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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ist: Arcs & Strands
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비전
1996년 프레시디오Presidio가 군사 기지에서 공공 공간으로 변신하던 무렵, 이곳은 미국의 국립공원 체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우리는 도시 환경 속에서 국립공원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강렬하고 놀라운 자연 환경이 교차하고 있는 대상지를 위한 현대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크 & 스트랜드는 이 지역이 지닌 풍요로운 문화적 역사와 그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주도하기presiding’와 ‘참여하기engaging’라는 두 가지 근본적 경험에 집중한다.
주도하기
새로운 프레시디오 파크는 방문객들이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고, 현재를 만끽하며,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펼쳐지는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방문객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프레시디오를 바라보며 평화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프레시디오의 경이로운 자연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의 집단적·개별적 노력에 대해 다시금생각하게 될 것이다.
참여하기
프레시디오 파크는 다른 국립공원들과 비교해 프레시디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이 지역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도 접근이 용이한 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프레시디오의 문턱으로 인도하는 동시에 이들이 이러한 독특한 공간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게 하려면 대중과 함께 공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노헤타(SNØHETTA)는 1989년에 설립된 건축·조경설계사무소다.스노헤타의 작업은 공간에 물리적 변화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물리적 변화를 통해 장소성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 그 공간을 이용하는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초학문적인접근(transdisciplinary approach)을 통해 디자인의 최신 경향을 그들이 설계하는 공간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스노헤타는 이집트의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계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극장, 뉴욕 타임스퀘어 재조성 사업,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확장 사업 등에서 그 디자인 철학을 펼쳐왔다.
- SNØHETTA / SNØHETTA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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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ist: YoUr Gateway Park
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대상지는 프레시디오 퍼레이드 그라운드Presidio Parade Ground와 크리시 필드Crissy Field 사이에 위치한다. 새롭게 조성되는 프레시디오 파크는 이 지역의 시간적·물리적 연결 고리이자, 프레시디오와 골든 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알카트라즈Alcatraz,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Transamerica Pyramid 등의 공간을 이어주는 심리적 연결 고리psychic link가 되어야 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YoUr Gateway Park는 대상지에 인접한 공간에 내재된 특징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회적 추이대socio-ecotone’로 기능한다.
추이대ecotone는 두 가지 식물군 사이에 있는 점이 지대를 말한다. 이 지대는 매우 넓은 범위로는 두 식물군의 특징이 점진적으로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식물군 이외의 환경적인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형성할 수도 있다. 사회적 추이대는 대상지에인접한 두 공간의 엮어주는 결합 조직으로서 대상지의 사회적 가치와 같은 지역 특성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추이대가 인접 지역의 식물군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이 사회적 추이대는 지역의 도시 맥락적 가치를 더욱 강화한다.
기존의 프레시디오에는 인공적으로 형성된 공간과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이 공존한다. 두 공간 모두에서 찾을 수 있는 일련의 U자 형상들은 그 크기는 물론, 대지 위에 놓여 있는 방향도 제각각이다.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대상지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는 U자 형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통해 주변 자연 경관과 일련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담아내려 한다. U의 닫힌 부분은 공간을 아우르는 울타리enclosure가 되는 동시에 활동의 초점이 된다. 열린 부분은 대상지 너머의 수려한 경관 자원과, 게이트웨이 브리지와 같은 경관을 향한 일종의 도약대로 기능한다. U는 자석이면서 프레임이고, 외부 경관으로의 도약대이면서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된다. 유어 게이트웨이 파크는 크게 3가지 경관 프레임워크를 통해 역동적인 사회적 공간, 생동하는 생태계,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레크리에이션 공간을 구현하고자 한다.
올린(OLIN)은 1976년 로리 올린(Laurie Olin)과 로버트 한나(RobertHanna)에 의해 설립되었다. 올린은 조경가, 건축가, 프로젝트 매니저,그리고 도시설계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는 로리 올린을 비롯한 12명의 공동 대표가 활동하고 있다. 현대 경관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여,지역의 커뮤니티와 건축물이 자연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조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올린의 대표작으로는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 로스엔젤레스의 폴 게티 센터 등이 있다.
