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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웃거리는 편집자] 서랍에 꿈을 넣어 두었다(각주 1)
    독일의 아우토반을 거침없이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들소 무리.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이는 절벽 사이에서 비단의 실 가닥을 길게 뽑듯이 떨어지는 폭포. 사뿐사뿐 산책하듯이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가 드리운 드넓은 칼데라. 봄의 마지막을 알리며 흩날리는 벚꽃처럼 고운 연분홍 자태를 뽐내며 흩어지는 호수 위 홍학 무리. ‘아름답다’는 말을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기어코 입 밖으로 발음하고 싶어지는 이 모든 광경을 경비행기 안에서 지켜보는 한 쌍의 커플. 먼훗날 기술의 발달로 풍경 속 오감과 분위기, 온도와 습도, 감정을 저장할 수 있는 서랍이 발명된다면 저 풍경의 모든 걸 서랍에 가장 먼저 넣고 싶다. 실제 나의 경험담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경비행기로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누비는 풍경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약 16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 담긴 커플의 극적인 서사보다 짧게 스쳐지나가는 저 풍경에 마음이 괜히 동했다. 수렵을 취미로 하며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거부한 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남자 주인공 ‘데니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 ‘카렌’과 함께 경비행기 데이트를 하는 사소한 장면에 불과했는데, 광활한 아프리카 풍경이 너무 좋아서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자동차 면허를 못 따더라도 경비행기 면허는 꼭 따고 싶다. 경비행기 면허를 진짜로 따는 날이 온다면, 욕심을 조금만 더 보태서 경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하며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 두고 싶다. 내가 다소 허무맹랑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 실제로 무모한 계획을 실행한 이가 존재했다. 경비행기를 세계 일주를 위한 교통수단으로 택한 나와 달리 『노플라잇 세계여행』의 저자 조진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은 채 오직 육로와 해로를 통해서 세계를 누비며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그의 동기는 단순했다. 심신을 지치게 했던 15년간의 직장인 생활을 정리한 뒤 지구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시애틀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111일. 비행기로는 가면 하루도 채 안 걸리는 거리를 기차와 배로 건너고 세계 각국의 국경을 넘나들며 횡단한다. 꽤나 낭만적인 여행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낭만은커녕 불운의 아이콘이 겪은 고난과 수난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산전수전을 겪었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남들은 모두 따뜻하게 기차 여행할 때 난방 장치가 고장 난 객실에서 추위 때문에 홀로 바들바들 떨고, 난동에 가까운 호객 행위를 벌이는 택시 기사 무리를 퇴치하고, 때론 난민 무리에 휩쓸려 배를 타지 못할 뻔했다. 우여곡절을 겪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부모의 도움 없이 유치원에 홀로 씩씩하게 등원하는 자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으로 대견한 마음과 동시에 괜히 응원하고 싶더라. 물론 조금 궁금하거나 부러운 것도 있었다. 꼬맹이 현지인이 여느 베테랑 못지않게 능숙하게 모는 말의 안장에 앉아서 멋진 협곡을 구경한다거나 스페이스X의 우주 로켓 발사를 유튜브 생중계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렌탈 스포츠카를 타고 포레스트 검프가 영화 속에서 달렸을 것 같은 탁 트인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경험은 가장 부러웠다. 무면허라서 그 경험을 정확히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아마도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카레이서만큼 짜릿하지 않았을까. 나의 추구미는 데니스와 조진서 작가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삶에 가깝지만, 실행력이 다소 부족한 몽상가라서 경비행기 세계 일주 계획을 그들처럼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삶의 기억을 서랍 속에 고이 넣어 보관하듯 시를 썼던 한강 작가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첫 번째 서랍에 고이 넣는 마음으로 나의 계획을 계속 써내려가고 싶다. 일본의 한 광고 카피(각주 2)와 같이 말만 하면 계획이지만 이렇게 쓰면 이룰 수 있는 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나의 서랍에 꿈을 살포시 넣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각주 정리 1.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의 제목을 오마주했다. 2.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서 개최되는 일본의 ‘도련님 문학상’ 포스터 광고에는 다음과 같은 카피가 활용됐다. 그 청춘, 떠들면 건방짐, 쓰면 문학. 그러한 매일, 생각하면 평범, 쓰면 문학. 그 불만, 말하면 푸념, 쓰면 문학. 그 인생, 말하면 설교, 쓰면 문학.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얇은 겉옷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꺼내야 한다. 잠깐 멈칫하면 성큼 여름이 다가와 걸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언제 봄이 시작되나 싶더니 벚꽃은 이미 다 졌고 해가 무섭도록 따뜻해지고 있다. 피크닉을 즐기기 좋은 날씨와 딱 어울리는 새 연재가 시작되어 그런지, 평소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놀림이 가볍다. 대중에게 공원만큼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며 누구에게나 열린 넉넉한 규모의 조경 공간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새로운 공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 조경 설계 전문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의 철학과 담론을 비롯해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열심히 담아 왔다. 하지만 이따금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공원을 잘 소개하고 다루는 방법이 정말 이것뿐일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결국 완성된 공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조경은 잘 모르지만 정원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민은 더 짙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런 문장에 가닿았다. 공원의 일상성은 누구나 다 알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소홀히 여겨왔던 게 아닐까. 새 연재의 실마리를 던진 건 금민수 기자의 ‘최초의 공원’이었다. “공원은 시퀀스를 만들어내며, 시퀀스는 이용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옴스테드가 유년 시절 보았던 목가적 풍경이 센트럴파크 설계의 단초가 됐던 것처럼 조경가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최초의 공원(혹은 최초의 설계작)에 대한 추억, 혹은 공원에 대한 관점의 변화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받아본다. 