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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유산』 웨믹의 두 정원
    정원의 의미를 논할 때 자아의 확장, 내면의 반영이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대개 정원은 치유와 성장 등 긍정적인 가치와 연결된다. 반면 잘 가꾸어지지 않은 정원을 불안정한 내면과 연결시키기도 하는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1861) 1에 나오는 미스 해비셤의 새티스 하우스 정원이 대표적이다. 그녀의 삶은 신랑이 사라져버린 결혼식 당일 멈췄다. 해비셤은 수십 년 동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고, 저택의 모든 것은 천천히 부식되어 간다. 정원도 잡초가 무성하고 황폐하기 그지없다. 이곳을 떠올리고 책을 펼쳤지만 20여년 만에 다시 읽다보니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인물인 웨믹과 그의 정원이 더 흥미롭게다가온다. 주인공 핍이 익명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런던에서 신사가 되는 교육을 받게 되었을 때, 이 일을 대행하는 재거스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이 웨믹이다. 부수적 인물이지만 지금 보니 소설에서 가장 멀쩡한 사람이 아닌가. 디킨스 연구자들은 그를 『위대한 유산』에서 가장 근대적인 인물로 평하는데, 근대를 넘어 오늘날 대도시 직장인도 그를 부러워할 것 같다. 사무실은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고 야근도 없으며 정시 퇴근 후에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 조금씩 땅을 사 모아 자기만의 성채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친구를 환대하고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일을 하는 재거스와 달리 웨믹은 훌륭한 ‘워라밸’을 유지한다. 소설 중간중간 나오는 묘사를 통해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는 웨믹의 균형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일단 그는 멀티 페르소나, 이른바 ‘부캐(부 캐릭터)’가 있는 인물이다. 재거스 사무실의 차갑고 단호한 웨믹 씨와, 월워스 집의 다정다감한 존 웨믹은 “겉모습만 닮은 또 다른 쌍둥이”처럼 다르다. 어느 쪽이 ‘본캐’일까.2 …(중략) 1. 영문학계에서는 원제의 great를 ‘막대한’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서에서는 이를 핍의 내적 성장을 반영한 ‘위대한’으로 번역한다. 완역본으로는 민음사본(이인규 역, 『위대한 유산』, 2009)과 열린책들본(류경희 역, 『위대한 유산』, 2009)이 있다. 2. 실제의 주체성을 나타나는 ‘얼굴’과 우리가 상황에 따라 연기하고자 하는 ‘가면’에 대해서는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문학과지성사, 2015)의 3장을 참조하라. 신사가 되고자 하는 핍의 성장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논의되는 성원권 투쟁과 관련지어 해석해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황주영juyounghwang@gmail.com
  • 사운즈 포레스트 더현대서울 실내 정원 디자인알레 설계
    지난 2월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자연친화적인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복합 쇼핑몰이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건물 중앙을 비우는 보이드void 구조로 설계되어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쇼핑 공간을 가장자리로 배치해 중앙에 인공 폭포와 대규모 실내 정원을 위한 공간이 마련됐고, 쾌적한 실내 환경과 식물 생육에 필요한 채광을 위해 건물 천장은 유리로 마감됐다. 디자인알레는 그리너리 VMDgreenery VMD로서 백화점 전 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식재 공간을 디자인했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다채롭게 변화하는 녹지 공간을 선보이고자 했다. 최대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인공 폭포가 있는 워터폴waterfall 가든에는 교목을 심고, 보이드 공간에서 잘 보이는 3층의 카페에는 다양한 질감의 식물을 배치했다. 5층에는 햇빛이 내리는 숲 속 분위기의 정원을 연출했으며, 6층엔 유실수와 다채로운 플랜터로 장식한 양묘장 콘셉트의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조경 계획과 더불어 더현대서울만의 상징 플랜터를 디자인했다. 유기적인 곡선이 특징인 백색의 플랜터를 배치해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꾀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윤정훈hoons920@daum.net
