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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대구정원박람회 파워풀 대구, 정원과 함께하는 미래도시/대구 금호강 하중도에서, 10월 13일부터 10월 17일까지
    금호강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2023 대구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가 10월 13일부터 5일간 대구 금호강 하중도에서 개최됐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파워풀 대구, 정원과 함께하는 미래도시’를 주제로 시민에게 정원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 시간을 마련해 하중도를 대구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고자 했다. 대구시 산림녹지과가 주최한 이번 정원박람회는 대구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정원박람회다. 개최 장소인 금호강 하중도는 강의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섬이다. 원래는 쓰레기가 방치된 버려진 땅이었는데, 유채꽃과 억새, 코스모스 등을 심어 강의 생태계를 복원한 생태 공원으로 거듭났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금호강의 아름다운 수변과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모스 들판을 배경으로 학생정원 등 다양한 전시정원과 프로그램을 마련해 대구 시민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 공했다. 정원토크쇼 지난 9월 6일, 정원박람회 개최를 맞이해 사전행사인 정원토크쇼를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 경하홀에서 진행했다. ‘정원을 가꾸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국내 정원 전문가 3인의 강연을 통해 정원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시민, 학생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봉찬 대표(더가든), 박원순 실장(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 이병철 부사장(보성그룹)이 강연자로 참석했다. 김봉찬 대표는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이라는 주제로 장소의 혼, 습원의 풍경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경관과 정원 사례를 공유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 베케의 400년 된 돌담이 전해주는 감동, 야외 주차장 인근에서 자란 띠가 자연스럽게 바람에 흔들리며 만들어 내는 경관 등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신비로운 자연의 경관과 더불어 정원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설명했다. 김봉찬 대표는 “정원이 자리할 땅과 하늘을 어떻게 더 신비롭게 느껴지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태도가 정원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정원을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정원을 보러 다니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내가 지닌 땅이 최고가 되게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실장은 ‘정원의 발견: 상상 그 이상의 정원’을 주제로 에덴동산, 자연주의, 픽처레스크 등 세계 정원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보고 다양한 정원 연출법을 소개했다. ‘화들짝 나비가 돼 꽃을 만난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나비를 볼 수 있는 나비 정원, 해수면이 높아지고 바다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표현한 바다 정원 등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연출한 전시정원에 대해 설명했다. 박원순 실장은 정원을 조성할 때 어느 요소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정원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병철 부사장은 ‘정원의 해석’을 주제로 정원의 예술성에 주목했다.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 스토우 가든(Stowe Garden), 솔라시도 등을 소개하며 각 정원의 예술성과 특징에서 비롯되는 정원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아가 정원이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서 말하며 정원의 다양한 매력을 더욱 널리 알리려면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 후 청중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원박람회 시민정원 및 학생정원 참가자를 비롯해 정원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 참석한 만큼 정원 조성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강연자들은 정원 분야 선배로서 조언을 건넸다. 이병철 부사장은 남의 정원을 따라 만드는 것보다 나만의 정원 만들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김봉찬 대표는 성급한 접근 대신 꾸준한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끈기의 중요성을 말했다. 박원순 실장은 무리하지 말고 작은 구역이라도 가꾸며 정원에 대한 취향과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정영선, 2023 제프리 젤리코 상 수상 제5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지난 9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개최됐다. 같은 날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의 조경가 정영선이 제프리 젤리코 상(IFLA Sir Geoffrey Jellicoe Award 2023)을 수상했다. 