연령과 관점이 서로 다른 필자를 통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공원의 변화를 살펴보며, 세대별로 공원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릴 숏폼 영상을 함께 만든다는 원대한 포부가 곁들어진 기획에 편집부 모두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진 토론에서 쉽지 않은 글감을 다루는 만큼 다양한 필자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오히려 조경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기획으로 바꾸면,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한 공원의 일상성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하지만 ‘최초의 공원’ 역시 언젠가 빛을 보기 위해 금민수 기자의 기획 폴더 속에서 새 버전으로 거듭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발전되고 완성된 기획이 이수민 기자의 ‘슬기로운 공원 생활’이다. “당신에게 공원은 어떤 존재인가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간, 일과 중 잠시 머리를 비워내는 공간, 출퇴근길로 매일 지나가는 공간, 약속 장소가 되는 공간, 영감을 얻는 공간, 돗자리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공간, 연인과 손잡고 데이트하는 공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운동하는 공간. 좋아하는 공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세요. 공원을 자주 찾는 이유, 공원에서 받은 위로와 영감, 공원 속 숨은 아지트 같은 공간, 공원의 독특한 역사, 공원과 함께했던 추억 등 어떤 이야기든 좋습니다. 공원과 함께한 추억을 들려주세요. 독자들이 공원의 새로운 쓰임새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층 더 말랑말랑해진 기획 의도를 통해 ‘슬기로운 공원 생활’은 일상 속 공원의 쓰임과 필요성을 통해 현대 도시에서 공원의 의미를 느슨하게 탐구해볼 예정이다. 공원을 방문하는 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 없는 만큼 좀 더 다채로운 필자를 지면에 초대할 예정이다. 사실 『환경과조경』은 이미 공원의 일상성을 주목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2015년 10월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바로 그것. 신기하게도 특집을 여는 글에 나의 고민과 비슷한 문장이 있었다. “그동안 너무 조경의 대상지로만 공원을 바라보았다는 자책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공원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 거창하게 공원의 의미나 역할 따위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자의 주관적이고 특수한 공원 이야기를 끄집어내 보기로 했습니다.” 이 특집이 단거리 달리기였다면 ‘슬기로운 공원 생활’은 아주 긴 마라톤이 될 것이다. 이왕이면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여러분에게도 당신의 공원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이건 소심한 선전 포고이자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만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필자가 될 수 있으니까.
  • [PRODUCT] 편리한 도시 환경을 위한 디지털 사이니지 태양광 전자종이 디스플레이로 간편하게 제공하는 도시 정보
    정보는 도시의 흐름이다. 특정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오가는 곳마다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닿아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정확히 전달하는 사이니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삼원FA의 친환경 디지털 사이니지 브랜드 ‘에코비트(Ecobit)’는 지속가능한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사이니지로 도시 공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편리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에코비트의 디지털 사이니지는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든 도시 정보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전자종이(E-paper) 기반의 초저전력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도심은 물론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버스정류장, 가로변, 광장 등 도시의 다양한 생활 동선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정보 인프라로 전력망 없이 설치가 가능해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높은 시인성과 해상도를 갖춘 전자종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독성을 높였다. 이러한 사이니지는 공공 정보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공간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별도의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를 제공해 실시간 대중교통 안내, 재난 정보, 마을 소식, 생활 편의 정보 등 공공 정보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세 가지 유형의 디스플레이와 설치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지주형, 거치형을 다양하게 조합해 설치 환경에 맞게 구성할 수 있다. 100%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별도의 전기 공사를 하지 않고 간단하게 설치가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에코비트는 강한 햇빛 아래서도 선명한 가독성을 유지해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디지털 사이니지로 깨끗하고 편리한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자 한다. TEL. 051-630-3000 WEB. www.ecobit.co.kr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풍경 감각] 목련이 피지 않는 봄
    희끗한 봉오리를 부풀리던 백목련이 허리가 잘린 채 길가에 누워 있었다. 몇 십 년은 돼 보이는 왕벚나무와 은행나무도. 지난 계절의 꽃과 녹음, 그리고 단풍이 아름다웠던 건강한 나무들인데……. 낡은 시설을 부수고 신축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기쁘게 알리는 현수막 아래로 부러진 가지들이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봄 햇살을 받은 탓일까. 꽃봉오리를 하나 주워보니 보드랍고 따뜻했고, 그래서 우주개 라이카가 떠올랐다. 라이카는 우주 환경에서 생명체가 생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우주로 보내진 최초의 우주개다. ‘우주개’라는 단어가 낭만적인 느낌을 주지만,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달리 라이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돌아올 계획조차 세워두지 않은 로켓에 실어 쏘아 보낸 탓이다. 심지어 설비 오작동으로 인한 과열과 스트레스로 라이카의 생명 신호는 한나절 만에 끊겨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생명체가 위성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과 우주의 무중력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귀중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강아지 한 마리의 목숨보다 소중한 걸까. 가족들에게 버려져 추운 길거리 생활을 하고, 낯선 연구소로 잡혀 오고, 침착하고 영리하다는 이유로 너무나 먼 곳으로 보내진 라이카가 내게 훨씬 애틋한데. 새 건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예전처럼 꽃 피는 정원도 딸려 있을까. 그 건물은 꽤 선량한 목적으로 지어지는 중이니 많은 사람이 누리는 좋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축포를 터뜨리듯 떠들썩한 완공식에 모인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칭찬만 한다면, 조금 아득한 기분이 들 것 같다.
