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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네스팅
작가정원 은상
보라매공원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신화 속 새의 기원 이야기를 상상하며 디자인을 구상했다. 정원에서 네스팅(nesting)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기능한다. 공원 주변에서 재료를 모아 정원을 만들고 정적인 둥지가 아닌 살아 있는 행위로서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탄생, 성장, 소멸이라는 생명의 흐름을 반영한다.
곡선 형태의 정원
정원의 형태는 태극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동양의 철학적 개념인 균형과 음양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표현했다. 자연의 생태적 과정과 예술적 개입을 통해 제3의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했다. 두 개의 나선을 부드럽게 엮어 정원을 둘러싸게 했으며 주변 도로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꾀했다.
곡선 형태는 음과 양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국 전통 색채인 오방색에서 영감을 받아 식물을 선정했다. 남쪽에는 따뜻한 색감의 식물을, 북쪽에는 시원한 색감의식물을 배치했다.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순환을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시너지를 느낄 수 있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Till Rehwaldt, Garth Woolison
공동 설계 He Hao, Mengs Martin, Liu Yanting, Xu Yu, Yu Xihe
시공 공간이오
협력 데코가드닝(식재)
틸 레발트(Till Rehwaldt)는 1993년 레발트 조경설계사무소(Rehwaldt Landschaftsarchitekten)를 설립해 공원, 정원, 도시 오픈스페이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가르트흐 볼리손(Garth Woolison)은 레발트 조경설계사무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2023년부터 체코 프라하의 제4분할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 Till Rehwaldt, Garth Woo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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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워터루츠!
작가정원 동상
워터루츠(Waterrooots)!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들여놓지 말라(You never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 삶과 자연의 영원한 역동성, 시간에 따른 자연과 개개인의 변화를 정원에 담고자 했다.
원
원은 중심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는 점의 집합으로, 서로 다른 공간을 구분하고 통로를 상징한다. 정원에서 원은 외부와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공간이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방문객들에게 개별적인 공간이자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얼음과 정원
알렉산드로 트리벨리는 정원에 빙하를 상징하는 얼음을 설치하고, 얼음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통해 인류의 행동이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시에 녹아내린 얼음이 주변 식물의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했다. 이는 자연이 훼손되어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힘인 회복 탄력성을 의미한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Alessandro Trivelli
공동 설계 SDARCH Architects with Andrea Sogja, Tommaso Gabba, Martina Gangi
시공 공간이오
협력 그린팜널서리(식재)
알레산드로 트리벨리(Alessandro Trivelli)는 이탈리아 밀라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공학과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밀라노 공과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SDARCH 트리벨리 & 어소시에이티(Trivelli & Associati)의 파트너이자 설립자이며 건축, 조경, 환경 기술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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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제3의 플라타너스 숲
작가정원 동상
제3의 플라타너스 숲은 ‘제3의 자연’을 제1의 자연(원생림)과 제2의 자연(인공 녹지)이 공존하는 가운데 사람의 문화가 깃든 공간으로 구현한 정원이다. 정원 한가운데에 플라타너스가 자리하고 주근부를 과감히 비워 그 여백 사이로 초본 식물을 심었다.
뿌리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본래 저습지에 사는 플라타너스가 대상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플라타너스의 뿌리 때문이다. 이 뿌리가 건조하고 단압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무수한 균근균류와 협동해 물과 양분을 옭아맸다. 수관폭 너머로는 수평근, 모근으로 구성된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수분과 양분을 찾아다녔다.
따라서 주근의 지하부는 보호되어야 한다. 세근의 영역 지하부에 배수층을 만들고, 지상부로는 숲 바닥 식물을 심기로 했다.
두 가지 접근
두 조경가는 결은 닮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원에 접근했다. 한 사람은 풍경을, 다른 한 사람은 식물을 지었다.
정원 속에서 사람이 어디에 머물고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며 어떤 순간에 감각을 멈추는지를 고려해 숙근초를 모든 흐름을 이어주는 풍경으로 삼았다. 숙근초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감각적 배경으로 기능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정원의 본질이 된다.
초본의 태피스트리를 중심으로 한 식재 전략을 세웠다. 숙근초는 살아 있는 생명이자 계절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재료다. 식물 하나하나의 구조와 빛, 그림자, 질감에 몰입하면서 사초류의 흐름, 반복과 대비, 수피의 리듬까지 정원의 가장 낮은 층부터 이야기를 엮어갔다. 시간의 결이 스며든 생명의 직물을 직조해 나갔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양희, 오세훈
시공 마이조경, 더퍼레니얼
후원 지이든
이양희는 2021년 스튜디오 천변만화를 설립했고, 다양한 분야 간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도시 공간 내 지속가능한 여러해살이풀 식재에 대한 관심을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설계에 적용하는 이론의 실무화를 추구한다.
