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호지 Hoji
    하늘 호 땅 지: 굿모닝 굿나이트 호지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재해석한 공간이다. 호지에는 손님이 머무는 공간인 둥근집, 긴집, 팔각집, 이렇게 세 가지 형태의 건물이 있다. 그 옆에 호지를 운영하는 가족의 집과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 공간을 합해 다섯 개의 건물로 구성된다. 모든 집은 땅에서 허리춤 높이로 떠 있고, 같은 높이의 둥근 길이 다섯 개의 집들과 이어져 있다. 적당한 거리감으로 떨어져 각각이 분리되기도, 둥근 원을 따라 하나로 연결되기도 한다. 가장 편안한 사람과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해질녘 산책을 하거나 아침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는 둥근 원 위를 따라 이웃과 스치며 걷게 되는데, 마치 담이 없는 작은 마을 같다(호지 홈페이지의 소개 글 일부). 건축 이야기 서재원 소장(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의 설계 의도를 정리해보면, 최근 흔히 만들어지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공간과 과한 인테리어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 마을 속 소박하고 겸손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는 호지가 머무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상기하게 하는 동시에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호지의 건물이 주변 집들보다 크면 안 됐고, 세련되기보다는 둔탁해야 했으며, 시골에서 흔히 보던 것이었으면 했다. 시골에서 보이는 창고나 비닐하우스, 원두막은 대게 자립한 오브제 형태가 많은데, 이를 독립된 형태의 건물로 표현했다. 이 건물들이 재현이 아닌,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아주 생경하지 않은, 머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억을 소환하는 정도이길 원했다. 그 결과 건축물은 중립적인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간단한 대칭을 따르는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투박한 외부와 반대로 온통 나무로 덮인 내부 공간에서는 첼로 악기상자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Space』 2022년 12월호 참조). 정원의 방향성: 식물의 터전 건축과 맥을 같이 하고자 호지의 정원은 스타일이나 조형성에 초점을 두지 않고, 생물과 환경, 그 속의 연결과 다양성에 기반을 둔 곳으로 계획했다. 본래 터가 가진 특성과 변화된 환경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식물을 선별해 심었다. 이곳에 뿌린 내린 식물은 곤충, 새, 야생 생물과 함께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새로 심은 식물이 주변 식물과 경쟁, 때로는 공생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계획했다. 새순이 돋아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이 갈변해 떨어지기까지의 모습은 우리의 삶을 닮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호지 정원의 모습도 이들이 살아가는 생의 한순간이다. 그 모습이 아름답든 추하든 그저 삶과 죽음 사이의 과정일 뿐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랐다. 발아래 정원 땅과 물길, 여린 풀들 위로 살며시 놓인 듯한 둥근 길 위에 서면 발아래의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건축이 계획한 떠 있는 둥근 길은 식물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 한 존중으로 읽힌다. 정원에 들어가 좀 더 가까이에서 식물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커다란 원형의 길을 따라 걸으며 주변 풍경과 식물의 시퀀스 변화를 보는 것도 꽤 즐겁다. 떠 있는 둥근 길 밑에는 그늘이 생겨 작은 그늘 식물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주인 집 강아지도 뜨거운 날에는 이 길 밑을 찾는다. 식재 식재 수목 선정 기준은 마을 경관을 이루는 수종과 지역 자 생종이었다. 정원의 구조와 배경이 될 가장 큰 교목은 주변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선정해 주변 과 잘 어우러지게 했다. 그리고 강릉 지역에서 잘 적응 하고 자생하는 수종을 택했다. 예를 들면, 타입 1-마을 경관 수목(회화나무, 이팝나무, 단풍나무 외), 타입 2-마을 경관 수목이면서 독립수(계수나무, 중국단풍, 외), 타입 3-마을 경 관 수목이면서 과실수(자두나무, 감나무, 산수유 외), 타입 4- 지역 자생종(마가목, 개암나무, 참죽나무, 국수나무, 옻나무 외), 타 입 5-지역 자생종이면서 대상지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수종(버드나무, 싸리나무 외), 타입 6-지역 자생종이면서 상 록이며 차폐 기능을 가진 수목 등 마을 경관과 지역 자생종의 기준에 맞는 수종을 선정하고 각 수목의 특 성을 구분해 정리했다. 대상지를 입구 중심으로 봤을 때 오른쪽은 논 경관, 위 쪽은 계절마다 감자, 파 등이 심겨 바뀌는 밭 경관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고려해 초화와 관목을 심었다. 둥근 길의 오른쪽 부분에 논 경관의 연장 요소로서 진퍼리 새와 솔새를 식재했다. 밭 경관을 올려다보는 팔각집, 긴집, 둥근집의 바깥 마당에는 초화 식재를 최대한 줄 이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시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대관목을 심었다. 땅을 잔디와 토끼풀로 덮고자 했는데, 공사비 절감을 위해 씨 뿌리는 방법도 계획했다. 씨를 뿌리는 식재 방 식은 발아가 돼서 자라기까지 물과 잡초 관리에 심혈 을 기울여야 한다. 호지 정원의 핵심인 중앙은 야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식물로 구성했다. 건축의 콘크리트가 가진 거친 질감과 섬세한 식물 잎의 부드 러움이 균형을 이루길 바랐고, 정원이 아닌 자연의 모 습과 더 가까웠으면 했다. 땅의 건습도에 따라 내건성 식물(순비기나무, 매화오리나무, 바이텍스, 붓들레아, 좀새풀, 멍석딸기, 사초류, 톱풀 외), 호습성 식물(버드나무, 골풀, 창포류, 꼬랑사초 외), 그늘 식물(고사리류, 풍지초, 휴케라 외)을 식재했다. 주인집과 가장 가까운 구간에는 허브 식물 위주로 심었다. 물웅덩이: 둠벙 호지의 터는 본래 그늘이 없는, 뜨겁고 매우 건조한 땅 이었다. 토질이 모래 같았고 그래서 물이 빨리 빠질 것 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와 사 초류, 여러 잡풀이 자생하고 있었고 비가 오면 빗물이 며칠을 빠지지 않고 고이는 구간이 있었다. 지하수위가 매우 낮아, 비가 올 때 순간적으로 지하수위가 높아지 며 물이 고이게 되는 현상으로 보였다. 모래 성질의 흙 은 물을 쉽게 빠지게 하는 만큼 물이 거꾸로 타고 오르 기도 좋았던 것이다. 방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비가 많 이 오면 물이 열흘 이상 차 있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 스럽게 물이 고이도록 일부 구간의 땅을 꺼트려 물이 담기는 그릇, 즉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물이 찬 웅덩이 의 모습은 주변 농경지에서 볼 수 있는 ‘둠벙’ 같기도 하다. 자연으로의 정원 호지의 건축주는 숙박 시설을 지으며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인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지 않았다. 건물의 수와 배치뿐 아니라 대지의 중앙 공간을 자연에 양보했다. 그로 인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더 많은 가치를 얻었다 고 생각한다. 호지 정원은 점차 힘의 질서에 따라 자연의 모습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배식 계획의 아름다움 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통제와 가꿈이 필요하 겠지만, 특별한 형태를 만들지 않았기에 조성 초기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쓸 이유도 없다. 