- OLIN / OLIN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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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ist: The Observation Post
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크리시 필드Crissy Field를 연결하고 있는 대상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역사 유산 또한 풍부하다.
따라서 대상지 계획은 ‘경관’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구역 간의 ‘연결’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 프레시디오 공원의 독특한 점은 국립공원이면서도 지역 주민을 위한 근린공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엽적인 차원에서 대상지를 주변 지역과 연결할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주변 도시와 연결해 다양한 방문자를 초대하고자 한다.
프로젝트의 목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공원 내 메인 포스트와 크리시 필드와의 연결 지점을 더욱 분명하게, 방문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상지에서 메인 퍼레이드 그라운드Main Parade Ground, 이스트 비치East Beach, 유서 깊은 비행기 착륙장(크리시 필드)으로 연결되는 세 개의 주요 연결관문을 만든다.
두 번째 목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충함으로써 방문객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상지 주변의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와 광활한 풍경, 점차 확장되고 있는 건물군은 충분한 공간과 시각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경쟁하고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따라서 새로운 프레시디오 파크는 방문자들의 시각적 포커스를 건물과 인프라스트럭처에서 풍경과 오픈스페이스로 옮길 필요가 있다.세 번째로 경관을 구조화하고 강화해서 새롭게 재조명하고자 한다. 대상지에 인접한 여러 풍경을 통합하고 야생 동·식물과 사람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서식처를 만들 것이다. 여러 건물과 풍경이 모이는 대상지는 옵저베이션 포스트bservation Post, 즉 공원의 ‘관측소’로기능할 것이다. 우리는 대상지에 있던 기존의 감시 초소를 ‘관찰’이라는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로 대체할 것이다.
CMG는 케빈 콩어(Kevin Conger), 윌레트 모스(Willett Moss), 크리스 길라드(Chris Guillard)가 설립했다. CMG는 ‘지역 사회를 위한 경관을 창조한다’는 기치를 걸고 골든 게이트 내셔널 파크 컨서번시(Golden Gate National Parks Conservancy), 내셔널 파크 서비스(National Park Service), 프레시디오 트러스트(Presidio Trust)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로 프레시디오익스체인지(Presidio Exchange)와 크리시 리프레시(Crissy Refresh)등이 있다.
- CMG / CMG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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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ing Proposal: Presidio Point
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샌파블로 만과 샌프란시스코 만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에 자리한 프레시디오 초원의 새로운 공원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대상지는 두 주요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한다. 한 축은 남쪽의 숲이 우거진 언덕으로부터 북쪽의 만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축은 태평양에서 샌프란시스코 시로 이어진다.
세 가지 원칙
이러한 대상지의 지형과 기능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주요 원칙을 설정했다. 먼저 천혜의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확장하고 강조한다. 특히 만 인근의 낮은 지대, 크리시 필드의 높은 지대, 크리시 필드 습지대, 동쪽 먼 곳의 마리나Marina 구역 등 어느 지형 및 구역에서 바라보더라도 경관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지형차를 이용한다. 절벽Bluff 지역은 기존의 절벽과 급경사면을 살려 다듬는다. 두 번째로 중심점에서 뻗어나가는 축을 연결하고 연장한다. 대상지 구조는 앤자 대로Anza Esplanade와 벼랑길Cliff-Walk, 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짜였다. 앤자 대로는 메인 포스트Main Post를 만으로 연결하며 벼랑 길은 서쪽의 크리시 필드와 동쪽의 습지 지대를 잇는다. 방문객은 이 두 축을 통해서 극적인 경관을 감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대상지가 갖고 있는 역사적, 생태적 가치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창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잘 짜인 환경을 조성한다. 대상지의 역사적 가치는 방문객의 동선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또한 프레시디오 포인트는 세 개의 생태적 단위로 새롭게 구성된다. 첫 번째 단위는 앤자 대로와 소칼로Zocalo 주변 고지대로서 기존의 해안 자생 참나무Coast Live Oak를 회복시킨다. 두 번째는 야생화 초원과 풀밭으로 이루어진 해안가 고원초지 지대로 이곳에는 여러 오솔길이 조성되고 벤치가 마련된다. 세 번째는 해안 절벽 지역으로 바람에 강하고 비탈진 곳에 잘 자랄 수 있는 관목류가 자라게 된다.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조경설계사무소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 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런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 모니카의 통바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런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최선을 다하고 있다.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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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RESIDIO PARKLANDS PROJECT
공원이 된 요새, 프레시디오
새로운 공원을 초대하는 이 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세계적인 랜드마크이자 엔지니어링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상징적 구조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대상지를 360도로 둘러싼 바다, 산, 항구, 섬, 문화재, 도시의 마천루까지 온갖 경관 요소들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경관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또한 내만內灣의 잔잔한 낭만과 태평양의 변화무쌍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상적인 워터프런트이기도 하다.
