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 중인 조경가 최지수(SOM)가 최근 포스팅한 글은 그 어떤 기사보다도 생생하게 코로나 시대의 비일상적인 일상을 담고 있다(brunch.co.kr/@playwithaina/12). 초현실적인 시절을 현실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역설을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힘을 냈다가 지쳤다가 막막했다가 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가 매일 같은 장소, 집에서 일하고 자고 먹고 살아가는 하루가 느린 듯 바쁜 듯 흘러간다. … 그렇게 셋이 복닥거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나의 주말은 전보다 더 특별해졌다. 반강제로 집에 갇혀 ○○를 돌보며 정신없이 일하다가 삼시세끼 해 먹고 지쳐갈 때 즈음 맞이하는 주말이 요즘은 더더욱 반갑기만 하다. 닫아버린 공원이나 산책로, 해변을 제하고 … 한정적인 선택지 속에서 한두 시간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사람 대신 자연을 만나서 한숨 돌리는 주말의 시간은 다음 한 주를 준비하는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주변에 산과 바다를 포함한 공원이 가까이 있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자연 속에서 걷기만 해도 얻는 에너지는 대단하다.”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들이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유례없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유럽 남부의 무더위가 시작되고 서구 여러 국가의 봉쇄령이 완화되면서 해변과 공원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에서도 경제 활동이 부분적으로 재개되면서 광장과 공원은 두세 달 만에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대감염병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도시공원과 공공 개방 공간의 존재 이유와 그 역할을 새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5월 15일, 여러 외신은 초록 잔디밭에 새긴 하얀 동그라미 속에서 공원을 즐기는 이색적인 풍경을 앞다퉈 실었다. “공원의 인간 주차장(human parking spots in the park)”이라는 촌평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도하기 위해 백색 분필 페인트로 그린 지름 8피트(약 2.4미터)의 원형 띠 속에 앉거나 누운 뉴요커들의 모습은 아마도 코로나 시대가 남긴 가장 역설적인 장면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서른 개의 원형 ‘인간 주차장’이 배치된 이 공원은 2년 전 개장한 브루클린의 핫 플레이스, 도미노 공(원Domino Park)이다(『환경과조경』 2019년 7월호 게재). 맨해튼에서 브루클린 방향으로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를 건너다보면 높은 굴뚝이 인상적인 노후한 갈색 벽돌 건물과 ‘도미노 슈거(Domino Sugar)’ 사인이 시선을 붙잡는다. 이 건물 바로 앞의 강변을 따라 들어선 도미노 공원은, 1856년에 세워져 ‘설탕 제국’이라 불리며 2004년까지 가동된 뒤 방치된 도미노 설탕공장 일대를 재생하는 사업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JCFO(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가 디자인한 도미노 공원은 브루클린 탈산업 경관 고유의 풍취에 파묻혀 이스트 강 너머 맨해튼의 해질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의 명소로 순식간에 떠올랐다.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이 신상 놀이터에 마음껏 모여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를 사랑한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의 재즈를 들으며 강바람에 취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
도미노 공원의 원에 갇힌 사람들을 조감한 드론 사진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전시장 한 벽을 내줘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공기 여과기까지 달린 마스크를 쓰고 정자세로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남자, 마스크는 물론 웃옷까지 벗어던지고 태양에 몸을 맡긴 커플, 한 원에 네 명 이하라는 규칙을 어기고 일곱 명이 빼곡 모여앉아 피크닉을 즐기는 한 무리의 십 대들, 고독이 절절히 묻어나는 표정으로 원의 경계를 따라 도는 중년 남자,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안온하게 누운 할머니, 아이의 걸음마에 바이러스의 공포를 잊고 마냥 흐뭇한 부부, ‘홈트’ 앱을 틀어놓고 유연성 강화 운동에 여념 없는 레깅스족. 도미노 공원의 진풍경을 영상 취재한 한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찍은 비디오를 2019년에서 온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그는 실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그린 할리우드 텔레비전 쇼의 한 장면이라고 여길 것이다.”
어찌 보면 사회적 거리를 두고 박혀 있는 원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작은 공원 같기도 하다. 휴식, 일광욕, 피크닉, 산책, 독서, 사색, 연애, 운동.평범한 공원 프로그램들을 잘라 붙인 압축적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감염 도시의 공원 풍경. 도미노 공원에 분필로 새긴 동그라미들이 등장한 지 사흘 뒤, 샌프란시스코의 힙 타운인 미션 지구의 돌로레스 공원(Dolores Park)도 똑같은 땡땡이 무늬 새 옷을 입었다.
이번 호부터 새 꼭지 ‘풍경 감각’의 문을 연다. 일러스트레이터 조현진의 그림과 글이 소란한 일상의 소중한 쉼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