오세훈은 정원디자인 스튜디오 이듬해의 대표로, 정원가이자 식물교육자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주의 정원 철학과 숙근초 중심의 식재 디자인을 기반으로, 정원 문화의 심화와 확산을 위한 다양한 창작과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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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도시 ESG 전략으로서 기업정원(각주 1)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는 총 20개의 기업정원이 조성되었다. 박람회장인 보라매공원 곳곳에 펼쳐진 이 정원들은 기업의 정체성을 공간으로 시각화한 사례이자, ESG라는 모호하고 부담스러운 과제를 도시 공간에서 어떻게 실천 가능한 형태로 바꿔낼 수 있는지 실험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참여 기업 대부분이 정원 내에서 브랜드 노출과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했지만, 몇몇 정원은 분명히 변화의 조짐을 드러냈다.
기업정원의 상업성과 공공성
기업이 정원을 조성하는 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기업 고유의 브랜드나 제품을 정원 안에 배치하거나 시각적으로 연상되도록 만들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기업의 직접적 홍보와 관계없이 순수하게 사회적 기여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기부에 가까운 이 형식은 공간에 대한 의도나 개입 없이 예산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노출도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롯데그룹은 2023년 잠실 롯데월드타워 앞 광장에 ‘베르테르의 정원’을 조성했다. 이 정원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기념하는 문화 설치물로 기획됐으나, 그 연출 방식과 장소 활용을 통해 롯데그룹의 정체성과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장치로 작용했다. 반면, 일본 자동차 기업 마쓰다는 히로시마 공장 인근에 시민과 함께 장기적으로 숲과 정원을 조성하면서 브랜드 노출 없이 생물 서식처와 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하는 기부형 공간을 운영해 왔다. 전자는 브랜드 홍보 전략의 연장선으로 정원을 활용한 사례이고, 후자는 공공성을 두 방식 모두 존재할 수 있지만, 정원이 도심의 공공 공간에 조성되는 이상 그 표현의 수위 조절과 공공성
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지나친 홍보는 도시 경관과 시민 경험을 해치는 요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모든 표현을 제거한 채 기계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은 공공성과 기업의 정체성이 모두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기업의 참여 동기: 홍보에서 전략적 ESG 실천으로 기업이 정원에 참여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이었다. 홍보 예산을 활용해 사회 공헌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고, 정원은 그 수단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ESG 경영이 강화되면서 정원이 주요한 실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TCFD)와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시(TNFD )등 국제 기준이 확대되면서, 기업은 기후 위기 대응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 자연 자산에 대한 책임 있는 보호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산림 조성이나 기부 중심 참여에서 벗어나 도시 기반의 자연 공간―예컨대 정원과 도시숲―이 ESG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정원은 이러한 변화 흐름 속에서 낮은 진입 장벽, 빠른 실행 가능성, 시민과의 접점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ESG 공간 실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 서울시가 참여 기업들과 체결한 ‘기업동행정원 조성 업무협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나무는 ‘세컨포레스트: 디지털 치유정원’을 매개로, NFT 기반 기금 조성과 자생 식물 보전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협약서에 명시했다. 대우건설은 정원을 통해 기후 위기 대응 및 탄소중립 실천을 공간 설계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AIA생명은 ‘다시 생각하는 건강정원’ 조성 외에도 임직원 식재 참여, ESG 기부금 출연 등을 함께 계획하며, 정원 조성을 브랜드 철학과 연결된 웰니스 전략의 일부로 삼았다.
다른 참여 기업들도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ESG 실천을 정원 조성의 기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제공이나 이미지 홍보를 넘어, 기업이 도시 공간에서 실질적인 ESG 실천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편집자 주. 이호영의 원고에 편집부가 고른 기업정원의 사진과 설명을 더해 리포트 형식의 지면을 구성했다.
이호영은 조경 분야에서 20년 넘는 실무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HLD 대표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HLD 설립 전에는 조경설계 서안, AECOM, office ma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8년에 제1회 젊은 조경가상을, 2023년에 서울시장상을 수상했다. 한국조경협회 수석부회장, 서울시 공공조경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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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스케이프] 제인 라우던의 풍경
정원과 책은 마치 목도리와 장갑처럼 한 세트가 되어 우리의 삶을 포근하게 한다. 글 쓰는 사람 중에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글쟁이가 아니라도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책도 좋아한다. 그래서 풍경과 문학은 서로 관계가 깊다. 이 둘을 엮으면 정원 서적이 된다. 정원의 나라 영국의 경우, 정원을 만드는 속도와 정원 서적을 읽고 쓰는 속도가 거의 비례한다는 느낌도 든다. 문학 속에서 풍경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풍경 속을 자주 걷는다. 그녀의 이야기들이 ‘픽처레스크’한 풍경을 배경 삼지 않았다면 리안 감독이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를 영화로 찍고 싶어 했을까?