이 땅의 풍요로움은 자연 자원 때문만이 아니다. 공원상부의 산지 쪽으로는 두 세기 넘게 군사적 요지로 기능해 온 거대한 규모의 군부대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동편으로는 어린이 과학관으로 쓰이는 수려한 외관의 근대 건축물과 고풍스러운 정원이 짙게 배인 문화적 자산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시민들에게 이미 가장 사랑 받고 있는 대표적인 수변 공원이 서쪽 경계에 맞닿아 있기에 오픈스페이스의 연결성까지 담보하고 있는, 자연과 문화 그리고 접근성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공원 입지다. 게다가 이 새로운 공원의 터는 동시대 공원의 새로운 영역인 인프라스트럭처와의 공생을 통해 태동할 신선한 땅이기도 하다.
공원의 위치는 샌프란시스코 시 다운타운 북서부의 금문교 남쪽 땅으로, 공원 하층이 될 북쪽 수변으로는 활주로를 공원화한 크리시 필드Crissy Field 공원과 크리시습지Crissy Marsh가 접해 있고, 공원 상층이 될 남쪽 둔덕의 배후에는 프레시디오Presidio라는 옛 군사기지 터가 있다. 공원 하층의 생태 거점과 상층의 역사 문화단지를 갈라놓았던 금문교의 진입 고가도로Doyle Drive를 지상에 터널화하면서 생긴 터널 상부 인공의 땅이 바로 새 프레시디오 공원New Presidio Parklands이 들어서게 될 부지다.
스페인어로 군사적 요충지를 뜻하는 프레시디오는 샌프란시스코 만 남측 입구부의 구릉지로, 미6육군본부가 자리했던 곳이자 샌프란시스코 시 전체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 장소다.1 서쪽으로는 태평양 방향으로, 동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만의 내부로, 양 방향의 수평선이 열려있는 이점에 힘입어 군사적 요지로 쓰여 온, 환상적인 전망을 제공하는 땅이다.
