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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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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10,000
잡지 가격 11,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그림자 기록하기, 공원의 비인간 행위자들과 나눈 느린 대화
절경의 봉우리에서 버려진 섬으로, 숨겨진 폐허의 정수장에서 숭고의 미감을 발산하는 공원으로 운명이 바뀌어온 선유도. 어쩌면 선유도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공원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비인간적’은 비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식물과 곤충, 빛과 바람, 물과 이끼, 부스러진 콘크리트와 녹슨 철근이 모두 주체가 되어 장소의 행위자(agent)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선유도공원은 인간만이 도시의 거주자가 아님을, 인간만이 공원의 주인이 아님을 감각하게 한다. 산업의 폐허 사이사이를 비집고 생명체가 스며든 선유도공원은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을 무력화하는 복합체 경관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복잡하게 얽힌 연결망, 선유도공원에 또 하나의 조용한 흔적이 내려앉았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유담담’의 하나로 조성되어 지난 4월 23일 모습을 드러낸 김아연(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의 설치 작품, ‘그림자 아카이브’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의 정수장 구조물(비인간 사물)과 식물(비인간 생명체)이 빚어내는 오랜 거주의 기억과 현재를 시아노타입(cyanotype)이라는 고전적 인화 기법으로 포착한다. 진청색 감광천에 새겨진 그들의 그림자는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비인간들이 단지 기록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풍경의 주체임을 증명한다. 시아노타입은 19세기 식물학자들이 빛과 물, 약품을 이용해 식물 표본을 기록하던 인쇄 기법이다. 얼마 전까지 설계 도면을 만들 때 쓰던 청사진도 시아노타입의 일종이다. 햇빛으로 이미지를 현상하기 때문에 ‘선 프린트’라고도 불린다. 김아연은 이 오래된 기록 방식을 공원의 시간과 풍경에 겹쳐놓는다. 그는 “관찰과 발견과 느낌과 상상”을 통해 감각한 선유도공원의 “무위의 풍경을,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자라는 생명을, 오늘의 잠깐을, 물과 햇빛과 약품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시아노타입을 택했다. 공원 곳곳에서 발견하고 채집한 사물과 식물의 윤곽을 햇빛에 감광시켜 인화했다. 그러나 김아연의 기록은 정밀한 재현이 아니다. 실루엣과 흔적, 즉 그림자만을 남긴다. 바람에 흔들리며 명확히 찍히지 못한 경계들, 색의 농도에 따라 드러나는 미세한 잔상들이 그림자로 남아 짙푸른 캔버스에 감광된다. 버드나무, 억새와 수크령, 노린재, 바닥의 몽돌, 철재 펜스, 계단. 어떤 건 바람에 날려 일부만 드러나고, 또 어떤 건 그림자조차 희미하다. 이 불완전성이야말로 ‘그림자 아카이브’의 본질이다. 존재는 흔들리며 기록되고, 완전하게 포착되지 않는다. 선유도공원의 설계는 조경가가 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비인간 생명체와 사물이 끊임없이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김아연의 작업은 비인간들의 자기표현을 도와주는 일에 가깝다. 그들의 자율적 행동과 흔적이 드러나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작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록자이며, 그들은 대상이 아닌 공저자가 된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우리가 기록이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명확성과 명명 가능성에 균열을 낸다. 대신 그것은 도시의 이름 없는 존재들의 자취를 감광해 ‘인간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김아연의 아카이브는 과학적 분류와 세밀한 묘사를 담은 도감이 아니다. 공원에 잠재한 비인간 존재들과 느린 대화를 시도하는 일종의 청취 행위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다시 도시에 되돌려주는 것. 선유도공원 수생식물원을 바라보는 긴 정자이자 한강 풍경의 병풍이기도 한 ‘그림자 아카이브’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누구의 삶을, 무엇의 존재를 기억하는가. 눈에 띄지 않는 사물의 흔적, 이름조차 없는 잡초의 자취를 빛의 언어로 기록한 김아연의 설치 작업에는 도시에서 잊혀온 비인간들의 그림자가 정성스레 담겨 있다. 명명과 통제가 아니라 감응과 연대의 방식으로. 짙푸른 ‘그림자 아카이브’는 계속 변해 갈 것이고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탈색되어 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이] 언젠가 정해진 생애를 마치면 겸허히 퇴장해야” 하는 것처럼, “그림자 아카이브는 그 기록 장치로 행복한 삶을 살다 서서히 서서히 사라지기를 희망”한다고 김아연은 말한다. 이번 호 지면에 담은 그의 “기록물을 만들기 위한 여정의 기록”을 꼼꼼히 읽어보시길, 책장을 덮자마자 양화대교행 버스에 올라타시길 권한다. 지난 5월호부터 일상의 ‘다양한 공원 사용법’을 청취하는 꼭지, ‘슬기로운 공원 생활’을 새로 마련했다. 매달 다른 필자가 하나의 공원과 그 공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0년 6월호부터 이어온 ‘풍경 감각’을 이번 호로 맺는다. 무려 만 5년이 넘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긴 기간을 통과하며 늘 따뜻한 글과 그림을 보내준 조현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풍경 감각] 창문으로 들어오는 손님
매일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연다. 식물들이 햇빛과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도록 방충망까지. 그런데 열린 문으로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도 찾아온다. 가장 단골은 파리. 근처 텃밭 퇴비 더미에서 날아왔으리라. 위생이 나빠 보이지만 밝은 쪽 다른 창을 열어두면 금방 날아가기에 내쫓기 수월하다. 드론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는 손님은 말벌이다. 위험하다고 하니 스스로 나갈 때까지 안전한 방에서 지켜봐야 한다. 나방은 더럽거나 무서울 게 없어 방심했는데, 종종 나타나 입맛에 맞는 화초를 골라 몽땅 먹어 치우던 애벌레가 이 녀석의 유생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꽤 근사한 손님들도 있다. 작업실 옆의 숲에서 온갖 나비가 날아와 꽃 꿀을 더듬고 있으면 날개 표면에서 산란하는 오색 빛을 구경할 수 있다. 꽃잎에 우아하게 앉는 나비와 달리 꿀벌은 꽃에 얼굴을 쑤셔 박은 채 꿀과 꽃가루에 열중한다. 투명한 날개 아래로 씰룩거리는, 노랗고 귀여운 엉덩이들. 언젠가 다홍색 무당벌레가 찾아와 며칠 동안 화분의 진딧물을 싹 청소해 준 적도 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깡충거미’라는 거미 하나가 별 일 없이 찾아와 지내며 몬스테라 잎사귀 사이를 깡충거리며 놀았다. 다가가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쭈뼛대던 그 친구 덕분에, 징그럽게만 여겼던 거미가 이제는 어깨에 내려앉아도 아무렇지 않다. 이 글을 끝으로 ‘풍경 감각’을 마무리한다. 처음엔 그림에 글을 붙이는 것도, 잡지의 가장 앞쪽에 자리잡은 것도 어쩐지 부끄러워서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난히 작업이 어려웠던 몇 달간 휴재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창문을 여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아니길 바라지만, ‘풍경 감각’의 몇 편은 누군가의 베란다에서 파리나 나방 같을지도 모르겠다. 나비나 무당벌레는 욕심인 듯 하고. 그래도 바라건대 깡충거미쯤 되었으면 좋겠다.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편집부와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림자 아카이브
기록물을 만들기 위한 여정의 기록 계속 걷기: 단서가 생각이 될 때까지 1. 선유도는 한강이라는 물이 만든 섬이며, 물을 정화하던 정수장이었고, 물이 풍부한 공원이 되었습니다. 선유도는 ‘물의 기록’입니다. 2. 물을 정수하기 위해서는 화학 약품이 필요합니다. 미세 입자들을 응집시키거나 소독하는 과정에 몸에 해롭지 않은 여러 화학 약품을 씁니다. 3. 섬은 햇빛이 풍부합니다. 고층빌딩의 간섭 없이 햇빛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4. 햇빛은 세상의 무언가를 만나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생각납니다. 그림자는 누군가의 분신이자 정체성이기도 하지요. 햇빛과 그림자는 한 쌍일 텐데, 우리는 만져지지 않는 그림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공모전을 시작할 무렵, 몇 개의 단상이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디자인 초반은 추리소설 같습니다. 몇 개의 단서를 발견하지만 아직 그 조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파편들이 몇 개의 생각 덩어리로 응집되어 침전될 때까지 선유도를 꽤 자주 오래 걸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선유도에서 목격한 풍경들과 개인적인 기억들이 떠올라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수생식물원의 남측 산책로를 멀리서 영화 장면처럼 지켜본 적이 많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많은 연인이 자작나무 사이를 오가며 꽃을 건네고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줄을 지어 소풍을 나왔습니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을 했습니다. 강아지들은 먼저 다녀간 친구를 찾아 나무 밑동을 킁킁거립니다. 자작나무 사이로 매일, 매 순간 단편 영화의 푸티지(footage)가 펼쳐집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필름처럼 이어지는 이 40m의 산책로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가면, 원래 설계도에 없던 못생긴 안전 난간과 아무도 앉지 않는 조악한 벤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물을 등지고 앉지 않습니다. 난간을 없애면 몸을 돌려 근사한 수생식물원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네 벤치에서 흔들거리는 한가로운 풍경도 선유도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오랫 동안의 관찰과 발견과 느낌과 상상은 이런 무위(無爲)의 풍경을,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자라는 생명을, 오늘의 잠깐을, 물과 햇빛과 약품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바람이 되어갑니다. 선유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경관을 바라보는 아주 긴 정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공부하기: 생각이 개념이 될 때까지 사람들이 가끔 물어봅니다. 어떻게 개념을 만드냐고요. 대단한 방법은 없습니다. 두뇌에 땀이 나도록 생각할 수밖에요. 햇빛, 물, 기록, 그림자, 화학 약품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열심히 검색을 해봅니다. 그 과정에서 제 눈에 들어온 하나의 이미지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애나 앳킨스(Anna Atkins)가 해조류와 수생 식물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한 시아노타입(cyanotype) 기법입니다. 앳킨스는 세계 최초의 사진집을 만든 여성입니다. 그녀의 시아노타입 기록 작업은 사진사, 식물학자, 예술가의 교차점에 위치한 선구적인 시도입니다. 대학 시절, 학과사무실의 꾸릿꾸릿한 냄새의 원흉이던 청사진 기법이 같은 원리입니다. 너무나 익숙했던 청사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추억 여행은 잠깐, 이제 시아노타입에 대해 공부합니다. 구연산 제2철암모늄과 페리시안화칼륨을 적정 비율로 물과 섞어 숙성시킵니다. 액체를 종이나 천에 바른 뒤 잘 말려 감광지 혹은 감광천을 만듭니다. 물론 햇빛을 완전 차단해야 하니 암실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이미지를 얻고 싶은 물체나 OHP 필름 뒤에 이 감광지를 대고 햇빛에 20~30분 정도 노출시켰다 물로 세척하면 이미지가 나옵니다. 