제인 오스틴 이후에도 샤를로테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영국의 풍경 묘사는 지속된다. 브론테 자매는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다. 브론테 자매 외에도 빅토리아 시대는 출중한 여성 작가를 많이 배출했다. 빅토리아 시대란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 즉 1837년에서 1901년까지 거의 70년 가까운 기간을 말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특별히 통치를 잘했거나 못했기 때문에 그리 불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선의 성종대, 중종대라고 일컫듯 시대를 구분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시기에 영국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부강해졌고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날 때 영국은 의회 개혁을 통해 혁명의 발발을 막았다. 1870년경부터 영국 제국주의가 최고조에 달해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식민지 정책에 기반을 두었던 대영제국이었기에 지금은 부끄러워 하지만 당시 대영제국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신분 계급에도 변화가 나타나 상공인을 주축으로 중산층이 크게 성장했다. 엔지니어, 건축가, 변호사 등 전문직도 이에 속해 중산층의 직업 구조도 다양해졌다. 이들은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외곽에 소위 빌라라고 불린 고급 주택을 짓고 살았다. 대개 3층 규모에 방이 열 개 정도 있고, 앞뒤로 정원이 딸린 구조였다. 이와 더불어 제인 오스틴의 무대였던 풍경 정원의 시대가 지나가고 도시의 빌라 정원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런데 빌라 정원 시대와 함께 ‘여성의 정원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무렵 또 다른 제인, 제인 웰스 라우던(Jane Wells Loudon)이 나타나 모름지기 여성 정원의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게 된다.
풍경 정원에서 잠들면 생기는 일
어느 뜨거운 여름날, 17세의 제인은 머릿속이 복잡해 집을 나섰다. 2년 전, 제인이 17세 되던 해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유산으로 빚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태야 함을 깨달았다. 그런데 양갓집 규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세 가지밖에 없었다. 세밀화를 그리는 것, 모자나 의상을 만드는 일, 그리고 가정교사였다. 그중 가정교사가 가장 흔했지만,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수도 형편없었다.
제인은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독서광에 상상력이 풍부했던 제인은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는 돈벌이로 취급하지 않았기에 주변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단편 소설 몇 편을 쓰고 시도 쓰고 외국의 이야기를 번역해 책으로 묶었다. 다행히 출판사에서 받아들여 약간의 인세를 받았다. 이제 장편 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영웅 이야기를 쓸까? 그런데 어떤 영웅? 제인이 여태 읽은 이야기 속의 영웅들은 모두 비슷했다. 서로 형제나 되는 듯 비슷하게 잘나고 비슷하게 용감하고 비슷하게 낭만적이었다.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뭐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 제인은 집 뒤에 있는 언덕을 올랐다.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골짜기 사이로 구불거리는 오솔길과 그 옆을 흐르는 시냇물,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아련히 보이는 높은 산허리. 제인은 풀밭을 지나 큰 떡갈나무 그늘로 향했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 꿈을 꾸기 마련이다. 눈앞에 문득 젊고 아름다운 신령이 나타났다. 머리엔 꽃으로 엮은 관을 쓰고 아지랑이 같은 날개옷을 떨쳐입었는데 손에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너 아이디어를 찾고 있지? 이거 네게 줄게 하면서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게 미래의 연대기야. 이걸 줄 테니 이야기를 만들어 봐. 왜 미심쩍어? 그러면 주변을 한번 둘러봐. 그제야 제인이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2126년의 영국이었다. 무려 3백 년 뒤의 미래로 온 것이다. 제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 이는 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인은 자신의 공상과학 소설 『미라(The Mummy)』가 그렇게 탄생 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물론 그것도 허구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때 제인의 나이가 20세였다. 소설은 잘 팔려 바로 이듬해에 재판을 찍었다. 문학적으로 그리 높게 평가받지는 못했지만, 소설 속에 그려낸 미래의 세계와 뛰어난 과학 기술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작가의 어린 나이에 비추어 볼 때 사회와 세상에 대한 높은 성찰이 번득이는 점 또한 대단했다. 제목 이 ‘미라’인 것은 소설 속 주인공이 고대 지식을 얻기 위해 이집트의 파라오 케옵스의 미라를 부활 시켰기 때문이다. 케옵스가 깨어 보니 세상은 기술의 경이로 가득했다. 비행선이 하늘을 날고 의사와 변호사, 판사는 모두 로봇이었다. 의료 사고도 없고 법정의 오판도 없었다. 가전제품이 있고 농업에도 기상천외한 기계를 도입해 생산력을 높였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케옵스는 22세기 사회를 지켜보며 인간의 오만, 과학의 오용과 정치적 혼란을 목격했다. 자신의 역할이 시대를 관찰하고 증인이 되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살아 있지 않은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임을 성찰한다. 그래서 다시 피라미드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나 제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라』 덕분에 인생의 2부가 시작됐기 때문이 다. 런던에 존 클라우디우스 라우던(John Claudius Loudon, 1782~1843)이라는 저명한 식물학자 겸 조경 가가 있었다. 제인의 소설이 발표될 무렵 그는 40대 중반이었다. 우연히 소설을 접하고 무척 재미 있게 읽었다. 특히 제인이 발명한 각종 기계에 흥미를 느껴 자신 발행하는 잡지 『가드너스 매거진(Gardener’s Magazine)』에도 소개했다. 그 역시 개량 온실 또는 테양열 난방 시스템을 고안하는 등 기 술 발전에 관심이 많았기에 소울 메이트를 찾은 느낌이었다. 저자를 꼭 만나고 싶었다. 알음알음으로 저자와 식사 약속을 정했다. 소설이 무명으로 발표됐기 때문에 존은 저자가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가보니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존은 즐겁게 놀랐고 둘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그때가 2월이었는데 두 사람은 그해 9월에 결혼한다. 그리고 제인은 버밍햄에 있던 아버지의 전원주택을 떠나 남편을 따라 런던의 빌라에 입성했다. 약 4천 제곱미터 크기의 정원이 있었다.
