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등장하는 엔트 족(the Ents)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들은 자족적이고 어느 편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루만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자 전투에 참여하기로 한다. 참전을 결정하기 위해 엔트들의 회의인 엔트뭇이 열리고, 호빗 메리와 피핀이 이를 목격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호빗과 달리 엔트의 형상과 색깔, 크기는 각각의 나무만큼이나 다르다. 수염이 나고 옹이가 많아 울퉁불퉁한 매우 늙은 엔트도 있고 팔다리가 미끈하고 건장한 엔트도 있지만, 어린 나무 같은 모습의 젊은 엔팅(Enting)은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엔트 족의 남성형이다.
참전을 결정하고 나무수염은 종족이 너무 적음을 유감스러워한다. 병 같은 것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오랫동안 엔트의 자식이라고 해야 할 엔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엔트들은 엔트 부인(Entwives)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엔트 부인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영영 사라졌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무수염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숲도 광막한 야생이었을 무렵, 엔트와 엔트 부인들은 함께였으나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 않았다. 엔트는 거대한 나무와 야생의 숲, 높은 언덕을 사랑했고, 지나가는 길에 나무들이 떨어뜨려 준 과일만 먹었다. 하지만 엔트 부인들은 작고 연약한 나무와 숲 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마음을 쏟았고, 수풀 사이의 자두나 봄에 꽃을 피우는 야생 사과, 버찌 그리고 여름 물가에 피는 초록색 풀과 가을 들판에 씨를 퍼뜨리는 잡초를 보았다. 질서와 풍요, 평화를 원한 엔트 부인들은 식물이 자신들의 명령에 따라 성장하고 열매 맺고 잎을 피우기를 원했다. 그래서 엔트 부인들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1 ...(중략)
각주 1. 이러한 신화적인 최초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질 클레망, 이재형 역, 『정원으로 가는 길』, 홍시, 2012.
* 환경과조경 386호(2020년 6월호) 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생계를 위한 독서를 하기 전에는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