햇빛을 받은 부분은 파랗게, 빛을 받지 못한 부분, 즉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흰색이 됩니다. 태양광에 감광되는 화학 처리된 천에 실재하는 사물의 외곽선과 그림자를 깊은 푸른색으로 인화하는 햇빛 프린팅(sun printing), 즉 시아노타입으로 선유도의 풍경을 기록하고, 그 위에 매일의 그림자가 중첩되며 선유도의 시간을 쌓아간다는 그림자 아카이브의 개념이 드디어 명료해지기 시작합니다. 실험하기: 개념이 실체가 될 때까지 공공미술 심사와 심의 때 몇몇 위원이 묻습니다. 시아 노타입을 다른 작품에서 해봤냐고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의심의 눈초리 가 쏟아집니다. 오랜만에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제 작업이 잘 안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의심이 제기됩니다. 아마 제가 ‘미술’이라는 말에 너무 심 취해 있었나 봅니다. 새로운 시도에 너그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1/3의 책임감, 1/3의 오기, 1/3의 호기심 으로 수많은 테스트의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직사광선 에 파란 빛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약품과 물의 비율 을 어떻게 해야 할지, 흐린 날과 맑은 날은 노출을 얼마나 해야 되는지, 얼마나 밀착해야 이미지가 선명해지 는지, 어떤 천이 적절할지. 여러 번 실패하고 다시 해봅 니다. 납작한 식물 표본이 아니라 현장에서 입체를 다루니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3차원의 공간감이 그라데이션으로 나타납니다. 광량, 햇빛의 각도와 강도, 화학약품의 배합과 숙성 시간, 세척에 걸리는 시간 등 여러 변수로 인해 하나도 같지 않은 푸른색의 스펙트럼으로 펼쳐집니다. 버리는 시간만큼 자신이 생깁니다. 이러한 수고로운 경험지(經驗知)를 소중히 여깁니다. 보통의 조경 일에서는 실패나 실수를 거듭할 사치를 부리기 어렵습 니다. 그래서 ‘미술’이라는 말이 감사했습니다. 제작하기: 실체가 작품이 될 때까지 생각이 정리되고 테스트를 열심히 한다고 작품이 저절 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솜씨 좋은 파트너들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림자 아카이브에는 그들의 노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월에 개장을 해야 하니 모든 테스트 작업을 겨울에 해야 합니다. 지난겨울 흐린 날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매일 매일 햇빛의 강도에 그토록 예민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의 젊은 팀원들과 해가 나오면 뛰어나갔습니다. 햇빛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자주, 어쩌면 처음 한 것 같습니다. 2월의 맑은 며칠 동안 선유도의 곳곳을 누비며 햇빛 프린팅을 진행합니다. 빛에 취약한 감광천 은 첩보원처럼 검은 천으로 휘감아 조심스럽고 민첩하 게 다뤄집니다. 가장 조바심 나는 시간은, 낮에 햇볕을 쪼인 천들이 세탁기 안에서 돌고 있는 그 한 시간입니 다.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좁은 세탁실에 쪼그리고 앉 아 푸른색으로 인화된 이미지를 비로소 처음 마주하 는 시간입니다. 정수장에서 정수된 물을 통과해야 비 로소 정수장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니. 말장난을 하 면서 혼자 재미있어 합니다. 물을 경관적, 놀이적, 관리 적 요소로만 생각하던 오랜 습관에 균열이 가는 느낌 이 듭니다. 그렇게 세탁한 천은 매끈하게 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천을 발수 가공하기로 합니다. 공장으로부터 기계 작업하기 위해 천들을 1.5m×25m 롤로 만들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프린트 이미지 하나는 여 백을 포함하여 고작해야 60~70㎝ 에 250㎝ 정도이니, 발수 가공 기계에 들어가려면 20개를 재봉질로 이어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 후 밤마다 제 아이와 번갈아 미싱을 돌립니다. 발수 가공이 끝난 천은 다시 낱 개로 분리하여 다림질을 또 해야 됩니다. 다림질이 끝난 천은 폴리카보네이트 투명 패널에 부착되고 철재 프레임에 조립됩니다. 자외선 차단 스프레이도 골고루 뿌려줍니다. 빨래, 바느질, 다림질. 우리 어머니들이 지 루하게 했던 가사 노동을 집약적으로 반복합니다. 천이 라는 재료를 선택한 순간에 내정된 일이었을 텐데, 당 시에는 이 고단함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구조체는 어떤가요. 자작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모든 작업은 장비 없이 나무를 피해 한 땀 한 땀 진행됩니다. 경사진 땅을 사람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 게 평평하게 만들고 선유도공원 원 식재 도면의 붉은 인동과 홍자단을 섞어 식물을 심어봅니다. 패널 조립 과정도 놀랍습니다. 그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창의 성과 숙련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참 많 은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협업하기: 작품이 생태계가 될 때까지 그림자 아카이브의 또 다른 주인공은 그림자 캐릭터입니다. 물과 식물이 있는 곳에는 늘 곤충이 찾아오지요. 곤충은 꽃가루받이, 유기물 분해, 먹이망 유지 등 생 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해충을 조절하고 토양 을 건강하게 만들며, 다양한 생물의 먹이로서 생물 다 양성을 지탱합니다. 또한 환경 변화에 민감해 생태계 건강을 알리는 지표종이기도 합니다. 곤충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벌레 포비아가 만연해 있죠. 잘 알지 못하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기 십상입니다. 우리 생태계에 중요 한 곤충 친구들을 친근하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도움을 요청 합니다. 우선 곤충 전문가와 추운 겨울날 흔적을 찾아 선유도에 사는 50여 종의 곤충을 발견합니다. 따듯한 날이었다면 훨씬 더 많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선유도에 사는 곤충 탐사 결과를 캐릭터로 개발하고 3D 프린 팅해 패널 안팎에 숨깁니다. 낮의 햇빛, 밤의 조명을 받아 벌레들은 그림자로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밤의 불빛이 살아있는 곤충들을 더 불러 모으겠죠. 사람들이 민원을 넣을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터파기를 하는 어느날 잠자던 두꺼비 커플을 깨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물가로 조심스럽게 옮겨주었습니다. 그림자 아카이브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줄 거라 현장의 여 러분이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두꺼비가 또 다른 그림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선유도의 친구들입니다. 검증하기: 작품이 시설이 될 때까지 공사가 끝나고 드디어 개장을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습니다. 선유도의 풍경과 생태계의 기록이라는 작품의 의도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 었습니다. 사람들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난간을 더 조밀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햇빛에 파란색의 천이 바래가는 햇빛 탈색(sun bleaching) 역시 작품의 일부라고 항변해 보지만, 얼마나 바래면 교체할 거냐는 끊임없는 질문에 아직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 합니다. 처음이니까요. 작품은 개장과 동시에 하자 교체 대상의 시설물이 됩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식물을 밟습니다. 힘 좋은 청소년들이 패널과 그 네 벤치를 미친 듯이 흔들어댑니다. 그네의 기초 공사를 더 깊고 더 강하게 해야 합니다. 목재에 얼룩이 생긴대서 색이 있는 오일 스테인을 덧대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공원 시설로 존재하기 위해 부족해 보였습니 다. ‘공공’의 무게감이 타협을 요구합니다. 공사가 끝나면 즐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작품의 개장은 걱정과 우 려와 보수 공사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빠르게 인정합니다. ‘안전’이라는 단어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수년 전 해외 놀이터 답사에서 매우 가파른 언덕 위 야외 데크에 안전 난간이 없는 게 너무 놀라워 담당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애들 떨어지면 어떡하냐고요. 담당자가 얘기합니다. 난간이 없어야 엄마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들을 계속 지켜본다고요. 참 다른 문화입니다. 공급 자가 어떻게 해도 떨어지지 않는 장치를 만드는 사회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용자가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사회의 차이는 오랫동안 축적된 어떤 태도의 차이 일까요. 보수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잊었던 그 난간 없는 놀이터가 불쑥 생각났습니다. 기다리기: 작품이 사라지기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라지지 않음을 욕망하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지구상에 태어난 누구나 태어나서 언젠가 사라져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할까요. 얼마 못 버티는 것에 공공의 예산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젠가 정해진 생애를 마치면 겸허히 퇴장해 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기록 이 의미가 있겠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영속된다면 기록할 필요가 없겠죠. 그냥 가서 보면 되니까요. 아카 이브는 사라지기 싫어하는, 혹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기꺼이 보낼 수 있는 가볍고 아름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찰나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 풍경의 순간적 단면 위에 하루의 낮과 밤의 빛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의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기록과 소멸 사이의 관계를 시각화한 풍경적 필름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어느 시점의 인상을 펼쳐놓은 병풍입니다. 선유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물의 경관을 바라보는 긴 정자입니다. 여기서 시민들의 일상과 계절의 변화가 겹치면서 새로운 그림자가 계속 수집 되겠지요. 이 작품이 완결된 오브제로서의 공공미술이 아니라 진행형 아카이브, 혹은 공동의 아카이빙 실천이길 바랍니다. 그림자 아카이브는 선유도공원에 대한 오랜 학습과 흠모의 결과이자 선유도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소소한 연대의 기록물입니다. 선유도의 기억을 조금 더 푸르고 충만하게 축적할 수 있도록, 그림자 아카이브는 그 기록 장치로 행복한 삶을 살다 서서히 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글 김아연 사진 유청오 작가 김아연 그림자 캐릭터 디자인 김소연, 토드헴커 디자인팀 스튜디오테라(안형주, 김선주, 박근우, 박인경, 이한슬, 유다연) 디자인 지원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김소영, 김진현, 박형근, 신나경, 장계용, 적우예) 제작 및 설치 총괄 초록선(배용은, 이환명) 디자인 감리 안형주, 박근우 금속 각재 기원(이원길) 패널 금속 및 스윙 벤치 제작 선철제작소(김선철) 목재 가공, 패널 조립 및 설치 김승봉, 김명수 목재 천일우드(조상현) 도장 미도페인트(이명례) 전기 및 조명 다온태화이앤씨(주은성) 패브릭 발수 가공 비트패브릭 폴리카보네이트 패널 제작 흥왕(김경희, 이승우) 구조 설계 케이엔지니어링(권우현) 구조 자문 황경주 곤충 탐사 손윤한 영상 제작 이동웅 전시기획 및 시행 시월이앤씨 주최·주관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관 재료 아연도각관에 도장, 옥스퍼드천, 목재, LED조명, 식물 등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규모 W364×H307.5×L4,475㎝ 완공 2025. 4. 23.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을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번 그림자 아카이브를 기획, 제작했다.
