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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로의 초대
‘초자연’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5년 1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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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경, ‘더 많은 빛을’, 2014, 레이저 레벨, 연기, 사운드 설치, 가변설치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으로 존재를 인식한다. 그중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으로 인식되는 것은 ‘착각’으로 여기거나 종종 무시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재實在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람이 대표적이다. 바람이 부는 소리와 살결을 에는 촉감 그리고 나뭇가지의 흔들림과 꽃잎이 날리는 현상을 통해 바람이 있음을 인지한다. 불은 눈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데, 온도를 느끼고 다른 물체를 태움으로써 실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하나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존재를 지각할 수도 있다. 초자연주의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존재를 다른 논리와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초자연’ 전에서는 공감각적 체험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9월 2일부터 2015년 1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 서울관에서 ‘초자연’ 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예술과 과학 기술의 융·복합을 실험하는 국내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에는 리경, 조이수, 박재영, 김윤철, 백정기 작가가 참여했다. 5인의 작가는 비가시적 세계의 이면에서 자연성을 해체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역이 겹치는 중간 지대인 새로운 초자연적 환경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실재로 느낄 수 있도록 재구축한다. 현장에서 제작·설치한 기계 장치를 5개의 전시 공간에 서로 유기적으로 배치해 초현실적 세계의 실재를 상정하고 그 공간 속에 초자연적 기계 장치들을 삽입했다. 이렇게 장소 특정적으로 제작·설치된 작품들은 통상적인 시지각과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전시는 관람객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배치되었다. 천막을 들추고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느다란 붉은 빛줄기와 공간 전체를 아스라이 감싸는 연기가 시선을 몽롱하게 만들어 초자연의 세계로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빛은 서로 교차하며 수평과 수직의 격자로 분할해 빈 공간을 수놓는다. 붉은 선으로 가른 섬세하고 얇은 벽은 마치 실재하는 듯 감각을 교란한다. ‘더 많은 빛을’, 이 작품은 빛과 연기가 반응하며 일정 시간마다 기다란 통로와 벽을 만들어 내는 데, 연기의 촉감을 통해 빛의 벽을 만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전체를 감싸는 섬세한 사운드가 감각을 극대화시킨다. 붉은 빛의 산책로를 지나면 ‘바람의 정령’을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에서 3층까지 아래로 길게 연결된 계단의 양옆 벽면에는 사슴머리를 한 16개의 봇bot(대리자)이 방문자를 기다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적외선센서로 인지해 작동하고 핸드벨 소리를 무작위로 연주한다. 이 사슴과 닮은 동물들은 초자연의 정령으로 비유된다. ‘원령공주’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사슴머리의 봇이 초자연의 정령이라는 설명에 한층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시시가미(사슴신)가 바로 자연의 대리자를 상징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사슴은 고대부터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낼 때 희생 동물이 되기도 했다. 희생 동물은 하늘과 교통하는 힘이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고 때로 사슴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슴의 개념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나타났고 한반도 설화에도 종종 나타난다.1 ‘원령공주’와 ‘바람의 정령’은 이러한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의 정령’에서는 초자연적 존재가 기계 장치를 매개로 인간의 감각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람이 좁고 긴 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이에 반응해 빛이 반짝이고 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비유적 수법을 통해 이 공간을 지나는 동안 사람에게 바람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아일랜드 프로젝트: 불안한 숨결’.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은 오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다. 이곳에 들어서면 기분 나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소곤거리는 소리와 스산한 촉감이 음침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기술적인 조작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의 불특정한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들려주고자 하는데, 텅 빈 공간 속에서 시각적인 장치는 배제한 채 후각과 촉각, 청각만을 자극해 마치 유령이 지나쳐가는 듯한 오싹한 느낌을 안겨준다. 상쾌한 바람이 되어 지나온 후라 대비적 감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후 전시는 창고 전시장으로 이어지고 미립자들이 만드는 폭포(‘캐스케이드’)를 지나 마지막 작품인 ‘웨이브 클라우드’에서 의지와 염원이 물리적 현상으로 치환되는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초자연’ 전은 각각의 작품이 주체성을 갖고 있지만 공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순차적으로 경험하는 또 다른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모든 작품이 초자연적 경험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작품이 상호작용하며 전시관을 초자연적 세계로 만든다. 전시장 입구의 천막을 걷는 순간 미지의 존재와 만나는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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