  • 다시, 정원을 읽다 Re-reading the Garden Phenomenon
    “다시, 정원을 말하다” 특집(『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으로 정원을 다룬 지 10년 남짓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원에 대한 온도가 크게 달라졌다. 이런 분위기는 정원의 전통적 개념에 비춰볼 때 매우 특이하고 일면 모순적인 현상이다. 정원의 본질에 반反하는 ‘만들어진 정원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오늘날 정원의 체감도가 높아진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간과 공공 가릴 것 없는 공격적 사업 추진으로 정원이 양적으로 증가했고 사회적 인기 아이템이 된 것이다. 도시 비전의 단골 소재로 정원이 등장하고, 여러 지자체는 일상에 지친 도시민의 몸과 마음을 보듬겠다며 정원박람회를 앞다퉈 개최하고 있다. 국가정원 지정을 목표로 정원의 이름을 빌린 대형 공원이 계획되는가 하면, 민간정원, 공동체정원 등 시민들이 직접 정원을 만들어 가꾸도록 유도하는 사업도 한창이다. 그야말로 정원 열풍이다. 하지만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원 사업이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토론과 숙의는 충분하지 않다. 정원박람회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사장에 다녀와 SNS 피드를 장식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점적 녹지인 정원이 공원과 선형 녹지와는 어떤 면에서 다른지 면밀하게 살피고, 정원을 가꾸는 일이 신체와 정신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연구와 데이터 구축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25년이 산림청 법정 계획인 ‘제2차 정원진흥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해인 만큼, 이번 호에는 조경의 시선으로 정원 과열 현상을 반추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정원 사업의 범람과 함께 조경계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되돌아보고 그러한 변화가 정원에 대한 대중의 시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반성적으로 진단하며 미래의 방향을 제언한다. 진행 박희성,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정원을 국가가 만든다고? 박희성 정원의 귀환, 그 10년 뒤 황주영 정원박람회가 만드는 정원 문화 권진욱 정원 붐이 만든 조경 설계 패러다임의 변화 최재혁 정원 활동에서 커뮤니티의 힘 정홍가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조혜령
  • [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을 국가가 만든다고?
    정원의 본질을 알고 있는 전공자들에게는 ‘정원을 국가에서 제도화하여 주관한다’는 상황 자체가 정원의 본질과 개념에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알고도 남는다. 개인 정원(garden)이 공공의 영역(public garden)으로 확장되는 역사의 궤적을 토대로 본다고 해도, 정원을 제도권에 두고 정책과 사업으로 관리하는 하향식(top-down) 정원 관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2015년, 산림청은 ‘수목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정원을 넣어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수목원정원법)’로 개정하고 본격적인 정원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수목원정원법’ 제정 10년에 즈음한 지금, 산림청은 5년마다 수립되는 법정 계획(정원진흥기본계획)을 토대로, 정원 인프라 확충, 전문가 양성, 정원 산업 진흥, 정원 문화 확산의 네 분야에 대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원 사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반응도 뜨겁다. 2025년 3월을 기점으로, 무려 92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정원 문화 조성 및 육성에 관한 자치법규를 제정했으며 정원 조성 및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거나 재편했다. 이제는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이 정원의 전통적인 개념과 역사를 역행한다고 해서 마냥 불만을 표출하거나 등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심각한 환경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것만 같은 정원의 이미지가 여전하면서도 지자체장들의 열렬한 구애까지 등에 업고 있는 한, 산림청의 제도와 정책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 어쩌면, 조경가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 산림청의 정책을 지원하고 사업의 방향을 유도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향후 시의적절하고 유효한 성과로 평가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림청 정원 사업의 시작 배경을 토대로 앞으로 풀어야 할 주요 난제를 점검해 본다.(각주 1) 국제정원박람회로 촉발된 산림청 정원 사업 산림청 주도의 정원 사업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처음에는 2013년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있다. 그런데 순천시는 정원박람회를 단지 도시 경쟁력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했지, 정원 혹은 정원박람회 자체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부터 순천시의 순천만 보존과 동천東川 개발은 서로 첨예하게 맞섰다. 2000년대에 이르러 순천만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면서, 생태적 가치와 위상이 날로 강화됐다. 이에 반해, 시역市域은 광양, 여수 등의 주변 도시와 비교될 정도로 위축되어 도시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순천시 행정가들은 보존과 개발 양단의 답안을 모두 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대한민국 생태수도’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보존과 개발의 매개로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 추진’을 정책으로 결정한 것이다.(각주 2) 2009년 2월 25일에는 산림청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을 위한 주무부처로 확정된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순천시는 국제 행사 추진에 필요한 절차를 담당해 줄 중앙의 주무부처를 찾았지만, 대부분의 부처는 법률과 제도의 미비를 핑계로 수락을 기피했고 오직 산림청만 적극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산림청은 순천시 중앙정부(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 행사로 승인받도록 협조하는 등 정원박람회 개최지로 최종 확정될 때까지 역할을 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을 거둔 이후, 2014년부터 산림청은 본격적인 정원 사업을 시작하는데, 그 출발은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이었다. 