제프리 젤리코 상은 조경계획과 설계, 관리, 교육 등 조경 전 분야를 대상으로 세계적 수준의 업적을 선보이거나 활동을 펼친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05년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시작으로 2009년 버나드라수스(Bernard Lassus), 2011년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Cornelia Hahn Oberlander)까지 4년마다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했고, 그 다음해부터는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뽑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단과 IFLA 의장은 “정영선은 조경 분야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탁월한 업적을 이룬 전문가이며 서양에서 유래된 낯선 개념의 조경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역해냈다. 또한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추구하고, 건조 환경에 자연의 과정을 통합하며, 과거 산업 유산을 지우기보다 새로운 디자인의 일부로 만드는 세계적 트렌드를 예측해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작업에서 오늘날 조경 분야의 주요 관심사인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낼 수 있다. 정영선의 작품은 세계적 영향을 끼쳤고 조경이라는 직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영선의 탁월한 설계 능력과 시적 감성, 50여 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수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7번 국도의 꿈
    10년 안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7번 국도 종주’다.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 위를 날렵한 이름과 다르게 귀여운 생김새를 자랑하는 오토바이 ‘슈퍼커브’로 누비고 싶다. 무면허 뚜벅이의 작은 소망이라고 할까. 사실이런 소망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동해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 뜨면 모든 세상이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바다는 내게 오랜동경이자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던 곳이 동해였다. 오래된 탓에 가족과 함께 처음 갔던 동해의 그 해변 이름은 흐릿하지만, 첫 바다를 봤던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선명하다. 조금 도톰한 카디건을 꺼내 입고 싶은 볕이 따사로운 가을 오후, 적막한 몽돌해변의 반짝 거리는 몽돌과 찰싹거리며 부딪히는 파도, 어떤 미사여구 대신 아름답다는 문장을 발음할 수밖에 없는 드넓은 바다 앞에서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던 풍경. 그 풍경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인처럼 박혀있다. 종주를 계획한 건 다시금 동해의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지만, 사실 일종의 임장이다. 부동산을 사기 위해서 현장을 둘러보는 행위인 임장처럼 아름다운 동해를 감상하며 나중에 터를 잡을 곳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서울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시, 한적한 산과 들이 있는 시골도 좋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10여 년 남짓을 살아보니 약간 감흥을 잃었다고 할까. 그래서 시간, 돈, 체력이 허락한다면 눈 뜨면 탁 트인 바닷가가 보이는 도시에서 터를 일구며 살아보고 싶다. 대상지가 있다면 콘셉트가 있어야 하는 법. 만약 바닷가 도시에 나의 공간을 만든다면 1층은 서점, 2층은 작업실 겸 집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가끔 레퍼런스 삼을 만한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최근 발견한 곳은 평창동에 위치한 일중의 집 보현재(이하 보현재)다. 보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필, 국필이라 불리는 서예가 김충현을 기리며 그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전시 공간이다. 우리글에 관심과 애정이 컸던 김충현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글 서예 교본을 편찬해 한글 서예의 명맥을 이어 나가게 했으며, 한글과 한문을 넘나들며 서예의 조형적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의 글씨는 궁궐, 미술관 등 다양한 건축물 현판에 사용됐는데, 경복궁 영추문 현판 역시 그의 작품이다. 보현재는 그가 생전에 작업실 겸 생활 공간으로 사용했던 1층과 현재 전시 공간으로 쓰이는 2층으로 구성된다. 글자 하나를 적더라도 그림처럼 의미와 심상을 담았는데, 가령 돌 석 자와 같은 한자를 적을 때도 획의 굵기를 조절해 돌의 거친 질감을 표현했다. 글자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그가 머물렀던 공간엔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공간 구석구석 그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궁의 창살 무늬를 좋아했던 그는 1층의 미닫이문 창살을 궁의 창살을 그대로 본 떠 만들고, 북악산이 훤히 보이는 1층 앞의 소박한 뜰과 수석과 수목, 화초 모두 직접 가꾸고 조성했다고 한다. 또한 한옥의 차경처럼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참 많았는데, 도자기 등 단아한 소품과 어우러진 창은 담박한 정서를 표현한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공간을 만들게 된다면 언제든 바다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많이 내고 싶다. 수목과 수석이 가지런히 놓인 보현재의 뜰처럼 1층 서점 앞뜰에는 그늘을 드리우는 아름드리나무를 심고, 나무 아래에는 의자를 세 개 정도 놓고 싶다. 숲속 오두막에 살았던 미국의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고독, 우정, 친교의 의미를 담은 의자를 놓았던 것처럼. 최종적으로 나의 공간을 박영석의 말(2023년 10월호)(각주 1)처럼 장소로 만들고 싶다. 내게 첫 바다였던 동해가 추억이 깃든 장소로 다가왔던 것처럼. 