강한 것은 억제하 고 약한 것은 도와주며 균형을 잡아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호지 정원에는 조명이 없어 밤에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에서 쏟아 지는 듯한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오현주, 이범수 안마당더랩 소장 조경 설계 안마당더랩 조경 시공 안마당더랩 건축 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위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길 78 대지 면적 3,361m2 건축 면적 436.86m2 조경 면적 2,924.15m2 완공 2022. 6. 사진 박성욱, 진효숙 안마당더랩(Anmadang The Lab)은 이범수, 오현주가 2016년 설립한 디자인 작업실이다. 소속 디자이너들과 함께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시공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따르고 여러 가치를 존중하는 설계를 통해 균형감을 잃지 않는, 선명하지만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가려 한다.
    • 안마당더랩
  • 하도문 속초 Hadomun Sokcho
    모든 것의 처음, 목련 하도문 속초는 카페와 스테이가 결합된 자연친화적 휴양복합시설이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15분 이상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속초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시원한 오션뷰나 장엄한 마운틴뷰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시골 마을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대신 예전 땅 주인이 딸을 낳은 후 집 주변에 심었다는 십여 그루 중 유일하게 30년 넘는 세월을 버티고 살아 남은 거대한 목련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구상 최초의 현화 식물인 목련이 지닌 원초적 매력은 서울 토박이 건축주를 이곳까지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도 6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후 처음 수행한 프로젝트이자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 강원도에 만드는 공간이기에 더욱 애정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상승과 하강의 시퀀스 프로젝트명인 동시에 초기 공간 이름을 매그놀리아(Magnolia)(목련)로 정했던 만큼 모든 계획의 방향은 목련 중심으로 결정됐다. 진입도로와 접한 남쪽을 제외한 바깥은 야트막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부지 위로 중정을 품은 ㄷ자 모양의 건축물이 얹혔다. 목련을 그대로 두고 바닥 레벨이 결정되어 도로와 약 6m의 높이 차가 생겼고, 대중교통과 도보로 접근이 어려운 곳에 위치한 만큼 최대한 많은 주차 공간을 확보하다 보니 3m 높이의 옹벽과 계단이 생겼다. 여기에 목련의 뿌리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60cm 높이의 툇마루까지 더해져 이동에 불리한 요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를 적절히 활용해 감각의 밀도를 압축적으로 높여 나가고자 했다. 멀리 돌아가도록 조성된 진입로에는 디딤석을 놓아 걷는 속도를 늦추고, 툇마루와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가려져 있던 빗물 정원이 보이도록 했다. 카페 창과 정원 사이로 난 회랑을 따라 걸으며 부지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야 건물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독채로 운영되는 2층 스테이의 문을 열고 현관을 지나 내부의 꺾인 계단을 오르다보면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자그마한 중정이 반겨주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1층과는 다른 시선으로 창 너머의 목련을 마주하게 된다. 발 아래로 빗물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노천탕과 이어진 테라스 정원이 나타나 상승을 통한 극적 체험의 시퀀스가 완성된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신준호 연수당 공동대표 조경 설계 연수당(신준호) 조경 시공 연수당(신준호, 조현철), 마이조경(김명윤, 손호성), 서권식, 강문권 건축 설계 정초이웍스(정대건, 최수희) 건축 시공 우리마을A&C 위치 강원도 속초시 하도문길 50 대지 면적 1,590m2 건축 면적 412m2 연면적 525m2 완공 2022 사진 권보준, 신준호, 박선영 ‘자연스럽게 심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연수당(然樹堂)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름다움의 원리를 탐구하며 지속가능한 공간을 계획하고 만드는 집단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떠돌며 다양한 생명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연수당
  • 와온 Waon
    휴가차 제주에 오는 방문객의 목적은 대부분 비슷하다. 각박한 생활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함이지 않을까. 조금 더 나아가면 도시 생활의 피로함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 조천읍 함덕 해변, 마을 안쪽 골목길 끝에 자리한 제주 돌집 ‘와온’은 치유를 테마로 한 스테이다. 지친 삶을 치유할 수 있는 테라피 스테이로 설계됐다. 처음 방문한 대상지는 여느 제주 돌집과 마찬가지로 안거리와 밖거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외부 공간은 크게 진입 정원, 중정, 안거리의 후정, 밖거리의 후정으로 나눠볼 수 있었다. 골목을 지나 대문을 열면 보이는 진입 정원을 지나 안거리와 밖거리로 들어서는 구조였다. 안거리와 밖거리 사이에는 건물 크기만큼의 중정이 있었다. 건축 계획에 따라, 스테이 안거리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침실과 주방, 욕실로 구성된 컴포트하우스가 되었다. 밖거리인 테라피하우스는 치유와 회복을 하는 온탕과 사우나, 차를 즐기는 다실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치유와 회복이라는 테마가 명확한 만큼 정원도 테라피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며 진입 정원과 중정을 허브로 가득 채웠다. 수종은 단순하게 티트리, 로즈마리, 타임을 선택했다. 대문을 열면 군식된 티트리로 인해 눈앞 가득 초록을 마주하게 된다. 티트리 하부에는 제주의 돌을 배치하고 크리핑 로즈마리, 고사리를 식재해 제주의 자연 소재를 기반으로 한 티트리 숲을 조성했다. 티트리 숲을 지나면 탁 트인 시야 아래로 로즈마리가 가득한 허브정원이 나타난다. 중정인 허브정원에는 높이 2m 정도 되는 호주아카시아를 심었고, 그 외 키 큰 나무는 심지 않았다. 컴포트하우스와 테라스하우스의 창을 통해 봤을 때 답답하지 않은 경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중층 식재로 로즈마리를, 하층 식재로 크리핑 로즈마리와 타임을 심었다. 모두 사계절 내내 초록을 유지하는 수종으로,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초록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송이슬 듀송플레이스 소장 조경 설계 듀송플레이스 조경 시공 듀송플레이스 건축 설계 지랩건축사사무소 건축 시공 진용건설 위치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181 면적 304m2 완공 2019 사진 이병근, texture on texture 듀송플레이스는 자연 소재를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조경 디자인·시공 회사다. 현장을 직접 마주한 뒤 콘셉트와 기능, 아름다움을 고려해 그곳만의 오롯한 분위기를 설계해 만들고 유지하고자 한다.
