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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시오도메 SIO SITE와 시나가와 센트럴 가든
    도시 재개발 사업과 조경공간의 역할현재 동경에서는 일본의 거품경제 이후 가장 활발한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동경을 세계의 중심도시로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아 국제교류를 유도하고 더불어 장기화 되고 있는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 경기회복을 기대할 목적으로 동경도는 지난 2000년 12월 50년후를 전망한 미래상을 구상하고 실현을 향한 구체적인 사업의 전체상을 골자로 하는 동경구상2000을 책정했다. 일본의 수도로서의 동경은 [고도의 도시기능의 집적을 살리면서 격변하는 도시간의 경쟁에서 앞서가고 일본경제를 견인함과 동시에 세계를 선두하는 국제 도시],[전세계의 사람,물건,정보가 모이는도시]로 자리하고 활발한 경제 문화활동이 전개되는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의 재건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국제도시 동경의 실현을 위해서 누구든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경, 도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동경,선구적인 메세지를 발신하는 동경을 3개의 기본목표로 하고 있다.이처럼 현대도시를 갈망하는 분위기와 정부의 지원으로 각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재개발이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중인 곳이 대부분이다.재개발 붐, 리뉴얼붐의 배경에는 경제불황이 장기화 됨에따라 지가상승의 기대가 무너지고 토지를 매각한 기업과 지주등의 투자자들의 매각심리, IT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오피스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 거품경제 붕괴후의 지가하락에 따른 주거의 도심회귀과 택지 개발업자의 전략등의 요인등도 크게 작용했다.지난 8월호에 소개한 록본기 힐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사례이다. 이번호에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시오도메 SIO SITE와 시나가와 센트럴 가든을 도시개발의 원점에 중심을 두고 소개하도록 하겠다. 시오도메 SIO SITE도심부 최후의 대규모 재개발로 여겨지는 이사업은 31헥타르31ha 라는 광대한 면적으로 A부터I까지 9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구획에 200미터 전후의 오피스빌딩과 호텔,임대주택,분양 맨션등이 건설되고 있다. 시오도메 SIO SITE 재개발 프로젝트는 2002년에 [동경도 계획사업 시오도메 토지구획 정리사업 실행지구]라는 정식명칭으로 시작되었다. 원래 이곳은 철도의 발상지로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으나 1914년 동경역이 개설된후로 화물전용역으로 바뀐다. 그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동경과 지방을 잇는 물류의 교차점으로 재성장을 하지만 1973년 동경 화물터미널의 개업함으로써 국철 민영화가 진행되어 결국은 수년후 폐지되어 민간에게 매각되었다. 이곳은 긴자 (銀座),신바시(新橋)라는 동경의 중심적인 곳에 인접함에도 불구하고 31ha라는 광대한 면적이 10년 이상 방치된 후 1985년에 정비계획이 시작된다. 지권자와 임대업자로 구성된 시오도메 개발협의회가 설립되고 정부가 특별회원으로 가입해 지속적인 조사와 검토를 걸치면서 성장형이 아닌 성숙형 개발, 관민협동에 의한 개발, 프로세스를 중시한 개발, 지속적인 개발 등의 4개의 항목을 걸고 2002년 7월 관민협동형의 재개발 프로젝트로 [시오도메 SIO SITE]가 결정된다.입지조건을 보면 운하를 끼고 하마리큐정원(浜離宮庭園)과 동경만에 인접해있어 역사적인 의미가 큰 지역이기 때문에 동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세부 항목을 정한다. [안전과 안심, 녹음이 풍부하고 쾌적한 지역 개발]을 실현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실시해야하는 것은 각 구역을 연결하는 공유공간, 즉 공공시설정비의 질적인 향상으로 준공후에도 지역전체의 총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운영을 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각 구역별로 자연석을 사용한 보도와 가로등, 지하보도, 수목의 식재 등 환경디자인이 실시되었다. 또 가로와 WOOD DECK등 종전의 관(官)주도로 진행된 환경인플라 정비가 민간협동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도시개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교통체제를 정비 했다. 지하에는 폭 40미터, 길이 450미터의 보행자 전용로가 이어져 역에서부터 지상을 거치지않고 각 건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그 밑에는 약 1km의 지하차도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지상2층의 보행자 DECK를 따라 모노레일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 4층의 입체적인 교통환경을 실현했다. 