나의 소망으로 시작한 공간이 모여드는 이들에게 바다와 함께한 자그마한 추억과 감각을 선사하는 모두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이 꿈이 이면지에 적은 낙서처럼 허무한 몽상에 불과할지, 실현 가능한 계획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거창한 계획을 한번 세워본다. 각주 1. 장소는 좀 더 인문학적 측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거나, 형태가 없는데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지되는 곳을 칭하기도 하고요.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현장 학습을 빙자한 교실 밖 나들이는 대체로 어지러움과 구토로 마무리되곤 했다. 집에 차를 모는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차멀미가 심했다. 심할 때는 지하철을 오래 타다가도 구역질이 치밀어 중간에 내리기 일쑤였다. 특히 차량의 시트나 엔진에서 풍기는 냄새에 민감했는데, 학생 여럿을 실어 나르는 버스에는 늘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관광버스에서 괴로워하던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현장 학습을 통해 만난 그 어떤 풍경도 멀미와 잠의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모든 답사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산 중턱을 오르다 본 아직 다 자라지 못해 손바닥보다 작은 단풍잎이 겹쳐진 독특한 모양이나 새하얀 눈밭에서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위로 죽죽 자라 있던 자작나무 풍경은 사진첩뿐 아니라 아직도 머릿속에서도 선명하다. 그런데 언젠가 봤던 주상절리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흐릿하다.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16쪽)는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반 시절 주상절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환공포증이 있는 터라 오래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어쨌든 신비롭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단단하게 솟은 육각기둥을 보며 연필심을 초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저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구경하다가 근처 바위에 올라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의자가 아닌 어딘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김밥을 먹었고, 강한 바람에 스러져 도르르 굴러가는 생수통을 줍기 위해 바위 위를 걷다 미끄러질 뻔했다. 내가 무얼 했는지는 잊지 않았는데, 주상절리가 바다와 어떤 모양으로 관계 맺고 있었는지, 어떤 점이 내가 신비롭다고 느끼게 했는지는 희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쁜 기억은 아니었지만 좀 허무해졌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소를 취재하게 될 때면 SNS나 블로그를 통해 방문객의 반응이 어떤지도 함께 살펴보곤 한다. 특히 주상절리는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자 문화재니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했던 글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제 사라져버린 야자수, 종려나무, 주상절리와 관계없는 조형물에 정을 붙였을 수 있으니 불만스러울지도 모른다고. 천연기념물의 본모습과 상관없이 개인의 원 경관은 각기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문장 앞에서는 조금 머뭇거리게 됐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없어 땡볕을 걸어야 하고, 음료와 음식을 먹을 만한 장소가 없고, 기념사진을 찍을 만한 명확한 시설물이 없다는 점이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의 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것인가. 겐부도 공원(58쪽)을 다시 들여다봤다. 바닷가의 절벽인 중문대포해안과 비교하면 겐부도 공원은 강 주변에 놓인 산이라는 특성이 너무 달랐지만 지향점은 비슷했다. 주상절리를 사람들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것. 포장재의 색을 바꾸고 관람에 시각적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난간이나 부속 건물의 존재를 최소화했다. 케이스-리얼은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공간에 스테이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상절리라는 주인공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람객이 무대에 올라선다니 조금 아이러니하지 않나 싶었지만, 무채색의 견고하고 묵직해 보이는 스테이지를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람객이 오롯이 주상절리를 관찰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스테이지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최선을 다해 해석해야만 될 것 같았다. 공들여 잘 만든 스테이지는 관람객을 관찰자가 아닌 주체성을 가진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별한 감상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대상을 온 힘을 다해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김아연 교수는 여러 철학 용어를 쓴 이유에 대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보다 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28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경가의 태도가 담긴 공간과 분위기는 사람들의 몸가짐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에 필요한 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어놓는 약간의 덜어냄과 조금의 덧댐이면 충분한 것 같다.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지만 말이다.