  • 끊임없는 소통, 조경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 마포프레스티지자이 조합장 김종채 인터뷰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해 바뀐 공간이 다섯 곳이나 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단지 내 어느 곳보다 가치 있는 공간들이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는 김종채 조합장의 만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는 2019년 9월 염리3구역의 재개발을 이끌 새로운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염리3구역에 들어설 마포프레스티지자이(이하 마프자)의 공사 기간이 반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기존 조합장이 해임된 후 오랫동안 사업이 정체됐던 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산더미였다. 김 조합장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치우듯 처리하는 대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했다. “가장 우선순위에 둔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나”, “독특한 외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등 여러 질문에 돌아온 답변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소통’이다.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에 답하며 일구어낸 것은 무엇일까? 바람 선선한 날, 준공을 앞둔 마프자 잔디광장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통으로 일군 단단한 관계 김종채 조합장의 목표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고, 완성도가 높은 주거 단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커뮤니티 공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거 환경이 편리해지고 있지만, 이웃과의 단절과 공동체의 파편화는 심화되고 있다. 마프자는 이웃 간 소통하고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먼저 분열된 조합원을 하나로 도모하고, 그간 느슨해진 시공사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한 이유는 조합 잉여금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잉여금을 환급받기를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잉여금을 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를 바랐다. 원하는 이들에게 잉여금을 돌려주기 위해 재원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수립된 예산을 검토해 세밀하게 재편성하고 상가 및 임대 아파트 매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공사 계약 해지 등을 통해 환급금을 마련했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결과 조합이 한층 단단해졌다. 시공사인 GS건설과도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서로 원하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협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조합원 그리고 시공사와의 관계가 변하며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공사는 특화안 기획에 더욱 열의를 보였고,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다양한 주거 단지를 답사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단톡방’과 온라인 카페를 통해 전달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조합원 중 디자인 전문가를 모아 ‘마감재협상자문단’을 구성해 더 설득력 있고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모두의 눈으로 찾은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 마프자는 오르막에 놓여 동간 단차가 크고 동쪽에 긴 옹벽을 두고 있다. 김 조합장과 조합원들은 자칫 단점이 될 수 있는 대지의 특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다. “옹벽은 좋은 작품을 돋보이게 할 캔버스가 될 수도 있고, 단지 서쪽의 자투리땅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여의도의 전경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전망이 좋다. 이를 활용해 우리 단지만의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한 결과, 보강토 옹벽 일부가 자연석과 작은 수목이 어우러진 하나의 경관으로 바뀌었다. 잔디마당에서 바라보이는 곳에는 여름철 청량함을 즐길 수 있는 쉼터이자 볼거리인 벽천이 마련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96호(2021년 4월호)수록본 일부
    • 김모아