공공시설의 질적향상으로 인해 추가되는 유지 관리비는 지권자와 협의회가 부담하고 지권자와 주민이 주체가 되어 관리법인을 설립해 창구역할을 함으로써 행정과 협력체제를 구축하여 개발후의 유지에 대비하고 있다.하지만 시오도메와 시나가와 재개발에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록본기 힐즈가 18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서서히 재개발이 진행된것에 비하면 시오도메는 각 회사의 JV(Joint Venture) 형식으로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주최가 되는 회사가 있으면 개발의 컨셉을 세우기가 쉽고 컨셉에 따라 진행시키기가 쉽지만 시오도메는 어느 기업이 어디로 들어갈지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컨셉이 없기 때문에 약 80%정도가 진행되었다는 재개발 프로젝트는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은게 사실이다.또 각 진출기업들은 자신들의 편리를 우선으로 생각하기 쉽고 세부적인 곳까지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빌딩간의 간격이 좁고 이러한 요인에 의해 동경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현재 이 지역은 한여름의 오후에는 초속5-6미터의 바닷바람에 의해 도심부의 달구어진 열기를 식혀주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 각 기업들의 편익에 의해 히트 아일랜드 현상이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호워스 마을
    e-매거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2004년10월 / 198
  • 평창힐스
    · 위치 :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번지· 대지면적 : 11,228.5㎡· 조경면적 : 4,210.32㎡· 시공사 : 벽산건설(주)(대표 정종득, 현장소장 김성제, 설계총괄 구영진, 조경· 담당 : 유홍군·박재영, 토목담당 유윤식)· 조경설계 : 기술사사무소 아텍(소장 이준석, 안상철)· 조경시공 : 청암조경(대표 송호철), 세미조경개발(주)(대표 박병기) 어떤 소재도 도드라지게 시선을 끌지 않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 눈에 익은 듯한 풍경 그리고 주변 자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며 간결하면서도 공간에 깊이를 더하는 녹지….이는 설계자가 공간을 만들어 낸 주요 의도로써 평창힐스의 외부공간에는 선이나 면을 이용한 가식적인 디자인은 볼 수 없다. 느낌을 표현하자면 붓 하나와 검정색 먹물 그리고 여백만으로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주는 수묵화라고나 할까.평창힐스는 넓지 않은 면적이다보니 설계단계부터 시공까지 어려움이 많았다는데, 결국 설계자는 주변 녹지에 연결되는 매력적인 현장에서의 느낌에 따라 화려한 디자인은 자제하고 편안한 공간에 어울리는 수목식재에 주력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배롱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등 입주자들의 기호에 따른 주요 수종을 우선 확정한 후 수종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공간에 도입하여 단지 전체의 통일성과 함께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했으며, 하부 지피류 역시 화려하지 않으면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초종을 도입했다. 뿐만아니라 지형차이가 심해 발생한 건축구조물과 옹벽 등 외부공간 전체의 환경디자인과 색채도 설계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조경가를 통해 조성되었기에 수목과 함께 전체 단지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자칫 아쉬울 뻔한 장식적 요소들이 녹지와 어우러진 곳곳에서 차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초점이 되기도, 배경이 되기도 하며 은근한 멋과 시각적 흥미를 제공한다.step by step진입부에는 모노톤의 대리석 마감에 금장 문양이 새겨진 장식문주와 수형이 돋보이는 배롱나무가 차별화된 단지의 첫인상을 보여준다. 주차장 진입부 좌우측으로 푸른 대나무가 풍성하게 식재되어 있는데, 결절부에는 옹벽을 모두 커버하는 높이의 시원스런 왕대나무가, 주도로를 따라서는 푸른 잎과 거무스름한 줄기가 매력인 오죽이 점토벽돌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오죽의 상단에는 열식한 선주목으로 시선축을 형성하고 시선의 초점부에는 버려질 공간을 활용해 대형 단풍나무를 식재함으로서 시선을 마무리해 주었다.주도로를 따라 단지 내부로 들어서면 조형소나무길과 단풍나무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동 사이사이에 자리한 조형소나무들은 건물의 키를 넘어서지 않는 소담스런 수형으로 몸을 낮추고 있어 저층건물과 어우러지고 있으며, 넓지 않은 동과 동 사이의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며 스크린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단풍나무 쉼터에는 단지내에 동일한 분위기의 우드데크로 특별제작한 휴게용 벤치와 테이블을 놓았으며, 가장 안쪽에 위치한 데크쉼터의 경우에도 대형 단풍나무 그늘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데크쉼터는 필로티를 활용해 만들어진 퍼팅연습장이나 담소를 즐길 수 있는 휴게공간과 연계되도록 하여 다양한 계층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단지의 분위기상 어린이놀이터는 축소하고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단풍나무와 배롱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보다 시원스럽게 조성함으로서 공간활용성을 높였다.건물 모서리 부분은 수목식재를 통해 완화시켰으며, 동 앞에는 조성된 작은 휴게공간에서는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본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영국의 스투어헤드(Stourhead)