대형 공원(약 7km2), 도심과의 근접성, 워터프런트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의 모델 중하나로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2 용산공원에 빗대어보면, 남산타워와 같은 도시의 아이콘인 금문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한강과 같은 샌프란시스코 만이 내려다 보이며, 강변북로가 용산공원 부지와 이촌한강공원을 갈라놓듯 101고속도로(Doyle Drive)가 프레시디오와 크리시 필드를 갈라놓는다. 용산기지의 사우스 포스트에서 시작되어 이촌동 아파트 단지와 강변북로 상부로 공원의 부지가 마련되었다고 상상하면 이 대상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Winning Proposal
Presidio Point /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Finalist
The Observation Post / CMG Landscape Architecture
Finalist
Your Gateway Park / OLIN
Finalist
Arcs & Strands / SNØHETTA
Finalist
Presidio Gateway / West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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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발의 소리 없는 총성
엔씨소프트 R&D 센터를 이야기하다
동갑내기 조경설계사무소 소장 두 분을 한 테이블에 모셨다. 둘은 같은 시기에 조경학과를 다녔고, 우연이지만 같은 해(2005년)에 오피스를 설립했다. 그리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조경 교육을 받았고, 설계 실무를 익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디자인 오피스를 몇 개월 차이로 오픈했다. 섭외가 끝난 후 맞장구만 난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비슷한 관점에서 동어반복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예상은 다행히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둘은 화법도 상이하다. 고스란히 옮겨야 할까, 조금이라도 정제된 표현으로 (속칭) 마사지를 해야 할까, 고민이 컸다. 이어지는 대담 내용은 그 고심의 어정쩡한 결과물이다. 엔씨소프트 R&D 센터(이하 엔씨 사옥)에서 오전 11시에 만난 우리는 그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게다가 둘은 에디터가 떠난 이후에도 뭔가를 정산(?)해야 한다면서 만남을 이어갔다. 생뚱맞은 제목인 ‘다섯 발의 총성’은 오형석 소장의 코멘트에서 따왔다. 조각 미남의 대명사인 브래드 피트가 ‘머니볼’이란 영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머리에 한 방을 쏠래? 가슴에 다섯 방을 쏠래” 때로는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였다. 비평이든 비판이든 조언이든, 뭔가 이야기를 거들려고 나왔다면 솔직히 서로 느낀 점을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다짐으로도 읽혔다. 오소장은 원래 머리에 딱 한 발만 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모질게 마음먹고…. 이어지는 구구절절한 대화를 끝까지 읽다보면 왜 ‘가슴에 다섯 발’로 타깃이 바뀌었는지 느껴질 것이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니까!
하나, 빗나간 불발탄
안타깝게 (혹은 다행히) 첫 번째 총알은 과녁을 빗나갔다. 불꽃 튀는 접전 없이 둘은 쉽게 의견 일치를 보았다.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피트니스 센터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은 선큰 가든의 색다른 시도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박준서 소장은 건축 설계가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왜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힘든 공간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이라는 부연 설명을 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완벽한 실내 공간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외기에 노출된 곳이다. 문을 여는 순간, 세찬 바람이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곳이다.
오형석(이하 오): 엔씨 사옥은 시작 단계부터 박준서 소장에게 이야기를 지겹게 많이 들었다. (웃음) 그런 과정을 감안하고 보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점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는지도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디자인 코드는 확실히 나와 다르다. 둘러보고 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식물을 전혀 활용하지 않은 지하 1층 피트니스 센터의 선큰 가든이다. 내가 흔히 ‘조경가들의 착한 감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조경 설계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용자들이 조금이라도 생활 공간 가까이에서 쾌적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주려고 골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조경가라고 해서, 자연을 무기로 내세운 디자인만 해야 할까?
당연히 그런 설계가 좋은 디자인이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물론 식물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영감을 줄 수 있겠지만, 식물이라는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피트니스 센터의 선큰 가든은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여기는 지하층이어서 하늘을 곧바로 쳐다 볼 수 없다. 그런데 박소장이 설계한 투명한 물이 하늘을 고스란히 지하로 가져왔다. 순환하고 있는 물이 마치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처리한 점과은은한 조명 연출도 돋보인다. 활동적인 피트니스 센터와 대비되는 정적인 공간이 이용자들에게 분명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외기가 통하는 곳이어서 바람도 느낄 수 있다. 땀 흘려 운동하고 쐬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풀 한 포기 없는 공간이지만, 확실히 색다르다. 바로 이런 디자인을 조경가가 해야 한다. 보기 좋은 나무만 심을 것이 아니라.
