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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맥하그의 유산
    1969년은 현대 조경사의 분수령이다. 분야의 혁신과 영역의 확장을 이끈 새로운 조경 전도사이안 맥하그Ian L. McHarg(1920~2011)가『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를 출간한 1969년을 기점으로 조경 이론과 실천은 변화의 함수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출간 50주년을 맞은 2019년, 미국 조경학계는『디자인 위드 네이처』를 재조명하고 맥하그가 현대 조경에 남긴 유산을 재평가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책의 산실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맥하그 센터(The McHarg Center)가 설립되어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전시회를 기획했다. 지난 6월에는 대규모 컨퍼런스가 열렸고, 오는 10월에는 그의 거대한 그늘 속에서 성장과 탈주를 거듭해 온 이론가와 조경가들이 모여 함께 집필한 책, 『디자인 위드 네이처 나우(Design with Nature Now)』가 우리 앞에 놓일 예정이다. 학과 도서실 책장 한구석에서『디자인 위드 네이처』 초판본을 꺼내 다시 펼쳐본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이 제시한 철학과 방법론은 이제 선택지가 아닌 당위이고 변수가 아닌 상수다. 자연환경의 여러 요소와 시스템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그 결과를 중첩해 적지를 찾아내는 방법은 오늘날의 계획에서는 당연한 절차지만 196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자연과 싸워 자연을 이겨내는 역사를 일구어 온 인간이 비로소 그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채기 시작한 1960년대 말, 맥하그의 생태 계획은 환경 문제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인식을 낳은 시대정신과 맥과 결을 같이 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발상이었던 셈이다. 맥하그를 기점으로 조경은 변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동력은 생태학이라는 이름의 과학이었다. 맥하그는 생태학의 힘을 빌려 조경과 조경 교육을 과학화했다. 뿐만 아니라 조경이 단지 왕후장상이나 자본가의 정원 뒤치다꺼리를 넘어 환경 문제의 해소에 기여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조경 전문업의 영토를 확장하고 조경만의 전문 기술로 광역 계획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모더니즘 시대에 정체된 조경의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맥하그식 생태 계획은 조경에서 포스트모던한 사고의 등장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맥하그의 접근 방법이 환경결정론, 즉 또 다른 형태의 인간-자연 이원론이라는 부정적 평가는 이미 그의 전성기에도 팽배했다. 도구주의적 자연관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간 문화의 역동적 접점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맥하그의 유산은 조경의 과학-예술 이분법을 심화시킨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폭넓은 생태학의 가능성을 경직된 과학 일변도로 몰아감으로써 생태학에 담긴 상상력이나 창조성과 같은 측면을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조경의 과학화는 디자인의 침체를 낳았고, 조사, 분석, 설계의 일방향 프로세스는 형태의 디자인과 결코 교점을 갖기 어려웠다. 『디자인 위드 네이처』는 조경의 지향과 방법론을 바꾼 이론이자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을 탑재한 실천이었다. 맥하그의 유산은 오늘의 토론을 초대한다. 현대 조경을 화장술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킨 진보의 토양인가, 현대 조경의 진행 방향을 뒤흔든 이단인가.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디자인 위드 네이처』가 현대 조경 이론사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시스템을 경관으로 매개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의 배경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적(resilient)설계의 이면에도 맥하그가 자리하고 있다. ‘1969년 이후의 조경이론’이라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대학원 세미나에서 한 박사과정 학생이 제출한 글의 마지막 문단을 옮긴다. “변화하는 동시대 조경에 맥하그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던진다. 우리에게 맥하그는 거대한 그림자다. 숲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한 발짝씩 앞서 걸어가는 족적처럼 안심을 주는 그림자다.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쳐다보기도 힘든 정오의 땅 위에, 옅은 그림자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가. 한 발자국 걸어 나갈 방향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맥하그의 생태적 조경관은 오래된 이정표와 같다. 이 이정표의 올바른 사용법은 우리가 계속 고민할 문제일 것이다”(신명진). 이번 호에는 뢰번 가톨릭 대학, 런던 대학, 글레스고 대학, 텍사스 대학 등 최근의 캠퍼스 프로젝트를 모아 싣는다. 대학 캠퍼스와 도시 공간의 함수 관계가 흥미롭다.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식재 설계
    식재 설계, 도면으로 말하기 살아 있는 생물인 수목이 가지는 특징, 삼차원 사물의 이차원적 표현, 식물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감성, 취향의 차이 등으로 인해 명확한 규격이 없는 데다가 시간에 따라 변하기까지 하는 식물을 확정된 도면으로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기본적으로 표현되는 식재 위치와 규격, 물량 정보 외에 설계 의도를 노트나 삽도를 통해 짤막하게라도 언급하면, 시공자는 비교적 수월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고 설계자도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번 연재에서는 식재 설계에 관한 방법론보다 식재 설계 내용을 시공자에게 도면으로 말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김기천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룹한에 입사하여 현재 전략디자인본부를 이끌고 있다. 조경 이론과 담론이 왕성하던 2000년대 초부터 여러 설계 이슈에 그룹한의 고민들을 담아내며 다양한 유형의 공공 오픈스페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프로젝트의 스케일을 다양화하며 설계가의 고민을 공간에 구현하는 접근 방식에 관심이 많다. 주요 작업으로는 서울대공원 재조성 국제 설계공모, 시흥 배곧생명공원, 영천 렛츠런파크, 양평 현대 연수원 블룸비스타 등이 있다.