    • 듀송플레이스
  • 월령지헌 House of the Moon
    마을이 반달 모양이라서 이름 지어진 월령리는 선인장 군락지로 유명하다. 월령리 마을 안 좁은 골목길 끝에 월령지헌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고목이 입구에서부터 반겨준다. 옛 돌집을 밝은 색감으로 마감하고 개조한 스테이 내부는 고재와 빈티지 가구로 가득 차 있다. 스테이 내부처럼 외부 공간도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도록 꾸렸다. 기존의 큰 나무와 선인장이 가득한 옛 모습을 보존하고, 새로운 수종인 호주아카시아와 유칼립투스, 그라스를 심어 항상 푸르고 따뜻한 분위기의 정원을 조성했다. 긴 골목을 따라 펼쳐지는 제주 경관을 감상하며 스테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여느 제주 풍경이 아닌 이국적 경관이 펼쳐지도록 제주도에서 흔히 쓰지 않는 수종을 선택했다. 올리브나무, 호주아카시아, 유칼립투스 등 채도가 낮은 수종을 심어 무겁지 않으면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나무들은 상록수지만 국내에서 많이 쓰는 수종과는 색감과 톤이 다르기 때문에 정원을 처음 마주보는 사람들에게 낯선 느낌을 주기에 좋다. 하부에는 그라스와 허브를 식재해 이국적 이미지를 극대화했으며, 선인장이 가득했던 후면 담장에는 유카를 심어 제주의 경관을 적절히 섞어주었다. 스테이 외부 공간을 조성할 때 유념하는 것 중 하나는 머무는 동안 다양한 경관을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채 스테이의 경우, 대부분의 시간을 스테이에서만 보내기 때문에 외부 공간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한다. 월령지헌의 경우 제주 마을의 골목을 지나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주다움과 다른 이국적 정원을 마주할 수 있도록 했고, 중정의 잔디를 지나면 제주 돌담과 선인장 등 제주의 경관을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두 개의 정원을 이어주는 건 중간에 위치한 잔디와 전체를 아우르는 그라스들이다. 평편한 잔디는 두 경관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경관이 되며, 하층에 심긴 그라스는 서로 다른 두 경관을 하나로 묶어준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송이슬 듀송플레이스 소장 조경 설계 듀송플레이스 조경 시공 듀송플레이스 건축 설계 탠크리에이티브 건축 시공 탠크리에이티브 위치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1길 13-5 면적 575.88m2 완공 2021 사진 최윤정
    • 듀송플레이스
  • 퍼즈 글램핑장 Pause Glamping
    자연을 만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의 하나로 노숙을 꼽을 수 있다. 몸과 자연을 구분하는 집이라는 두터운 보호막을 걷어내고 맨몸으로 이슬을 맞는 노숙(산악인들은 비박이라는 전문 용어를 쓴다)은 자발적이고 적절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실행해 보고 싶은 로망이다. 온전히 자연 속에 머물면 내 몸의 모든 신경망을 총동원해 살아 숨 쉬는 야생의 세밀한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 문명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배제되므로 자연스럽게 내 유전자에 숨어 있던 호모 사피엔스적 본능이 발현된다. 글램핑 미니멀(minimal) 캠핑은 노숙에 가까운 체험을 현실 속에 구현한 것이다. 최소한의 장비로 자연 속에 머무는 경험이며, 불편을 담보로 자연에 한 발 더 깊숙이 다가서는 것이다. 반면 이른바 맥시멀(maximal) 캠핑은 거주와 캠핑의 현실적 타협판이다. 가족과의 동행, 비교적 편안한 잠자리, 멋진 저녁 식사, 낭만적인 ‘불멍’을 포기할 수 없기에 모터 홈이나 캠핑 트레일러 혹은 글램핑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미니멀이든 맥시멀이든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자연과의 경계는 비교적 가벼운 외피만으로 구분되고 자연 속으로 일보 전진하게 된다는 점은 유사하다. 대상지는 전형적인 개발 예정지의 모습이었다. 늘 그렇듯 평지는 ‘개발’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지형이 변하면 기존 식생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수년간 방치된 탓에 천여 평 남짓한 부지에는 주변에서 날아온 종자들이 발아해 드문드문 자라나고 있었다. 대상지는 거칠었으나 주변은 소나무 숲으로, 또 멀리는 큰 산으로 둘러싸인 입지가 좋았다. 글램핑은 적절한 투자로 대상지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클라이언트와 조경가의 의기투합이 시작됐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 조경 설계 및 배치 계획 디자인 스튜디오 loci(박승진, 최상민, 오지훈, 고희선) 조경 시공 티시그린 텐트 디자인 및 시공 피스페이스 위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송내길 89-52 대지 면적 5,000m2 규모 객실 10개 동(1개 동 30m2) + 지원 시설 설계 및 디자인 감리 2021. 5. ~ 2022. 6. 완공 2022. 6. 사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백순환 디자인 스튜디오 loci는 작은 설계 회사다. 푸른 별 지구, 우리가 사는 곳곳, 자연과 도시와 정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통의동 브릭웰 정원, 오목공원 리노베이션 등 사람과 자연을 잇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 디자인 스튜디오 loci
  • 언바운드 The Unbound
