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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오슬로의 추억
  • 환경과조경 2023년 03월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점을 둔 글로벌 디자인 그룹 스뇌헤타(Snøhetta)의 최근 조경 작업들로 이번 호 특집을 엮었다. 스뇌헤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조경가 이슬의 메일을 처음 받은 게 지난해 7월이니, 기획과 편집에 여덟 달 가까운 공을 들인 셈이다. 스뇌헤타 네 글자만 믿고 곧바로 특집호 편집을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스뇌헤타 특유의 수평적 작업 문화가 디자인 과정과 작품 생산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조명하고 싶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설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뇌헤타의 공동 대표 셰틸 토르센(Kjetil Thorsen)이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의 인상적인 구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뇌헤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민주적”이라고 답했다(월간 『디자인』 2018년 9월호). 스뇌헤타 뉴욕 오피스를 취재한 어느 기자는 작업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대형 테이블을 자세히 관찰해 묘사하며 그들의 작업 태도를 “투명성, 다양성, 교차성”이라고 표현했다(『Metropolis』 2015년 11월 10일). 이번 특집 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듯, 스뇌헤타가 생산한 작품들의 핵심 개념인 대화와 관계, 맥락과 문지방(threshold)은, 시니어와 주니어 디자이너가 평등하게 발언하며 교류하고 건축가, 조경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가 고유 영역을 허물며 협력하는 그들의 작업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스뇌헤타의 제안 메일에 가슴이 뛴 더 큰 이유는 실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추억 때문이었다. 2019년 9월, 피오르와 뭉크의 도시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매일 비가 내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우울했던 첫 방문 때와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오슬로는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 아름다운 언덕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녹색 도시 그 자체였다.

 

낙후한 구도심 항만에서 활기찬 워터프런트로 탈바꿈한 비외르비카(Bjørvika) 지역의 문화적 앵커가 오슬로 국립 오페라하우스다. 배를 타고 다가가며 보거나 해변을 산책하며 멀리서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형태가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모습임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스뇌헤타는 순백의 대리석과 화강석 판을 힘찬 수평선과 사선으로 엮어 북구와 노르웨이 자연의 아이콘인 빙산의 형상을 재현했다.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형태 재현의 강렬함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완만한 경사의 외부 공간이 바다로, 건물 지붕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험의 흐름이었다. 맥락을 존중하고 경계와 관계를 넘나드는 스뇌헤타 디자인의 특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급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마치 뒷산에 오르거나 공원을 산책하듯 부담 없이 걷다 보면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 오를 수 있다. 도심의 낭만적인 경관과 협만의 피오르 풍경을 한눈에 품고 내려다볼 수 있다. IFLA 행사 마지막 날,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몸을 눕히고 오슬로의 장엄한 석양을 마음에 눌러 담았다. 곧 코로나19 시대가 닥쳤고, 오슬로는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 도시로 남게 되었다. 스뇌헤타로부터 날아온 메일에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 교정을 보며 남기준 편집장은 “이번 호는 정기구독 외에 서점에서도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전망을 했다. 25년 잡지 경력의 편집자 말이 틀릴 리 없을 테다. 비교적 잘 알려진 타임스퀘어와 킹 압둘아지즈 세계문화센터는 물론이고 라스코 Ⅳ, 맥스 Ⅳ, 오르드룹가드 미술관, 트라엘비코센, 페르스펙티벤베그 등의 근작에서 스뇌헤타의 조경을 관통하는 적응과 경계의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참, 조경가 이슬의 열정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이번 스뇌헤타 특집을 꾸리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환경디자인과 조경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설계‧계획을 전공한 그는 MVRDV를 거쳐 2019년부터 스뇌헤타 인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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