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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아일랜드의 사계
  • 환경과조경 2022년 2월

고풍스러운 브라운스톤 건물과 울창한 가로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동네만 부지런히 걸어 다녀도 디자인 영감이 수없이 떠오르는 뉴욕에는 갈 곳이 참 많다. 센트럴 파크, 브라이언트 파크, 하이라인 같은 유명한 공원은 물론이고 동네 공원이나 놀이터, 뮤지엄이 도시 곳곳에 있다. 주말마다 가야 할 곳 목록을 더하고 지우기 바쁜 중에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 개장 소식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뉴욕의 베셀(Vessel)과 상하이 엑스포의 UK 파빌리온 등 독특한 형태의 건물 디자인으로 유명한 헤더윅 스튜디오, 뉴욕을 기반으로 한 조경설계사무소 MNLA, 구조를 담당한 에이럽(Arup)의 협업으로 뉴욕 허드슨 강변 피어 54에 놓인 공원.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보이는 리틀 아일랜드는 이름 그대로 허드슨 강변에 떠 있는 인공의 작은 섬이다. 다양한 공원 프로그램과 더불어 약 7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수변과 수직을 이루는 인근의 다른 부두와는 다르게, 도로와 도시 격자의 연장선으로 일정 각도를 틀어 자리 잡았다. 리틀 아일랜드는 휘트니 뮤지엄과 첼시 마켓, 하이라인과 함께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투어 장소가 되었다.

 

피어 빌딩의 일부로 남아 보존되어 있는 스틸 아치를 지나 남쪽 다리를 건넌다. 콘크리트 기둥을 웅장한 대문 삼아 튤립 지붕 아래를 지나면 2.4에이커의 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앉아 쉴 수 있는 잔디와 야외 테이블이 잔뜩 놓인 광장이 보이고, 간단한 음료 및 스낵 트레일러에 새긴 귀여운 튤립 모양 아이콘들이 공원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을 다시 상기시킨다. 일관성 있게 브랜딩하고 디자인한 공원 곳곳의 안내판이 설계자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그늘막 아래 무지개색 의자에 잠시 앉아 목을 축이고 콘크리트 기둥이 만든 인공 언덕을 줄지어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공연장에서는 한창 공연 리허설 중이다. 다음에는 공연을 보러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서쪽의 가장 높은 전망대를 향해 구불구불 길을 따라 걷는다. 플랜터 역할을 하는 코르틴스틸의 붉은 갈색과 그 벽을 따라 흐르는 초록 식물의 조화가 도드라진다. 플랜터와 난간의 디테일, 다양한 식물을 구경하며 다다른 전망대에서는 허드슨 강변 남쪽의 전망이 펼쳐진다. 잠시나마 시원한 강바람을 느껴본다.

 

기존의 부두를 받치고 있던 낡은 나무 기둥은 새롭게 솟아오른 콘크리트 기둥과 대조를 이루며 남아 있다. 강 아래 기둥 주변의 생물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 와중에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피어 54를 비롯해 뉴욕의 여러 부두가 피해를 보았다. 그 때문에 리틀 아일랜드의 구조물도 최초 계획안에서 점점 높아져 해수면에서 4m 이상 높게 설계되었다. 물 위에 떠오른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아이콘 측면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형의 높낮이가 역동적이며 다양한 공간과 식물로 꼼꼼하게 구성되어 있어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적, 생태적 측면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디자인 해법은 없었을까.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는 경험과 더불어 가까이 접근해 물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고려했다면, 사람들이 수공간의 생태계와 식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환경과조경 406(2022년 2월호수록본 일부  

 

최지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에이컴(AECOM), 하그리브스(Hargreaves Jones)를 거쳐 SOM 뉴욕 오피스에서 조경설계를 지속하고 있다. 건축, 도시, 구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조경가의 역할을 유연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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