    모험적인 도시 탈출 언바운드(The Unbound)는 암스테르담 변두리에 위치한 리조트다. 웰니스 시설로 계획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오두막과 외부로부터 격리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외부 공간을 조성했다. 리조트는 경관과 함께하고, 자연을 관찰하고, 음식을 만드는 활동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됐다. 언바운드는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갑갑한 도시를 탈출할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자연을 더 가까이 느끼고 보다 청량한 녹색 여가 공간을 만끽하는 곳이다. 광활한 녹지 2007년 암스테르담 시는 하를레메르메이르(Haarlemmermeer) 운하, 할프베흐(Halfweg), 하를레메르베흐(Haarlemmerweg) 도로 사이에 있는 네 개 간척지를 독특하고 다기능적인 도시 농업 및 휴양 지역인 타위넌 판 베스트(Tuinen van West, 서쪽의 정원)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도시 전역에 펼쳐진 이 거대한 녹지는 생태적 가치, 생물 다양성,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강화하고 암스테르담 주민들을 위한 탄력적인 자연 휴양지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황무지의 변화 타위넌 판 베스트의 정원과 채소 및 과일 밭 사이에 황무지가 있었는데, 이곳을 언바운드로 탈바꿈시켜 지속 가능한 땅으로 만들었다. 언바운드는 야외 활동을 즐기고 도시와 인접한 곳에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언바운드는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의 여가 활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환경 미개발 문화 경관을 지닌 대상지를 호수, 습지, 구릉 등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 활기찬 자연환경으로 탈바꿈시켰다. 언바운드는 새로 만든 호수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호수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낸 덕에 많은 양의 흙이 발생했는데, 이 흙으로 오두막 주변에 언덕을 만들었다. 이 언덕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사적 공간을 선사한다. 정원에는 대상지를 둘러싼 농장들과 어우러지도록 지역 자생종을 심었다. 리조트 안 채소밭은 레스토랑에 신선한 식재료를 제공해준다. 호텔과 연결되는 입구, 사우나 시설이 있는 호수, 마을 광장이 있는 오두막 숲, 야외극장이 있는 웰빙 숲, 운동 공간이 있는 웰니스 숲, 행사장, 놀이터, 채소밭 등 각기 다른 공간이 고유 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나무들을 식재했다. 이 공간들은 다양한 경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디자인 접근 방식은 다양한 유형의 초목이 생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서로 다른 공간을 유기 적으로 연결한다. 자연이 본래 모습으로 번성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 두기도 했다. 그 덕에 언덕에는 야생화가 무성하게 자 라고, 오두막 사이에는 풍성한 식물 군락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다양한 토착 식물과 나무를 심어 식물 다양 성을 강화하고 야생 동물, 조류, 곤충이 모일 수 있도록 했다. 틀 커다란 나무는 호수 옆에 위치한 호텔과 이어진 입구 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오두막 숲과 호텔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은 호수에서는 카누를 타고 수영을 할 수 있다. 호수 위에 사우나가 있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호수 주변에는 커뮤니티 건물을 중심으로 몇 개의 작은 오두막이 있고 오두막 각각에는 개별 테 라스가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정원은 야외극장과 요가 수련장이 있는 웰빙 숲으로 이어진다. 전체 공간을 연결하는 산책로가 행사장으로 이어진다. 행사장은 결혼식과 축제를 개최하기 안성맞춤인 공간 이다. 인접한 놀이터는 흥미로운 놀이 요소가 가득하고 어린이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Landscape Architecture Felixx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 Team&Partners Michiel Van Driessche, Marnix Vink, Deborah Lambert, Thijs van der Zouwen, Maria E. Castrillo, Klaudio Ruci, Steengoed, Freelodge, Studio Appelo, Dorens Architects, Flora Nova Client Steengoed Location Amsterdam, The Netherlands Area 4.9ha Completion 2020 Photograph Symmedia, Michel Claus, Felixx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 펠릭스(Felixx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는 2014년 로테르담에 설립된 사무소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나은 환경 조성법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역성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고, 공간 연구, 경관 변화 전략, 마스터플랜, 공공 공간 및 제품 설계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과 자연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접근한다. 펠릭스는 상상 속 캐릭터에서 따온 이름이다. 평범한 영웅인 펠릭스는 세상을 여행하며 행복한 환경을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다.