소메슈 리버프런트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Cluj-Napoca)시를 가로지르는 15㎞ 길이의 소메슈강은 도시의 역사 중심지, 산업 및 주거 구역을 관통한다. 수세기 동안 도시는 강과 밀접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유대가 점차 약화됐다. 강은 단순히 물과 에너지를 운반하는 인프라 시설로 여겨졌고 수변을 활성화하는 프로그램도 전무했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수로는 강과 도심 사이에 단차를 발생시켰고, 결과적으로 강과 도시를 물리적, 시각적으로 단절시켰다. 2017년 클루지나포카시는 소메슈강(Someș River) 재생과 시민 참여 활성화를 위해 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당선안으로 선정된 프락티카(PRÁCTICA)의 설계 목표는 중요한 생태 통로로 기능할 수 있는 대상지의 잠재성에 주목하는 동시에 단절됐던 소메슈강과 도시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녹색 연결축 소메슈강을 인근 녹지 공간과 연결하는 생태 통로로 디자인했다. 시미온 버르누치우 중앙 공원(Simion Bărnuțiur Central Park)과 체타추야 공원(Cetățuia Park)을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를 통해 수변과 연결했다. 모래 해변, 수변 스탠드 공간과 함께 기존 주차장을 개조해 강을 조망할 수 있는 광장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기존보다 수변 공간을 두텁게 하는 동시에 공공 공간의 활성화를 꾀했다. 궁극적으로 강변을 거닐며 수경관을 감상하며 사색과 여가를 즐기고, 야생 동식물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게 했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글 PRÁCTICA Architects PRÁCTICA(Jaime Daroca, José Mayoral, José Ramón Sierra) Landscape Architecture Landlab Local Architects Planwerk Collaborators Blanca Ámoros, Raúl Brito, Cesia Campos, Amanda Castellano, Gonzalo Cortes, Elisabetta Gravina, Andrea Navarro, Iglesias Palomares, Alonso Rosa, Costan Svinti, Sofía Valdivia, Beatriz Whithman Engineering AquaProciv, Costin si Vlad Birou de Proiectare & EuroBB Energy Construction ACI Cluj, Socot, Simacek&Nord Conforest Coordination Execution Baseli Drum Consult Client Cluj-Napoca Municipality Location Cluj-Napoca, Romania Area 332,137㎡ Completion 2023 Photograph Imagen Subliminal(Miguel de Guzmán+Rocío Romero), Adrià Goula, Sergiu Razvan, Cluj-Napoca Municipality 프락티카(PRÁCTICA)는 하버드 GSD 출 신의 건 축가 하 이메 다 로카(Jaime Daroca), 호세 마요랄(José Mayoral), 호세 라몬 시에라(José Ramón Sierra)가 설립한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다. 스위스, 영국, 미국 등에서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쌓았으며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유명 건축가들과 협업했다. 건축, 도시계획, 디자인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다학제 디자인을 추구하며 다양한 관점을 기반으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해결법을 제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라사커 생태 공원
블라사커 생태 공원(Ecological Park Vlasakker)(이하 블라사커)은 코르트레이크(Kortrijk)의 오픈스페이스 네트워크의 중요한 생태적 연결축이다. 이 공원은 과감한 정책적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는데, 본래 과학 기술 단지 용도로 지정된 대상지의 오픈스페이스를 활용해 호흐 코르트레이크(Hoog Kortrijk)의 녹색 허파로 만들었다. 도심 한복판의 블라사커는 약 17헥타르의 규모로 에티엔 사벨란(Etienne Sabbelaan), 만다흐베흐(Maandagweg), 타르베펠트/클라버펠트(Tarweveld/Klaverveld) 주거 지역, 비베스대학교(VIVES University College), KU 뢰번 퀼라크 코르트레이크 캠퍼스(Leuven Kulak Kortrijk Campus) 사이에 위치한다. 2024년 6월 완공된 공원은 호흐 코르트레이크의 녹색 오아시스로 기능하며 새로 심은 수백 그루의 교관목을 통해 풍성한 녹지 공간을 시민들에게 선사한다. 또한 굽이진 산책로, 다양한 휴식 공간과 놀이 구역은 방문객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히 쉬고 머무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원 캠퍼스 모델 블라사커는 생태 공원으로서 대상지의 여러 교육 기관을 위한 녹색 전략의 일환으로 그린 인프라를 구축하는 원 캠퍼스 모델(one campus model)의 토대가 된다. 설계 과정에서 시정부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협업하는 동시에 워크숍, 프레젠테이션, 설문조사 등을 진행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최종 설계안을 도출했다. 기존의 경관과 생태적 특성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목초지가 풍부한 북쪽의 유서 깊은 농업보호구역과 기존 저류지 인근의 주변 숲을 보존하거나 강화했다. 또한 대상지 내 수로를 보강하고 교목 식재를 통해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여러 협의 과정을 통해 더 발전된 형태의 공원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공원은 지역 생태계 발달과 함께 완성도 높은 공원의 기능을 결합했다. 다양한 녹지 공간은 일관성 있는구조를 만들어내는 투과성 포장 산책로로 연결된다. 여러 휴식 공간이 공원 입구부터 내부까지 곳곳에 배치됐다. 산책로 데크는 다채로운 색감을 선사하는 초지를 가로지르고, 저류지 인근의 목재 데크에서는 수경관을 독특한 시점에서 조망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이곳에서 서식지를 형성하면 방문객들과 자연 애호가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생태 도시공원의 정체성 강화 생태 녹지 공간 구조의 보존과 강화, 편안한 휴식 공간과 레크리에이션 공간의 결합을 통해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고 미래지향적 공원으로서 입체적 공원 경험을 제공했다. 자연 소재를 최대한 활용해 산책로를 투수성 석재로 포장하고, 기존 저류지 산책 데크와 휴게 플랫폼을 팀버 목재로 제작했다. 벤치나 공원 입구 안내판, 자전거 방호벽 등 작은 디자인 요소에도 목재를 활 용했다. 이러한 자연 소재는 생태 도시공원이라는 정 체성을 강화한다. 그린 오픈스페이스 블라사커는 코르트레이크의 도시 오픈스페이스를 위한 그린 네트워크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코르트레이크 지역 내 비서헴(Bissegem)시의 시티그린 겔링크(Citygreen Ghellinck) 생태 공원에도 블라사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생태 녹지 공간이 마련됐다. 둘 다 동일한 포장 재료와 공원 인프라 요소들을 활용해 설계됐다. 이처럼 시민을 수용하며 디자인적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춘 생태적 공공 오픈스페이스는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꾀하는 도시공원으로 기능하게 된다. 글 OMGEVING Main Assignment HolderDesign OMGEVING Main Works Contractor Roadworks Ockier Project Partners Hesselteer(Ecologist) Arborist/Supplier of Plants Boomkwekerij Schepers Manufacturer/Brand of Pavement Nobre Cal Manufacturer/Brand or Distributor Street Furniture Grijsen Manufacturer Water Elements/Fountains Roadworks Ockier Client City of Kortrijk Location Etienne Sabbelaan, Kortrijk, West Flanders, Belgium Area 17㏊ Completion 2024 Photograph Karel Debedts, Karel De Kesel 옴헤빙(OMGEVING)은 건축가, 조경가, 도시계획 및 환경 계획 전문가와 함께 다학제 디자인을 추구하며 회복탄력성이 있는 도시 경관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을과 도시, 오픈스페이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규모의 복잡한 공간 문제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을 시도한다. 시민들의 생활 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기후 위기에 대응한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내며 미래지향적인 해결법을 도출한다. 이러한 지향점은 연구를 비롯한 디자인 전 과정에 담겨 있으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한다.
스카이스타칼니스 공원
공원의 역사 스카이스타칼니스 공원(Skaistakalnis Park)은 리투아니아 파네베지스(Panevėžys)시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네베지스(Nevežis)강을 따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공원에는 언덕과 숲, 작은 개울, 연못이 있다. 사실 이곳은 19세기 말 무렵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저택의 일부였다. 20세기 초반 공원 내에 있던 시인의 저택이 문화생활의 중심지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체육 시설이 추가되며 공원은 훈련과 운동 경기의 무대가 되었다. 1970년대에는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운동 시설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과 공원은 수십 년간 방치되었고 잡초가 무성해졌다. 파네베지스에서 가장 오래된 녹지의 재활성화 변화가 시작된 건 2016년, 파네베지스 시정부는 스카이스타칼니스 공원을 비롯한 공공 공간, 예술, 문화에 투자해 도시 이미지와 삶의 질 향상을 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공원과 역사적 유산인 저택을 재설계하는 공모가 개최됐고, PUPA/라이프 오버 스페이스(PUPA/Life Over Space)의 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주요 목표는 공원의 자연적인 숲 성격을 유지하면서 엔터테인먼트와 레저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저택 내 아트센터 인근에는 모임과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 을, 중앙 다리 옆에는 운동과 활동적인 액티비티를 위한 구역을 조성했다. 공원 곳곳에 벤치가 있는 작은 모임 공간이 마련됐다. 새로운 다리와 보행로는 그간 숨겨져 있던 지역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새로운 액티비티 구역, 보식으로 풍성해진 녹지와 그로 인해 향상된 생물 다양성은 시민들이 스카이스타칼니스 공원을 한층 더 즐겁게 이용하도록 만든다. 다리 다리는 스카이스타칼니스 공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 조성된 다리는 나무판자를 수직으로 세운 난간으로 독특한 경관을 형성한다. 리모델링된 네베지스강을 건너는 중앙 다리에는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이용자도 사용할 수 있는 경사로와 휴식과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됐다. 소규모 하천에 놓은 작은 다리들은 공원의 경관에 매력과 즐거움을 더한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글 PUPA/Life Over Space Architect PUPA/Life Over Space(Tadas Jonauskis, Justina Muliuolytė, Ignas Račkauskas, Lukas Kulikauskas, Augustas Makrickas) Landscape Architect Terra Firma LT(Ramunė Baniulienė, Linas Ūsas) Playground and Sport Equipments Kompan playgrounds Collaborator MUTUUS Client Panevežys City Municipality Location J. Biliūno g. 3, Panevėžys, Lithuania Area 29.7㏊ Design 2017~2019 Completion 2023 Photograph Aistė Rakauskaitė, Norbert Tukaj PUPA/라이프 오버 스페이스(PUPA/Life Over Space)는 리투아니아빌뉴스시를 중심으로 국제적 활동을 펼치는 도시·조경 스튜디오다. 수십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각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사회·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조경, 도시, 리서치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조경은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닌 커뮤니티, 질 좋은 삶, 회복탄력성을 길러내는 활력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 믿는다. 아름다움 이상의 가치를 배양하기 위해 꼼꼼한 연구, 컨설팅을 통한 커뮤니티 참여, 장기 활용성을 고민하고 있다.