2005년 가을, 박준서는 숲을 사람들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인 총체적 삶의 환경으로서의 ‘경관(landscape)’을 구현하겠다는 꿈을 실천하고자 디자인 엘을 설립했다. ‘Link Landscape with Life’가 모토다. 그는 설계가 설계 자체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 공간으로 구현되어야 그 진정한 가치가 발현된다고 믿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박사 과정을수료했다. 삼성에버랜드, 서인조경 등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2005년 봄,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프로젝트그룹을 기반으로 디자인로직을 설립하였다. 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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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R&D 센터
NC Soft R&D Center
얼마 전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다양한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강의했던 이 친구는 요즘 학생들과 함께 국내의 실제 사례 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공간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진정성 있는 조경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 의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조경 공간이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감흥을 끌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조경가들이 너무 새로운 것, 놀라운 것, 유행을 따르는 것 등을 지향하면서 정작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욕심 아닌 욕심에 취해 정작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감흥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이 건물의 외부 공간을 설계하면서 우리가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비록 놀라운 설계 어휘를 쓰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공감하고 정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애쓴 이야기를 여기 풀어놓고자 한다(이 멘트는 도둑이 제 발 저린 연막일 수도 있다)
첫 만남과 재설계
이 공간은 오래전의 PF사업자 공모로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설계는 그 훨씬 이후인 2008년도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작은 썩 좋지 않았다. 처음 건축과 함께 설계를 시작했을 때 외부 공간은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좁았고, 층층이 잘게 나뉘어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수시로 변경되는 건축 기능과 외관때문에 조경 공간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나? 입에 넣었는데 삼켜지지 않는 음식 같은 프로젝트. 평면을 놓고 끄적이고는 있는데 이게 뭘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클라이언트가 확실하게 원하는 게 무어라고 말해주지도 않는 참으로 답답한 설계가 진행되었다. 클라이언트 측에서 요구한 것은 ‘분명한 개념’이었지만 그 분명한 개념이라는 게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그렇게 잘 잡히더니 왜 이 공간에서는 잡히지 않는지…. 그렇게 첫 설계를 매끄럽지 않고 아주 힘들게 마무리 지었다. 당연히 클라이언트도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그냥 무난한 정도로 받아주었다.
조경설계 디자인 엘
건축설계 DMP종합건축사무소
시공 GS건설
조경시공 금강조경
발주 엔씨소프트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668번지 외 2필지
대지면적 11,531.10m2
조경면적 3,242.09m2
완공 2013
- 박준서 / 디자인 엘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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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서발전 신사옥
Korea East-west Power
경사진 대지를 만났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떠오른다. 난감하거나 기쁘거나. 대지가 넓고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작으면 기쁘다. 그러나 대지는 작은데 거기에 앉아야 하는 건물이 거대하면 난감하다. 동서발전 프로젝트는 후자였다. 게다가 건물이 모나게 생겼다.
동서발전 사옥은 비교적 대지의 크기도 작았고, 크게 보면 삼각형에 가까운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두 면은 도로에, 그리고 한 면은 인접 부지에 접한 대지였다. 거창한 설계 개념을 떠올리기 전에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 해결이 과제의 전부였다. 물론 설계라는 행위 자체가 문제 해결의 과정이긴 하지만, 이 경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수준이었다.
경사진 땅에 앉은 날카로운 건물
한국동서발전은 발전소를 건설·운영해 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을 담당하는 곳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튀어 나올 듯한 형태로 건물이 만들어졌다. 물론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과 태도가 역동적인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또한 이 에너지를 국민들이 이용하는 것인 만큼 건물 또한 주민들에게 많은 부분을 열어주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동서발전 사옥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을 가진 날카로운 이미지의 건물이다. 그 평면 형태 또한 역동성 있는 평행사변형을 기본 형태로 가지고 있어서 땅과 만나는 방식이 매우 격정적이다. 우리는 이 다이내믹한 평면 형태가 대지를 온전히 지배하기를 바랐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사선의 형태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자칫 이 공간의 정체성을 오히려 뭉그러뜨리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선이 지배하는 형태를 디테일에까지 철저하게 적용하고자 했다. 건물에서 시작된 사선의 형태는 이 땅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흐름을 방향 삼아 끊임없이 뻗고 꺾였다.