  • [기웃거리는 편집자]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얼마 전 덕수궁에 다녀왔어. 살구꽃이 환하고 나뭇가지에서 쭈글쭈글한 새 잎이 나고 있었어. 한국은 지금 이런 날씨야. 꽃 핀 나무를 좇다가 석조전으로 들어갔어.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거든.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 직접 종이를 자르고 엮는 건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갈 내용을 채우는 거야. 어떤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적당한 사진을 구하고 글을 다듬곤 해. 건물 바깥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푸른 장소를 만드는 일에 관한 잡지야. 뭔지 잘 모르겠으면 집 앞 공원에 가봐. 참, 거긴 지금 튤립이 한창이겠다. 종이는 참 신기해.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으니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일제 식민지기 문인과 화가들의 교류를 보여주는 전시야. 문학과 미술, 절묘한 조합이지 않니. 너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알잖아. 글과 그림이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닮았는지. 어려운 시대적 배경이 예술가들의 연대를 더욱 돈독히 했다면 그들을 연결한 실질적 매개체는 종이야. 방송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종이는 바라는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도구이자 글과 그림이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이었어. 신문의 연재 란에서 소설가와 삽화가가 만났고, 시인과 화가가 의기투합해 잡지를 창간했어. 편집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화가는 동료의 글이 담긴 책의 전반적인 꾸밈새를 디자인했고, 편지는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 출간된 지 100여 년이 흘러서 누렇게 바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책들을 한참 구경했어. 문득 너랑 만들던 그림책이 떠올랐어. 우린 시대에 비관해 예술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심심한 어린애들일뿐이었지만 종이를 만질 땐 꽤 진지했잖아. A4 용지 서너 장을 반으로 자르고 잘 가다듬어 왼쪽 가장자리를 스테이플러로 찰칵 집으면 제법 모양새를 갖춘 책이 됐지. 나는 스테이플러 심이 많은 게 싫어서 두세 번, 너는 꼼꼼해서 네댓 번. 나름 책이라고 표지에 제목도 쓰고 다음 장엔 목차도 넣고. 연필로 그린 캐릭터 아래 대사를 쓰거나 이야기에 맞춰 나중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지. 한 액자 앞에서 잠깐 멈춰 있었어. 교과서에서 봤던 백석 기억나? 그 잘생긴 시인 말이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처음으로 『여성』에 발표될 때의 지면이 벽에 걸려 있었어. 『여성』은 1936년 4월 백석이 그의 벗 정현웅 화가와 만든 잡지야.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시 아래 정현웅의 삽화가 나란히 놓였어. 백석의 시에 큰 감흥이 없었는데 그림과 함께 보니 어느새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속에 있는 듯했어. 김환기 화가가 김광섭 시인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는데, 덕분에 난해하게만 보였던 김환기의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짐작했어.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를 무척 좋아한 나머지 이런 편지를 쓰게 돼. “멍멍한 시간, 할 일이 없어 혼자서 맥주를 마시며 1월 31일에 쓰신 이산怡山 선생(시인 김광섭) 글월을 읽었어요. 왜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을까. 빨리 이 봄에 시집을 내이고 해요. 그리고 한 권 보내주세요. 원색석판화를 넣어 호화판 시집을 제가 다시 꾸며 보겠어요. … 한 권에 3만원짜리 시집을 내야겠어요. 되도록 비싸서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싶어요. 이런 것이 미운 세상에 복수가 될까. 요새 제 그림은 청록홍靑錄紅. 점밖에 없어요. … 이 점들이 내 눈과 마음엔 모두가 보옥寶玉으로 보여요.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창밖에 빗소리가 커집니다.”(1996년 김환기의 편지 일부) 김환기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의 시에서 비롯된 거래. 그 시를 들려주고 싶어. 어쩌면 이걸 위해 덕수궁에 간 건지도 몰라.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김광섭, ‘저녁에’) 나는 잘 지내. 시인도 화가도 아니지만 책을 읽고 만들면서. 때때로 심심한 편지를 쓰면서.
    • 윤정훈hoons920@daum.net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물이 보이는 방식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
