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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일상적 기억의 장소
양천공원 산책기
  • 환경과조경 2022년 6월

좋은 공원의 조건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공원의 이미지는 녹색 나무가 우거진 도심 속의 휴식처,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를 즐기는 공공 공간일 것이다. 구글에 공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지난 4월의 날씨 좋은 어느 토요일, 산책기를 쓰기 위해 찾은 양천공원의 첫인상이 그러했다. 공원 한가운데 광장과 놀이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뛰어놀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와 평상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놀이터 옆에 위치한 공공 도서관은 쾌적했고, 곳곳에 앉아 책을 즐기는 아이와 어른들로 조용하게 북적였다. 여느 조경설계 패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상적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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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공원 중앙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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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공원 가장자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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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와 책쉼터 도서관

 

 

그럼에도 한 가지 의아한 건 양천공원이 리모델링을 통해 최근 재개장한 공원이라는 점이었다. 리모델링한 공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막연히 공원의 정경을 상상했을 때, 노후 건축물의 리모델링 사례처럼 낡은 외관이나 재료를 살리는 작업을 통해 남은 오래된 흔적을 공원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공원을 돌아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된 공원의 리모델링은 오래된 건축물의 리모델링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었다.

 

오래된 공원에 가면 키가 크고 수관 폭이 넓어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나무는 공원의 연식과 함께 나이를 먹는데, 이 살아있는 식물은 자라고 울창해지면서 공원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양천공원 산책은 공원과 함께 성장한 나무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근린공원 외곽은 야트막한 둔덕을 쌓고 그 위에 심은 수목에 둘러싸여 있어, 어느 곳으로 진입하든 나무와 나무 그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낮은 언덕 위 숲 사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공원 중심부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 언덕을 만나게 된다. 언덕 위 나무 그늘에 평상과 벤치,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날씨 좋은 4월의 봄날이어서인지 자리마다 어김없이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공원 중앙의 광장에는 원형의 잔디가 깔려 있는데 자전거 타는 아이들, 캐치볼하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양천공원에 아이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잔디광장 바로 옆쪽에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아치형 구조물 아래에는 미끄럼틀, 정글짐 등 놀이 시설이 결합된 배 모양 구조물이 있고 그 주변을 모래 놀이터가 다시 둘러싸고 있다. 지하에는 아이들의 아지트를 의미하는 ‘키지트’라는 이름의 실내 놀이터가 운영된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요즈음,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주말에 밖에 나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부모가 모래 놀이터 바깥 퍼걸러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편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꿈마루 놀이터가 개장한 것은 2018년으로, 양천구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 사업 이전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기존에 있던 노후 야외무대와 놀이터를 연계해서 설계한 도시재생형 통합놀이터로, 성별이나 연령, 국적,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환경과조경 410(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도시의 물리적 경관에 표현된 추상적 기억을 담은 ‘기억 경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소의 기억이 남겨진 도시 경관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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