조경설계 디자인 엘
건축설계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시공 현대산업개발
조경시공 현디자인
발주 한국동서발전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222-2 일원(우정혁신도시 내)
대지면적 30,323.0m2
조경면적 7,702.12m2
완공 2014
디자인 엘은 분당에 사무실을 둔 조경설계사무소다. ‘LinkLandscape with Life’를 사무실 작업의 모토로 삼고 그 첫글자를 따 이름 지었다. ‘엘’은 10여명 내외의 설계가들이 모여 작업하고 있으며, 현재 박준서 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올해로 설립 10년째를 맞이하는 ‘엘’은 그림으로만 존재하는설계, 지어지지 않는 설계를 지양하고 실체적으로 구현될 수있는 설계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설계 해법을 찾고 그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경관과 공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 박준서 / 디자인 엘 / 2015년03월 /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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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르치기와 가리(르)키기
“뭐 가르치냐”는 물음에 “설계 가르킨다”고 하자이내 지적이 돌아온다. ‘가르치다’는 (지식이나 기술을)깨닫거나 익히게 하는 것이고, ‘가르키다’는 (무엇을)짚어 보이거나 알리는 것이란다. 맞다. 그런데 설계를 가르칠 수는 있는 건가? 가르친다면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선배들은 손이 좋았다. 그만큼 교육 방법도 명확했던 것 같다. 좋은 드로잉이 좋은 설계로 인정받았다. 그런 설계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숙련이 요구되었다. 칭찬보다는 잘못을 지적하는 훈육을 통해 성장을 유도했다. 도제식에 가까웠다. 오래전부터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뼈대 있는 교육 방식이기도 했다. “발로 그려도 이것보다 낫겠다”면서 밤새워 그린도면을 찢어버렸다거나, “아닌 것 같은데” 한마디에 달포 가까이 고민한 결과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일화들은 이런 교육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
닌 것 같다면 ‘왜’ 아닌 건지? 설계 수업은 교육자의 취향과 경험을 배우는 건지? 같은 질문보다는 “괜찮은데” 정도의 사인을 얻기 위해 교수의 스타일과 취향을 파악하는 선택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의식 있는 설계가로 성장했지만, 어떤 이들은 좌절하고, 어떤 이들은 앙금을 가졌다. 이들 가운데는 갑이 되어, 잘해야 을이나 병인설계가를 좌지우지하는 위치가 되었다.
설계를 배우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설계라는 작업 자체가 녹녹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해야 하고 개인적 시간을 줄여야하는 고단함이 있다. 그 고단함의 대가가 큰 것도 아니다. 자긍심이 이를 상쇄하곤 하지만, 앙금을 가진 갑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게다가 일감마저 줄어드는 상황이 그들을 떠나가게 한다. 이들에게는 절실한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병풍이 되기도 한다. 설계 시장이 불황인데 “설계를 왜 이렇게 많이 가르치느냐”는 말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대학의 커리큘럼이 모두 직무와 관련되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독립적 업이 없는 미학이나 역사, 생태학 같은 과목은 가르치지 말아야하나? 조경 분야가 설계 시장이 어려워지면 다른 부문은 좋아지는 제로섬 게임인가? 혹시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집단을 동원하는 것은 아닌가? 아카데미즘으로서 조경의 지향을 거론하기 이전에 드는 우문들이다. 교육의 성과를 취업률로 평가하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취업을 위해서는 실무에서 요긴한 실시설계, 시공과 적산 등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취업을 위해서는 조경기사가 필수고, 기사 시험에 합격하려면 설계 기법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직까지 기사 실기는 제도판과 T자를 이용한 수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십 년 전부터 해오던 선 긋기, 심벌 그리기, 방위와 범례 그리기, 스케치 등이 지속되고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한다. 학생들은 기법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사고 과정은 생략된다. ‘어떻게’ 그리는지는 알지만, ‘왜’ 그리는지는 모른다. 간혹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을 왜 시키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지만 찻잔 속의 태풍이다. 교육받은 시대의 프레임 안에 있는 교육자와 학생 사이에는 삼사십 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교육 내용은 거의 같다.