라이언산 공원
라이언산 공원(Lion Mountain Park)은 중국 쑤저우(Suzhou) 지역 역사와 신화에 자주 등장했던 라이언산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조성됐다. 고대 신화에 따르면 인근의 타이거산(Tiger Mountain)을 마주하고 있는 라이언산은 지역 마을을 수호했다고 전해진다. 한때 놀이공원이었던 대상지를 산과 호수가 조화를 이루는 산수 개념을 적용한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랜드마크로 복원했다. 순환 프롬나드는 산과 새로 조성된 호수를 하나로 묶어주며, 자연과 문화의 정신이 어우러진 경관을 완성한다. 라이언산의 복원 쑤저우의 장엄한 라이언산은 오랜 세월 도시를 지켜온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상징물이다. 지역의 여러 산봉우리 사이에서 타이거산을 향해 우뚝 솟은 이 산은 예로 부터 지역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고대의 지역 문인들은 산의 가파른 탐방로를 따라 놓인 바위에 ‘18경’이란 시를 새겼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포함한 놀이공원의 각종 놀이 기구, 공중 트램으로 인해 호수의 규모가 축소되는 등 대상지 주변 환경이 많이 훼손됐다. 특히 산의 경사면은 대형 광고판과 현수막으로 도배됐다. 2016년 국제설계공모에 당선된 TLS는 지역 랜드마크인 라이언산의 위상을 복원하고 새로운 호수와 공원, 문화 지구를 조성하기 위한 설계를 시작했고, 9년의 긴 작업 끝에 공원을 완성했다. 설계의 목표는 호수의 확장 및 개발을 통해 빛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호수의 개성을 드러내고, 산과 조화를 이루는 풍성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흘러온 유출수는 습지 테라스와 사이프러스 숲을 통과하며 정화된다. 덕분에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호수의 수질이 개선됐고, 소형 보트 체험 등 놀이공원을 대신할 수 있는 여가 프로그램이 활성화됐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글 TLS Landscape Architecture Lead Landscape Architect Tom Leader Project Manager Zheng Huan, Fan Wei Competition Team Chen Wei, Pablo Alfaro, Mario Accordino, Zhong Xin, Su Hang, Chen Yi-Shan, Robert Cabral, Zhang Wenmo Detailed Design Team Yu Yang, Ye Shuping, Kathryn Drinkhouse, Huang Dawei, Yu Zhaowei, Kushal Lachhwani, Zheng Si, Sun Chen, Xing Xiaoye, Zu Wanpeng, Li Qianyu, Chen Jiawen, Bao Aiai, Wei Ying, Xing Mengyao, Shi Xiayao, Li Chunjin, Ivan Valin, Thor Anderson, Scott Getz Landscape Architect of Record Suzhou Architecture Gardens Landscape Planning Design Sponge City Design Consultant Jiangsu Zhuyan Design & Consulting Pavilion Design Kuth Ranieri Architects Client Suzhou Shishan Plaza Development Location Suzhou, Jiangsu, China Area 72㏊ Completion 2024 Photograph Xi Chen, TLS Landscape Architecture TLS(TLS Landscape Architecture)는 2001년 톰 리더(Tom Leader)가 개소한 조경설계사무소로 캘리포니아와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계획과 공공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독창적이고 실체적 경험을 디자인으로 구현하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에 접근하고,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세계의 매력을 탐구한다. 규모와 상관없이 가치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아시아에서는 문화적 뿌리를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도시 성장을 이끌어내고자 하며,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라이언산 공원, 항저우 스틸워크 공원 등이 있다.
스쿠브뤼네트 베이스캠프
스쿠브뤼네트 베이스캠프(Skovbrynet Basecamp)(이하 베이스캠프)는 혁신적 주택 콘셉트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학생, 연구원, 노인을 위한 700여 채의 아파트가 마련됐다. 이 주거 지역의 외부 공간을 자연, 건강, 모빌리티를 강조하며 도시의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륑뷔(Lyngby)시의 매력적인 녹지대에 자리 잡은 베이스캠프의 북동쪽에는 소르엔프리(Sorgenfri) 공동묘지가, 서쪽에는 륑비 호수가 있다. 부지 전체를 둘러싼 생울타리와 관목은 풍성한 녹음을 자랑한다. 대상지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도 바람이 통하는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통일성 있는 경관을 만드는 것이 설계의 목표였다. 공원 같은 경관을 만들면서도 수목을 곳곳에 흩어 심고 변동적인 식재를 통해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우면서도 포괄적인 외부 공간을 계획했다. 건물 6층까지 이어지는 공공 녹지 보행로를 따라 오르면 구불구불한 건물 옥상의 모습과 륑비 호수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 옥상에는 높이 자란 그라스가 우거진 풍경을 연출하고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 좋은 보행로를 조성했다. 베이스캠프의 옥상은 아름다움과 지속가능성, 기능이 한데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준다. 옥상에서 직조되는 유기적 형태의 구불구불한 소로는 주민과 방문객이 이 공중 경관을 탐구하도록 불러들인다. 경계석 없이 설계된 소로는 건물의 자연스러운 윤곽을 따라가며 외부 공간과 아래 건물 사이를 매끄럽게 전환시킨다.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디자인은 주민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기억의 남는 경관을 자아낸다. 옥상과 연계된 테라스는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한다. 테라스들은 옥상 정원의 고요함을 즐기기에 이상적이며, 주민뿐 아니라 공공에게 열려 있어 다양한 커뮤니티 구성원에게도 공중 녹지를 거닐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공원 같은 환경, 소르엔프리 공동묘지, 륑비호수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조망점을 제공하는 이 공유 공간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독려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글 Kragh&Berglund Landscape Architect Kragh&Berglund Landscape Architecture and Urban Design Architect Lars Gitz Architects Collaborator JFP, AFRY Client ST Skovbrynet student Aps, BC Skovbrynet Residential Aps Location Lyngby, Denmark Area 34,000㎡ Completion 2020 Photograph Sofie Cold Ravnkilde, DronePixels 크라그&베릴룬드(Kragh&Berglund Landscape Architecture andUrban Design)는 2003년 한스 크라그(Hans Kragh)와 요나스 베릴룬드(Jonas Berglund)가 설립한 창의적 스튜디오다. 스칸디나비아의 설계 원칙을 기반으로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조경 설계를 실천한다. 건축, 경관, 도시설계를 아우르며 프로젝트의 중심에 항상 사람을 둔다. 코펜하겐, 스톡홀름, 오슬로에 사무소를 두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목표로 다양한 도시, 경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선양 재료과학 국가연구센터
융합의 정원 융합의 정원은 선양 재료과학 국가연구센터(이하 선양 연구센터)에 조성된 공공 오픈스페이스다. 선양 연구센터의 남북 축을 이루는 이 정원은 주요 건축물과 센터의 동서 방향을 물이 흐르는 수경 요소로 연결한다. 융합의 정원이 센터 남측 주출입구의 배경을 이루는 만큼, 국가연구센터의 위엄과 상징성을 드러내면서도 일상적 활용을 고려한 경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남쪽 광장 남쪽 주출입구에 위치한 광장은 모든 방향에서 주목할 수 있는 시각적 배경으로 만들었다. 약 3천㎡ 규모의 광장에 몽골참나무 열두 그루를 자연스럽게 배치해 모임과 흩어짐, 지나침과 머묾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몽골참나무 군락은 멀리서 보면 건축물의 규모와 어우러지는 개방적이면서도 녹음이 풍성한 경관이며, 가까이 다가가면 독특한 세부 요소를 살피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배치한 흰 벤치는 구름 형태이며, 수목 보호대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사용해 주변 경관과 나무 그림자가 독특한 형태로 맺히게 했다. 수경 시설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수경 시설을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만들기 위해 노랑꽃창포를 띠 형태로 식재했다. 이는 건축물 입면이 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부드럽고 한층 더 자연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녹지가 부족한 공간의 단점을 시각적으로 보완한다. 중앙의 넓은 수면에는 원형 수상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 중심부에 높낮이가 다른 금속 패널을 여러 겹 겹쳐 만든 원형 회랑(파빌리온)과 우주를 은유하는 알루미늄 조각을 설치해 주요 경관 요소로 삼았다.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해 장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친수 공간 친수 공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조성했다. 동쪽은 포장 면적을 넓히고 점진적으로 수면에 접근할 수 있는 친수 플랫폼을 설치하고, 곳곳에 긴 벤치를 배치했다. 반면 서쪽은 수변에 맞닿은 정박형 공간으로 조성했다. 포장면의 수목 보호대를 안쪽으로 기울인 형태로 디자인하고, 콘크리트 단 위에 등받이를 설치해 공간을 더욱 가볍고 개방감 있게 연출했다. 경직성 완화 건축물과 포장 공간이 만나는 경계 부분에는 두께 8cm 이상의 석재를 사용하고, 리아트리스를 심어 경계의 경직성을 완화했다. 이곳에서는 지피 식물의 색 상과 형태보다는 식물의 존재 여부 자체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 속 비일상 융합의 정원은 과도한 장식, 기이한 형태, 형식적 포장 패턴, 다양한 재료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표면 처리, 마감, 조합 방식, 단차 등 모든 세부적 요소에 서 비일상적인 정교함을 지향하며 국가연구센터라는 장소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절제 속 자유로 움, 간결함 속 풍요로움이 융합의 정원이 추구하는 일상 속 비일상의 디자인이다. 글·사진 R-land Design R-land Concept Design Zhang Junhua, Zhao Changjiang, Zhang Peng, Li Ruijing, Zhao Yanying, Shi Wanrong Construction Documents Design Zhang Junhua, Zhao Changjiang, Yan Yili, Yu Feng, Jiang Chongjian, Liu Lixing, Ji Qian, Dai Jing, Zhang Wenxu, Zheng Yunfeng, Bai Zuhua, Hu Haibo Architect Song Dongmi Electrical Installation Xu Feifei, Zhang Yali Structure Ma Aiwu, Shen Shiru Construction China Railway 19th Construction Bureau Client Shenyang Wanbo Development and Construction Location Chuang Xin Lu, Liao Ning Sheng, China Area 1.71㏊ Design 2019. 11. ~ 2021. 12. Completion 2024. 5. Photograph R-land 베이징 웬수경관계획설계사무소(源樹景觀規劃設計事務所, R-land)는 2004년 설립된 중국의 환경 전문 설계사무소다. 경관 계획, 공공 공간, 관광·휴양지, 테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지 경관 설계와 자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먼스케이프] 허난설헌의 풍경
