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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치유와 성장의 공간, 비밀의 정원
  • 황주영
  • 환경과조경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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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제작된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비밀의 화원’ 속 한 장면(출처=www.dogomovies.com/the-secret-garden/movie-review/9432)

 

작년에는 극장에 한 번도 못 갔다. 이제 영화관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마법의 공간이 아니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방문을 삼가야 하는 고위험 시설이 되어버렸다. 영화 시크릿 가든The Secret Garden’(2020)도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보았다. 아끼는 소설이 원작이고 주제도 덕업일치하며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기에 오랫동안 기대했건만, 놀라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영국 최고의 정원들을 배경으로 하여 해리포터미술팀이 촬영했으니 눈요깃거리도 화려한데 말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영화 시크릿 가든의 아이들은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비밀의 화원(1909)은 원예 치료(therapeutic gardening)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전 이미 정원 가꾸기가 지닌 치유와 공감의 힘을 우리에게 알려준 소설이다.1 그런데 비밀의 화원에 담긴 과정으로서의 정원의 의미를 축소하고 막연히 정원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마법의 공간이라고 하니 영화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정원(이라기엔 너무 넓고 다채로우며 버려졌다기엔 지나치게 잘 가꾸어진 곳)을 가꾸기는커녕 흙 한 번 파보는 일 없는 방문자다.


원작 소설과 이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모두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일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잘해봤자 본전치기인 상황에서 전작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크릿 가든과 달리 소설 비밀의 화원속 메리는 미슬스웨이트 저택의 숨겨진 정원을 리메이크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 10년 동안 방치된 정원이기도 했고 그녀의 본능적인 가드닝이 자신을 넘어 콜린, 그리고 콜린의 아버지로 확장되었기에 가능했다.


소년소녀세계명작 시리즈를 탐독하던 시절, 비밀의 화원의 메리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버넷의 다른 작품인 소공자(1886)의 세드릭이나 소공녀(1905)의 사라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긍정과 인내의 미덕을 체현하는 인물이라 위인전의 위인들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메리는 예의상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응석받이가 아닌가. 외모마저도 허영심 많은 어머니가 외면할 정도로 볼품없어 세상에서 제일 정 안 가는 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 무관심한 부모마저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잃고, 나고 자란 인도를 떠나 일면식도 없는 영국의 친척 집에 맡겨졌다. 심리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모두 메말랐던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93(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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