수목원과 평행한, 배타적인 정원 산림청이 정원 법제를 선제적으로 구축한 것은 정원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기수립된 ‘수목원법’의 법 체제에 정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재편한 것이 큰 패착이었다. 정원을 수목원과 같은 단순명료한 시설로 간주하면서 법제 전반에 정원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고 가게 된 것이다. 법제상의 이러한 문제는 정원의 구분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5년 처음 개정된 ‘수목원정원법’은 정원을 수목원 분류 체계에 그대로 대응해 적용시켰다. 정원을 국립수목원, 공립수목원, 사립수목원, 학교수목원의 분류에 맞춰 국가정원, 지방정원, 민간정원, 공동체정원으로 구분하고 보니, 운영 주체만 강조될 뿐 정원의 기능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2021년 산림청은 생활정원과 주제 정원(교육‧치유‧실습‧모델정원)을 추가하는 법 개정을 진행했지만, 정원의 식물 자원을 활용한 치유 기능을 강조하고 생활권에서 국민이 정원 가꾸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원 진흥에만 목표를 두었기 때문에 법제상 정원 구분은 여전히 불완전했다.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에 따른 구분이 대등하게 나열되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고, 정원의 조성 주체와 조성 목적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여지―예컨대, 민간정원이면서 교육정원일 수 있고, 공동체정원이면서 치유정원일 수 있다―가 충분하므로 정원의 구분 자체에 모순이 생겨 버렸다. ‘수목원정원법’ 제2조 “정원”이란 식물, 토석, 시설물(조형물을 포함한다)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시설과 그 토지를 포함한다)을 말한다. 다만,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른 문화유산,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자연유산, ‘자연공원법’에 따른 자연공원,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공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간은 제외한다. 정원은 본래 시설(내지 공간)과 행위(조성, 가꾸기, 재배, 휴식 등)의 두 속성을 함께 가지는데, 현행 법제에는 시설(내지 공간)로서의 정원만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타법과의 정합성 문제로 정원 진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조경진흥법’의 ‘조경’이나 ‘산림휴양법’의 ‘산림문화·휴양’, ‘도시농업법’의 ‘도시농업’, ‘경관법’의 ‘경관’처럼, ‘정원의 행위’를 시설(내지 공간)과 함께 정의 내림으로써 정원의 기능을 온전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국토 전반에 적용되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서 ‘수목원정원법’의 정원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시계획상에서 정원을 고려해야 할 근거가 없으므로, 정원은 언제든지 다른 공간으로 대체되거나 용도 폐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원은 도시계획법상의 다른 공간과의 관계가 불분명해서, 도시계획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원이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여 국토 환경에 유효한 역할을 하려면, 법제 간의 배타적 관계를 허물고 개념 간의 이해와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토계획법’은 ‘수목원정원법’의 목적과 취지를 공감하며 정원 개념을 명시하고 법제상의 정원을 도시계획의 지목으로 인정할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수목원정원법’은 ‘도시숲법’상의 도시숲, 생활숲 개념을 포함시키되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정원을 상위 개념으로 조정하는 데는 정원의 가치와 목적을 추가하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본문에서 다루는 ‘수목원정원법’ 관련 내용 일부는 2023년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한 산림청의 ‘정원진흥법재정비’의 성과 내용에 기초한 것이다. 2. 순천만에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공무원 최덕림(2003년 순천시 관광진흥과장, 2023년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 총감독)이 우연히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도시를 가다』를 접하게 되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박희성
  • [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의 귀환, 그 10년 뒤
    정원을 말하다 10여 년 전 『환경과조경』 특집의 제목 ‘다시, 정원을 말하다’는 2012년 출간된 『정원을 말하다-인간의 조건에 대한 탐구』(로버트 포그 해리슨, 조경진‧황주영‧김정은 공역, 나무도시, 2012)를 차용한 것이다. 번역서의 제목을 정하며 이런 저런 논의를 했고, 원제 ‘Gardens: An Essay on the Human Condition’을 조금 바꾸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동사로 ‘말하다’가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이 모였다. 평은 좋았지만 판매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고, 판권 계약이 종료됐다. 우리만 좋다고 생각한 책이었을까 하는 초조함이 있었지만―이 기회를 빌려 당시 나무도시 대표였던 남기준 편집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와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조금 일찍 나온 책이었다는 걸 얼마 뒤 확인할 수 있었다. 절판 이후 도리어 책을 찾는 이들이 나타났고 온라인 서점의 중고 책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특집호 원고 청탁을 받고 옛 글을 다시 꺼내 보았다(“정원의 귀환에 대한 단상들”,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 당시에도 10여 년 전의 일을 회고하며 글을 시작했는데, 대학원에서 정원의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필자를 지도한 미술사학과와 조경학과 교수들이 앞으로의 내 생계를 염려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쓰던 2014년에는 그 걱정이 기우였나 싶게 정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정원박람회와 정원 가꾸기 열풍이 불었고, 정원 잡지와 출판물이 증가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원 조성 붐이 일었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려던 참이었다. 그해가 끝나기 전 한국조경학회 정원학연구센터는 두 번의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또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정원과 관련된 현상들은 스무 번도 넘게 변한 것 같다. 국가정원과 지방정원, 민간정원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제도와 진흥계획, 관련 법규가 생겼다. 여러 지자체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그리고 서른 곳 넘는 지자체가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개인적으로도 정원과 관련된 연구 용역과 대중 강연, 글쓰기와 번역을 꽤 했다. 