    • Felixx Landscape Architects and Planners
  • 롯데캐슬 리버파크 시그니처 Lotte Castle Riverpark Signature
    대상지는 영동대교북단고가 바로 옆에 있으며, 주변에는 낮은 상가와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따라서 고층 주동(24~35층)으로 계획된 롯데캐슬 리버파크 시그니처가 들어서면 자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됐다. 걸어서 10여분 정도면 한강과 뚝섬유원지 같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도 있는 곳이다. 대상지는 세 면의 상가동이 단지를 감싸는 형태로 배치되어 외부에서의 접근성이 높다. 이 접근성을 고려해 외부 경관 특화 계획을 세우고, 주출입구에서 중앙 광장까지 이어지는 공간을 통합적으로 설계해 연계성 있는 경관을 조성하고자 했다. 동마다 다른 특성을 부여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조경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미술관 같은 단지를 만들기 위해 차분한 색채를 사용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티하우스와 거울분수를 설치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카페아트리움 단지 주출입구에 들어서면 문주목으로 식재한 커다란 소나무와 웅장한 석가산, 초화와 이끼로 조성된 암석원이 방문객을 반긴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좀 더 걸으면 중앙광장인 카페아트리움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입구에서부터 출발한 뜰의 흐름이 병풍처럼 펼쳐진 산수정원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조성했다. 간결한 직선으로 현대적인 분위기를 내는 복층형 티하우스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자연을 품은 예술 작품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티하우스에서 뻗어 나와 물 위를 가로지르는 스카이데크를 따라 걸으면 폭포와 자연의 청량함을 피부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티하우스 내부에 놓인 테이블에 앉으면 검은 화강석 석재로 마감한 거울분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거울분수 수면에 반사된 석가산, 소나무,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선사한다. 검은 화강석 위에 놓인 나무들의 모습은 갤러리에 전시된 미술 작품을 떠오르게 해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한 풍경과는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글 이계풍 윤디자인스케이프 부소장 장상복 롯데건설 토목팀장 사진 유청오 조경 설계 이음조경설계사무소(기본설계), 윤디자인스케이프(특화설계) 시공 롯데건설 조경 시공 정한조경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놀이 시설 드림월드 위치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236번지 일원 규모 878세대 대지 면적 31,438.90m2 조경 면적 11,420.67m2 준공 2023. 6.
    • 윤디자인스케이프+롯데건설
  •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 크기를 줄일 수 있을까?
    지난 글에 이어 제도가 우리가 사는 도시의 ‘크기’에 관여하는 방식과 결과를 축소도시 문제를 통해 다룬다. 대도시 원도심,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는 적어도 1980년대부터 나타났지만 정책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지방 소도시들이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의 위기에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 것은 매우 최근이다. 그런데 인구 감소가 왜 문제일까. 더 정확히 묻자면, 도시 공간에서 인구 감소는 왜 문제인가. 세금 낼 인구가 감소하면 도시의 재정 재원도 줄어드는데 도로나 공공시설 등 이미 만들어진 도시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동일하다. 늘어나는 빈집을 관리하고 운영 수입이 감소한 시설을 보조하기 위해 어쩌면 비용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결국 지자체가 파산하거나 최소한의 유지·관리를 포기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또한 온갖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고 향유할 수 있는 도시적 기회는 물론 의료와 보살핌, 교육, 치안과 같은 기본적 사회 서비스를 누리기 어려워질 것이다(그림 2).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이 들어갈 것이고, 이는 장차 매우 큰 사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인구 감소로 인한 이러한 위기는 단순히 인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인구가 성장하던 (또는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던) 시기에 조성된 도시의 과도한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1 그럼에도 2022년 제정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비롯해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제도와 정책은 인구수에만 주목하고 인구 대비 도시의 크기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 도시는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옷’이 되어버렸는지(그림 3), 줄어드는 인구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기 어려운지, 도시 제도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적’ 도시계획의 회계분식,사회적 인구 증가 지난 연재에서 수용 인구를 기준으로 신도시의 용도별 적정 토지 면적을 ‘과학적’으로 자동 산출하는 플로 차트를 실었는데,2 이 ‘도시 면적 계산기’는 신도시 계획뿐 아니라 모든 도시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다.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 수립된 OO시 ‘2020 도시기본계획’에서는 2020년 OO시 인구를 15만 명으로 예측하고 이 인구를 ‘적정’하게 수용하기 위한 주거, 상업, 공업, 녹지 등 용도별 도시 지역 면적을 산출한다. 이 면적에서 기존 도시 내 각 용도별 면적을 제하면 2020년까지 이 도시에 더 필요한 도시 지역 면적이 된다. 이 필요 면적을 어디에 개발할지 정하는 것, 대표적으로는 ‘시가화 예정 용지’를 설정하는 것이 도시기본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다. 2023년 5월 기준 OO시 인구는 9만 6,700명으로 ‘2020 도시기본계획’의 계획 인구 15만 명은 고사하고 계획을 수립하던 당시 인구 10만 9,400명에서 12%나 감소했다. 반면, 도시 면적은 30km2에서 35km2까지 늘었다.3 ‘2020 도시기본계획’은 2020년쯤에는 15만 명이 적정하게 살기 위한 도시 면적을 38km2라고 했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15만 명을 목표로 하는 도시계획이 꽤나 착실하게 실행된 것이다. 