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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19세기의 리틀 포레스트, 부바르와 페퀴셰
  • 환경과조경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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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면 꼭 누군가 로또 이야기를 꺼낸다. 일확천금하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쓸 건가로 대화 주제가 바뀐다. 누군가의 계획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 맑고 조용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작은 규모로 농사지으며 살겠단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고 자란 세대는 커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인생 후르츠’, TV 예능 삼시세끼처럼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이른바 킨포크(kinfolk) 라이프를 꿈꾼다. 안온한 시골 생활에 대한 꿈은 사실 고대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이 노래해 왔다. 어찌나 많은지 아예 전원시라는 장르가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인들의 판타지일 뿐, 실제 시골 생활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에서는 벌레가 안 나온다.

 

이 전원생활의 꿈을 앞서 이룬 이들이 있으니,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ecuchet)의 두 주인공이다.1 소설은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날 일요일 오후, 파리 시내 길거리 벤치에 두 사람이 우연히 합석한다. 가벼운 대화를 하다 보니 모자 안쪽에 이름을 적어두는 습관, 47세의 나이, 독신이라는 점, 필경사라는 직업도 같다. 퀴어 코드는 없지만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떤 연인보다도 절절하다. 그날부터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지적 호기심을 채운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의 글을 옮겨 적는 필경사 생활에 만족했지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지식을 갈망하게 된다.

 

앎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시골 생활에 대한 욕구도 공유한다. 피곤한 도시도, 소란한 선술집 때문에 견디기 힘든 교외도 아닌, 평화로운 시골말이다. 이들은 시골을 동경하여 일요일이면 교외로 산책을 간다. 포도밭을 산책하고 풀밭 위에서 낮잠을 잔다. 우유는 신선하고 밭이랑에 난 개양귀비꽃도 어여쁘다. 이런 산책을 다녀온 뒤에는 도시 생활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다. 부바르가 삼촌인 줄 알았던 분이 사실은 친부였고 그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유산을 상속받고 부바르가 페퀴셰에게 한 첫마디는 우리 시골로 은퇴하자!”였다. 둘은 정착할 진정한 시골을 찾고 시골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잔뜩 구입한다. 여행은 계획할 때 제일 좋듯 귀농 생활도 상상할 때가 가장 감미롭다. 시골로 이주해 사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丸山 健二도 말하지 않았는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2 (중략)

 

**각주 정리

1. 귀스타브 플로베르, 진인혜 역, 부바르와 페퀴셰 1, 2, 책세상, 2006.

2. 마루야마 겐지, 고재운 역,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2014.


환경과조경 395(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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