우리도 삽질할 수 있다
남편을 통해 제인은 식물과 정원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했다. 전원에서 성장하긴 했어도 제인의 머릿속에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 정원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특유의 지 적 호기심과 긍정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에 접근했다. 결혼하던 해에 남편의 역작 『호르투스 브리 타니쿠스(Hortus britannicus)』가 출판됐다. 브리타니아의 자생 식물, 원예 식물, 도입 식물을 총망라 한 식물 도감이었다. 존은 류머티즘성 열과 관절염으로 오른팔을 못 쓰게 되었다가 결국 절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오른팔이 없는 관계로 집필을 위해 제도사와 비서를 고용해야 했다. 제인이 그 일을 자청하고 나섰다. 낮에는 정원에서 식물 공부를 하고 저녁이면 서재에 나란히 앉아 책을 쓰는 생활이 지속됐다. 남편의 집필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다음으로 ‘브리타니아의 수목’이라는 방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를 도우며 제인의 지식도 날로 늘었고 정원 일에서도 의외로 큰 기쁨을 얻었다. 제인의 과학기술에 관한 관심이 제대로 주인을 만난 것 같았다. 제인은 식물과 정원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8년이 지난 뒤 제인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식물학』이라는 책을 냈다. 이 즐거운 학문 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남편 존의 책은 지극히 전문적이어서 아마추어들은 읽기 어려웠다. 특히 제인은 자기와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 식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알 려주고 싶었다. 이어서 여성 정원 잡지 『가드닝 여성지(Ladies Magazine of Gardening)』를 발간하는 등 1858년 만 5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인은 근 이십 권의 정원 책을 썼는데 모두 실용서였다. 그림도 잘 그렸으므로 책에 넣을 식물 세밀화도 직접 그렸다. 소설 쓰는 것보다 정원 책이 수월하고 재미있었다. 독자들은 제인과 함께 경험을 쌓고 성장해 갔다.
빅토리아 시대에 제인의 책 외에도 정원 서적이 꽤 많이 출판되었는데,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우선 18세기 중반부터 제인이 시작하고 다른 여성들이 부지런히 따라서 쓴 가드닝 가이드 책이 많이 나왔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전문성이 커지면서 18세기 후반에는 정원 에세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 (1843~1932) 같은 거물급 정원 전문가가 탄생하게 됐다. 이 무렵 ‘뉴 우먼(New Woman)’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여성상은 정원에서 태어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 우먼이란 곧 삽질하는 능동적인 여성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원을 장악해 가고 있었는데 사회에서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정원은 집에 속한 것이므로 사회의 통제를 덜 받았다. 여성의 영역으로 인정받아 남성들도 견 제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원에서의 여성을 “사랑스럽게 꽃을 꽂고 우아하게 풀밭을 거니는” 존재 로 이해했지만, 여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땅 파고 거름 주고 전정하고 토양을 개량하고 디자인 하고 땀을 흘려가며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제인은 『여성을 위한 실용적 가드닝 지침서』라는 책을 써서 첫 장에 땅 파는 방법부터 자세히 소개했다. 정원 일의 시작은 땅 파기인데 이것이 얼 핏 보기에 여성에게 힘든 작업 같지만 역학의 원리와 운동의 법칙을 잘 이용하면 쉽다고설명했다. 삽을 쥐는 법, 발로 삽날을 땅에 수직으로 박는 법, 손잡이를 지렛대 삼아 흙을 뒤집는 법, 파 낸 땅 덩어리를 삽날로 찍어 펼친 뒤 등으로 평평하게 두드리는 법 등을 설명했다. 이때 삽을 조금 작게 제작하는 것이 좋다고도 조언했다. 제인의 전용 삽 손잡이는 가벼운 버드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정원이라는 내 공간, 내 땅에 대한 여성들의 책임 의식이 싹트면서 정원은 정원 이 상의 것이 되어 갔다. 자신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지식과 기술을 쌓고 문화적 책임을 지는 곳이었다. 정원 여성들 사이에 네트워크도 만들어졌다. 1880년경이 되면서 정원 서적의 어 조도 달라졌다. 이제 기술은 익혔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정원에 관한 토론은 곧 사회, 문화, 정치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이 쓴 여성을 위한 정원서에서는 여성의 발 언권이 제한되지 않았기에 마음 놓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다. 정치색을 띠고 ‘뉴 우먼’에 관해 토론하고 정원 스타일도 자유분방하게 변해갔다. 모두 제인 라우던으로 인해 비롯된 일이었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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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사막 위 아이들의 섬] 환대
2021년 12월 청소년 보호소 근처 텍사스 공항에 내렸다. 우버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색 밴이 도착했다. 한때 열여덟 개 바퀴가 달린 화물 트럭으로 캐나다-미국-멕시코를 오가던 백인 기사는 고향으로 돌아와 물건 대신 인간을 실었다. “A에서 B로 이동하는 일일 뿐”이라며 그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곧 ‘하이웨이 투 헬(highway to hell)’이라 불리는 285번 고속도로에 올라타 하염없이 직선으로 달렸다. 무심히 돌아가는 석유 채굴기 뒤로 소각탑이 맹렬히 열기를 뿜었다. 회갈색 평야엔 텀블위드(tumbleweed)가 바람 따라 앙상하고 둥근 몸을 굴렸다. 고속도로에서 내리자 허허벌판에 홀리데이 인(Holiday Inn) 녹색 간판만이 빛났다. 갈색의 3층짜리 호텔 건물 뒤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담장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이어졌다. 저 담장 뒤에 아이들이 있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비자도, 보호자도 없이 넘어온 아이들이.