    스투어헤드와 헨리 호어 가문 런던에서 차량으로 2시간 정도 가면 스톤헨지가 있는 윌트셔 지방의 스타우어턴 마을에서 18세기 영국정원을 대표하는 스투어헤드를 찾을 수 있다. 스투어헤드 역시 National Trust가 관리하는 영국정원이다. 스타우어턴 마을은 원래 스타우어턴 가문의 터전이었다. 1448년 존 스타우어턴 경이 이 곳에 경계를 치고 공원을 조성하였지만, 1704년 가문이 몰락하면서 1717년 은행가인 헨리 호어가 이 토지를 매입하게 된다. 1725년 헨리 호어가 죽고 아들인 헨리 호어 2세가 20세의 나이로 이 땅을 물려받게 된다. 젊은 시절 헨리 호어 2세는 은행일에 별 관심이 없었고, 이 곳에 머물지도 않았다. 40세가 되면서 은행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스투어헤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1744년에서 1780년까지 정원을 점차 완성해갔다. 그의 개인적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 두 번째 부인은 그의 나이 40세 전에 죽었고, 이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그는 두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은 이태리여행을 하다 천연두로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정원을 만드는 데 온갖 심혈을 기울인 것도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헨리 호어 2세가 정원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는 이태리 여행에서 비롯된다. 그의 아내가 죽자 그는 3년 동안 이태리로 그랜드투어(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문명의 발상지인 이태리로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를 한다. 이 곳에서 이태리 풍경을 그린 클로드 로랭, 니콜라스 푸생, 가스파르 푸생 등의 풍경화에 감명을 받고, 이것들을 수집하였다. 로랭과 푸생의 회화가 포착한 풍경은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이었고, 이 풍경화 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가 가상적인 이미지로 첨가되곤 하였다. 이 화가들의 덕택으로 당대의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되었다. 헨리 호어 2세는 스투어헤드로 돌아온 후 풍경화의 이미지를 정원 속에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클로드나 가스파르의 꿈은 영국 귀족의 소유지 내의 정원 속에 작은 자연으로 되살아났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영국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 속에는 화가의 사인이 들어갈 만 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실제로 헨리 호어 2세는 가스파르와 푸생의 그림을 소유하였고, 정원의 어떤 지점은 ‘매혹적인 가스파르의 그림’을 닮고 있다고 말하였다. 소위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시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원의 입구에서 보는 팔라디오 다리를 지나 판테온을 바라보는 풍경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있는 클로드 로랭의 ‘Coast View of Delos with Aeneas’와 너무나도 유사하다(헨리 호어 2세가 이 그림을 보았는지는 확인 할 수 없다). 스투어헤드 정원의 곳곳에는 18세기 이 곳에서 풍경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전의 풍경화의 이미지는 현재의 정원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풍경화는 정원을 낳고, 정원은 다시 풍경화를 낳았다. 헨리 호어 2세가 죽은 후 손자인 리처드 콜트 호어경이 스투어헤드를 물려받았다. 그는 이 곳을 물려주며 가업인 은행사업에 스투어헤드를 담보로 삼을 수 없음을 유서에 명시했다. 그는 친구인 챨스 해밀톤의 풍경식정원 페인스힐이 사업의 실패로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스투어헤드의 운명을 걱정했다. 콜트 호어경은 정원의 원형을 가능한 한 보존했고, 정원에 액센트를 주는 초화류 등의 식재를 보강하기만 했다. 이후 몇 대를 걸쳐 이어 내려오다 헨리 호어 6세는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이 죽자 1936년 National Trust로 스투어헤드를 기부하였다. 