그러나 인구는 오히려 줄어든 탓에 결과적으로, 숫자로만 보자면 그 적정하다는 수준보다 1.2배 큰 도시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적정 도시 크기 설정의 오차는 인구 예측에서 비롯된다. 도시기본계획의 목표 년도 계획 인구는 해당 도시의 인구 구조(성별, 연령)를 기초로 산출되는 인구의 자연 증감과 도시 간 이주 예측에 따른 인구의 사회적 증감을 합산해 산출된다. 여기서 많은 지자체는 ‘희망’일 뿐인 사회적 인구 증가를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근거로 ‘도시 면적 계산기’를 돌려 도시계획을 수립한다. OO시는 ‘2020 도시기본계획’ 수립 당시에도 이미 1980년대 중반 인구 정점을 지나 20년 간 지속적으로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당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규모의 외부 인구 유입이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채택하고 미래의 도시 크기를 재단했다. 인구는 감소함에도 도시의 크기를 더 크게 만들 ‘과학적’ 근거로서 도시계획 계산기의 산출값을 인정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도시 제도다. 도시기본계획에서 목표 년도의 인구를 추정하는 기준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군기본계획 수립지침’에 근거하는데, OO시처럼 사회적 증가를 부풀려 도시 지역 면적을 과도하게 계획하는 폐해가 만연해왔다.4 최근에야 인구 추정에서 사회적 증가를 보조적으로 적용하라는 지침 개정이 이뤄졌지만 너무 늦었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국내외 여러 연구는 축소도시 또는 도시축소를 쇠퇴 도시, 도시 쇠퇴와 구분해 정의한다. 대체로 축소도시란 인구와 사회경제적 활동의 쇠퇴로 주택, 공공시설 및 도시 기반 시설의 실질적 이용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과거 성장기에 공급한 도시의 물적 자원이 과잉인 상태에 이른 도시를 말한다(구형수 외,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 이 글에서는 도시의 ‘크기’를 단순히 도시의 면적, 즉 시가화 면적만이 아니라 그 안의 도로와 공공시설, 주택을 비롯한 민간 건축물 등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물적 자원의 규모로 규정하고자 한다. 2. 유영수, “제도, 도시의 크기를 정하다 1”, 『환경과조경』 2023년 5월호, p.104, 그림 1. 3. OO시 통계연보, 인구 및 용도지역 면적 통계 4. 구형수 외,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디자인 엘
    요즘 우리는 편안해졌다. 사무실 시작할 때 꿈에 부풀어 온갖 열정을 쏟아 내던 때가 있었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 들어갈 정도로 말야. 하지만 그 열정으로 타오르던 때조차 늘 마음 한구석엔 불안이 숨겨져 있었어. 이러다 내가 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어. 마치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 같은 내 모습을 마주한 거지. 정말 열심히 하고 주변에서 잘한다고 해주는데도 계속 헛디디며 한 계단도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듯한 허망함과 절망감이 들었지. 와, 정말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니까. 아마 그때 우리를 본 사람들은 엘이 이제 막을 내리겠구나 싶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말야. 하지만 우린 막을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훌쩍 담을 넘어버린 듯 여유 있게 지내고 있어.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말야. 기적이 일어났냐고? 그런 건 없어. 기적 같은 거. 그런 건 방관자처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비치는 불연속적 이벤트의 자기 해석일 뿐. 우린 우리의 힘으로 지금에 이르렀어. 사실은 특별한 힘 같은 것도 없었어. 그저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켰을 뿐, 그리고 주변의 관심에 대한 기대를 접어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었지. 그 얘기를 해보고 싶어. 화려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지만 꾸준한 근면함이 만들어 놓은, 잔잔한 호수 같은 평온함에 다다른 이야기. 엘을 성장시킨 프로젝트 석정과 노을 2016년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은 기획이 좋았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방관만 하다 참가하게 된 거야. 정원박람회라는 게 여기저기 생기더니 듣도 보도 못한 쇼 가든–전시정원이란 게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게 뭔가 싶었어. 정원이란 공간도 낯선데 그걸 전시용으로 만든다고? 나처럼 앞뒤 꽉 막힌 사람에게 그건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지. 근데 그때 비슷한 고민을 하던 기획자가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에서 골목길을 전시 공간으로 삼고, 골목길 곳곳의 빈 땅을 찾아내 그걸 쇼 가든 대상지로 준 거야. 이건 말이 된다 싶었지. 이건 맥락이란 게 있잖아. 난 그중 서쪽 입구에 있는 빈 땅에 ‘석정’이란 걸 만들었어.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오다 잠시 걸터앉을 정원이었어. 반응이 괜찮았어. 근데 대상을 받을 줄은 몰랐지. 이후 이렇게 삶이 영위되고 있는 공간을 쇼 가든의 대상으로 삼는 정원박람회가 몇 번 더 기획되더라. 2019년에 참여한 서울정원박람회 동네정원도 비슷한 기획 의도로 구성된 경우였어. 하지만 이때는 사실 쇼 가든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나간 것이었어. 그때 난 지독한 암흑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었거든.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멍하기 일쑤고, 시간을 보내는데 일은 진척되지 않고, 밤이면 잠도 못 이루는 날이 많았어. 사람들과의 연락도 거의 끊고 지냈지. 뭐라도 해야 살겠다 싶었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싶었고, 땀을 흠뻑 흘려야겠다 싶었으며 ‘도전’이라는 불구덩이 속에 날 던져 넣어야겠다 싶었지. 내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친구가 심사위원으로 있던 자리에서 머리 숙여 프레젠테이션하고,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랑 같은 조건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했었어. 다행히 그 일을 마칠 즈음 난 웃을 수 있었어.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정원도 ‘노을’이 주제였다. 어쩌겠어. 이젠 뜨는 태양에 대한 희망보단 지는 노을에 묻은 땀이 더 끌리는 나이인걸. 트렌덱스 정원 어느 날 소식이 없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 자기네 회사에 있는 데크가 낡아서 수리했으면 하는데 조언 좀 해달라며. 말만 들어서 알 수 있나. 현장 한번 보자고 했지. 가서 봤더니 물류 창고들 한편에 지어 둔 3층짜리 낡은 사무실 건물, 그리고 옆에 향나무, 소나무가 잔뜩 심긴 손바닥만 한 정원이 늙어 가고 있었어. ‘친구야, 이게 데크가 문제가 아닌 거 같다’라고 한 게 내 조언이었어. 