이러한 상황만 보면 우리는 이미 정원 속에 살고 있다. 정말 그런가.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에 등장한 ‘정원’은 내가 배우고 익히고 이제는 가르치기까지 하는 정원과 동의어일까? 정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까? 아니면 정원이란 이름으로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는가? 이미 여러 번 제기된 질문이지만 정답은 없고, 그럴듯한 답안을 만들었다 싶으면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복잡하게 얽힌 현상을 모두 살펴볼 수는 없지만 무엇이 강조되는지, 이를 조경사 연구자로서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정원과 가든과 공원과 파크 그간 해온 ‘정원’과 관련된 일들을 되짚어 보면 자아 분열이 일어날 것 같다. 분명 모두 정원을 다루는데 정원사와 미학 관련 수업 시간에 논하는 ‘정원’과 연구 용역에서 다루는 ‘정원’과 해외 저자의 책을 우리말로 옮길 때의 ‘정원’은 모두 같으면서도 달랐다. 정원이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어물쩍 넘어가지만, 이렇게 개념이 뭉뚝해도 되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더 많다. 도대체 ‘정원’은 무엇일까. 조경학에서 정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각주 1) 울타리 등으로 주변을 둘러싸 경계를 두른 물리적 형태가 첫 번째 특징이고, 그 울타리 안쪽에 있는 귀한 것을 실용적인 것(식량, 약초 등) 혹은 즐거움을 위한 것(여가, 과시, 앎의 즐거움, 명상과 종교 등)으로 나눠 두 번째와 세 번째 특징으로 삼았다. 가든(garden)이라는 단어 자체가 울타리(gher-)와 즐거움(-oden/eden)이 결합된 말이고, 울타리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바뀌어 왔지만 언제나 낙원, 당대의 이상향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곳이 정원이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정원’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장소를 담고 있다. 한자 정庭은 건물과 문 사이,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뜰을 말하고, 원(園)은 동산, 과실수를 심은 곳을 칭한다. 이런 옥외 공간과 서구에서 들여온 가든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각주 2) 이 수많은 정원을 섬세하게 분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처럼 관사, 대소문자로 구분할 수 있다면 미학적 논의가 조금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각주 3) 조경과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가 동의어인지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있었는데, 사실 그에 앞서 정원의 정의부터 좀 더 세심하게 봤어야 했나. 그나저나 공공성을 앞세워 랜드스케이프 가든(landscape garden)(ing)을 떠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서 출발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으로 나아가던 조경은 왜 다시 정원으로 돌아오는 걸까. ‘공원’이라는 말은 어떠한가. 근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서양 문학 번역서를 읽다가 ‘공원’이라는 말을 보면 불편하다. 귀족 연인들의 밀회의 장소 혹은 요란한 사냥의 장소로 우리가 아는 공원은 부적절할 테니 말이다. 이는 파크(park)를 번역한 말인데, 도시공원이 생기기 전 이곳은 개인이 소유한 방대한 숲, 수렵지를 가리켰다. 산업화에 이어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19세기 후반, 영국 왕실이 소유한 런던 일대의 파크를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현대의 공원 문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유지 파크, 때로는 가든이 공공 녹지가 되었고 파크라는 말에 담긴 의미가 확장됐다. 서구의 퍼블릭 파크(public park) 혹은 퍼블릭 가든(public garden)이 서구화를 꾀하던 일본에서 공(공 정)원(公園)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원이라는 말은 큰 고민 없이, 원래의 문화적 함의가 온전히 담기지 못한 채 한국에 이식되어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공중의 보건‧휴양‧놀이 따위를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각주 4)이 되었다. 우리는 서구에서 수입한 개념과 전통적 관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원과 가든, 공원과 파크를, 심지어는 관련 법률도 다른 정원과 도시공원을 큰 고민 없이 섞어 쓰고 있다. 서울에는 2014년의 글에서 언급했던 “주민을 참여시켜 동네의 방치된 자투리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한평공원’ 대신 ‘매력‧동행가든’이 등장했고,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정원형 공원’(각주 5)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순천만국가정원의 면적은 한평공원 1억 개를 합한 것보다 넓다. 이제 공공 녹지에서 공원과 정원의 구분은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지만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념 설정 아니었던가. 이 명칭들과 혼란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고, 지금은 그저 잘 기록해둘 뿐이다. 저 정원과 가든은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가? 제3의 자연 10여 년 전 정원 열풍의 화두로 도시농업적 정원 가꾸기의 유행을 꼽았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몸소 정원을 가꾸고, 작게나마 생산의 기쁨을 즐기며 정원에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던 시기였다. 이후 코로나19 범유행기를 겪으며 정원 가꾸기는 전 세계적 유행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원 문화가 좀 더 일상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의 관심은 상추 재배를 지나 정원(을 가꾸는 일)이 주는 기쁨을 알고 정원을 가꾸는 기술뿐 아니라 정원이 담고 있는 의미의 탐색으로 나아간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2025년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의 주제로 ‘세번째 자연’이 제안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예술로서의 정원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들의 서간에서 등장한 표현으로, 조경사학자 헌트(John Dixon Hunt) 등의 연구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알려졌다. 원생 자연 혹은 신들의 영역으로 유추되는 제1의 자연과 인간이 고안하고 가꾼 문화 경관인 제2의 자연을 넘어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제3의 자연, 즉 정원이 생겨났다는 것이 요지다. 이 세 자연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하나가 우월한 것도 아니며 단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하나다. 