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외부 세계와 접촉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감각은 보통 시각이다. 그다음은 청각인데,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70~80%라면 청각에 대한 의존도는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때론 듣는 경험이 보는 것보다 강하고 풍부하게 다가온다. 소리는 공기를 통해 몸에 전달되는 파동으로 시야에 국한되지 않으며, 귀는 어둠 속에서 더 예민하다. 어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영화 속 한 장면이 상영될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추억의 여행지로도 되돌아갈 수 있다.
디뮤지엄의 ‘사운드 뮤지엄: 너의 감정과 기억’은 소리와 빛을 주제로 한 전시다. 일반적인 전시에서 감상자가 곤두세우는 감각은 시각이지만 이곳에서는 시각이 청각을 뒷받침한다. 눈은 감아도 좋지만 귀는 충분히 열어야 한다. 듣고 있어도 듣는 줄 몰랐던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낯선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시청각 요소와 공간을 결합한 20여 개의 작품은 듣고 보는 감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폭시킨다.
듣는 행위에 집중하기
푸른빛의 조명이 가득 찬 공간에 손바닥만 한 스피커 수백 개가 설치되어 있다. 덩굴 식물처럼 벽에 걸린 스피커에서 작은 쇠 구슬이 또르르 굴러가거나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알 듯 말 듯한 이 세밀한 사운드는 자연에서 녹음한 소리를 컴퓨터로 가공한 것이다. 분위기를 전환한다는 뜻의 ‘클라이멋 체인지(Climate Change)’는 북적한 전시장 바깥에서 고요한 실내로 첫발을 내디딘 관람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로빈 미나드(Robin Minard)는 원치 않는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더이상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들이 작품 속 공간에서만큼은 작은 소리에 집중해보기를 바랐다.
다비드 헬비히(David Helbich)의 ‘하우스 오브 이어(House of Ear)’는 오직 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들려준다. 관람객은 모니터 속 작가의 지시를 따라 귀를 마사지하고, 귀 가까이 손바닥을 댄 상태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해본다. 이어지는 작가의 지휘 동작이 만드는 리듬과 박자를 따라, 상상 속 테크노 연주를 듣는다.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이 행위는 관람객을 무대 위 퍼포머로 변모시켜 전시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