허난설헌과 허균, 신사임당과 율곡을 낳은 강릉. 그곳에 뭔가 특별한 기가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번 5월 귀국 길에 강릉행을 계획했다가 실패했다. 허난설헌 기념공원도 둘러볼 생각이었다. 역에 가서 기차표 끊으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고 5월 초 연휴가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기차표도 고속버스표도 일찌감치 완전히 매진된 상태였다. 차를 임대해서 가볼까도 생각했으나 그래 봐야 강릉의 정기는커녕 고속도로에 줄지어 선 자동차의 행렬 속에서 스트레스만 한가득 충전하여 돌아올 것이 뻔했기에 포기했다. 물론 아주 오래전,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미 여러 차례가 보긴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둘러본 것이 아마 2008년경인 것 같다. 용평에 머물며 정원을 하나 만들고 있을 때였다. 강릉이 멀지 않았으므로 경포대도 볼 겸 겸사겸사 주말에 길을 떠났다. 강릉에 도착해 경포 해변으로 내려가다가 혼비백산하고 돌아섰다. 언덕의 능선을 결딴낸 호텔과 펜션, 어지럽게 번득이는 오색 등불, 어디선가 들려오는 요란한 음악, 주차장에 종으로 횡으로 진입하는 자동차 등, 아수라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아수라장을 통과했더라면 백사장으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토록 망가진 풍경에 대한 노여움이 불같이 치솟아 도저히 머물 수가 없었다. 지금 갔더라면 달라졌을까? 대형 호텔과 펜션, 횟집과 주차장의 자동차들 사이에서 난설헌의 정신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그녀의 위대한 시가 그 추해진 풍경을 다 덮을 수 있을까? 혹시 난설헌이 강릉의 풍경을 거듭 노래했더라면 이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강릉시가 풍경을 보존하려 노력해 보지 않았을까? 난설헌의 시는 풍경시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수많은 풍경을 노래했지만 강릉을 노래한 시는 단 한 수밖에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 집은 강릉땅 강가에 있어 / 문 앞 흐르는 물에서 비단옷을 빨았지요 / 아침에 목란배를 한가히 매어 두고는 / 짝지어 나는 원앙새를 부럽게 보았어요.”(번역: 허경진) 그 외 난설헌의 시선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아주 먼 중국이나 혹은 그보다 더 먼 신화의 세계로 향해 있었다. 16세기 조선은 어떤 시대였나 허난설헌은 1563년에 출생해 1589년, 만 26세로 요절했다. 연대로 본다면 황진이와 신사임당의 손녀뻘이었다. 조선에서 가장 유명했던 세 여인이 모두 16세기를 살다 갔다. 문득 궁금해진다. 16세기 조선은 어떤 시대였을까? 조금 더 좁혀보자면 연산군(1476~1506)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즉 중종, 인종, 명종 대의 조선이다. 성리학이 아직 경직되기 전이었다. 붕당 정치가 태동했으나 세도 정치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사림 주도의 서원 문화가 활성화되어 온 나라에 무기 철렁이는 소리 대신 글 읽는 소리가 낭랑했다. 신분제도 역시 세분되어 가는 과정에서 계층 간의 이동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우리가 아는 네 번의 사화가 모두 16세기에 일어났다. 정치적 격변의 시대였다. 황진이의 시를 빌려 표현해 본다면 15세기는 청산처럼 단단했고 16세기에 오히려 푸른 파도가 일렁였다. 흐름과 변화가 있었다. 가부장제도 역시 완전히 정착하지 않아서 사임당의 경우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풍습에 따라 혼인 후에도 평생 친정에서 맘 편히 살며 재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난설헌은 아뿔싸, 친영례(각주 1)가 도입된 직후에 혼인하여 시집살이를 시작한 1세대가 되었다. 난설헌의 시에 이따금 서릿발이 내비치는 것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난설헌의 두 개의 삶 난설헌 허초희는 만 15세에 안동 김씨 가문 김성립과 혼인했고 이 혼인을 전후로 확연히 구분되 는 삶을 살게 된다. 구김살 없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하루아침에 낯선 가문, 낯선 가풍의 어린 며느리가 되었다. 친영례가 막 시작된 무렵이었으므로 시집살이에 관한 매뉴얼도 아직 없었을 것이다. 친정 아버지 허엽, 오빠 허성과 허봉, 동생 허균 모두 뛰어난 문장가여서 난설헌과 함께 허씨 5 문장이라 불렸다. 그중에서도 난설헌의 문장이 가장 격조 높았다고 평가된다.(각주 2)아버지 허엽은 지 난 호에 이미 등장했던 인물이다. 화담 서경덕의 문인으로 황진이와 함께 수학했던 열린 사고의 인물이었다. 딸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장려했으며 오빠들도 초희를 지극히 아꼈고 동 생 허균도 누이를 매우 따랐던 것 같다. 이 시절에 어린 초희는 마음껏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러다 혼인과 함께 초희의 세상은 급격히 달라졌다. 남편 김성립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시어머니와 의 갈등도 컸다고 전해진다. 각별했던 둘째 오빠 허봉이 글을 다시 쓰라고 붓을 보낸 것으로 보아 마음 놓고 글도 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이 둘을 낳아 한때 행복했으나 두 아이 모두 어린 나이에 역병으로 죽고 뱃속의 아이마저 잃게 된다. 곧이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친정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오빠 허봉은 당파 싸움 끝에 귀양을 다녀와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난설헌도 죽는다. 죽음의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났다’라는 표현을 액면 그대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병을 앓았다는 이야기도 없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증거도 없다. 이제 그만 살겠 다고 작정하고 곱게 누워 영혼을 떠나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떠나기 전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 듯,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라는 의미심장한 시 한 수를 남겼다.(각주 3)그토록 줄기차게 노래했던 신선의 세상으로 훌쩍 떠나간 것일까? 『난설헌집』의 머리말을 썼던 중국 시인 주지번은 난설헌을 선계에서 인간 세계로 잠깐 귀양 와 구슬 같은 시를 쏟아낸 선녀라고 소개했다.(각주 4) 유선사, 난설헌의 현실 초월일까 아니면 자아가 머무는 곳이었을까 난설헌의 시 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선계를 노래한 ‘유선사(遊仙詞)’다. 전해지는 210여 편의 시 중반이 넘는 128편에서 선계를 노래했다. 그중 총 87수로 이루어진 ‘유선사 연작’이 있는데 여기서 난설헌은 인간계의 굴레와 한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장엄하게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게 펼쳐낸다. 서왕모로부터 시작하는 신선들의 복잡한 계보와 그들이 깃들어 사는 무한한 세상에 관한 이 대서사시는 해독이 쉽지 않다. 수많은 지명, 신선명, 인명 및 사건을 이해하려면 백과사전을 일일이 검색해야 한다. 난설헌의 유선사는 혼인 후의 갑갑한 인생에서 도피하기 위해 쓴 것으로만 이해할 일은 아니다. 선계에 관한 동경은 이미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통해 전해진 화담 서경덕의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달달 외울 정도로 탐독했다는 송나라 책 『태평광기太平廣記 』에 실린 7천여 에 달하는 이야기는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선계의 이야기가 어린 난설헌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 같다. 여덟 살에 지었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각주 5)이라는 글도 선계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출발해 87수 연작의 서사시로 귀결했고 마지막 시도 선계로 장식했다. 어린 시절 호기심과 재미로 출발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계는 난설헌의 진정한 자아가 머무는 세상이 되었다.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난설헌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신과 자부 심을 가지고 있었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의 마지막 단락을 보면 꼬마 초희가 하늘의 명을 받 아 “강물이 내달리듯, 샘물이 솟아나듯” 상량문을 지어냈다고 하고 “구절이 아름답고 문장도 굳 세어 이백의 얼굴을 대해도 부끄럽지 않다”라고 썼다.(각주 6)죽기 전에도 흡사한 주장을 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선녀들을 만났는데 시를 한 수 지어보라 해서 지었더니 선녀들이 이건 신선의 글이라 감탄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시 이태백에 견주었다.(각주 7) 나무에 붉은 말고삐를 매는 청년은 누구일까 유선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외에도 난설헌의 시제는 매우 다양했다. 거의 모든 세상만사를 한번 쯤은 시로 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중의 일을 묘사한 궁사 연작도 있고 ‘죽지사’라고 하여 풍속 이나 연정을 노래한 것도 적지 않다. 그중 연가 몇 수는 “절창이지만 방 탕하여 문집에 실 수 없다”라는 금지곡 선언을 받기도 했다.(각주 8) 그 모든 난설헌 시를 꿰뚫는 공통점이 있다. 4백 년 전에 쓴 시임에 도 불구하고 꼭 어느 영화에선가 본 듯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이 다. 그건 아마도 시마다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특정한 행동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인물을 등장시켜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함으 로써 영화의 스틸 컷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난설헌 시의 남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버들가지 노래’라는 시에서는 이런 장면을 그렸다. “청루 서쪽 언덕에 버들꽃 흩어지자 / 아지랑이 낀 가지가 난간 을 스치는데 / 어느 집 청년인가 백마를 채찍질해 와서 / 버드나무 그 늘에다 붉은 고삐를 맨다.” 나무에 말고삐를 매는 청년 혹은 귀공자는 난설헌의 시에 꽤 자주 등장한다. 청년의 말고삐와 채찍의 색상이 바뀌고 장소도 달라져 궁궐 로 출근도 하고 장안 길가에도 나타났다가 기생집 앞에 말고삐를 매기도 한다. 마치 시그니처처럼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타나 말고삐를 매는 이 청년은 대체 누구일까? 혹시 난설헌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스스로를 이태백과 견준 난설헌의 기개로 볼 때, 그리고 “조선에서 여자 로 태어난 것과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3대 불행으로 꼽았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자신도 오빠들처럼 벼슬길에 올라 궁으로 출퇴근도 해보고 자유롭게 나들이도 하며 기생집 기둥에 말고삐도 한번 매보고 싶지 않았을까? 허난설헌의 다원적 자아 - 선인, 궁인, 귀공자, 전장의 장수 입새곡(入塞曲), 새하곡(塞下曲) 내지는 출새곡(出塞曲)이라는 한시의 장르가 있다. 변방을 지키는 장수와 병사들에 관한 시다. 난설헌은 입새곡 5수, 새하곡 5수, 출새곡 2수를 남겼다. 아마도 그녀의 시 중 가장 의외적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말고삐를 매는 청년티를 그만 벗고 장수가 되어 하늘 높이 걸린 석양을 바라보며 칼 차고 만 리 출정 길을 떠나 보고 싶었던 것일까? 깊은 구름 자욱한 사막에서 봉화 살펴보고 나서 밤 평원을 달려가는 기병들을 그리기도 했고 열 겹 포위망을 뚫고 흉노를 무찌른 뒤 백마를 타고 눈을 밟으며 돌아오는 장군의 노래도 불렀다. 그대로 웰메이드 사 극의 한 장면 같고 소설의 시놉시스 같다. 16세기의 조선에 갇혔던 난설헌은 시를 통해 선계에서 수만 년을 보내고 문득 인간의 세상으로 내려와 베를 짜는 가난한 여인도 되어 보고 궁녀가 되었다가 상인이 되어 강상을 누비기도 했다. 붉은 말고삐를 쥐고 길 떠나는 청년으로,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자아를 무수히 쪼개가며 살았다. 그녀가 그렸던 풍경도 그만큼 다채로웠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녀의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2022년 국립발레단이 허난설헌의 시를 무용극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난설헌의 시 중에서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游廣桑山)’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감우는 난설헌이 드물게 자신의 정서를 직접 표 출한 감성시로서 4수로 이루어졌다. 그중 1수에 난초와 서리, 즉 난설이 나타난다. 몽유광상산은 문자 그대로 선계에 있다는 광상산을 노니는 꿈을 꾸고 나서 지은 것으로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는 바로 그 장면이 묘사된 시다. 난설헌은 이 시에 특별히 서문을 지어 첨부했는데 거기서 스스로를 이태백에 견준다. 그녀의 난해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형상화하기에는 기념공원보다는 오히려 오페라나 발레 무대, 혹은 영상 예술이 적합할 수 있다. 이렇듯 난설헌은 20세기 후반부터 다각도로 크게 조명을 받고 있 다.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난설헌이 다시 태어나 한번 마음껏 훨훨 살아주었으면 생각해 본다. **각주 정리 1. 신부가 시댁에 가서 일생을 보내는 제도. 2. 임미정, “허난설헌 시자료의 재검토”,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42호, 2021, p.80. 3. 몽유광상산(夢游廣桑山) 4. 홍경진, 『허난설헌 시집-10(한국의 한시)』, 평민사, 1987, p.227. 5. 선계의 광한전이라는 궁전에 백옥으로 된 누각을 새로 지었는데 그 대들보에 넣어둘 상량문을 상상해서 쓴 것이다. 6. 4번 책,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p.203. 7. 위의 책, p.211. 8. 난설헌과 동갑이었으나 더 오래 살았던 이수광(李睟光, 1563~ 1629)이 한시를 정리하며 그리 평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슬기로운 공원 생활] 세상의 끝, 나의 공원