헌트는 세 자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는 우리가 환경과 맺은 관계를 반영하며, 이 관계와 복잡성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정원이 지닌 풍부한 의미를 환기하고 가치를 재인식한다고 본다.(각주 6) 우리 시대의 정원을 고민하는 것을 목표로 ‘열린 정원’을 주제로 삼은 2013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이후 공모전에서 정원의 근원적 의미를 다루는 것은 오래간만이기에 무척 반가웠다. 더구나 “주체로서의 인간이 서 있는 문화라는 토대”와 “인간의 타자로서 주체를 성립하게 하는 자연의 경계”에 있어 온 정원이라는 인식 하에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정원의 속성을 표현한 주제”는 정원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듯하다. 하지만 “과도한 조형적 시설물 설치를 지양”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식재’ 위주의 자연주의 정원”을 권고하는 보도 자료를 보며, 올해 서울시의 ‘추구미’를 지레짐작하게 된다.(각주 7) 아크, 환경을 회복시키는 다정한 행동 대규모 도시공원과 정원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가치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100개, 1,000개의 소정원 조성을 통해 더 많은 이가 일상에서 정원을 누릴 때의 효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이는 비인간 생명체에게도 마찬가지다. 생태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는 이런 작은 공간들을 아일랜드의 정원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Mary Reynolds)는 ‘아크(Ark)’ 조성을 통해 가꾸고 있다. 영화 ‘플라워쇼(Dare to be Wild)’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레이놀즈는 첼시 플라워쇼 역대 최연소 금메달 수상이라는 영광을 뒤로 하고, 큐 왕립식물원(Kew Royal Botanic Garden)을 포함한 대도시 공간을 야생 정원으로 조성했고, 나아가 땅을 돌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레이놀즈가 설립한 아크(각주 8)는 창틀, 주택 단지의 경계, 고립된 작은 땅 조각 같은 우리 주변의 작은 자연을 지키고 재야생화한다. 이를 통해 작은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가 되살아난다. 조각(patch)-통로(corridor)-바탕(matrix)이라는 경관생태학의 기본 원리가 그의 정원에서는 ‘환경을 회복시키는 다정한 행동(Acts of Restorative Kindness)’, 이 시대의 방주(Ark)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돌봄에 정원의 본질이 있다. 정원은 그저 보기 좋게 치장한, ‘인스타그래머블’한 녹지 공간이 아니고,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정원은 모두를 환대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우리가 감각을 회복하고 균형을 잡게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정원을 말하다』에서 해리슨은 인간의 조건이 돌봄이고, 정원이 이를 가꾸는 장임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돌봄과 걱정이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케어(care)의 어원이 된 쿠라 여신의 신화를 인용했는데, 그가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기에 우리에게는 돌보고 염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원을 가꿀 때 가장 잘 발현된다. 끊임없이 돌보고 염려하고,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작은 존재를 깨닫고, 지구 전체로 돌봄과 염려의 관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모두가 실제로 정원을 가꾸지 않더라도, 정원으로 은유되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꾸어야 하는 시대에 이러한 정원사의 정신은 더더욱 절실하다. 다시 정원을 말하려면 삼청동 일대 미술관들을 부지런히 다니던 시절, 별다른 안내문 없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던 기무사와 인근 부지를 지날 때면 괜히 긴장되곤 했다. 토박이 주민에게 용산공원 부지 못지않게 복잡한 이곳의 역사를 듣기도 했지만, 여전히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 기업의 한옥호텔이 지어질 뻔한 곳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 공원으로 조성된다는 소식이 2020년에 들려왔다. 그때 본 이미지는 질 클레망(Gilles Clement)의 책에서 봤던 ‘제3의 경관(Le Tiers paysage)’을 떠올리게 했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는 더욱 풍요로운 곳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니. 핏 아우돌프(Piet Oudolf)가 기존 식생을 면밀히 파악해 식재한 하이라인만큼이나 멋진 생태적 공원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몇 년 후 공개된 열린송현 녹지광장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졌다. 원래 있던 식생,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땅에서 나타난 천이는 어디로 간 걸까. 이전의 공원보다 시설이 줄어 탁 트인 녹지를 도심 한복판에서 볼 수 있다지만 이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터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끝내주는 ‘움직이는 정원(jardins en mouvement)’, 진정한 자연주의 정원이 될 기회를 영영 잃었다.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정체성이 모호한, 야생의 시뮬라크르만 남았다. 그리고 리노베이션을 마친 오목공원을 떠올렸다. 한때는 신도시였던 곳에 조성된 공원에 쌓인 시간의 켜를 존중해 “없애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남기는”(각주 9)설계는 정교하면서도 다정하다. 수도원의 클로이스터 같기도 한 회랑과 중정은 아늑하고,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만으로도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대에 따라, 행사에 따라, 공원 내 위치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펼쳐지고 어색하지 않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 멀다는 것뿐. 오늘날 서울시를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선포한 ‘정원도시’의 이상은 필자에게는 너무 거창하고 막연하다. 정원과 도시 중 어느 쪽에 방점이 있는 걸까. 하지만 오목공원에서, 공원이라고 부르지만 오늘날 도시에서 모두가 누리는, 그리고 누려야 하는 정원의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정원을, 도시 정원을, 정원도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정리 1. 황기원, “정원의 원형 시론”, 『환경논총』 20, 1987, pp.85~97. 2. 그래서인지 『조경개념사전』에서도 이를 “정원(전통적 의미)”, “정원(현대적 의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김순기 외, 『조경개념사전』, 집, 2023. 3. 18세기 영국에서는 단순히 정원 일을 하는 이를 가드너(gardener), 명확한 의도를 지니고 정원을 설계하는 이를 가드니스트(gardenist)로 구분하기도 했다. 