  • [그리는, 조경] 하늘에서 내려다보기
    한눈에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관광지의 인기 장소다. 지상을 거닐다 같은 장소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등바등 치열히 살아가던 삶이 미니어처가 되어버린 광경을 보고 누군가는 인생의 덧없음을 느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마침내 이곳을 모두 보았다는 성취감에 뿌듯할지도 모른다. 후자의 감정은 높은 곳에서 장소를 내려다보는 행위가 지닌 우월감과 뒤섞여 있다. 전망의 특권, 그것은 장소에 대한 소유와 지배의 감각과도 연결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즉 공중 뷰(aerial view)는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전망 좋은 음식점이나 아파트 등의 실제 공간은 물론이고,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영상 지도 서비스 같은 시각 이미지를 통해서도 우리는 새의 시점, 즉 조감(bird’s eye view)의 주체가 된다(그림 1). 이 시점은 움직이기도 한다. 자연과 도시를 항공 촬영한 다큐멘터리, 게임, 영화, 각종 모델링 소프트웨어의 플라이스루(flythrough)는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항해하는(navigating)희열을 제공한다. 조경 설계와 계획에서도 공중 뷰가 자주 이용된다. 항공 사진과 위성 사진을 이용해 대상지와 주변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여러 경관 데이터를 지도로 만들어(mapping)대상지와 관련한 정보를 한눈에 파악하기도 한다. 도시 스펙터클로서 공중 뷰 항공 사진은 도시와 자연 경관에 대한 스펙터클(spectacle)을 제공하고, 그리하여 경관 설계와 계획에도 자주 활용되어 왔다. 최초의 항공 사진은 1858년 프랑스 사진가이자 열기구 조종사였던 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숑(Gaspard-Felix Tournachon)(1820~1910, 일명 나다르Nadar)이 열기구에 탑승해 파리 시가지를 촬영한 것이다. 십 년 후 나다르가 포착한 파리의 공중 뷰는 오스만(Haussmann)의 파리 도시 개조 프로젝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그림 2). 개선문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은 방사선의 대로, 하수관, 공원, 토목 구조물을 포함하는 도시 인프라스트럭처의 질서와 이들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1 같은 시대 도시의 공중 뷰는 손으로도 그려졌다. 공중 뷰는 높은 곳에서 바라본 시점이므로 작은 공간보다 대규모 도시를 바라보고 시각화하는 데 적절했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넓은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카메라 발명 이전에도 이미 인간은 하늘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18세기 후반 인간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올라 도시를 조감했다(그림 3). 도시가 발전하면서 도시 조감도도 많이 생산되었다. 공중 뷰는 도시를 시각화하고 대중에게 소비되는, 말하자면 도시를 향유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Charles Waldheim, Landscape as Urban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배정한·심지수 역,『경관이 만드는 도시: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론과 실천』,도서출판 한숲, 2018, p.175.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 [공간의 탄생, 1968~2018] 2000년대 공간의 탄생, 지방의 도시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개발 전후 지방을 살려라 지난 연재에서 한국 도시화 50년의 두 번째 공간 사례로 근교의 도시화에 대해 1기 신도시와 200만 호 건설 계획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번 연재에서는 세 번째 사례로 2000년대 지방의 도시화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지방과 지방의 도시화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지방地方, province은 구체적으로 1) 어느 방면의 땅 2) 서울 이외의 지역 3)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의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을 뜻한다.1 다시 말해 지방은 서울, 수도권 또는 중앙 등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서울 이외, 수도권 이외 또는 중앙 이외의 지역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방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하지만, 미국 같이 주별 또는 지역별 자치권이 분명한 연방 국가에서는 낯선 편이어서 이를 설명하거나 번역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방의 도시화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도시화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지방의 도시화는 역설적으로 서울과 서울 이외 지역의 도시화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2000년대에 이르면서 중앙 정부는 더 이상 서울과 지방의 도시화 격차를 묵과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의 절대적 공간 패권은 1962년 이후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나타나게 되었다.2 이와 같은 서울의 과밀 및 국토 불균형 문제는 1970년대 초반부터 국가의 중요한 공간 정책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는데, 1971년 7월 도시계획법 상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 지정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greenbelt)이 그것이다. 급기야 1977년에 이르러서 박정희 정부는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추진했으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실상 용도 폐기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행정수도의 흐름은 서울, 과천에 이은 제3청사로서 대전정부청사의 1993년 착공과 1998년 입주로 이어졌다. 