공원 산책 산책 또는 걷기는 가장 단출하게 공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집과 일터를 한군데로 합치고는 퇴근길이란 게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오후 여섯 시 반에 일을 마치면 동네 뒤편을 둘러싼 개운산 공원의 야트막하고 고즈넉한 산길을 홀로 걷는다. ‘퇴근 본능’이 이런 걸까. 처음에는 일과를 끝내는 느낌 때문에 발 닿는 대로 자꾸 걸었는데, 날씨에 따라 조금씩 경로가 달라지긴 해도 그럭저럭 반복과 규칙이 됐다. 유명 작가, 철학자들의 걷기와 인생을 주제로 쓴 책에서 나와 비슷하게 산책한 양반을 찾는다면 그건 아마도 ‘칸트’일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칸트는 날씨와는 상관없이 마치 시곗바늘처럼 매일 오후 다섯 시부터 늘 똑같은 길을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해질 무렵 정해진 코스를 되풀이한다는 면에서 일견 비슷하지만, 실제 결정적으로 닮아 있는 건 산책의 난이도다. “그(칸트)의 산책은 인색하고 쩨쩨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는 땀 흘리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여름에 아주 천천히 걸었고 땀이 몇 방울이라도 흐르는 게 느껴지면 곧바로 그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각주 1) 세상의 끝 협의 따위로 바깥 일이 없는 날에는 근처 공원의 어느 한 자락이 일터 겸 집을 기준으로 하루 중 가장 멀리 간 곳이다. 어딘가 걸어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기분이 드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하루라는 ‘시간’의 관념적 마무리를 구체적인 ‘공간’의 끝까지 걸어가면서 몸으로 실제 확인하려는 그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습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내게 공원 산책은 하루를 정리하면서 그만치 세상의 끝까지 자분자분 걷는 일이다.인생 자체가 글쓰기와 산책이었던 작가 로베르트 발저가 쓴 『세상의 끝』이라는 짧은 소설이 있다. 주인공인 아이는 ‘세상의 끝’을 찾고자 무려 16년을 바다, 평원, 산을 걸어서 헤맨다. 모질게 고생을 겪은 뒤 길에서 만난 어느 농부에게서 구한 답이 다소 어이없다. “‘세상의 끝’은 근처에 있는 한 농가의 이름”(각주 2)이며, 삼십 분만 더 걸어가면 닿을 곳이란다. 이런 산책은 멀든 가깝든 그저 걷고 걷는 일일 뿐이다. 달리 고민 없이 공원 길을 가만히 따라가면 일과로 뒤엉켰던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조금씩 풀린다. 어느새 걱정도 아쉬움도 굴욕도 고뇌도 발길에 닳은 듯 사라진다. “네가 최고 강자다―그렇지만 넌 그저 최고 강자일 뿐이다. 이렇게 인간은 사물의 형태를 취한다. 작아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편이 낫다.”(각주 3) 개운산 공원 말끔하고 번듯한 대형 공원이나 정원을 좀체 가지 못한다. 아버지 환갑 때부터 팔순을 지나 사반세기 동안 인구가 통 변하지 않는 어느 허씨 일가의 가족사진처럼. 언제나 혼자였고 혼자이니 그렇게 멀리 외톨이로 가 봐야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게 먼저 꼽는 핑계가 되겠다. 더불어 ‘왜 나는 저렇게 설계할 수 없는가’라며 마음을 온통 들쑤시는 속 좁은 질투심 때문에 그런 공원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게 또 하나의 유별난 사유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예쁘장한 정원과 공원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흔적이 …… 어떻게 해서 사라지게 되었는지”(각주 4) 곰곰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 시끄러워진다. 지나치게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시설들에 견주면 정작 사람이 겉돈다. 내개 “공원에서는 어떤 소속감 같은 걸 느끼기가 쉽다”(각주 5)고 하지만 그런 장소들이 내게는 때로 징글맞기도 하다. 호사롭지 않아도 그저 일상의 평화와 안식을 줄 수 있다면 그런 공원이 내게는 우선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위치한 서울 성북구 ‘개운산 공원’은 1940년에 지정된 해발 134m 산지형 공원으로서 나이로 치면 딱 우리 아버지 연배다. ‘개운산(開運山)’은 조선시대 창건한 개운사(開運寺)라는 절에서 비롯됐는데, 다른 이름 진석산(陳石山)은 채석장이 있던 자리라서 그리 불렸다고 한다. 바위가 워낙 많아선지 산을 둘러 생긴 동네들인 종암동, 안암동, 돈암동 모두 형제처럼 바위 암(巖) 자 돌림이다. 지금도 공원 산길을 걷다 보면 높직한 돌덩이 절벽이 간간이 서 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들도 많다. 공원 길 옆으로 동네 쪽을 내려다보면 오래 전 원석을 잘라내고 널찍하게 남긴 자리가 완만히 펼쳐져서, 그 경사진 바위로 걸어 나가 털썩 앉아서 멀리 용마산, 아차산, 수락산, 북한산을 빤히 바라보는 게 제법 장쾌하다. 주로 걷는 길은 개운산 공원 중에서도 고려대학교가 개방한 사유지에 있 다. 돌 계단이며 흙길, 데크 등으로 길이 차분히 이어지는데, 주변은 울울창 창하지도 삭막하지도 않게 적당히 빽빽한 숲이다. 수십 년 전 심은 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팥배나무, 산벚나무, 때죽나무 등 수목들이 어울려 자라고 상수리,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군데군데 버티고 선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천이되는 과정인 듯하다. 나무들 뒤로 외래종 서양등골나물의 추억이 따라온다. 주말 대낮이었다. 생태 교란종 서양등골나물 꽃들이 대거 창궐해서 심각하다는 기사를 봤는 데, 과연 문밖 아파트 곳곳까지 이미 널리 침투해 있었다. 늘 가던 대로 걷다 가 개운산의 높은 지점을 지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빛이 거의 안 드는 숲 가장자리에도 떡하니 그 망할 흰 꽃들이 번지고 있는 게 아닌가. 부아가 치밀어서 풀을 잡아 뜯어도 만만치 않다. 여간해선 뿌리까지 나오질 않 는데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길래, 내친김에 아예 큰 나무들 밑으로 들어가 서 피하던 땀까지 흘려가며 그 풀들을 열심히 뽑아내던 참이었다. “지금 뭐 하세요?” 삼사십 대로 보이는 여인네가 홀연히 나타나서 묻는 다. 놀랐지만 그보다도 혹시 오해할까 두려웠다. 겉보기에 가녀린 들꽃을 피 사리하듯 뽑은 건 글쎄다, 사이코패스에게나 어울리지 않는가. “음, 이게 그 냥 꽃 같아도 말하자면 생태 교란종이라는 겁니다. 외국에서 온 녀석들이 하도 퍼져서 우리 고유의 좋은 식물들까지도 죄다 못 살게 굴어요.” “아,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몸을 돌려 몇 발짝 내려간다. 나도 다시 내 임무에 충실하려는 순간, 돌연 그녀가 홱 돌아서면서 웃음을 짓더 니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부른다. “오빠, 같이 가요, 같이 내려가요!” 그녀의 동공이 왠지 묘하게 흔들렸다. 그늘에서 솎아낸 ‘꽃을 든 남자’와 그에게 애 타게 ‘손짓하는 여인’. 누군가 호젓한 산길에서 이런 장면을 마주한다면 과연 뭐라고 할 것인가. “저저, 전, 어이, 올라가는 길이었어요!” 숲 아래서 황급히 튀어나와 반대 방향으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날 나의 공원의 끝, 개운산 꼭대기에는, 비 교적 낡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한 조합형 생활체육시설과 철봉이며 역기며 운동 기구를 두루 갖춘, 얼기설기 잇대고 덮은 막사 같은 서민형 피트니스 클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어쩌면 공원에서 “세상의 종말은 모든 것이 멈출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끝도 없이 계속될 때 다. 그러니 차가운 달빛 아래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내딛기만 하면 된다.”(각주 6)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칸트가 반복한 걷기의 특징을 단조로움, 규칙성, 필연성, 세 가지로 꼽으면서 필연성이 규칙성의 개념에 덧붙으면 그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한다. 무언가 맹렬한 추구와는 정반대로 마음을 내려놓은 한 인간의 ‘수동적 의지’가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평생의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가 그런 운명이었을까. 발저는 1919년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산문에서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각주 7)라고 썼다. 공교롭게도 1956년 성탄절 아침 그는 산책을 나섰다가 눈밭에 쓰러져 죽은 채 발견됐다. 극적이라도 이렇게 쓸쓸한 운 명은 굳이 마다하겠다. 걷다 보면 그게 아닐 거라고, 마침내 어딘가에서 누군가 만나도록 흘러갈 거라고, 그렇게 되려고 혼자 걷는 중이라고 애써 되뇐다. 건축학과에서 가을 학기 조경학개론을 몇 년간 강의한 적이 있었다. 주 중 행사로 밤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의 주적은 무엇보다 ‘졸음’이다. 누군가 조언을 해서 중간고사가 끝난 추석 무렵이면 수업 대신 서울숲 답사를 갔다. 가기 전에 학생 대부분 입이 댓발은 나와서 툴툴거렸다. 설계 과제는 몰려 있고 마음은 바쁘고 몸은 피곤하며 학교가 있는 용인에서 서울 답사지는 멀기도 하고. 그러다가 단풍이 곱게 들어가는 오후의 공원에서 수십 명 출석을 부르고 마음대로 흩어지라고 하면 강의실에서는 절대 못 볼 밝은 얼굴들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볕 좋은 가을날 두어 시간 동안 이곳저곳으로 제 방식대로 아름답게 섞여 들어간 청춘들을 여기저기서 천천히 돌아봤던 기억이 지금 도 생생하다. 그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믿는다. 혼자서도 좋지만 각자 짊어진 세상의 모서리들이 모처럼 둥그러니 느슨 하게 이웃하는 그런 순간 잠깐 드러나는 ‘세계의 끝’, 뭐 현실판 피안 같은 그런 널찍한 곳도 공원이 아닐지, “나는 연락하러 그곳에 간다.”(각주 8) **각주 정리 1. 프레데리크 그로, 이재형 역, “일상적인 외출, 이마누엘 칸트”,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책세상, 2014, p.222. 2. 로베르트 발저, 배수아 역, “세상의 끝”,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한겨레출판, 2017, p.83. 3. 폴 발레리, 백선희 역, 『폴 발레리의 문장들』, 마음산책, 2021, pp.66~67. 4. 제이디 스미스, 케이티 머론 편, 오현아 역, “보볼리, 피렌체/빌라 보르게세, 로마”, 『도시의 공원』, 마음산책, 2015, p.44 5. 위의 책, p.44. 6. 1번 책, p.318. 7. 2번 책, p.24. 8. 황지우 시 “인천으로 가는 젊은 성자들”의 마지막 구절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좀처럼 화내지 않는 유능하고 성실한 친구들과 함께 주로 교육·연구 시설과 공공 업무 시설의 외부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모두의 퍼니처] 예건
예건은 그동안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조성된 장소의 공간 활용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해 왔다. 한 장소 안에서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기능하는 조경 시설, 음식의 감칠맛을 높이는 소금처럼 공간의 활용도를 높여 공간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조경 시설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장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조경 시설을 통해 도시를 위한 공간의 장소성을 구현하고 있다. 입체적 경험을 만드는 장소성 장소성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공간에 담긴 역사, 문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장소성의 관점에서 보면 조경 시설은 단순한 쉼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조경 시설은 시민들에게 일상 속 여유를 제공하며, 특정 장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소성을 고려한 조경 시설은 공간의 정체성과 그 공간이 가진 고유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연출해 이용자에게 더 깊게 각인되는 입체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간을 설계한 조경가의 계획을 충분히 숙고하며 설계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숲속 공간에 현대적 시설을 배치하는 것보다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적용한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통 공간에 전통적 색감과 형상이 반영된 시설을 배치하면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조선왕릉길에 조성한 조선왕릉 퍼걸러는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퍼걸러의 절제된 형상은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를 통해 왕릉이 가진 특유의 정취와 장소성을 돋보이게 했다. 