    사무실 입구에서 걸음을 크게 다섯 번 떼면 편집장과 편집주간이 머무는 작업실에 닿는다. 평소에는 조심스럽게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드나들던 공간인데, 이 달 내내 그 문턱을 노크도 없이 넘어 다녔다. 방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책장 때문이었다. 두 팔을 쫙 벌려도 다 안을 수 없는 거대한 책장에는 1호부터 395호까지, 환경과조경이 39년간 꾸준히 취재하고 편집해 엮은 종이 묶음이 가득하다. 이번 호 특집 준비를 위해 한가득 잡지를 끌어안고 들락날락하기를 수십 번, 사무실에 갇혀 운동을 멀리하고 지낸 팔뚝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려오기 시작했다. 표지와 책등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몇 번인가 했던 고민을 다시 되뇌었다. 잡지가 너무 무겁나, 너무 크진 않나. 책은 시각 매체로 분류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꽤 여러 감각을 동원해 책을 읽는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 책장을 넘길 때 종이와 종이가 스치며 내는 소리,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와 두께가 주는 안정감, 나아가서는 종이에서 나는 냄새까지(이번 호 풍경 감각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아따맘마’는 135화에서 등장인물 아리가 좋아하는 책의 기준을 냄새로 삼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따라서 이 감각의 총체를 책임지는 책의 생김새는 그 속을 채우는 콘텐츠만큼이나 중요하다.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10년간의 작업 기록을 담은 『도큐멘테이션』을 펴내며 책의 형태를 일종의 설계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판형이나 종이의 종류 등 책이 지닌 형태를 설계하고자 했다. 어떤 판형이 적절한가, 그 판형을 선택했을 때 두께는 어떻게 변하는가, 그 부피감이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표현하기에 적당한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도큐멘테이션』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조경가의 일과 일상 사이”, 2018년 4월호, p.136) 책 디자인에서 가장 먼저 결정되는 부분이 바로 판형이다. 가로와 세로의 길이로 결정되는 책의 크기는 편집 디자인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내용물의 성격을 가늠하게 한다. 판형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하지만, 신국판, 사륙배판, 국배판이 가장 많이 쓰인다(많이 쓰이는 만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낮다). 그리고 신국판(152×225mm)은 주로 소설과 수필 그리고 시집에, 사륙배판(188×257mm)은 교재와 잡지에, 국배판(210×297mm)은 자료집이나 시각성이 강한 패션지와 사진집에 사용된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시때때로 읽는 책일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서가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보는 종류일수록 커진다. 참고로 문제집이나 두께가 얇아 접기 좋은 주간 신문은 타블로이드판(257×364mm)을 많이 사용한다. 『환경과조경』의 판형은 가로 230mm, 세로 275mm. 국배판보다는 통통해 웬만한 잡지 사이 에 꽂으면 책등이 톡 튀어나오고 대신 키가 좀 작다. 넉넉한 크기의 가방이 아니면 넣기 어려워 가지고 다니기는 좀 힘들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휴대폰과 태블릿PC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 『환경과조경』의 판형은 편집위원 회의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주제다. 수차례의 검토에도 불구하고 좀 더 얇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판형으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지와 도면을 크고 시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판형이 작아지면 그만큼 잡지가 두꺼워지고, 글과 이미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책 귀퉁이를 강하게 잡아당겨 펼치고 있어야 한다. 온라인 세상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헤아리다 오래전 대학교 설계실의 풍경을 떠올렸다. 강 주변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설계실 책꽂이에서 물과 관련된 콘텐츠가 실린 잡지와 책을 몽땅 꺼내 펼쳐놓으니 눈앞에 작은 전시장이 만들어졌던 그 날을. 프랑스의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며 여러 그림책을 펴낸 페리 노들먼Perry Nodelman은 『그림책론』에서 “사물이 보이는 방식은 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확연히 드러내 준다”고 말한다. 『환경과조경』의 형태에도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다양한 바람이 담겨있다. 책장에 순서대로 꽂혀 바라만 봐도 흡족한 풍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바삐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도 좋지만 몇몇 꼭지는 조용한 방에서 한껏 집중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 가끔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듯 부담 없이 훑어보기에 좋았으면 하는 마음. 그 의도가 잘 실현되어 독자에게까지 닿기를 바랄 뿐이다.