“아이스(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시설은 너무 추웠어요. 거기서 만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버스에 올라탔어요. 한참을 가고, 졸다 깨니 밤이더라고요. 여기 도착했을 때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둡고 무서웠던 것만 기억나요.” 청소년 보호소의 첫인상을 물었을 때 아이들이 했던 이야기다.
2021년 한 해 동안(각주 1) 미국 국토안보부는 체류 허가도, 보호자도 없이 넘어온 미동반 아동(unaccompanied child) 12만 명을 수용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8배 증가한 수치로, 급증의 이유는 두 가지다. 미국 입국이 가능해져서, 그리고 고향을 떠나야만 해서다. 1기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공중 보건을 명분으로 미국-멕시코 국경의 망명 신청자와 이민자들을 추방했다. 이후 들어선 바이든 정부가 미동반 아동에 대해 이 조치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아이들은 미국 국경을 넘어도 추방되지 않고 보호 절차를 받게 됐다. 미국 입국의 기회가 생긴 중미 지역의 많은 아이들이 살기 어려워진 고향을 떠났다. 그래야만 했다. 중미 3국으로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서는 수년에 걸친 가뭄과 허리케인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고,(각주 2) 그 와중에 갱단의 강제 징집, 성폭행, 살인이 남은 일상마저 파괴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아이들 중 12만 명이 미국에 도착했다.
긴 여정에 지친 그들을 맞이한 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수용 시설이었다. 일례로 수용 가능 인원이 250명인 텍사스 도나(Donna)의 한 시설은 4,000명까지 수용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찬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은박 담요를 덮고 잤다. 음식은 엉망이었고, 샤워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아팠다.(각주 3)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긴급 수용 시설을 신설했고 그중 하나가 내가 일하게 된 청소년 보호소였다.
기독교계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이 보호소는 원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며 온실을 설계할 자원봉사자를 찾았고, 지도 교수였던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가 내게 권해주었다. 대학원 졸업 후 방황하던 중이었기에 선뜻 시작했다. 무지로 가벼웠던 마음은 곧 무거운 현실로 가라앉았다. 온두라스에서 미국 국경까지는 약 3,000㎞. 서울에서 울란바토르까지가 겨우 2,000㎞에 불과한데, 그 거리를 아이들은 걷거나 화물 열차에 몰래 올라타며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리엔 갭(Darién Gap)이라는 정글에서 길을 잃어서, 열차에서 떨어져서, 멕시코 북부 사막을 건너다 목이 말라서, 리오그란데 강에 휩쓸려서, 인신매매와 성폭력을 당해서, 많은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했다.(각주 4)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은 짝 잃은 신발과 옷가지, 망가진 인형으로 남았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그래서 보호소의 아이들이 상실감에 잠겨 있으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슬픈 얼굴이 아닌, 작은 몸이었다.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Z가 13세에서 17세 사이 청소년만 머물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만난 그들은 기껏해야 열 살이나 됐을까 싶었다. 저 여린 몸으로 어른들도 통과하지 못한 길을 넘어왔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여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꽤 자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저 또래 아이들처럼 친구들이랑 노래도 부르고 축구도 하면서. 무엇이 이 평범한 아이들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오게 할까.
배고픔과 폭력을 피해 왔다는 거시적 설명은 명료해 보이지만, 실상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가족과 꿈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미 지역 가난한 농부의 아이들이었고, 고향에 두고 온 형제와 자매, 부모를 걱정했다. 갱단의 폭력에, 기후변화로 알 수 없게 된 농사까지. 살기가 막막해진 많은 가정이 미국에서 친척이나 가족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밀입국 브로커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아이들은 가장의 눈을 하고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 아이들 5백여 명이 머물던 보호소는 본래 오일 산업 노동자를 위한 시설이었다. 광화문광장의 네 배 정도 되는 20에이커 평지에 57개의 기숙사동, 대형 텐트로 만든 다섯 개의 교실, 의료 시설부터 가족 혹은 난민 케이스 담당자와 연락하는 콜센터, 급식실, 축구장, 농구장까지. 많을 때는 약 천 명의 아이들과 비슷한 수의 직원들까지 있어서 작은 마을 같았다. 다만, 단층 조립식 건물 사이로 성인 키를 훌쩍 넘는 갈색 담장과 철조망, 그 위로 한없이 푸른 하늘이 이곳에 갇혀 있음을 상기시켰다. 오직 평면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자마저도 날카로운 갈색의 풍경. 나는 그 광활함과 답답함, 황량함에 압도되어 도망치고 싶었다. 종종 저 담장을 넘어 탈출을 감행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 발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 농담처럼 돌았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미국에 속할 수도 없어, 아이들은 기름 사막 위를 부유했다.