최근 살펴본 일본의 미학자이자 정원사 야마우치 도모키(山內朋樹)의 논고에서도 숙고를 바탕으로 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니와시(庭師)와 원예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가드너를 분리해 칭했고(『庭のかたちが生まれるとき』, フイルムア-ト社, 2023), 미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페너의 연구에서도 일반적인 정원과 구분되는 미학적 논의의 대상이 되는 정원을 더 가든(The Garden)으로 표기했다(David Fenner·Ethan Fenner, The Art and Philosophy of the Garden , Oxford University Press, 2024).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5. 김기훈, “송현동 부지 ‘정원형 공원’ 본격 조성…도심 문화관광공간으로”, 「연합뉴스」 2024년 9월 27 일. 6. 황주영, “정원, 제3의 자연”, 『환경과조경』 2018년 8월호, pp.118~119. 7. 차윤정, “보라매공원에 펼쳐질 ‘세 번째 자연’…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작가정원 국제공모”, 서울 특별시 보도자료, 2024년 11월 15일. 8. 아크 홈페이지(wearetheark.org) 9. 김선미, “도시의 라운지로 변신한 오목공원 회랑의 마법”, 「동아일보」 2024년 2월 11일.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과 조경의 역사를 공부했고,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을 좋아하고,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 [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박람회로 정원 문화 만들기
    신 유토피아를 위한 정원박람회 정원박람회에 대해 AI 검색 엔진은 이렇게 대답한다. “정원박람회는 도시 정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최되는 축제입니다.” 이러한 답변을 내놓게 된 이유에 궁금증을 가지며 추론을 시작했다. 먼저 우리는 왜 도시, 정원, 박람회를 관계 지을까. 물론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공간적 배경을 도시만으로 한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때의 도시는 인간의 삶과 생활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활동의 장을 의미하는 구체성을 내재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다음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도시의 경관에서 근거를 찾아보자. 16세기 초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이야기한 가상의 섬나라 유토피아의 목판 지도가 떠오른다. 유토피아(utopia)는 ‘ou(없다)+toppos(대지)’의 조합으로 설명된다.(각주 1)이곳은 유토푸스(utopos)가 세운 나라이며 유토푸스는 ‘아무 지위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말 그대로 경제, 정치, 종교 등의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모어의 목판 지도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움은 이상향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경관이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에 따르면, “도시의 모습과 유토피아의 모습은 오랫동안 서로 뒤섞여 왔다.”(각주 2) 유토피아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 형태로 묘사됐다. 유토피아의 도시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대한 은유이며 자연은 동경에 대한 지표로서 문화적 보편성을 표현하고 있다. 모어로부터 시작된 관념적 유토피아의 의미는 아일랜드 문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통해 현실로 귀환된다. 그는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 유토피아는 인류가 언제나 도달하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각주 3) 즉 오스카 와일드의 유토피아에 대한 경관이 바람wish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진보하는 유토피아를 위한 희망 경관(hope landscape)을 추구하는 것이며, 우주선 지구호(각주 4)의 탑승자들은 그 목적과 실행을 위한 매체로 정원박람회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원박람회의 시작과 박람회 의미에 대한 재고 박람회는 일반 대중을 위한 교육과 미래상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국제박람회에 관한 협약5에서 주요 단어를 추출해 보면, 인류의 노력, 성취된 발전의 모습, 미래에 대한 전망, 인류 계몽, 경제 및 사회적 발전, 세계인의 축제 등이 주요 골격을 이룬다. 정원박람회는 여기에 정원을 더해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유독 최초라는 사건과 사물에 집착하는 것은 원류로부터 근원을 파악하고 변화된 흐름과 경향을 파악하며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정원박람회의 역사적 기원을 보면 정원박람회가 세계의 만국박람회보다 앞선다. 인류는 이미 부족 또는 왕조 국가 때부터 정원을 통해 부와 권력을 상징하고 전시한 것이다.(각주 6) 오늘날과 유사한 정원박람회의 효시로 벨기에(1809년), 영국(1827년), 독일(1869년) 등에서 개최된 행사들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중 아르데코(Art Deco)라는 사조를 낳은 1925년 파리 국제장식산업미술박람회에서 박람회 역사상 처음으로 정원을 주제로 한 전시 공간이 등장했다. 일련의 주제 정원이 조성되었다는 점은 요즘 한국의 정원박람회가 지향하는 목적에 견주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정원박람회는 2010년 시흥시 옥구공원에서 개최된 경기정원문화박람회다. 물론 1991년 고양꽃박람회를 최초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명칭과 목적에 비추어 보자면 시흥시가 먼저다. 무려 15년 전이지만, 당시 정원박람회의 슬로건과 목적은 충분히 정련되어 있었다. ‘도시, 정원을 꿈꾸다’라는 슬로건으로 단순한 정원박람회가 아니라 ‘문화’를 정원에 더하고자 했고, 최신 정원 디자인의 경향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민 참여를 통해 만드는 도시 공공 공간 가꿈 문화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시도했다. 관련 기사(“2010 경기정원문화박람회”, 『환경과조경』 2010년 11월호)는 이 박람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주민 참여로 완성된 공공 정원, 기업의 나눔 문화 실천의 장, 지역 축제를 통한 공원 리모델링 등을 꼽았다. 2024년 한국에서 개최된 정원박람회는 약 15개인데, 각 정원박람회의 취지와 목적이 10년 전에 비해 어떤 변화와 발전적 차별성이 있었는지 회고해 본다. 혹시 우리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www.britannica.com/topic/Utopia-by-More 2. 데이비드 하비, 최병두 외 역, 『희망의 공간』, 한울, 2001. 3. 오스카 와일드, 박명숙 역, 『오스카리아나』, 민음사, 2016. 4. 벅민스터 풀러, 마리 오 역,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앨피, 2007. 5. 기획재정부(www.moef.go.kr/sisa/dictionary) 6. 이양주 외, 『경기정원문화박람회 발전방안 연구』, 경기연구원, 2021. 권진욱은 영남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학위를 취득했고, 프랑스 낭시국립건축학교에서 DESS 학위, 파리-발드센느 국립건축학교에서 DPLG 학위를 취득한 프랑스 공인 건축사다.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정원과 관련한 과목들을 가르쳤고, 현재 영남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설계와 디자인 이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한 디자인의 영역은 통섭적이며 총체적 시각으로 상호 교감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 순응적 디자인 해법으로부터 유연성을 담은 인간의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 권진욱
