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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보다 더 푸르다
  • 환경과조경 2022년 1월

2000년 혹은 2001년 봄학기, 학부 커리큘럼 중 가장 중요한 설계 과목인 ‘공원 설계 스튜디오’의 첫 시간에 한 친구가 늦게 왔다. 그 친구가 눈에 띄었던 것은 첫 강의에 늦는 학생이 흔치 않은데다가 유독 머리색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첫 인상이 좋았을 리 없고 강의 내내 수업 태도도 인상적이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학기 말에 과제를 제출했을 때 내가 깜짝 놀랐던 걸 보면 말이다. 제출 결과물은 독보적이었다. 무릎을 칠 정도로 내용은 물론 표현도 탁월했다. 몇 년이 지나 학교를 그만두고 토문건축에 잠시 적을 두었을 때, 뽑아야 할 신입으로 제일 먼저 그 친구가 떠올랐고 수소문해서 찾았다. 이후 지금까지 조용준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2003년 11월, CA조경을 개업할 때도 함께했고 유학을 가기 전까지 CA조경의 여러 설계에 톡톡히 기여했다. 특히 유학 가기 직전 당선된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조경설계공모’에서의 맹활약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좋은 평을 받은 빛가람 호수의 형태와 에지 처리, 여러 디테일은 대부분 조용준의 아이디어에 신세를 졌다. 아깝게 당선을 놓친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설계공모’의 설계안에서 운정호수공원 에지에 사용한 강력하고 미려한 선형은 솔직히 말해 수원 광교호수공원의 복잡한 교량형 에지보다 멋졌다. 십 여 차례의 디자인 리뷰에서 당시로는 다소 낯선 ‘경계없는 도시와 공원’, ‘물과 공원의 유연한 에지’를 제안하고 고집한 사람이 조용준과 류지현(SWA)이었다. 그걸 내가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슬쩍 ‘모호한 경계(blurred edge)’ 개념으로 가져왔다. 현재는 보편적인 생각이 되었지만 앞서 나간 젊은 정신으로부터 내가 한 수 배웠던 셈이다.

 

조용준은 유펜(UPenn) 졸업 후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3년간 일을 했다. 이때 활약상은 당시 일했던 팀의 소장인 정재윤(JCFO)이 지금도 좋은 프로젝트를 맡을 때면 종종 작은 부분이라도 참여해줄 수 있는지 조용준에게 문의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JCFO에서 큰 프로젝트보다 디테일에 대한 안목을 키웠던 것 같다. JCFO를 퇴사하고 CA조경으로 돌아온 조용준은 현재 많은 일을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특히 2020년에 완공한 워커힐 더글라스 하우스의 더글라스 정원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은 조용준만의 작품이다. 주변의 자연을 어떻게 정원의 일부로 만들지 뛰어난 판단을 내린 덕에 정원은 원래 있었던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보기 좋게 도드라졌다. 원래 갖고 있던 감각에 JCFO에서 훈련한 디테일에 대한 안목이 균형 있게 합쳐졌다. 게다가 이러한 밸런스와 앙상블을 이제 막 발휘하기 시작했다.

 

환경과조경 405(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진양교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와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목천 독립기념관, 둔천 올림픽공원, 상암 월드컵공원 및 하늘공원, 청계천 총괄 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청량리의 공간과 일상』,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을 펴냈다. 경관 알레고리의 재현이 조경가가 땅을 다루며 풀어야 할 최종의 숙제라는 견해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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