이처럼 장소의 특성을 이해하고 반영한 조경 시설은 이용자의 정서와 장소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장소를 읽어주는 디자인 조경 시설은 단순한 편의 시설을 넘어 도시 안에서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장소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장소의 정체성과 맥락을 해석하고 시각화해 장소를 읽어 주는 디자인을 시도한다. 지역의 역사, 지리적 특성, 지역 주민의 삶의 방식 등 다양한 요소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설의 형태, 재료, 공간 배치 등을 기획한다. 이러한 기획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가 양재천의 복합휴게시설 ‘플로우 스테이션(Flow Station)’이다. 양재천 유속 흐름에서 형태적 모티브를 얻은 플로우 스테이션은 크게 커뮤니티 에디션과 바이커스 에디션으로 나뉜다. 커뮤니티 에디션은 주거 단지와 업무 단지의 이용자들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담소 공간, 학습 공간 등을 마련해 다양한 형태의 휴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바이커스 에디션은 자전거 이용객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1층 자전거 임시 거치대에 자전거를 거치한 뒤 잠시 휴식할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여름철 폭우로 자주 범람하는 양재천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서랍식 구조의 유선형 테라스를 구성하고 대상지 사면과 일체화된 유체역학적인 형태로 디자인해 폭우 시 범람과 부유물에 의한 파손을 최소화했다. 사고를 확장하는 디자인 장소성을 고려한 어린이 놀이 공간 디자인은 어린이와 놀이터를 연결한다. 최근 어린이 놀이 시설 디자인에서 주목 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지형의 재해석이다. 한때 인기를 끌던 원색과 캐릭터 조형 요소가 접목된 놀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형을 살린 창의적 놀이 시설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언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놀이 공간은 자연을 접할 일이 적은 현대 아이들에게 자연을 닮은 놀이 구조가 되어주어 다른 시설과 비교해서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 더 효과적이다. 다양한 높낮이를 가진 지형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신체 활동, 상상력, 공간 인식 능력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균형 감각을 기르고, 꼭대기를 향해 경주하고 정복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행동 및 신체 발달을 꾀하고 적극성을 기를 수 있다. 언덕 사면을 따라 슬라이드, 네트, 터널, 암벽 홀더 등을 설치하면 다양한 도전과 협업, 창의적인 놀이가 가능하고, 경사도를 조절하면 다양한 연령의 아동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언덕 자체를 놀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아도 될까라는 제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보이는 모든 구릉과 언덕이 놀이터라는 확장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조성한 서산 명륜근린공원 놀이터는 언덕을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활용했다. 기존의 노후된 공원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계단만 놓여 있던 공원의 언덕 사면에 메가슬라이드를 설치하고 중앙 공간에 네트, 마운딩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다양한 수준의 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장소성을 위한 보편적 경험 설계와 소통 장소성을 구현하려면 단지 보기 좋은 형상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이용자의 동선, 행동 패턴, 감성적 반응 등을 고려해 방문객이 실제로 편하게 이용하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특히 어르신, 아이,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접근성과 편의성까지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요구된다. 특정 계층과 연령대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보다 모두가 나눌 수 있는 보편적 경험과 감성을 시설에 담았을 때 진정한 장소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장소성을 구현하는 디자인은 개인적 창작물이 아니라, 공공성과 협력을 전제로 한다. 지역 주민, 방문자, 기관이나 단체 등 다양한 주체와 소통하며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장소가 지닌 특성과 활용 가능성을 함께 찾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정해준 형상만을 그리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조율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반려동물 테마 시설 ‘왈로Waalo’ 시리즈다. 수도권 공동 주택, 용산 미군 장교 숙소, 수안보 생태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 왈로가 활용됐다. 수도권 공동 주택 유휴 공간에 왈로를 조성할 때 입주민들과 디자이너가 함께 협업했다. 이곳은 훈련, 놀이, 휴게 공간을 구분해 디자인했으며, 반려견과 보호자가 교감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조성됐다. 용산 미군 장교 숙소에서는 기존 잔디와 보행로로 기획된 공간을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수안보의 생태공원에는 반려견을 동반한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시설로, 바비큐장과 어린이 놀이터와 별도 분리된 안전한 공간을 선정해 자연석과 수목이 어우러진 공간 속에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했다. 실용적이며 지속가능한 디자인 장소성과 연계된 시설물은 단기적 설치물이 아닌, 오랜 시간 장소와 함께 공존해야 한다. 실용성과 지속적인 유지·관리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소재의 내구성, 이용자의 접근성, 계절 변화에 따른 대응력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는 소재다. 소재는 음식으로 비유하면 고급 식자재라고 할 수 있다. 재료가 특별하면 맛도 특별하듯 품질이 뛰어난 자재가 주는 감성은 그대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며 그 장소에서의 생명력도 길어진다. 양질의 소재는 사용자, 관리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소성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당 공간의 장소성은 더욱 오래 유지되고, 공동체의 자산으로 남는다. 진정한 의미의 장소성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과 상호 작용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장소성과 연계된 조경 시설은 장소의 완성도를 높이고, 사람과 장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제 단순한 ‘쉼’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장소와 이용자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조경 시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계 단계부터 장소성과 깊이 있게 연결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건(Yekun)은 1990년 창립한 조경 시설 전문 기업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지향점으로 삼고, 도시 경관과 조경 공간에 어울리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갖춘 조경 시설을 만들기 위해 창립 이래 꾸준히 매진해왔다. 국내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조경 시설 ‘푸르너스’, 친환경 어린이 놀이터 ‘아이붐’, 반려동물 시설 ‘왈로’와 X-게임 등 다양한 조경 시설 브랜드를 선구적으로 시장에 선보였다. 기술과 완성도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제작, 시공, 유지·보수까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해 왔으며, 국내외 특허를 비롯해 ISO 9001, ISO 14001 인증을 통해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받았다. 자연친화적 소재와 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자연과 조화를 꾀하며 시민들에게 편리하고 풍요로운 도시 환경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정원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축제인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박람회는 2015년 월드컵공원을 시작으로 여의도공원, 만리동 일대, 북서울의꿈의숲, 하늘공원 그리고 뚝섬한강공원까지 서울 곳곳에 공공 정원을 조성해왔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보라매공원에서 5월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작년보다 규모를 확대했고, 디지털정원 등 새롭게 선보이는 정원문화프로그램을 비롯해 정원 산업전, 학술행사 등이 진행된다. 푸드트럭과 판매부스 운영, 공원 내 상행위 제한 완화 등을 통해 지역 상권과의 연계성을 강화했다. 이번 박람회는 서울시와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과조경과 동아일보가 행사 운영을 맡았다. 올해는 김영민 총감독(서울시립대 교수), 이가영(서울가드닝클럽 대표)과 송민원 부감독(엠디엘 대표)으로 구성된 실무 감독단을 통해 전문성 강화를 꾀했다. 박람회의 주제는 서울, 그린 소울(Seoul, Green Soul)로 40년 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라매공원 12만 평 전역을 111개의 정원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생태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조성하는 작가정원을 비롯해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동행정원(학생·시민·다문화가족), 작품정원(기업·기관·지자체), 매력정원 등 다양한 전시 정원을 선보인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정영선과 협업자들
지난해 여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이하 정영선 전) 전은 조경이 대중에게 문화적 코드로 다가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8만 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에 다녀갔고, 2024년 8월에는 국내 박물관·미술관 중 최초로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4’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부문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영선 전의 해외 순회전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정영선과 협업자들’(이하 정영선과 협업자들 전)이 산 마르코아트센터(San Marco Art Centre)(이하 SMAC)에서 5월 9일부터 7월 13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SMAC의 개관을 기념하는 초청 특별전으로, 한국-이탈리아 상호문화교류의 해(2024~2025)를 맞아 양국 간 문화 협력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전시가 열리는 SMAC는 16세기 베니스 행정관청으로 사용됐던 프로쿠라티에(Procuratie)를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리노베이션 한 건물이다. 정영선과 협업자들 전은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주목했던 정영선 조경가의 작업세계를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정원과 경관 철학, 한국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는 조경의 역사를 이탈리아에 소개한다. *환경과조경446호(2025년 6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풍경의 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집에서 꼭 한 가지 챙겨야 할 물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당연히 값비싼 물건을 먼저 챙겨야 하겠지만, 값비싼 물건을 대체할 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 한 개를 고르라고 한다면 수집한 시집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에 애착이 생긴 건 순전히 그 노트 때문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방 책상 위에는 늘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노트의 이름은 열린 마음. 