게 새로운 형태의 발길과 눈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도시에 새로운 경험과 상상을 부여하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먼 옛날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과의 융화속에서 저마다의 형태를 갖고, 또 그 형태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발걸음과 일상의 경험들을 좌우한다. 서울역 고가 공원의 의미는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하이라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고가를 철거하지 않았을 때보다더욱 ‘가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때,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치’는 지도자나 전문가의 철학이 아니라 도시 서울이 가진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 비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성급한 모방이나 몇몇 전문가에 대한 의존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와의 소통을 통해 지금의 장소와 모습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이해하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지역 주민과 상인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야할 것이다. 언젠가 서울역 앞 하이라인을 걸으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서울의 얼굴과 그곳에 담긴 이야기와 흔적, 그리고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진오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월간 『환경과조경』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환경계획학 석사 학위를, 텍사스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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