헨리 호어 6세의 부인인 알다는 스투어헤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나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들이 이 곳에서 스스로를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구도 이 곳을 문 닫게 할 권리는 없다. 우리의 후손들도 이 곳을 보고 즐기기를 바란다.” 이렇게 영국 귀족의 개인 정원이 공공을 위해 기부되면서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18세기의 정원을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 중략 … 천의 얼굴, 스투어헤드 호레이스 월폴은 ‘정원술은 시와 회화와 겨루는 자매예술’이라고 했다. 스투어헤드는 문학적 텍스트와 회화적 이미지가 교직되고 있는 대표적인 영국 정원이다. 아울러 스투우헤드는 영국에서 다양한 식물상을 관찰할 수 있는 정원이기도 하다. 스투어헤드는 다양한 얼굴을 지닌 정원이다. 방문객은 각기 다른 관심으로 이 곳을 찾기도 한다. 정원의 식물책을 들고 관람하는 사람들, 지적인 알레고리를 해독하려는 방문객들, 그저 한가로이 산책하는 사람들. 저마다 스투어헤드라는 정원의 두께를 한겹씩 벗겨내며 이 곳에서 머문다. 스투어헤드는 또한 풍경화를 그리기에 좋은 곳이기도 한다. 전경, 중경, 후경의 깊이가 곳곳에 숨어 있고, 자연과 대비되는 건축물이 풍경화 그리기에 좋은 구도를 형성한다. 계절별로 풍경화를 그리는 이벤트도 펼쳐진다. 5-6월에는 화려한 형형색색의 초화류로, 9-10월에는 갖가지 단풍으로 스투어헤드의 모습은 변신한다. 스투어헤드를 찾을 때는 풀발에서 피크닉 준비를 해도 좋을 듯하다. 조 경 진 Zoh, Kyung J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북한산 I-PARK
    · 위치 : 서울시 도봉구 창동 224번지 외· 대지면적 : 86,137㎡· 조경면적 : 27,779㎡· 시행사 : 삼풍물산(주)(대표 우영렬)· 시공사 : 현대산업개발(주)(대표 이방주, 현장소장 허성철, 조경공사담당 조용호)· 조경설계 : 지오조경기술사사무소· 조경식재 : (주)동의종합조경, (주)소쇄원· 조경시설물 : (주)현디자인, 동남산업개발(주)· 수경시설 : (주)동서코퍼레이션 THEME PARK주진입부로 들어서면 단정한 수형의 주목과 정형적 형태의 겹겹의 게이트가 단지 내부로 발걸음을 유도한다.주 동선을 따라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워터파크(WATER PARK)는 말 그대로 물에 의한 공간으로서 water screen이 설치된 휴게공간이나 진입로에서 시선을 끄는 분천, 실개울 등 다양하게 연출되는 수경시설이 감상거리이다. 계류를 따라 조성된 총림은 공간에 볼륨감을 더하고, 주민들의 다양한 행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조성된 포장공간에는 조명열주와 함께 대형목 한 주가 시선을 끈다.플레이파크(PLAY PARK)는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행태를 수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어린이들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시설을 설치하여 창조적 놀이공간이 되도록 했다. 또한 플라워파크(FLOWER PARK)는 꽃을 주제로 한 테마공간으로서 꽃과 연계해 나비가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나비의 서식처를 제공했다. 얕은 수면을 조성하고 기린초, 민들레, 엉겅퀴 등의 식물을 식재하여 곤충생태계가 생성될 수 있도록 했다. 아트파크(ART PARK)는 목재와 푸른 잔디가 주는 부드러운 질감과 정렬된 식재로 고급스러운 경관을 연출하고, 전시행사등의 정적인 문화활동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나무그늘과 데크는 푸른 잔디와 함께 주민들의 일상적 휴식 및 담소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에코파크(ECO PARK)는 인접한 북한산의 식생군집구조를 모델로 한 생태숲으로서 자연형 계류와 풍성한 녹지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단지내의 미기후 조절효과와 더불어 입주민들에게는 자연학습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생태연못은 옥상 우수를 활용한 물 순환시스템을 활용해 더욱 의미가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휘트니스파크(FITNESS PARK)에는 멀티플레이코트와 체력단련시설 및 헬스기구를 배치하여 주민들의 다양한 운동행태를 수용하면서 공동커뮤니티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쌈지쉼터와 부대시설테마파크 외에 북한산 I-PARK에는 각기 다른 계절감을 부여하는 수목이 식재된 쌈지쉼터가 동이 교차하는 4개의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단지의 중심에는 **와 경관조명이 축을 형성하는 이벤트몰이 중심가로로 조성되어 있다.또한 발의 피로를 덜어주는 고무블럭 포장으로 조성된 조깅순환동선 *km가 단지내 6개 테마파크를 연계하고 있어 입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각각의 테마파크를 즐기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했다. 동선의 결절부에는 어릴적 감성을 자아내는 추억어린 동산(knoll)을 조성하고 계절의 변화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화목류, 유실수의 동산을 조성했다. 이처럼 북한산 I-PARK는 단지의 양측만 지상주차로 허용하고 단지 내부는 시원시원한 평면공간으로 활용하여 시설물이나 구조물보다 풍성한 녹지로 조성, 숲과 함께하는 일상생활의 어메니티(Amenity)를 제공하였다. 또한 보행로와 순환로 등을 활용해 단지의 순환체계를 높이고, 투수성 포장과 옥상녹화, 벽면녹화, 인공지반 녹화 등을 적극 도입한 체계적인 물 순환 및 엔트로피 계획으로 환경친화적 주거단지를 지향하고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무안백련지 수상목조조형물 “백련로”