그 이름 그대로 각자 적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적으면 된다는 원칙 아래 동아리 창립 때부터 전통처럼 내려오는 노트였다. 동아리방 한쪽 구석의 캐비닛에는 선배들이 적은 수백 권의 노트가 빼꼭하게 들어있었다. 나를 포함해 또래의 동기나 선배들은 주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시험 정보, 소모임 모집, 사소한 고민과 푸념 등 신변 잡기의 이야기를 적어 놓는 게시판으로 활용했다. 어느 날 캐비닛 속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선배들의 노트에 호기심이 생겨 창립 선배들의 노트를 읽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기들과 함께 노트에 적은 내용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선배들의 치열한 고민과 세상을 향한 관점과 시선이 대단했다. 역사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두운 시기를 관통하는 가운데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선배들이 강의실이 아닌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치열한 현장의 열기를 글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선배들의 여느 산문가 못지않은 글쓰기 솜씨 덕분에 읽는 재미가 나름 쏠쏠했다. 탁월한 문장을 구사하는 선배들이 노트에서 인용했거나 추천했던 시집들은 모두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그중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던 시집에는 이런 메모가 첫 장에 적혀 있었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새운 자에게만 온다. 꼬박 밤을 지새운 자만이 새벽을 볼 수 있다.” 그 시집을 추천했던 선배가 적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시적인 문장 한 줄이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별것 아닌 문장일 수도 있지만 새벽과 같은 어둠을 숱하게 통과한 사람만이 말하고 쓸 수 있는 문장인 것 같아서 오랫동안 떠올랐다. 그때부터 시집을 모으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해하기 어려운 시집을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며 저런 비옥한 문장을 쓰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시집을 수집하면서 나름의 취향과 요령이 생겼다. 선호하는 시인선 중 하나는 바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다. 이 시인선은 시인들 라인업도 좋지만, 표지 속 시인들의 자화상 캐리커처가 귀여워서 괜히 더 눈길이 갔다. 특히 맨 뒷표지 네모 박스에 실리는 글이 맘에 들면 종종 시집을 샀다. 시도, 산문도 아닌 형태의 글을 통해 시와 시인을 나도 모르게 상상하며 그려보기도 한다. 가령 “쌓이지 않을 만큼 내리는 눈을 쓸고 있다”(각주 1)와 같은 문장을 읽으며 ‘시’라는 싸리눈을 정성스럽게 쓸고 있을 시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호 기념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가 출간됐을 때 참 반가웠다. 이 책은 뒷표지 글을 시 자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의 말’로 정의하며 501호부터 599호에 실린 시의 말을 정리했다. 지루한 스펙의 나열이 전부인 쇼핑용 카탈로그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감각적인 문장들 덕분에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시집을 사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쪽을 연신 접다가, “숲이 흔들리면 바람이 된다”와 같이 감각적인 문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잠시 감탄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어느 먼 숲의 풍경을 본 날을 떠올리며. 시의 말이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처럼 잡지의 맨 첫 꼭지로서 독자들을 잡지의 세계로 데려 왔던 연재 ‘풍경 감각’이 이번 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환경과조경』 에디터로서 처음 편집했던 원고였고, 매월 담당 편집자이자 원고를 맞이하는 가장 첫 번째 손님으로서 늘 기쁘게 읽었다. 한 독자는 이 연재를 잡지의 시작을 알리며 여는 창문 같다고 했는데, 내게는 ‘풍경의 말’과 같았다. 시가 가진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 시와 시인의 세계를 그리게 하는 시의 말처럼 이 원고를 읽으며 편집하는 시간은 각 풍경이 가진 고유한 목소리를 감각적으로 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월 다가오는 마감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단 한번의 지각없이 매번 정성스러운 글과 그림을 보내준 조현진 작가에게 담당 편집자로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각주 정리 1. 최정진,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 문학과지성사, 2020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정원은 자연의 풍경들을 특별하게 꿰어 맞추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일의 산물이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두부과자를 즐겨 먹고 있다. 얼마 전 부여를 다녀오며 얻어온 것인데, 씹을 때마다 부여 알밤의 단맛이 옅게 풍긴다. 맛이 좀 심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주워 먹다 보면 금세 동이 난다. 은은한 분위기의 부여와 제법 닮은 맛이다. 돌연 부여로 떠나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된 건 그륀바우의 김인수 소장 덕분이다. 처음에는 좀 심드렁했던 것도 사실이다. 너도나도 정원을 외치는 시대에 숨겨져 있지만 꼭 주목해야만 하는 부여의 동네 정원들을 보여주겠다는 제안은 예쁜 수사를 붙여 볼만하게 꾸민 초대장 같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하는 마음도 컸던 건, 귀한 것을 발견해내는 김인수의 눈썰미와 정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어떤 지역의 맛집 가이드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것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맛집 가이드북. 막막하기 그지없다. 지도를 펼쳐야 하나,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 유명한 맛집 목록을 만들어야 하나,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김인수의 숨은 정원 찾기 전략은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쉽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그 지역과 친해진다. 낯설지 않게 느껴질 때까지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 담 너머의 풍경이 궁금해지면 문부터 두드린다. 한번의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뷰도 불사한다. 보고, 듣고, 쓴다. 오늘은 정원을 찾아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서는 게 아니다. 그의 기록 생활은 일상에 아예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김인수는 『정원도시 부여의 마을 동산바치 이야기』(목수책방, 2022)와 『서울 골목길 비밀정원』(목수책방, 2023)을 펴냈다. 안내를 따라 둘러본 부여는 참 신기한 곳이었다. 고요하고 모든 것이 낮고 부드럽게 흘렀다. 궁남지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산등성이는 없었다. 고운 천을 구겨 만든 곡선이 사비성을 감싼 듯했다. 질주하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보기 힘들었고, 모든 길은 보행자와 자전거에게 다정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 군데군데 고여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김인수가 부여를 새 삶의 터전으로 잡은 것은 4년 전이지만, 만나는 사람들 모두 그를 부여 토박이보다 부여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라 말했다. 숨은 정원을 찾아 느릿한 풍경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함께 탐방한 정원 대부분은 전문가의 손길보다는 정원의 가꾼 이의 취향과 생활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곳들이었다. 대중없이 늘어진 화분들이나 작물이 거칠게 자라고 있는 텃밭, 빨래 건 조대와 갖은 폐목들이 군데군데 놓인 정원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정원들보다 생활감이 느껴졌고 그래서 가꾼 이들의 진심이 와 닿았다. 가장 가까이에 둔 초록의 땅을 더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리려는 작은 지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평범한 단어들이 연결되어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지듯이 정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들을 아주 특별하게 꿰어 맞추어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일의 산물”(『서울 골목길 비밀정원』 중)이라는 설명이 딱 어울렸다. 가장 재미있던 건 정원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김인수는 식물 가꾸기는 한 개인의 삶을 넘어 마을 공동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마을 동산바치의 집 주변으로 빈 땅을 정원으로 가꾸려는 시도를 한 가구가 여럿 보였다. 자연스럽게 따라한 경우도 있었고, 정원을 만들며 불어난 꽃과 식물, 씨앗을 주변에 나눠준 동산바치도 있었다. 길가나 집 밖 공터에 꽃창포가 자라고 있는 게 신기해 김인수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유행처럼 번지는 식물이 있다고 답했다. 지역의 원예 상가가 중점적으로 파는 식물이 마을 경관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도 흥미로웠다. 개인이 꾸리는 정원이 정원도시의 기반이 될 수 있을지, 아름다운 백마강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국가정원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인수의 기록들이 정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정원을 만들며 몸과 마음을 치유 받고 행복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두 권의 책에 빼곡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원 가꾸기가 노동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복하기에 계속 정원을 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PRODUCT] 도시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브리가
도시의 삶은 전보다 윤택해졌지만,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미세먼지 등 다양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현대의 쉼터는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 개념에 머물지 않고,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인환경디자인의 스마트 셸터 ‘브리가(BRIGA)’는 스마트 기술이 결합된 공기 정화 시스템을 통해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스마트 셸터는 공기 정화 시스템, 시스템 루버 등 다양한 스마트 기술을 적용해 최적의 환경 속 청정한 휴식을 제공한다. 셸터 내부의 미세먼지 농도가 외부에 비해 최대 70%까지 감소하는 등 효과적인 공기 정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기, 날씨 등 환경 변화에 따라 개폐가 되는 시스템 루버를 통해 최적의 내부 환경을 유지한다. 통합 컨트롤러는 내부 환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사용자의 입실, 퇴실을 감지해 공간의 에너지를 조절하며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돕는다. 내부 디스플레이는 날씨, 온도, 내외부의 미세먼지 수준 등 다양한 기후 정보를 시민들에게 편리하게 제공한다. 브리가는 자연과 시민을 연결하며 자연 친화적인 휴게 환경을 구축한다. 내부의 깨끗한 공기와 루버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스마트 기술이 어우러진 스마트 셸터는 도시 속에서 자연의 숨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라이프스타일과 스마트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 인프라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TEL. 02-877-8811 WEB. www.seindesig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