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타슈켄트에 완공된 서울별서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옛 정원을 재현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바부르공원은 외교 단지와 대학가가 있는 대로 사이에 위치해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곳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이곳에 서울별서가 생기면서 공원 한편에 오픈스페이스가 형성되었고 색다른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낯선 나라에서 만난 한국식 정원은 친근하게 다가왔는데, 현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함이일었다. 서울별서의 설계자 신현돈 대표(서안알앤디 디자인)와 사람들의 행태를 계속 관찰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신현돈 대표는 최근 세 개의 한국 정원 작업을 진행했다. 타슈켄트에 설계한 공원이 이제 막 완공됐고, 신안군 비금도초의 정원이 1단계 준공을 마쳤다. 그리고 브라질 아라샤에도 설계를 마무리해 앞으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굳이 그의 작업을 ‘한국 정원’이라고 부르는 건 설계 성격을 정의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 개 모두 한국 정원을 조성하고 싶다는 발주처의 요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형주(이하 이): 설계 작업에서 한국성이나 전통은 항상 쟁점이다. 한국적인 정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신현돈(이하 신): 물리적 계획이나 디자인, 배치 계획 등을 짤 때, 시적poetic인 접근과 땅에 순응하고 지형을 잘 이용하는 그런 기법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형지세를 거스르지 않는 게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인적으로 보면 전통적인 설계 방법론을 구사하고 궁궐, 별서, 그리고 민가 정원에서 보이는 배치 구조나 디자인 언어 등을 구현하여 전통 정원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모티프로 삼아 현대화시키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한국 정원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지혜를 구현하고자한 흔적을 당신의 몇몇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다. 광화문광장이나 청계광장 등이 그러한 예다.
신: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한국성이다. 모더니즘적인 설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아방가르드한 설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전통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설계자도 있다. 설계하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 한국적인 것을 구현하는 게 내 설계의 출발점이다. 광화문광장도 일제에 의해 왜곡된 국가축을 바로 잡는 작업의 일련이었고, 디자인은 우리의 육조거리를 재현하는 걸 기조로 했다. 청계광장도 전통 보자기 형태에서 배치 계획의 골격을 잡았다.
이: 한국성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다는 말인데, 최근 작업 중 그러한 측면이 잘 드러나는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신: 얼마 전 조경의 날 기념으로 한국조경학회와 환경조경발전재단을 통해 서울광장에 조성한 템포러리 조경도 한국적인 시간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과거의 흔적을 되살린 프로젝트다. 덕수궁에서 모전교를 지나 북촌으로 가던 길, 원구단에서 경복궁이나 효자동으로 다녔던 길의 기억을 살렸고, 나머지 길의 흔적을 상징화한 것도 과거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현대화시켜서 팝아트적으로 푼 것이다. 종로 1가에 위치한 그랑서울의 조경 설계가 또 다른 예다. 피맛길에 고층 빌딩을 세우면서 과거 피맛길의 흔적을 살리고 운종가의 영지影池, 장초석과 온돌, 집터의 기억을 살렸다.
해외에 한국 정원을 만든다는 것
설계공모의 안이 관철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디자인이 퇴행하거나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별서 조성에는 두 가지 난제가 더 있었는데, 복잡한 통관 절차와 여러 클라이언트의 존재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독립국가연합의 하나로 공화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구의 약 80%가 이슬람교도로 한국과 문화적 차이가 크다. 해외에 조성되기 때문에 과정상 어려움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서울시와 타슈켄트가 직접 협약을 맺고 진행했음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일처리가 미진했다. 문화적 차이로 한국인과 우즈베키스탄인 사이에 업무 처리 방식과 절차에 괴리가 생겼고, 일할 사람과 자재가 준비되었음에도 통관이 처리되지 않아 공사가 지연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이때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관이 조율에 나서면서 소통에 물꼬를 텄다. 공사를 총괄한 현장 소장은 “해외에서 진행하는 조경 공사에 대사관에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는데, 한국 대사관 측은 “한국정원이 한류의 발판이 될 것”이란 믿음으로 서울별서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정원’의 가능성에 대한 신현돈 소장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또 하나의 난제는 타슈켄트 시장과 우즈베키스탄 국가 연구원, 타슈켄트 공원국,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관, 그리고 고려인협회라는 다섯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난제로 예상된 이 부분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신현돈 대표가 직접 방문하여 진행한 발표회마다 ‘한국 정원’의 모습은 당선된 설계안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 일색이었다. 그렇게 서울별서는 설계안대로 구현되었고, 산고의 아픔을 덜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