    · 위치 : 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 회산백련지· 규모 : 연방죽 약 100,000평 (기존관찰데크 350M)· 과업대상 : 자연친화적인 수중잔교 목조 조형물 (L=300m,B=2.5-4.5,광장500평)· 설치위치 : 백련지내의 기존 수준잔교 철거 후 기존 관찰(조망)데크 ~소공원· 계획방향 : 기존 설치된 2m폭 육교를 철거하고 육교 폭을 확장하여 자연친화적인 목재교를 설치, 지역 주민 위한 문화공간 및 육교 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행사가 가능한 광장 도입· 계획 : (주)우대기술단 + (주)씨토포스· 설계 : (주)우대기술단 + (주)유니텍홈즈· 시공 : (주)유니텍홈즈 현상공모를 준비하며현재의 대상지에 현상공모가 나기 전에 백련지는 이미 관찰데크가 하나 있는 곳이었다. 워낙 넓은 곳이라 기존의 관찰데크가 있어도 다른 현상공모를 내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았으나, 더 큰 문제는 기존의 관찰데크가 무계획적으로 지어졌으며, 하부의 철제기둥들이 어느 곳에 서있어도 보이고, 높은 난간에 의해 연꽃을 좀더 가까이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었으며, 넓은 백련지위에 사각형모양의 딱딱한 모습으로 그 위엄을 드러낸 목재데크는 연꽃의 부드러운 느낌과 백련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깍아내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개념을 잡으면서그렇게 자연경관을 헤치는 현재의 관찰데크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친환경적인 데크를 만들자!”였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무안백련지를 명소화하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도 실망하고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친환경적 설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연꽃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만질 수 있도록 연꽃의 최적수심을 연구하여 목교의 전체적 높이를 낮추는 등 연꽃의 생리를 설계에 반영하며, 주변난간을 낮추어 눈높이에서도 연꽃을 감상할 수 있게 하며, 목교에 의해 생육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목교 중간중간에 채광창을 계획한 것, 그러면서도 딱딱한 직선이 아닌 연꽃처럼 부드러운 곡선의 데크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계획안을 그리면서계획시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물론 “연꽃”과 “백련지”였지만, 나름대로 잡은 개념을 풀어나가는데 더더욱 중요한 것은 곡선으로 데크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미 아양교 스카이 브릿지에서 입면으로 곡선을 띄는 보행데크를 만들어본 적은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평면적, 입면적으로 모두 곡선형의 데크는 만들어진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해외답사에서도 보아온 데크는 높이가 낮게 되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선적으로 딱딱한 고무적인 데크를 벗어나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계획안을 그리면서 많이 고민되었다.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가자”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내포한 개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접근방법으로 연꽃의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충분히 살리는 것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자연친화적인 소재인 목재를 사용하며, 목재라고 하여 딱닥한 직선이 아닌 개념과도 어울리는 곡선의 선형 사용하면서도 무엇보다도 이전에 시공된 관찰로 같이 높이 떠있어서 구경만 하는 관찰로가 아니라 직접 연꽃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관찰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맨처음 생각을 버릴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계획안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으며, 비록 현상공모이지만 목재데크의 시공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공사 “유니텍홈즈”에 시공적으로 전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문을 구하기도 하면서, 생각만으로 혹은 그림으로만 끝나는 현상공모안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최 신 현 David Choi · (주)씨토포스 대표(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파격, 흐트러뜨림과 바로잡기