이런 사막에서 많은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피난처를 만들어주고자 했다. 원예 치료사로 일하는 K는 화단을 만들며 아이들에게 꽃과 흙을 만질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좋아했지만, 사막의 겨울은 생각보다 추워 더 이상 야외에서 수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온실 설계를 부탁했다. 나는 설계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이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대학원 교수 V, 교육학 전공 대학원생 P, 원예 치료사 E, 코디네이터 Z와 함께 우선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급조한 흰색 모형 위로 십여 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느낀 것들을 물감과 실을 사용해 풀어놓았다.
그 결과 우리가 배운 건 아이들이 세 가지 공 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친구랑 놀 수 있고, 녹색이 많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첫 번 째와 두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축구장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곳은 다 함께 뛰어놀 수 도 있었고, 인조 잔디에 앉아 삼삼오오 수다를 떨기도 좋았으며, 금요일 밤에는 노래자랑에, 일 요일 아침에는 미사까지. 축구장은 그들에게 성당이자 노래방이었고 자유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기숙사에서는 혼자 있을 수 없기에 아이들이 괴로워했다. 두 명이 한 방을, 그리고 네 명이 두 방 사이에 하나뿐인 샤워실과 변기를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성인 혼자 누우면 꽉 찰 방은 이층 침대와 작은 책상으로, 유일한 창문은 블라인드로 답답했다. 기숙사 건물은 복도 양쪽으로 스무 개의 방이 붙어 있는 구조였지만 공용 라운지 하나 없었다. 잘 때도 ‘보호’를 이유로 방문을 닫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각주 5)그렇다면 기숙사 외에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있을까? 모든 시설은 항상 단체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혼자 사용하기엔 너무 크고 개방되어 있었다. 온실을 만든다 해도 오직 원예 수업을 들을 때만 접근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그저 혼자서 울거나 기도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절실히 원했지만, 그곳 어디에도 그런 공간은 없었다.
자신만의 장소가 없다는 것은 인격의 상실과 다름없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 에서 한 인간은 사회가 자리를 내어줄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환대란 바로 이 자리를 주는 행위이며, 그 자리가 모여 사회가 된다. 즉, 사회란 서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각주 6)청소년 보호소는 난민 제도 속에 떠도는 아이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일 뿐, 누구도 속한 장소가 아니었다. 아이 들은 평균 2주가량 머물렀고, 직원들 또한 3주 간 근처 호텔에서 출퇴근한 뒤 일주일의 휴가 동 안 자신의 장소로 돌아갔다. 사막의 풍경과 갈색 건물이 단지 낯설어서 아이들이 풀과 나무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의 갈색 풍경 속에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 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자리가 있던 곳이 언덕 과 강,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 작은 마을과 옥수수 밭이었기에.
그러므로 이 보호소에서 건축과 조경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런 환대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영감을 준 것은 아이들이 손수 엮은 우정 팔찌였다.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엮는 그 팔찌처럼, 중남미 지역에는 기하학 무늬의 다채로운 천을 짜는 문화가 있다. 직선으로 반복되는 기숙사 건물을 씨줄로 삼고, 그 사이 공터마다 크기와 색상이 다른 그늘막과 정원을 날줄처럼 배치해 보호소 전체를 하나의 직조된 풍경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 아래에서 일과를 마친 아이들이 함께, 혹은 홀로 쉴 수 있기를 바랐다. 당시 보호소를 이끌던 A는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프로토타입을 만들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통과하는 삼각 형 길목에 작은 마당과 그늘을 만들었다. 2백만 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 목재와 그늘막을 사고, 창고에 남아 있던 인조 잔디를 가져왔다. 남는 목재로 삼각형 테이블과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땅을 파서 기둥을 올릴 기초를 만들고, 잔디를 깔고, 화단을 놓았다.
우리는 이 공간을 아이들에게 익숙한 색상과 식물, 상징으로 장식하기로 했다. 무엇을 심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부겐빌리아(Bougainvillea glabra)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종이꽃’으로도불리는 부겐빌리아는 중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으로, 종이처럼 얇고 바스라질 듯한 세 장의 포엽이 아주 작은 꽃을 받치고 있다. 연중 열 달 가까이 꽃을 피우며, 복숭아색, 자주색, 빨간색으로 만발하는 포엽이 무척 화사하다. 우리는 화단에 부겐빌리아를 심고, 맞닿아 있는 기숙사 건물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고향의 새와 나무, 국기부터 유명한 피라미드까지 아이들이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호들로 채웠다. 아이들은 이 공간을 작은 광장이라는 의미의 라플라시타(La Placita)라고 불렀다. 어설픈 공간이었지만 만들자마자 직원들과 아이들이 많이 찾았다. 특히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할 공간이 필요했던 상담사들과 케이스 담당자들이 자주 이곳에 앉아 있었다.