    • 김모아
  • [PRODUCT] 공간의 흐름을 바꾸는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퍼걸러의 기능은 다양하다. 때론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를 피할 수 있으며, 잠시나마 전망을 즐기며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퍼걸러에서 전망뿐만 아니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휴게 시설물 브랜드 ‘엠페오MFEO’는 사람과 공간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하는 삶에 주목하며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등을 적용해 열린 공간을 디자인한다. 자동화 루프 시스템이 적용된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는 공간에 새로운 개방감을 더한다. 리모컨과 앱, 벽면 스위치 등으로 통제가 가능한 퍼걸러 루프는 최대 80%까지 개폐가 가능하다. 덕분에 공간 안에서 방해 요소 없이 언제든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견고하고 간결한 디자인도 특징이다. 외부로 보이는 나사와 고정 장치가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우수 배수와 바람 저항에 강한 구조와 아웃도어 소재를 사용하여 악천후 등 다양한 기후 환경에 대처할 수 있다. 루프의 루버에서 기둥으로 빗물이 쉽게 배수되도록 했으며, 꼼꼼하고 세밀한 마감으로 하부 공간에 빗물이 새지 않게 했다.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는 야경과 조화를 이루는 퍼걸러로 주목받고 있으며, 아파트 단지 특화 디자인으로 활용되며 휴게 시설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ARES의 자동화 루프 시스템은 단절된 휴게 시설물이 가진 폐쇄성을 감소시키고, 나아가 열린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TEL. 02-2659-1772 WEB. www.mfeo.kr
  • [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 [풍경 감각]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교 2학년, 틈새 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 계단을 놓아보았다. 손바닥 정도의 공간은 예쁜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 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은 공기에 일렁거렸는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공중 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Reading Daegu and Its Landscape Culture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분지이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여름이면 기온이 높게 치솟는다. 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대구는 1996년부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진행해왔다. 수천 그루 나무가 식재됐고, 도심 한복판에 두류공원, 팔공산자연공원 같은 굵직한 공원이 조성되었다. 쓰레기 매립장과 고수부지 주변의 방치된 땅은 생활의 숲으로 바뀌었다. 두세 줄로 풍성하게 심긴 키 큰 가로수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널찍한 띠 녹지 역시 대구의 특징적 도시 경관이다. 같은 해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 역시 도심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만들어냈고 마을공동체 문화를 형성시키는 효과를 냈다. 대구는 국내 대도시 중 보기 드문 단핵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가장 번성한 거리인 동성로가 중심에 있고 방사형으로 외곽 시가지가 펼쳐진다. 주요 도로 역시 중심가를 둘러싼 여덟 개의 고리형 순환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지에서 가지처럼 뻗은 원도심의 촘촘한 길들은 도시화 과정을 거치고도 살아남았고, 켜켜이 쌓인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색 있는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는 문화라는 키워드 아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달성군은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로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2023년 7월에는 군위군이 대구로 통합되며, 특‧광역시 중 가장 큰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군위군을 상징하는 삼국유사의 고장을 비롯해 풍부한 자연자원이 더해져 문화‧예술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변화를 앞둔 대구의 도시 문법을 공원, 골목, 원도심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조경의 관점에서 풀이함으로써 도시 대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구에서 진행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의 면모를 살펴본다. 이번 특집이 도시의 구조와 특색이라는 맥락에서 조경 문화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_ 정태열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_ 최이규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양진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_ 김모아 대구 도시 공간 10선 _ 금민수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내용은 이정연과 정태열의 논문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1에서 발췌했고, 2000년대 이후는 대구시 자료를 참조했다. 도시공원 계획‧개원 과정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했다. 