늘 실무를 의식한다고 하지만, “실무에 나온 학생들이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오래된 불만은 여전하고, 학교가 철지난 것을 가르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삼사십 년 된 조경 교과서들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조경은 시대 변화와 함께 그 역할과 정의가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시대와 경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조경의 운명이다. 그러나 조경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 교육자는 불편하다. 본질을 가르쳐야지 경향을 가르치려 하냐고 힐난한다. 기본을 탄탄히 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기본이 삼사십년 전의 방법이라면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가교육은, 교육자들이 교육받은 시대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성장해서 활동할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 아닌가. 꿈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수도 꿈을 꾸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설계 교수는 설계 참여를 통해 최소한의 설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설계 교수의 아이덴티티이자 경쟁력이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주당 수업 부담은 많고, 설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않다. 논문보다는 공모전이나 작품 발표, 전문지게재를 통해 실적을 평가받고 싶어 하지만, 공모에 당선된다고 해도 인정 실적은 SCI 논문의 1/10에 불과하다. 설계를 연구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실증적 평가 관행도 건재하다. 게다가 실기 실적이 논문에 비해 수월하지 않느냐는 위협구가 날아온다. 설계 시장에서는 “교육이나 하지 왜 설계에 참여하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그러는 사이 설계가로서 경쟁력은 사라진다. 이미 대학에 오면서 예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는 생각이라고, ‘왜’ 그래야 하는지, 적어도 “아닌 것 같다”면 ‘왜 아닌 것 같은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져보려는 노력이 한낮 학생들을 부추기는 관념의 유희로 치부되는 것은 참담하다. “설계는 답이 없다”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설계를 경험과 취향의 세계로 몰고 간다. 그렇다면 힘센 사람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
거의 모든 교과목이 그렇듯이, 설계 과목이 모두를 설계가로 키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될 수도, 될 필요도,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누구는 좀 더 잘할 수 있고, 누구는 조금 못할 수도 있지만, 열등감과 앙금을 남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젊은 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쳐 공부한 자신의 전공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앙금만을 가진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여러 교과목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왜곡되지 않은 교육이 자긍심을 가지게 해야 할 것이다. 조금 못하더라도 학생의 생각을 읽으려 애쓰고 그 생각이 발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생각이 자의적이라면 논리를 가질 수 있게, 개인적이라면 다수를 위할 수 있게. 그것은 위계적이고 훈육적인 ‘가르치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설계 수업이기에 할 수 있고, 설계 수업이기에 필요하다.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간극을 고민 중이다. 대한주택공사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잠실 한강공원, 화성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 마스터플랜 등의 설계공모에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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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가)의 탄생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건 공부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시험, 입시, 자격증, 학위, 취직, 승진 같은 인생의 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다음부터는 더 하기 싫은 게 공부다. 아주 가끔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하지만 결코 지속가능한 감정은 아니다. 그래도 직업은 못 속여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서 방학 때면 오히려 이 의무감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세미나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일종의 집단 행동을 하곤 한다.
이번 겨울에는 ‘조경의 탄생’이라는 허세 가득한 세미나 제목을 달아놓고 대학원생들과 함께 조경이 근대적 전문 분야의 하나로 성립되던 19세기의 상황과 쟁점을 되짚어 보았다. 허구한 날 조경의 위기 타령을 반복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오히려 위기인 것 같아 거꾸로 조경 태동기의 사정을 살펴야겠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고, 때마침 이 시기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 성과가 최근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이유였다. 대표적인 조경 역사 저널 『Studies in the History of Gardens & Designed Landscapes』 34권 4호(2014년)의 특집 ‘조경(가)의 기원’에 실린 일곱 편의 논문, 그리고 최근 19세기 조경의 역사와 이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의 탐구를 전개하고 있는 조셉 디스폰지오Joseph Disponzio의 글 몇 편을 읽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된 사실史實 몇 가지에는 독자 여러분도 흥미를 느끼실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첫째, 우리가 ‘조경가’로 번역해 쓰고 있는 영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에 해당하는 표현이 적어도 19세기 초 프랑스어에 존재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영국 풍경화식 정원landscape garden을 프랑스에서 유행시킨 건축가이자 풍경화가였으며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장-마리 모렐Jean-Marie Morel이 자신의 새로운 업역을 표현하기 위해 정원사 대신에 건축가를 경관과 결합시킨 합성어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architecte paysagiste’
라는 직업명을 1804년부터 사용했다.