  • [다시, 정원을 읽다] 정원 붐이 만든 조경 설계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에서 정원 붐이 일어난 지도 10년 이상이 지났다. 지난해 서울시 조경 부서 명칭이 푸른도시여가국에서 정원도시국으로 바뀌는 등 ‘정원’이라는 키워드가 조경계 전면에 부상한 만큼 정원 붐이 조경 설계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짧은 지면에서 이 주제를 넓고 깊게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어 관심 있게 바라본 세 가지 현상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소개한다. 우선 정원 붐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결과 동시대 조경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정원 붐이 조경 설계 업계에 끼친 구체적 영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유행하는 자연주의 정원 설계 패러다임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논의한다. 정원의 부활과 조경 생태계의 변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원 붐을 잘 이해하려면 조경 설계의 사조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초는 건축과 조경 모두 모더니즘의 시대로 기존의 양식주의가 부정되고 기능성과 기하학적 단순미가 강조됐다. 이 시대 조경가들(각주 1)의 작품을 보면 기하학적인 질서가 공간을 지배하고 재료의 양식적 표현은 극도로 절제된 것을 볼 수 있다. 1977년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를 통해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포스트모던의 흐름이 시작됐다.(각주 2) 이 시기의 조경가들(각주 3)의 작품은 기하학적 질서에서 탈피하고 기능보다는 장소성, 문화적 맥락, 감성적 조형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기존에는 양식주의로 치부하던 수공예적 디테일에 다시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첼시 플라워쇼가 1980년대 이르러 본격적으로 부흥하고, 1990년대에 쇼몽 가든쇼가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었다. 이 시점부터 정원 작가들(각주 4)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원 작품에서 다양한 수공예적 디테일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보다는 한발 늦게,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정원박람회에서 정원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각주 5) 국내외 정원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섬세한 식재 표현과 수공예적 정원 연출 기법을 선보여 왔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후 전통적으로 조경가의 업역이라 여겨졌던 일상적 외부 공간 설계와 관련된 프로젝트까지 정원 작가들이 수행하며(각주 6) 조경 생태계에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움직임이 생겼다. 2010년 이후 정원박람회의 부흥과 함께 오래된 수목원 리노베이션, 신규 수목원 조성, 민간 정원 등 정원 관련 프로젝트들이 조경계 전반에 양적으로 확산됐다.(각주 7) 또한 국내외 우수한 정원들을 경험한 대중이 많아지고 정원과 식물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높이가 높아지며, 조경가 역시 자연스럽게 식재 설계에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조경가 중 일부는 식재 설계 역량을 키우고자 정원 분야에 진출해서 정원 작가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연차가 짧은 젊은 조경가 중 역량 강화를 위해 설계사무소를 잠시 떠나 민간 식물원의 정원사 양성 과정을 수료한 뒤 조경 설계 분야에 재취업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스스로 식재에 대한 소양을 키우는 조경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의미의 조경가8로서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식재 설계에 전문성이 있는 정원 작가나 원예가와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흐름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이런 협업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대표적으로 개럿 에크보(Garrett Eckbo)나 댄 카일리(Dan Kiley)와 같은 모더니즘 조경가들이 활동했다. 2. 쿠마 켄고, 『약한건축』, 디자인하우스, 2010, p.111. 3. 포스트모던 시대를 연 대표적인 조경가로 찰스 젠크스, 캐서린 구스타프슨(Kathryn Gustafson),마사 슈워츠(Marha Schwartz)가 있다. 4. 1990년대 존 브룩스(John Brookes), 베스 샤토(Beth Chatto), 핏 아우돌프(Piet Oudolf)와 같은 정원 작가들이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톰 스튜어트 스미스(Tom Stuart-Smith), 앤디 스터전(Andy Sturgeon) 같은 작가들이 활약했다. 5. 대표적 정원 작가인 황지해는 첼시 플라워쇼에서 ‘해우소’(2011) 아티즌 가든 부문 금메달, ‘침묵의 시간: 비무장지대 금지된 정원’(2012)으로 쇼가든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다. 6.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정원드림 프로젝트, 생활밀착형 숲(정원) 조성 사업 등을 통해 정원 작가에게 일상 공간에 정원을 설계할 기회를 제공했다. 7. 포천 국립수목원, 수원수목원 같은 오래된 수목원 리노베이션과 함께 서울수목원, 세종수목원, 백두대간수목원 같은 신규 국립수목원 조성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산림청은 생활밀착형 정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시행 중이다. 최근 화성시는 보타닉가든 화성 사업의 일환으로 동부권 공공정원화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이처럼 정원이 주제가 되는 설계 프로젝트가 전례 없이 늘고 있다.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정원 및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2017년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를 개소해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대학교 정원 및 공원 설계 수업에 출강하고 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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