    들어가는 이야기, 근정전과 인정전 경복궁의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의 인정전은 반듯한 회랑에 둘려 좌우가 엄정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워낙 궁의 엄격한 범제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궁궐건축으로서 그러한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정전의 조용한 분위기는 반드시 안내자를 따라 단체로 움직여야 하기에 관람객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인한 어수선함이 없어서 우선 그렇고, 또 이렇듯 도심 한가운데에서 현대건축의 숲에 아랑곳하지 않고 낮은 저층건축의 전각 속에서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어서 더욱 그럴 수 있겠다. 한 무리의 관람객이 안내자의 열성어린 설명을 들으면서 지나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우리는 궁이든 절이든 어디에서나 우루루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몰려간다. 그렇게 달려갔다가는 중요한 그림을 만나고는 곧장 그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다른 볼일을 찾아 나선다. 하긴 왕이 지내던 곳에 왔으니 왕이 있던 곳을 보는 것이고 절에 왔으니 부처님 모셔져 있는 곳을 보았으니 목적을 달성한 셈이 아닐까? 그런데 거기에 무엇을 빼 놓았다는 듯이 그렇게 따지고 드느냐고 반문하면..., 안 되지. 절이든 궁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이든 목적한 곳을 눈여겨보고는 그냥 되돌아 나오거나 여기저기 둘러보기는 하지만 눈여겨보지 않는 습관은 많이 손해 보는 일이 될 수 있다. 들어가면서 감상하는 것 못지않게, 한번쯤 뒤를 돌아다보는 습관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늘 인정전에서는 거기에 덧붙여, 문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똑바로 보이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을 이야기해 볼까한다. 궁이든 사찰이든 아니면 상류주택이라 이름 된 옛 건축물을 마주하고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으로는 좌우가 반듯한 대칭의 균형을 지니는 것 같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을 흐트러뜨려 놓은 소위 파격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두고 보통 한국건축에서 발견되는 破格(파격)의 美(미)라고 부르곤 한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보이는 이러한 파격은 문자 그대로 흐트러뜨려 놓은 모습일까, 아니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의 결과일까? 인정문 드날목의 경관 기왕 인정전에 왔으니 들어가면서도 보고 돌아 나오면서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인정문은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기 전에 인정문 처마 아래서 인정전을 한번 관조해 보도록 하자.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해보고, 일단 인정전의 월대에 올라 몸을 돌려 들어오던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인정문 너머로는 바깥의 좋은 나무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남산 한 부분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 옆으로 회랑 울타리 너머로 서울의 고층 건물이 현대도시의 면모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남산 기슭 쪽으로 막 몰려오다가 걸음을 멈춘 듯 서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잠시 현대와 전통이 한데 어우러진 장관을 만나보는 것도 인정전의 이 자리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기회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조경의 과업을 짊어지고 도시의 경관을 책임지는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라고 한다면 인정전에서 내다보이는 이 광경의 아름다움만을 취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이 도시의 경관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중요한 과제를 만난 일임을 생각하게 되리라. 도시의 경관을 적절히 통제하고 질 높은 경관을 유지하는 일, 그건 가로를 차지하고 들어서는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통제와 조절의 일일 뿐 아니라, 상당히 먼 거리에서 영향을 줄 시각경관의 광역적인 안목을 가지고 다루어야 할 것임을 생각하는 계기를 만난다. 