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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스트로브잣나무와 개
  • 조현진
  • 환경과조경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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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jin Cho

 

 

 

사철나무, 서양측백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이 나무들은 그 자체보다 무언가를 가리고 막는 쓰임으로 익숙하다. 이 식물들을 보면 떠오르는 개 한 마리가 있다.

본가 아파트 단지에는 샛길이 있다. 쪽문으로 드나드는 발걸음이 만든 짧은 지름길인데, 적절히 나무를 심어둔 단지 내 보행로와 달리 식재 밀도가 낮아 길에서 1층 세대의 집 안이 보였다. 베란다에 그 개가 늘 있었다. 검고 큰 덩치에 순한 인상, 리트리버 종류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는 주인과 산책하는 걸 가끔 보았다고 했지만 나와 마주칠 때는 늘 그곳에 조용히 누워 바깥을 보고 있었다. 

그 개가 보던 창밖은 어땠을까? 특별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집 앞에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하얀 봄맞이꽃이며 개망초 같은 풀꽃, 누군가 심어둔 노란색 낮달맞이꽃, 소국 같은 화초들이 계절마다 피고 졌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맺힌 붉은 산수유 열매에는 직박구리와 참새가 날아들었고, 스트로브잣나무 숲에서는 까치가 울었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며 여름이면 진창을 찰박거리고 겨울이면 쌓인 눈을 뽀드득 밟는 소리를 냈다. 

언제부턴가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이사를 간 것 같다고 하신다. 그 집 앞은 여전한데. 검은 개는 지금 어떤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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