첫 디자인 워크숍이 끝난 뒤, ‘호수에’라는 이 름의 한 소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줘서 고맙다고. 비록 이 공간이 완성될 즈음에는 자신이 떠나 있을 테지만, 앞으로 이곳에 올 친구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니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곤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 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뿐 아니라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각주 7)
사실 부유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저 주어진 단계만 따라가면 인생이 정답처럼 풀 릴 거라 생각했는데, 졸업 후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그 막막했던 시절, 그 친구의 꿈이 내게 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좀 더 해볼 까 싶었다. 어쩌면 여기서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까 싶어서.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각주 정리
1. 2021 회계연도(FY2021, 2020년 10월 1일~2021년 9월 30일) 동안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난민재정착국은 총 122,731명의 미동반 아동을 보호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약 8배 증가한 것으로, 2020년에는 15,381명의 미동반 아동을 보호했다. 출처: 난민재정착국(acf.gov/orr/about/ucs/facts-and-data)
2. 2021년 3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이 지역 주민 약 백만 명이 기아 상태임을 선언했다. American Immigration Council, “Rising Border Encounters in 2021: An Over-+view and Analysis”, March 4, 2022.
3. Hilary Andersson and Anne Laurent, “Children Tell of Neglect, Filth and Fear in US Asylum Camps”, BBC News, May 23, 2021.
4. 이러한 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르포 기사를 읽어보길 권한다. Julie Turkewitz, “A Girl Loses Her Mother in the Jungle, and a Migrant Dream Dies”, New York Times , June 20, 2023.
5.인류학자 김현경은 고프먼의 『수용소』를 요약하며 이와 같이 타인 과 함께 자는 데서 오는 일상적 노출과 감시의 편의를 위해 강요되 는 노출이 “자아의 영토”를 침범하며 인격의 신성함을 오염시키는 것임을 지적한다. 자세한 논의는 ‘4장. 모욕의 의미’ 속 소단원 ‘배 제와 낙인’ 참조.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6.위의 책 ‘1장. 사람과 개념’과 ‘2장. 성원권과 인정투쟁’ 참조
7.빅터 프랭클이 인용한 니체의 문구를 변용했다. 한국어판에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로 나와있으며, 원문은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06, p.123.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로 일하며 좋은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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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원 생활] 브라이언트 공원과 나의 뉴욕 이야기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 번잡한 거리와 고층 빌딩 사이에 숨 쉬는 초록의 오아시스,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이 있다.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채우는 활력소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이 공원이 왜 이렇게 내게 특별한지 그리고 왜 수많은 뉴요커와 관광객이 이곳에서 웃고 쉬고 꿈꾸는 지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공원의 매력은 단순히 아름다운 잔디나 계절별 이벤트가 아니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과 에너지에 있다는 것을.
삶의 일부가 된 브라이언트 공원
나는 맨해튼 동남쪽 스튜이타운(Stuytown) 아파트 단지에 살며, 미드타운 40번가에 위치한 필드 오퍼레이션스 사무실까지 거의 매일 걸어서 출퇴근한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땐 뉴욕시의 공유 자전거인 시티 바이크(Citi Bike)로 출퇴근을 시도했다. 자전거를 타고 맨해튼 거리를 질주하는 상상은 꽤 멋졌지만, 현실은 사용 가능한 자전거를 찾기 위해 10분씩 헤매는 전쟁터였다. 결국 자전거를 그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집에서 매디슨 스퀘어 공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뉴욕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 거리 시위, 지하철 고장 같은 변수로 인해 소요 시간이 25분에서 50분까지 들쑥날쑥했다. 게다가 낡고 냄새 나는 지하철도 감내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분 전환 삼아 사무실까지 걸어가니 40분이 걸렸고 걷기가 가벼운 운동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일상이 됐다. 이 루트의 묘미는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두 공원, 메디슨 스퀘어 공원과 브라이언트 공원을 자연스럽게 지나친다는 점이다. 출근길엔 메디슨 스퀘어의 아침 햇살을, 퇴근길엔 브라이언트 공원의 활기를 만난다. 점심시간엔 동료들과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사람 구경을 하곤 한다. 이 공원들은 내 일상에 녹아들어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됐다.
브라이언트 공원의 진짜 매력
브라이언트 공원에 앉아 글을 쓰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 공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히 벤치에 앉아 사색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순간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사람들이다.
대학생 시절, 주말이면 별다른 계획 없이 명동으로 향하곤 했다. 커피숍 창가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개성 넘치는 젊은이들,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 관광객들, 노점 상인의 익살스러운 호객 행위, 신기한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 그 모든 장면이 묘한 열망과 활력을 내게 불어넣었다.