그 일이 인연이 된 건지 새로 온 그 회사의 대표가 정원을 ‘이번 참에 잘 만들어 봅시다’고 하길래 열심히 그림을 그려 드렸는데, 자꾸 사무실 건물을 맘에 안 들어 하시는 거야. 그러더니 한 일년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며 연락이 왔더라. 정원만 잘 손봐도 좋았을 텐데 건물마저 새로 짓고 정원도 새로 짓게 된 거지. 수많은 보고야 뭐 당연한 절차였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건 시공 막바지 한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5월 햇살 아래서 땀 뻘뻘 흘리며 꽃 심은 일이었어. 어찌나 몸 쓰는 게 좋던지. 순간 내가 농부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거 아닌가 싶었다니까. 이 일도 마무리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내 친구는 지금도 가끔 나한테 전화해서 얘기한다. 새로 지은 건물보다 이 조그만 정원이 더 좋다고. 직원들도 이 정원이 해마다 더 좋아지는 게 참 신기하다며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말야. 진짜겠지? 용인공원 내겐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 마누라 같은 곳이 바로 이곳 용인공원이야. 벌써 10년 넘게 (가만있자 내가 처음 여길 드나들기 시작한 게 2009년이니 벌써 14년이네) 이곳의 일을 해오고 있으니 참 오랜 인연이지. 이곳은 공동묘지야. 말이 공원이지 사실은 공동묘지인데 어느 날 갑자기 공원이라는 법정 명칭을 달게 된 곳이지. 공원이란 말도 어쩌면 ‘공동묘지’의 낯설고 어두운 느낌을 조금이라도 중화시켜 보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하지만 난 이곳이 좋았어. 처음 소개를 받았을 때는 그냥 내 포트폴리오에 넣을 독특한 프로젝트를 하나 하는구나 싶었거든. 근데 첫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야말로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명분에 잘 맞는 곳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여기가 그럴 수 있는 곳 아닌가 말이야. 마치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처럼 생각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남아 활발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아닌가 말이야. 어쩌면 내 평생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쫓겨나지만 않으면. 첫 작업은 낡은 사무실 건물과 폐허 같은 식당을 헐어 내고 방문객과 유족을 위한 건물과 그 주변을 구상하는 거였어. 조경가에게 건물을 포함한 경관을 구상해 봐 달라고 부탁한 거지. 우리가 제안한 것은 용인공원의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 투과성 높은 단층의 낮은 건물과 그 앞뒤 너머를 활용한 공간들이었어. 좋아해 주더라. 그게 모티프가 되어서 실제 건축가가 디자인을 이어가며 진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와 긴 인연이 시작된 거야. 그 후 우리는 용인공원의 많은 일을 수행했지. 짓다가 중간에 설계하게 된 봉안담 영역인 하늘담재, 박목월 선생의 묘를 기점으로 만든 박목월 문학정원, 용인공원 환경계획 등등. 게다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묘 디자인과 묘역 디자인 등등. 그러면서 이 공동묘지를 조금씩 조금씩 용인공원으로 변모시켜 오고 있었어. 처음에 지으려고 했던 사무 및 문화 공간은 갑자기 변한 장묘 문화, 그러니까 매장 문화에서 화장 및 납골 문화로의 변화를 대비한 봉안당 건립 사업으로 바뀌었어. 하지만 풍경을 담으려는 원래의 제안은 그대로 유지했어. 모두 그 점에 동의가 됐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봉안당은 짓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건물 공간과 다양한 정원 공간이 하나의 긴 경험의 과정에 묶여 들어가도록 계획·설계하는 아너스톤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거야. 기획에서부터 문을 열 때까지 꼬박 십여 년이 걸렸어. 건축가는 중간에 더는 못하겠다며 손절했지만 난 끝까지 남아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어. 정원 공간들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충실히 만들어졌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계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를 통해 조금씩 구현되어 갔다는 게 맞겠네. 그거 아나? 한국에서는 설계가가 그린 대로 시공되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은 거. 물론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현장에 가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더 많아. 그나마 여기만큼은 그렇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꼈던지.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오랫동안 쌓인 설계가에 대한 신뢰 때문 아니었을까 싶어. 아너스톤 테라스 정원 10여 년의 시간이 걸려 드디어 준공하고 오픈한 날. 마음 한구석에 담아 뒀던 찜찜한 부분을 이사장에게 털어놨어. 아너스톤에는 테라스가 있거든. 독특한 테라스 구조로 되어 있어서 거기에 정원을 만들기로 했지만, 결국엔 데크만 깐 채 덮어 둔 상태였거든. 이거 제대로 다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이사장도 좀 맘에 걸렸던 건지 ‘한번 그려 보시죠’ 하는 거야. 그런데, 아니 이 쬐그만 공간 하나 구상하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거야. 10년 전 설계 초반부터 이 테라스는 사실 내게 숙제 같은 공간이었어. 얼른 해야 하는데 안 풀리고 질질 미루고 있던 숙제. 너무 진지해도 너무 발랄해도 안 되고, 쓰임이 있으면서도 쓰임을 너무 강조해도 안 되고, 식물이 있지만 없는 듯해야 하고. 안을 닮았지만, 바깥도 담아야 하고 등등. 정말 수도 없이 많이 그리고 수도 없이 보고하고 수도 없이 다시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어. 그걸 덮어 두고 있었는데 내가 그걸 다시 꺼낸 거야. 어쩌려고……. 증말. 내 발등 내가 찍은 거지 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거 다 꺼내 놓은 거 같았거든. 술 많이 처먹고 토하다보면 더 이상 토할 게 없어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아나? 머릿속이 약간 그런 상태가 되어 가는 거 같았어. 그러면서 난 왜 이렇게 설계를 못 하냐부터 딴 놈이었으면 어떻게 풀었을까까지 오만 욕설과 울부짖음을 반복하고 있었어. 어느 날 또 퇴짜를 맞고 돌아와 가만히 눈을 감고 제발 이제는 좀 답을 찾자며 생각에 잠겼어. 이런 모양 저런 모양이 먼저 떠올랐으나 이미 접었거나, 그건 아닌 거 같다는 반응을 받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뿐이었어. 그러다가 말이야. 신기하게도 하나 집히는 게 있었다. 그게 뭔 줄 아나? 그건 바로 나의 뾰족한 드러냄의 태도였다. 뭔 소리냐면 난 이 공간을 디자인하려는 노력보다는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돋보이게 할까를 더 앞에다 두고 있었다는 거야. 