    • 김모아more-moa@naver.com
  • [PRODUCT] 3차원 놀이 공간을 구현하는 ‘네트모험놀이시설’ 돔 형태의 구조물에 네트를 미로처럼 연결한 놀이 시설
    로프를 엮어 만든 네트는 다양한 형태의 시설물과 결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아이들이 자유롭게 매달리거나 오르내릴 수 있고,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 부상의 위험도 줄여준다.주로 조합 놀이대의 부속품으로서 흔들 다리나 오르기용으로 쓰이기 마련인데,이 같은 평면적인 구조는 금세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난 3월 디자인파크개발이 네트를 입체적으로 연결한 이색적인 놀이 시설을 선보였다. ‘네트모험놀이시설’은 규모가 작고 활용도가 낮은 기존 네트 놀이 시설을 보완하고자 네트를 3차원 구조와 결합한 제품으로, 돔 형태의 구조물에 네트가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이뤄 아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이리저리 얽힌 로프를 돔 바깥으로도 연장해 오르기, 매달리기, 중십잡기, 건너기 등의 기능을 더했다. 소재로는 와이어를 감싼 컴파운드 로프를 사용했다. 파단 강도가 6톤에 이르며 재질이 부드럽고 변색에 강하며, 직경 16mm부터 22mm까지 규격이 다양하다. 이외에도 큰 돔 안에 작은 돔이 있는 ‘대탈출’, 거미줄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파이더’, 나비가 내려앉은 모습을 연출한 ‘버터플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싹을 형상화한 ‘숲속탐험’ 등 다양한 콘셉트의 네트 놀이 시설이 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
  • 예술, 자연, 놀이의 공존 ‘MMCA 예술놀이마당’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6월 27일까지
    참여하는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하 과천관)은 고즈넉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미술관 앞쪽으로는 대공원의 너른 녹지와 과천저수지가 펼쳐지고, 배경에는 청계산자락의 풍성한 녹음이 가득하다. 지난해 10월 14일 개최된 ‘MMCA 예술놀이마당’은 이 같은 과천관의 입지적 장점을 더욱 부각하는 프로젝트다. 미술관 앞마당과 건물 옥상에 예술, 자연, 놀이를 주제로 한 자연 속 예술 놀이 공간을 조성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예술의 장소이자 공공의 장소인 미술관 앞마당을 생태적 공간으로서, 관조가 아닌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참여하는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자연 속 예술 놀이 공간 ‘MMCA 예술놀이마당’은 예술가의 밭, 예술마루, 솔내음길, 하늘지붕으로 구성된다. 예술가의 밭은 자연의 성장과 변화를 다루는 공간으로, 예술과 자연, 예술과 생태를 성찰하고자 농사, 재배라는 특성에 주목한다. 김도희는 자연이 스스로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산고랑길을 택했다. 과천의 흙, 경상남도 하동의 적황토, 충청남도 보령의 황토, 경상북도 낙동강의 모래, 밭의 흙이 ‘예술가의 밭.산고랑길’의 재료다. 흙은 다채로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고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생명력과 대지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일렁이는 파도를 닮은 이랑의 구조는 자연의 특성인 순환과 연결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최재혁(오픈니스 스튜디오 대표)은 산고랑길을 따라 자연과 식물이 머무는 공간과 경작의 공간을 조성했다. 갈대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거닐며 자연의 예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기고, 경작지에서는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작물의 재배와 수확의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예술가의 밭 옆으로 이어지는 예술마루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일종의 예술적 쉼터다. 이곳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수집한 자연 재료로 다양한 놀이 활동을 즐기고, 자연 속 다양한 조형 요소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마루 한복판에 놓인 ‘세 개의 기둥’은 쉼터이자 놀이 공간으로 인식되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김주현은 프랙털fractal, 카오스, 복잡성과 같은 현대 과학의 사유를 조각으로 가시화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위상 수학의 기본 개념인 도넛 모양의 토러스torus를 응용해 세 개의 기둥이 유기적으로 엉켜 있는 듯한 파빌리온을 만들었다. …(중략)
    • 김모아more-moa@naver.com
  • 빛과 알고리즘으로 만든 세계 ‘팀랩: 라이프’ 전, DDP에서 4월 4일까지
    “자연이 주는 축복과 위협도, 문명이 가져오는 혜택과 위기도, 모든 것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 절대적인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저 순응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나 감정은 간단히 이해되거나 정의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열리고 있는 ‘팀랩teamLab: 라이프’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다채로운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팀랩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 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예술 단체로, 예술과 과학 기술의 교차점을 모색하며 자연과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 법을 제시한다. 높고 널찍한 전시장의 벽과 바닥, 천장 한가득 화려한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사람들은 공간을 자유롭게 배회하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껏 몰입하게 된다. 거대한 색색의 꽃에 둘러싸여 작은 곤충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수많은 꽃잎으로 이루어진 코끼리를 보며 머나먼 행성 어딘가에 놓인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꽃과 나비, 물, 대지 등의 자연 요소를 담은 영상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실시간으로 그려져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할 찰나의 풍경을 선사한다. 초현실적인 형태로 재구성된 동식물들은 관객의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한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손을 가져다 대면 꽃잎이 후드득 떨어지고, 나비 떼가 홀연히 사라진다. 사자와 새를 만지면 울음소리를 내고, 거대한 폭포수 앞에 서면 물줄기가 사람을 바위로 인식해 비켜 흐른다. 작품은 환상적인 디지털 자연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자극만으로도 스러질 수 있는 자연의 연약함 또한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나뭇가지에서 다양한 꽃이 피고지는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는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리저리 굽은 나뭇가지는 한자生날생을 공서空書(허공에 쓰는 붓글씨)로 표현한 것이다. 먹물을 머금은 붓의 궤적이 지닌 깊이와 속도, 힘의 강약 등을 새롭게 해석해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재구축하고, 이를 다시 평면에 전시해 결과적으로 평면과 입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형태를 띠게 했다. 이 같은 양면성은 나라는 존재와 그 바깥의 환경이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는 강력한 시각적 경험과 함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광경이 진한 여운을 남기지만 깊은 몰입의 경험 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기도 한다. 마냥 아름답고 무해하게 가공된 자연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 때문일까.