마침내 행정수도의 본격적인 건설 흐름은 200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작동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2002년 9월 30일 대중앙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낡은 권위주의 정치 청산, 부정부패의 특권주의 근절, 서민 생활 안정 및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 이어 네 번째 핵심 공약으로 충청권에 행정수도 건설 및 청와대와 중앙부처의 이전 등을 천명했다. “국민들은 저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권위주의 정치와 특권주의의 청산, 서민 생활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 발전, 그리고 남북 평화 체제 구축을 통한 희망찬 새 시대를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약속합니다. … 넷째,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 부처를 옮겨가겠습니다.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고속철의 건설과 정보화 기술의 발전, 청주국제공항 등은 행정수도 건설의 여건을 성숙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 시민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서울 강북 지역의 발전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방혁신도시의 시작과 경과 행정중심복합도시와 지방혁신도시의 시작은 주지한 바와 같이 수도권 과밀과 이로 인한 국토 불균형의 문제에 있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 분권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초기 신행정수도 구상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중앙 부처의 선제적 이동과 사실상 천도 수준의 행정수도 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에 따른 서울 및 수도권, 그리고 야당 등의 예상되는 저항에 대한 돌파구로서 일반법에 우선 적용되는 여러 특별법을 제정·공포했다. 이로 인해 ‘국가균형발전 특별법’(2004),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 ‘지방분권특별법’의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2007)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2007)도 제정·공포됐다.4 하지만 이같은 특별법은 오히려 헌법소원의 제기를 통해 정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었으며, 정권 유지마저 위태롭게 만든 법적·정치적 공방을 여러 차례 불러일으켰다. 2004년 10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은 관습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확인 결정되었으며, 2005년 3월 2일에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신행정수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추진되게 되었다. 2005년 6월 15일 ‘행정중심복합도시법’에 대한 새로운 헌법소원이 다시 제기되었으나 각하 결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2008~2013) 출범 이후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자족 기능 보완을 명분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무력화하는 수정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정운찬 국무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상당했으며, 국회 본회 의의 표결 대결로 이어졌으나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원안 고수가 결정되었다.5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지방”, 표준국어대사전, 2019년 7월 10일 접속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4c96df44eca4b29905888450e47be18). 2. 김충호, “한국 도시화의 거시적 현황, 쏠림 현상”, 『환경과조경』 2019년 2월호, p.108~115. 3. 저자 미상, “노무현 후보 선대위 출범식 연설문 전문”, 「오마이뉴스」 2002년 9월 30일. 4. 노무현 정부의 특별법은 여러 정치적 논쟁과 행정적 집행 과정을 거치며 명칭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이를테면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은 헌법소원 제기 이후에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2005)으로 변경되었으며, ‘지방분권특별법’(2007)은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2008)으로, 그리고 다시 ‘지방분권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2013)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2007)은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2018)으로 변경되었다. 5. 지영호, “수도 이전 논쟁의 역사, 노무현에서 이명박·박근혜까지”, 「the 300」 2016년 7월 8일.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 [이미지 스케이프] 풍경학개론
    서연:들을래? “이젠 버틸 순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승민:근데 이거 누구 노래야? 서연:너 전람회 몰라?기억의 습작.노래 좋지? 승민:어. 개포동이 넓게 내려다보이는 옥상.서연과 승민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전람회의‘기억의 습작’을 같이 듣습니다.애틋한 첫사랑의 추억은 영화관 전체를 감싸는 김동률의 풍부한 저음의 보컬과 맞물려 영화의 성공과 함께 첫사랑 신드롬을 만들었습니다.물론 저도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영화 덕분에 건축학과 인기도 조금 더 올라갔고,어린 서연 역을 맡은 수지는‘국민 첫사랑’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죠.그리고 무엇보다 큰 인기를 얻은 또 한 곳이 있는데,바로 서연과 승민을 다시 연결시켜 준 제주도 서연의 집입니다. ...(중략)... *환경과조경376호(2019년8월호)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