둘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는 프랑스어 표현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1858년의 센트럴 파크설계공모 당선 이후인 1859년, 옴스테드는 사례조사를 위해 유럽의 공원을 순회하던 중 파리에 머물렀고 불로뉴 숲을 여덟 차례 이상 방문했다. 당시 불로뉴 숲의 개선 계획 책임자였던 아돌프 알팡Jean Charles Adolphe Alphand은 불로뉴 숲은 물론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파리의 도시 개조·정비 프로젝트를 옴스테드에게 소개했는데, 그는 파리의 조경국Service de l'architecte paysagiste(Office of the Landscape Architect) 소속이었다. 이 조직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팡의 전임자였던 루이-쉴피스바레Louis-Sulpice Varé가 근무하던, 1854년의 불로뉴숲 도면 직인이 최초다. 따라서 옴스테드는 자신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 지칭되던 1860년대 이전에 이미 파리에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명칭, 그리고 대형 공원과 ‘도시개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의 직무 영역을 인지했을 것이다. 셋째, 1860년 4월, 맨해튼 155번가 위쪽으로 도시를 확장하는 계획 책임자로 옴스테드와 그의 파트너 칼베르 보Calvert Vaux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로 임명된 것이 미국에서 전문가의 직함으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가 명시된 최초의 기록이다. 이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게 주어진 최초의 담당 업무가 공원의 설계가 아니라 도시의 계획이라는 점을 뜻한다. 이제까지는 센트럴 파크 조성책임자였던 옴스테드와 보가 1863년 5월 14일 공원위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그들의 이름 앞에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라고 쓴 것을 첫 기록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몇 가지 사실은 초창기 조경(가)의 전문성과 업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초대한다. 예컨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인 찰스 왈드하임Charles Waldheim은 ‘건축으로서 조경’이라는 글에서 옴스테드는 경관과 건축가의 합성어인 랜드스케이프아키텍트가 랜드스케이프 가드너보다 대중적으로 더 호소력을 지니고, 조경이 정원을 넘어 도시의 계획과 개선을 다루는 전문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며, 건축과의 잠재적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 해석은 논쟁적이다. 조경의 역사에서 건축이나 도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는 용어의 사회적 공인은 이 분야의 업무 영역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오히려 옴스테드를 필두로 한 출중한 전문가들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landscape architect라는 직명으로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성과를 거두면서 사회적인식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19세기 말과 20세기초의 여러 기록에서 조경 전문업profession과 학제discipline의 불안정성을 둘러싼 고민과 논란을 반복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조경(가)이라는 용어의 문제였다기보다는 조경(가)이 다루는 대상과 업무의 정체성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라는 말이 진부해질 정도로 조경의 정체성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겨울 세미나를 마무리하는 토론에서 개진된 의견 몇 구절을 옮긴다. “작은 느낌표와 커다란 물음표를 동시에 얻었다.”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전문분야를 지칭할 적절한 용어를 찾으려 고심하던 옴스테드의 ‘머뭇거림’은 어쩌면 조경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 또 하나는 글쓰기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른 달보다 사흘이나 짧은 2월에 닷새짜리 기나긴 명절까지 겹쳐 에디터들과 디자이너들은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밤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다른 필자들의 글을 다듬고 고치는 건 거의 마무리되었고, 누구나 가장 하기 싫은 일, 자기 글 쓰는 일이 아직 남은 것 같다.
나야 이제 여느 달보다 지루한 에디토리얼을 겨우 끝냈지만…. 야식으로 시킨 치킨과 맥주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