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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정원 생활] 윈스턴 처칠의 정원
인내와 용기 그리고 상상력의 원천
  • 환경과조경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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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넘 궁 서측의 워터테라스에서 바라본 글라임 강. 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호수에 가까우며 브라운이 완성한 영국식 정원의 골격을 이루는 요소다. 건물 주변의 정형식 정원과 광활한 풍경화식 정원이 적절히 절충되어 유럽 최고의 경관이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곳이다. ⓒ성종상 

 

윈스턴 처칠, 불멸의 의지와 용기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1874~1965)영국 역사상 최고의 위인(BBC, 2012)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영웅이면서 전후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의 초석이 된 유럽연합과 국제연합을 주창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소설, 역사서, 수필집 등 총 72권의 책을 저술했고, 총리 재직 중인 1953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2차 세계대전을 써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처칠은 말썽꾸러기에다 머리가 나빠 아버지에게 전혀 쓸모없는 놈으로 낙인찍혔고 바람둥이 어머니에게는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반항적 기질에 언어 장애가 있었고, 거기다 공부도 못해 공립 학교에 꼴찌로 겨우 입학할 정도였다. 그러니 명문 대학은 아예 꿈도 못 꾸었고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안 좋고 변호사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군인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 아버지의 권유로 사관 학교에 응시해 삼수 끝에 겨우 들어갔다. 그랬던 그가 오늘날 영국 국민에게 불굴의 용기와 의지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으로 칭송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을 때 쿠바, 인도, 남아공 등의 전쟁터에서 군인이자 종군 기자로 포화 속을 뛰어다니다 포로가 되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정치가로서 몇 번이나 낙선과 좌절을 맛보기도 하면서, 타고난 의지와 용기를 더욱 강하게 단련했던 것이다. “한 번 치를 때마다 목숨이 한 달씩 줄어드는 것같은 선거를 열네 번이나 치렀던 그는 곤경이 겹친다는 것은 곧 승리할 좋은 기회가 왔다는 증거라 여기며 역경을 헤쳐나가곤 했다.

 

정원가 처칠

92세까지 장수한 처칠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시골의 한적한 집을 구해 전원생활을 맛보기도 했고 런던시내의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진 후에는 장관으로서 혹은 수상으로서 관저에 살기도 했다. “인간이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하면서 환경을 중요시했던 처칠이니 가족을 위한 집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음직하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집을 들자면 단연 블레넘과 차트웰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그에게 명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존재감을 준 곳이라면, 후자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족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짧게 거주하기는 했지만 첫 번째 시골집이었던 룰렌덴도 정원가로서 그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201810월호) 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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