어떻게 디자인해야 이 공간이 더 두드러져 보일지, 어떻게 하면 누구도 만들어 내지 못 한 조형적 모양을 그려낼지, 누구도 발견 못 한 독특한 재료와 질감을 집어넣어서 감탄을 끌어낼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구상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쉽게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어. 그건 아무것도 두드러지지 않고, 그냥 무덤덤한 하지만 오래된 듯한 느낌을 지닌 무심한 정원이었어. 이 그림은 모두 다 좋다고 했어. 근데 그게 정말 그림이 좋아서 그런 건지 나의 확신에 찬 목소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그 힘으로 끝내 이렇게 만들어 낼 수 있었고, 비로소 10여 년의 설계 역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가 설계한 서울대공원 동물원 정문 광장을 다녀왔어. 내가 자랑했었거든. ‘이런 거 제가 설계했어요, 공모에도 당선했고요’ 하며. 개념도 괜찮다고 생각했었고, 무엇보다 그 이전에는 시간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이젠 시간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한 이곳에 나름 자부심도 느꼈어. 숲이 많이 생겨서 부모님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을까 했지. 부모님은 연신 ‘우리 아들이 참 대견하구나, 이렇게 큰 공간을 설계하다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어. 하지만 우리가 내세운 시간이 어쩌구, 풍경이 어쩌구, 전후가 어쩌구 하는 얘기는 못 알아들으셨어. 아들이 했다니 좋다고 조건 반사처럼 칭찬하신 거지 뭐. 하지만 그 건너편 장미가 잔뜩 핀 테마정원에 가서 보여주신 그 환한 미소와 귀여운 포즈 등은 온몸으로 이 공간이 훨씬 더 좋음을 말해 주고 있었지. 그야말로 찐 표정이었어. 백 마디 말로 설명되어야만 하는 공간 말고 직감적으로 좋음을 알 수 있는 공간, 세상을 뒤바꿀 만한 대단한 개념 아니어도 거기에 딱 맞춤한 공간, 있는 듯 없는 듯한데 좋은 공간, 지친 하루를 돌아 집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오래된 카페 정원 같은 공간. 좀 모자라도 꽃 하나 더 심을 여지가 떠오르는 그런 공간. 이런 공간을 찾는 일을 혹시 나를 드러내려는 뾰족한 태도 때문에 뒷전으로 미뤄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뾰족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 앞에 놓인 빈 공간을 들여다본다. 부디 이 빈 공간에 꼭 맞는 공간을 디자인하자며. 삶에 꼭 들어맞는 공간을 만들어 내자며. 디자인 엘은 2005년 처음 문을 열었다. 사무실 열 때 내세운 모토가 Link Landscapewith Life다. 그래서 첫 글자들인 L을 사무실 이름으로 내세웠고. 거창한 의미를 담기보다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자는 생각이었다. 잘 지은 거 같은데, 잘 실천하고 있는 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저 삶이 뭔지도, 공간을 그 잘 모르는 삶에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모르는 그 마음만 가지고 겸손하게, 성실하게 설계하려 한다. www.designl.co.kr
  • [모던스케이프] 1960년대와 아동공원
    수년 전, 서울 남산공원의 기록물을 수집하면서 새삼 느낀 점은 사람들은 남산 자락에 무언가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던 지역은 숭례문 또는 서울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한 북서 사면의 회현자락이다. 남산의 예장자락이 일본인이 한성부에 합법적으로 거류하게 되면서 조선의 도시적 질서가 깨지기 시작한 지역이라면, 조선신궁이 있던 회현자락은 남산을 식민 통치의 폭력과 억압의 상징 경관으로 전복시킨 장소다. 조선신궁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모두 불타버리고 그 터만 남게 되었고,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의 각종 집회 장소로 쓰이면서 이데올로기 갈등이 첨예한 공간으로 전환된다. 국회의사당 조성을 위해 기공식까지 했지만 결국 취소하는 전무후무한 전력까지 세우게 되면서, 한동안은 여론몰이가 필요한 각종 집회의 장소로 이용됐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정권의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서울시는 국회의사당 부지를 중심으로 종합미화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이곳은 비로소 ‘중앙광장’(최상단)과 ‘야외음악당’(2단), ‘아동공원’(1단)으로 대변신한다. 남산이 비로소 서울 시민의 이용 공간으로 전용된 것이다. 특히 대규모 공간을 할애한 아동공원은 이후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에 제2, 제3의 아동공원을 조성하게 하는 전향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1963년 4월 6일에 착공해 8월 10일에 준공, 8월 25일 개장한 남산의 어린이 놀이터를 두고 각종 신문 매체는 한국 최대 규모, 아동 낙원, 꿈의 낙원 등의 헤드라인을 뽑았다.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변변한 놀이 시설 없이 골목길을 전전하며 노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에 한 번에 1,500명의 어린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면적에 90여 종의 놀이 기구를 설치해 무료 이용하도록 했다는 점을 확인하면, 그러한 표현에 충분히 수긍이 된다. 남산 아동공원은 ‘남산공원 설계현상모집’(1962년 1~2월 진행)을 통해 구현됐다. 현상공모에 관한 서울시 공문 서류에 아동공원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당선작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건축가 안병의(1927~2005)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채택됐는데, 기하학의 패턴과 유연한 곡선을 절충해 건축과 녹지 공간을 적절히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최상단에 야외음악당과 시민 광장, 기념물을 두고 2단에는 미술관 건물을, 가장 낮은 1단에는 아동공원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야외음악당은 최상단에서 2단 부지로 이동하고 건물 형태도 곡선으로 바뀌는 등 대폭 조정됐지만, 그가 제안한 아동공원만큼은 그대로 수용됐다. 놀이 시설은 오히려 대폭 늘어서 회전 그네, 달팽이 미끄럼틀, 미궁(迷宮), 구름다리, 분수, 원형 철봉대, 여우굴 등각양각색의 놀이 시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선보였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이해수, “1960~1973년 동심의 낙원, 남산공원의 문화정치: 공간을 둘러싼 권력과 공간 이용자의 의미 생산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3(4), 2018, pp.5~53. 서울특별시, 남산공원설계현상모집, 서울기록원 소장(기록건 ID: 20150000081393), 1962. 서울특별시, 공원 기록 인프라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 2020. “꿈의 낙원 남산에 어린이 놀이터”, 「조선일보」 1963년 1월 12일. “어린이 놀이터”, 「동아일보」 1963년 8월 17일. “한국 최대 규모의 아동낙원 서울 남산에 어린이 놀이터 마련”, 「동아일보」 1963년 8월 24일. “인왕산에 어린이공원”, 「매일경제」 1969년 8월 19일. 그림 출처 그림 2. e영상역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