이것은 궁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사찰이든 서원이든 또는 다른 여타의 무수히 많은 역사물의 경관보존과 관련되어 주위의 남다른 경관이 어떻게 시각적인 침범을 하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과제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10여 년 전 어느 날, 카메라를 메고 정독도서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매표소 관리하시는 분이 ‘여기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노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청와대 방면으로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그러노라고 했다. 청와대가 아니라 경복궁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사진 몇 장을 찍으려 한다고 사정했더니 정 그렇다면 도서관 관리하는 책임부서에 가서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성가시게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사진촬영은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을 하고는 그냥 구경만 하고 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서관 앞마당 한쪽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새겨 놓은 안내 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정선의 그림에 표현된 인왕산의 진경산수를 실제로 그렇게 만날 수 있음을 친절하게 안내해 준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사정을 한다거나 몰래 어떻게 한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이 되었다. 민주화가 되어서라거나 개방사회가 되어서라거나 하는 이야기도 전혀 아니다. 정독도서관 마당 어느 곳에서도 인왕산이고 경복궁이고 한 귀퉁이나마 바라볼 수 없이 되었다. 정독도서관의 울타리를 높여 놓아서도 아니고 아무도 그 바깥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금지해 놓아서도 아니다. 담 너머 동네의 집들이 삼층 사층으로 치솟아 올라와 있어서. 일석이조의 성과를 두고 흐뭇해 할 것인지, 아니면 미처 그런 일이 생길 것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정독도서관과 인왕제색도의 현장(?)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인정전 월대에서 나는, 역사경관의 보존과 역사물의 관리라는 것이 문화재 주변 몇 미터 반경에서의 규제라는 차원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는 극히 자명한 일을 생각하고, 도시경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를 꿰어 차고 있어야 할 책임과 의무조차 역사경관을 다루어갈 사람들의 몫이어야 할 것을 확인해 보게 된다. 최소한 관람객의 보는 즐거움을 가로막지 않게 한다는 명목 하에서 만이라 하더라도. … 중략 … 이제 원래의 우리 이야기 화제로 돌아오자. 인정전을 정면으로 보면서 인정문 처마에 서서 한참을 관조한다. 인정전의 양 옆 날개 부분에서 파격이 생긴다. 이 파격은 인위적인 파격의 미를 추구하는 일환으로 일부러 한 것이었겠는가, 아니면 다른 피치 못할 여건에 따른 자연스런 처리이며 그 와중에 가장 대칭을 유지할 수 있는 대칭구조의 극치라 일컬어야 할까? 전통조경, 비단 조경이고 건축이고 구분할 이유도 명분도 없이 뭉뚱그려 전통경관에서 비쳐지는 대칭의 구성이며 엄정한 대칭을 피하여 소위 파격의 미를 가져온 구성은 일반적으로 민가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오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를 따라 우리는 곧잘 “대칭이면서 대칭이 아닌”, “파격의 미”를 추구한 것으로 이야기해 오고 있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심심파격, 심심해서 한번 뒤틀어놓은 것과 필연적으로 그리 되어가는 것은 서로 다른 상황임에 틀림없다. 민가에 있었던 것은 그것대로 또 특수한 상황으로써 전개되었겠지만, 일단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인정전이라고 하는 궁의 정전을 두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파격의 추구가 아니라 대칭적 구성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을지 모르는 몇 가지의 기미를 살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기존에 해 온 생각들을 잠시 정리하고 가야할지 모른다. 경복궁 근정전에서도 그랬듯이, 창덕궁 인정전에서도 자연을 어떻게 하지 않고 슬그머니 피하듯 스며들어 가면서 기필코 엄정한 대칭을 이루기 위한 기막힌 처리를 만날 수 있었다. 화계와 담장 그리고 회랑의 처리, 북악의 봉우리에 대칭되는 전각의 구축과 같은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 전통경관으로부터 배우는 친환경적인 처리와 엄정한 원칙의 고수를 위한 여유로운 우회.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만난 고도의 디자인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정 기 호 Jung, Ki Ho·성균관대학교 건축·조경 및 토목공학부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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