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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모처럼 미세 먼지 없는 청명한 하늘 밑에서 교정을 보다가
  • 환경과조경 2018년 6월

잡지 편집자는 기획, 자료 조사, 취재, 필자 섭외, 지면 구성, 사진 선택, 디자인 협의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원고의 교정과 교열도 편집자의 빼놓을 수없는 역할이다. 오자와 탈자를 바로잡는 것은 기본이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발견해 수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필자 특유의 어조와 언어적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환경과조경』은 편집된 지면을 인쇄소로 넘기기 전에 세 단계의 교정과 교열 과정을 거친다. 필자뿐 아니라 편집자도 늘 까다로워하는 띄어쓰기와 맞춤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알쏭달쏭한 띄어쓰기 규칙 몇 가지를 살펴보자. 사실 띄어쓰기의 원칙은 간단하다. 조사만 그 앞말에 붙여 쓰고, 나머지는 모두 띄어 쓰면 된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아래의 몇 가지 사항만 조심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첫째, ‘처럼, 부터, 까지, 밖에, 같이, 조차, 마저, 에서, 보다, 치고, ㄴ (는) 커녕, 에서부터, 조차도, 야말 로, 마저도’도 조사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리는 것 보다 현장 일이 좋다’라고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기서 ‘보다’는 독립성이 없는 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야 한다.

 

둘째,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공모에서 떨어질 수밖에’ (수=의존 명사, 밖에=조사) 의 띄어쓰기를 틀리는 사례는 많지 않지만, ‘공모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데=의존 명사) 은 대부분 틀린다. ‘그루, 켤레, 채, 쪽, 년, 가지, 분, 이, 바, 따위, 등, 따름, 터, 때문’도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지’는 ‘공모에 당선된 지 오래됐다’의 경우처럼 경과한 시간을 나타낼 때만 의존 명사다. ‘대로, 만큼, 뿐’의 띄어쓰기에 실패하는 사례는 아주 흔하다. 체언 (명사, 대명사 등) 다음에 오면 조사이므로 붙여 쓰지만 (설계대로 하는 시공, 건축뿐 아니라 조경), 용언 (동사, 형용사 등) 다음에 오면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설계한 대로 시공하자. 조경할 뿐 아니라 건축하는) . 

 

셋째, 복합 명사는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자아도취’처럼 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된 경우는 붙여 쓰는 등 여러 가지 예외가 허용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다. 전문 용어도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도시설계, 도시계획, 도시재생, 지속 가능성, 설계공모처럼 자주 쓰는 용어는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복합 명사로 된 전문 용어는 『환경과조경』 편집자들끼리 격론을 벌이는 단골 메뉴다. 조경설계를 붙일지 말지, 생태 복원을 띌지 말지는 옴스테드 앞에 붙는 이름을 프레드릭과 프레더릭 중 무엇으로 표기해야 하는지 못지않은 편집부의 쟁점이다. 무엇보다 한 편의 글과 책 전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도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조경 대학교’보다는 ‘조경대학교’로 표기하는 게 관례다. 다만, ‘랜드 대학교’처럼 외래어와 우리말이 결합한 경우는 띄어 쓴다. 외래어와 붙는 우리말의 띄어쓰기는 좀 복잡하다. 『환경과조경』은 국립국어 원의 한글 맞춤법과 여러 출판사의 편집 규정집 등을 참고해 고딕식, 메디치가, 히피족, 가톨릭교, 바벨탑 등은 붙여 쓴다. 지명이나 그에 준하는 고유 명사일 경우, 외래어는 띄어 쓰고, 우리말은 붙여 쓴다 (카리브 해, 라인 강, 에베레스트 산, 윈저 궁, 라빌레트 공원, 남해, 한강, 창덕궁, 선유도공원) . 그렇지만 동, 서, 남, 북, 중앙 등이 외래어 지명과 어울려 쓰일 때는 붙인다(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 .

 

넷째,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 다만, 글 전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좋다. ‘마감 때의 철야를 참아 내다’와 ‘건축주의 갑질을 이겨내다’처럼 보조 용언 ‘내다’의 띄어쓰기를 이랬다저랬다 하면 글이 시각적으로 산만해진다. ‘설계의 한계를 넘어보자’ 와 ‘소장의 무능력을 뛰어 넘고 싶다’의 경우도 보조 용언 (보다, 싶다) 띄어쓰기를 통일해야 글에 신뢰감이 생긴다. 내친김에 누구나 늘 헷갈리는 맞춤법 몇 가지도 짚어 보자. 분명히 국어 시간에 배웠건만 매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몇 개 안 되니까 외우면 되지만, 헷갈릴 때는 사전을 찾아보는 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우선, ‘로서’와 ‘로써’. 지위나 신분 또는 자격일 경우 ‘로서’를 쓰고, 도구, 방법, 수단이면 ‘로써’를 쓴다. ‘조경가로서 해야 할 일’이고, ‘단면으로써 표현할 수 없는 설계 개념’이다. ‘로써’가 맞는지 확신이 없을 때는 그 자리에 ‘~을 가지고’나 ‘~을 이용해’ 를 넣어 의미가 통하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든’과 ‘던’도 언제나 헷갈린다. 선택이면 ‘든’을 쓰고, 과거의 경우에는 ‘던’을 쓴다. ‘이번 설계에 참여 하든지 말든지 결정을 해’가 맞고, ‘어제 하던 프로 젝트 회의를 이어서 하자’가 맞다. ‘채’와 ‘체’도 늘 아리송한데, 동시 동작일 경우 ‘채’를 쓰고 (한 손에 도면을 든 채 프레젠테이션을) , 꾸밈을 나타낼 때는 ‘체’ (=척)를 쓴다 (시공 결함을 보고도 못 본 체) .

 

‘이’와 ‘히’는 외우는 게 차라리 편하다. ‘깨끗이’가 맞고, ‘솔직히, 열심히, 가만히’가 맞다. 직업을 가리키는 경우는 ‘장이’, 특정 성격이나 인물을 지칭할 때는 ‘쟁이’를 쓴다 (미장이, 멋쟁이) . ‘아무튼, 하여튼, 굳이, 일찍이, 요컨대, 갖은, 됐다’도 흔히 틀린다. ‘안 되다’와 ‘안되다’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안 되다’는 ‘아니 되다’의 준말이고 (그렇게 설계하면 안 돼) , ‘안되다’는 불쌍하다는 뜻이다 (그 소장님 참 안됐다) .

 

한자어는 음과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지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역할’ 대신 ‘역활’이라고 쓰는 사람이 많고, ‘지향(指向)’과 ‘지양(止揚)’을 혼동하는 실수도 잦다. ‘재고’(再考=다시 생각해 보다) 를 써야 할 자리에 ‘제고’(提高=드높이다) 라고 쓰는 것도 빈번한 오류다.

 

셀 수 있는 명사나 대명사 뒤에 붙어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신중하게 쓸 필요가 있다. 복수형 명사 앞에 복수를 암시하는 말이 이미 있으면, 단수형으로 처리하는 게 산뜻한 느낌을 준다. 모든 조경인들보다는 모든 조경인, 많은 대안들 보다는 많은 대안, 몇몇 시민들보다는 몇몇 시민이라고 쓰면 문장에 경쾌한 맛이 생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빨간 펜을 들고 이번 6월호를 이 잡듯 교정해 보실 차례다.

 

 

조경학을 전공한 윤정훈 기자가 『환경과조경』 편집부에 합류했고, 단행본 편집자로 활약할 신동훈 씨도 새 식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지면 곳곳에 스며들 신인들의 신선한 감각,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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