    • 윤정훈hoons920@daum.net
  • [기웃거리는 편집자] 우리들
    출퇴근길 지하철 계단 오르기가 유일한 운동인 내게도 한창 뛰놀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쏘다니던 무적의 ‘초딩’ 시절. 토요일이면 4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근처 시장으로 뛰어가 ‘방방’을 탔고, 학원 수업 전후 친구들과 모여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과 도둑, 얼음땡 같은 추격전을 벌였다. 주차장, 복도와 계단, 놀이터… 놀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디서든 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학교 운동장만큼은 내게 그다지 유쾌한 장소가 아니었다. 종종 굴욕감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이어달리기 주자가 됐다가 역전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 나는 공 앞에서 몸이 자동으로 굳는 아이였다. 문제는 당시 초딩들 사이에서 피구가 엄청나게 유행해서 반 애들은 체육 시간만 되면 피구를 하겠다고 선생님을 졸라댔다는 점이다. 공에 맞는 것은 물론 누군가를 공으로 맞추기는 더 싫었지만, 단체 생활이 중요했던 그땐 조용히 흰 라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우리들’(2016)을 보자마자 내 안의 스위치 같은 게 켜진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운동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선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경직된 채로 서 있다. 피구 경기가 열리는 체육 시간,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씩 팀원을 고르는 편 가르기에서 선은 마지막에 남는 한 명이다. 공을 능숙하게 다루는 데도 날렵하게 몸을 피하는 데도 재주가 없어서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가장 먼저 공을 맞고 아웃된다. 운이 좋아 공에 맞지 않아도 “금 밟았다”는 지적을 받아 라인 밖으로 쫓겨난다. 선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야무지게 돌보는 싹싹한 딸이지만 반에서는 늘 변두리를 맴돈다. 반면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는 반에서 선을 적당히 배제하며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다진다. 영화는 선이 소외되는 이유를 분명히 짚어내진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아이들 간 계급이 나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사실 따돌림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여름방학 첫날, 선은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지아를 우연히 만나 각별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보라가 학원에서 지아를 만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아와 다시 친해지기 위해 선은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 으레 그렇듯) 어정쩡한 제스처는 더 큰 갈등과 오해를 불러온다. 부모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된 마당에 나는 선과 지아에 거의 일체화되다시피 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내게도 새 학기를 앞두고 친한 친구와 다른 반이 될까 마음 졸였던 기억, 좋아하는 친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노력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극 중 아이들은 일상을 뒤흔드는 위기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거나 선생이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면서도 무섭도록 사실적이다. 어른들에겐 어른들의 문제가 있고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문제가 있듯, 두 세계는 전혀 다른 문법이 적용되는 생태계임을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이 ‘Us우리들’이 아닌 ‘The World of Us우리들의 세계’로 번역된 점은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왜 어린이만 주인공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왜 어른만 주인공으로 찍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삶의 주체인데요. 오히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흔하지 않아서 귀하죠. 전 어제 일보다 20년 전 일이 더 생생히 생각납니다. 어쩌면 현재의 일은 어린 시절 겪은 일들의 반복과 변주에 불과할지 몰라요.”1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 앵글은 다시 운동장의 아이들을 비춘다. 극적인 화해는 없다. 다만 한 아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를 보여줄 뿐이다. 학교 혹은 동네 어딘가에 있던 열한 살의 나, 그리고 지금 그곳에 있을 열한 살들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그때의 나만 알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오늘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1.백승찬,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우리들’…위선 따위 없어 더 사실적인 아이들의 정글”, 「경향신문」 2016년 6월 13일.