브라이언트 공원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연중무휴로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뉴욕 공원 특유의 철제 의자에 앉아 있으면, 5분 만에 피자를 해치우고 떠나는 직장인, 여행에 지친 유럽 가족, 영상 통화로 고향에 소식을 전하는 유학생,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펼쳤지만 주변만 두리번거리는 사람, 잔디밭에서 럭비공을 던지다 관리인에게 저지당하는 청년들, 초콜릿을 파는 남미 이민자와 그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는 다섯 살쯤 된 아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력서를 고치는 사람. 이 모든 이들이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나는 내 삶을 돌아보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묘한 위로와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는 여유롭게 웃고, 누군가는 열정 넘치는 얼굴로, 누군가는 울상 지으며 지나간다. 나도 그들과 함께 웃고 힘을 내고 슬픔에 공감한다. 이게 나만의 휴식이며 에너지 충전 방식이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과 하셀(Hassell), 미국의 하트 하워튼(Hart Howerton)에서 경력을 쌓은 뒤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 뉴욕 오피스에 입사해 BIM 전문가로서 래빗을 실무에 도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하여 실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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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어린이를 위한 매력적인 공원을 만들다
2025 서울어린이정원페스티벌 기획자, 손성일 인터뷰
어린이들을 위한 정원 축제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어린이날을 맞이해 2025 서울어린이정원페스티벌이 5월 5일부터 5월 18일까지 2주간 서울어린이대공원(이하 어린이대공원)에서 진행됐다. 처음 열린 이번 페스티벌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연계 행사 중 하나로 어린이의 생태 감수성을 높이고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정원 문화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정원은 마법사’로 숲과 정원이 얼마나 마법 같은 장소인지 느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어린이 특화 정원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특히 유니세프, GS건설 등 다양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해 만든 26개의 특화 정원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했다. 이러한 정원은 어린이들이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커뮤니티이자 직접 흙을 만지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숲과 정원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생태 감수성, 더불어 상상력을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첫 회를 맞이한 서울어린이정원 페스티벌 정원 조성 과정과 함께 향후 페스티벌의 방향성에 대해 손성일 원장(서울시설공단 서울어린이대공원)을 만나 들어보았다.
서울어린이정원페스티벌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어린이대공원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고자 했다. 어린이대공원은 대규모 도시공원이자 어뮤즈파크(amuse park)로, 개원 당시 어린이를 위한 도시공원으로 만들어졌다. 공원 내 휘호석에 적힌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가 그 의미를 잘 보여준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규모 도시공원이 많이 생겨나자 도시공원 간 경쟁이 발생했다. 어린이 감소와 노년층 증가로 인해 어린이대공원의 기능과 목적에 대한 다양한 변화의 요구도 있었지만, 어린이대공원은 여전히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중심이라는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휘발성이 강한 그간의 어린이날 행사와 비교했을 때 차별이 있다. 다양한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과 이벤트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어린이 정원을 통해 앞으로 어린이날 대표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어린이대공원의 브랜드 경쟁력과 이미지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해 어린이 정원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현시대의 아이들은 조기 사교육, 스마트폰 중독, 기후 변화로 인해 야외 놀이 부족과 자연 결핍 등에 시달린다. 이는 결국 비만과 우울감 증가, 사회성 결여 등 다양한 문제를 아이들에게 초래한다. 정원을 통한 자연에 대한 경험은 이미 여러 학술 논문과 해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창의력, 생태 감수성, 포용과 사회성 증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어린이 정원을 통해 미래 시대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어린이대공원은 동물원 등 복합적 놀이 공간을 갖춘 오래된 대형 공원이다. 대규모 공원 계획에 의해서 세운 공원 내 정원을 조성하면서 나름의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어린이대공원이 서울숲, 보라매공원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동물원, 식물원, 놀이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설의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인해 지역 주민과 방문객, 연령, 시간대별로 이용 행태와 선호 시설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누군가는 정원을 매우 선호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의미 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특정 시설이 가진 기능과 역할이 이용자에게 반드시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시설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유지하면서 정원의 조성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다양한 시설을 점이라고 했을 때, 정원을 이를 잇는 선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주동선과 산책로 주변으로 대상지를 선정하고 정원을 만들어 나갔다. 이용자들이 정원을 관람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목적지로 이동하거나 단순히 산책하는 동안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즐기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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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정원
말번 스프링 페스티벌 금메달
지난 5월 영국왕립원예협회(RHS)가 주관하는 말번 스프링 페스티벌(Malvern Spring Festival) 쇼가든 부문에서 윤선미·루 웬쥬안(Lu Wenjuan)의 ‘바람의 정원(Garden of the Wind)’이 금메달을 수상했다. 윤선미와 루 웬쥬안은 지난해 RHS 말번 스프링 페스티벌에서 ‘그린 아일랜즈(Green Islands)’로 동메달을 수상한 팀으로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됐다.
‘바람의 정원’은 전통적인 동양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틀에 얽매이지는 않는다는 동양 철학을 반영했다. 희망이라는 뜻의 동음이의어 ‘바람’에서 영감을 얻어 정원에 바람이 불면 방문객이 희망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게 연출했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의 모습, 공간 곳곳의 예술 작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람을 경험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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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속삭이다
웬트워스 우드하우스 진출
지난 5월 현대건설은 영국왕립원예협회(RHS) 플라워쇼 웬트워스 우드하우스(Wentworth Woodhouse) 쇼가든 부문에 성균관대학교와 공동 작업한 ‘정원이 속삭이다(Garden Whispers)’가 진출했다고 밝혔다. 영국 RHS 플라워쇼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정원 박람회로 첼시, 멜버른 등 영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최초로 영국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의 웬트워스 우드하우스에서 개최된다.
‘정원이 속삭이다’는 최혜영 교수(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와 최연길 책임(현대건설)이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다양한 높이로 배치된 하얀색 기둥을 통해 자연의 시적인 풍경으로 초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또 바람 결을 따라 리듬감 있게 물결치는 입체적인 실루엣 안쪽에 고요한 휴게 공간과 생동감 넘치는 초화류가 조화를 이룬다.
*환경과조경447호(2025년 7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