    • 윤정훈hoons920@daum.net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정보 수집, 취재, 기획, 편집, 교정, 마감. 쉼표로 생략된 이야기가 많지만 에디터는 대강 이 정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낸다. 첫 과제인 정보 수집은 귀동냥, 제보, 대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검색은 얄팍한 정보를 재빠르게 수집하기에 제격이다. 이따금 키보드와 모니터를 통해 세계 곳곳을 탐방한다. 이번 호 지면을 가득 채운 놀이터도 그 대상 중 하나다. 마스크 없이 랜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검색어는 ‘놀이터’. 이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많아야 스무 개 남짓, 그나마도 ‘MZ세대를 위한 놀이터’, ‘새들의 놀이터’처럼 각종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검색된 기사를 제외하면 영양가 있는 정보가 얼마 남지 않는다. 검색어를 ‘playground’로 바꾼다. 훨씬 다채로운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독특한 형태의 조합 놀이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이는 곳도 많다. 파빌리온이나 실험적 예술 작품도 거리낌 없이 놀이터라 부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공간에 얽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단어가 품는 범위뿐만 아니라 물리적 면적 자체도 월등히 크다. 놀이터는 제법 여러 번 다룬 소재다. 특집으로 소개한 적도 있고, 참고할 만한 놀이터 전문 서적이 없던 시절에는 독일의 『Kinderspielplatze mit hohem Spielwert놀이 가치가 높은 어린이 놀이터』를 번역해 실었다. 113호(1997년 9월)에는 전통 놀이 공간을 이르는 ‘전승놀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심우경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원예과학과)는 과거 “우리의 놀이는 주로 아름다운 산천에서 행해졌으며 고정된 시설이 아니고 빈터(마당)만 있으면 철에 따라서 남녀노소가 따로 함께 놀았”다고 말한다. 즉 산과 들을 비롯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놀이의 터로 삼았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끄럼틀과 그네가 놓인,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놀이터는 언제 등장했을까. 김성문 대표(판타지 코리아)는 4호(1983년 10월호) 특별기획 지면에서 놀이터가 탄생한 이유를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도시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고층 건물과 주차장, 도로 등의 시설로 점령”되었고,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터’라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삽화가 인상적인데, 자동차 사이에 낀 그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기아미+김연금, 50쪽) 땅에서 한계를 맞닥트린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는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주변을 감싸 오르고(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부산 새들원), 둘레길을 닮은 데크는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다이내믹한 등굣길과 놀이 공간을 선사한다.(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어린이꿈공원). 이러한 입체적 시설은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 싶은 어린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을 색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주지만(하늘바다놀이터), 사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밧줄과 암벽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그물 위를 쏘다니며 모험심을 키울 수 있게 되었지만, 내키는 만큼 달리고 실컷 공놀이를 할 수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놔두고…스탠드 기둥에 찰싹 붙으며 도망 다니는, 매미 놀이”(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를 할 수 있는 너른 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우뚝 선 마천루까지, 수직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위로 오르는 행위를 신분 상승에 비유한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는 어둑한 지하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놀이터에는 계단 따위는 없을수록 좋다.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사다리도 좋지만, 휠체어와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경사가 더 좋다. 모두가 수직 도시를 꿈꾸는 이 시대에 놀이터는 평평하고 널찍한 수평을 바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궁금해졌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짓고, 더 깊숙이 땅을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시대에 결국 땅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또 무엇을 남겨야 할까.
    • 김모아more-mo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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