향후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구 도시공원 태동기 1960년대 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복구기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원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도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 확보 및 자연 경관 보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공원‧녹지 관련 정책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됐으나 대부분 공원 지정에만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성공원은 대구의 유일한 공원이었다. 달성공원은 고대 달구벌 부족국가의 성터로, 대구에 있는 도시공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05년(고종 38년) 처음 공원으로 조성된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건립되는 등 각종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군사 시설 주둔지로 활용됐다. 1964년 국유 재산인 달성공원이 대구시에 무상으로 양여된 후 재정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대구시는 공원의 운영 및 시설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 시민 대표와 권위자들로 구성된 공원조성위원회를 만들고, 막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 시비와 국비를 최대한 할애하고, 시민과 대구 출신 재벌들의 후원을 얻는 등 공원 재정비 계획의 대략적 원칙을 세우고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공원 설계는 당시 경북대학교에서 조원학을 강의하던 임순문 교수에게 의뢰했고, 1964년 7월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소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1966년 8월 공원 내 신사 건물 철거를 계기로 공원 재정비를 계획했으나 자금난으로 3년 만인 1969년 8월에 개원했다. 당초 계획했던 어린이 놀이터, 도서관, 분수 시설, 연못 등은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하고 시민의 여론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문을 열었다.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2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에 계획‧개원된 또 하나의 공원은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감영監營이 있던 장소로, 해방 이후에는 경북도청, 공무원교육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당시 대구에는 달성공원 외에 변변한 공원이 하나도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시민들은 이 부지가 공원이 되는 것을 열망했다. 이를 받아들여 대구시는 1965년 2월 건설부고시로 공원(당시 포정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대구시의 결정과 달리 1966년 5월 경상북도는 이 부지에 관광호텔과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당시 건설부가 시민들의 여론과 결정‧고시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부지의 공원화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공원을 원하는 시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공원 조성은 실현되지 못하고 계속 방치됐다. 그러다 1970년 1월에 포정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10월에 개원했다. 당시 입장료는 어른 3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는 국가적으로 경제적 빈곤이 문제시 되던 시기로, 시민은 물론 일부 정책 결정자들조차도 도시공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흡한 상태였으나, 시민들의 공원을 열망하는 여론이나 기부 문화는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 사회적 상황을 종합해보면 시 외곽이나 도심부의 새로운 장소에 도시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재정적 면에서 불가능했으므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고 공원 조성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도심지 내 역사 유원지의 공원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했다. 대구 도시공원 준비기 1970년대 들어서면서 백만 명을 넘어선 대구 시민이 이용하기에는 공원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고, 계속되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공원의 중요성은 부각됐다.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된 앞산공원은 별다른 계획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대구시는 앞산공원을 자연공원 성격을 띤 대규모 공원으로 개발하고자 1970년부터 개발 사업에 착수했고 1971년 공원조성계획을 수립했다. 계획 당시, 앞산공원은 규모가 커 조성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전체 개발은 불가능했다. 계곡별로 성격이 다른 다섯개 지구로 분류해 1년에 한 지구씩 1975년까지 연차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앞산공원 역시 민간 자본 유치 저조와 대구시의 재정난 등의 이유로 개발이 늦어지게 된다. 1975년 12월 앞산순환도로가 준공되면서 다시 조성에 탄력을 받게 된다. 비록 준공 시기를 여러 번 넘기긴 했으나 제2지구는 각종 놀이공원을 갖춘 유기장으로 1979년 4월에 완공됐다.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서구 내당동과 서당동 일원에 위치한 두류산이 두류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두류공원은 1965년 2월 공원(건설부고시 제1387호)으로 결정‧고시되면서 조성 계획이 마련됐다. 1966년 2월에 발표된 두류공원 종합계획을 보면, 박물관, 대도서관, 야외 음악당, 드라이브 인 극장, 실내체육관, 풀장, 종합경기장, 어린이 놀이터, 식물원, 동물원, 양어장 등과 함께 케이블카와 두류산 정상에 높이 300m의 대구 타워 설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재원 확보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여서 두류공원은 종합대공원이란 이름으로 설계만 된 상태로 방치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조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4년 두류공원 기본계획이 확정된다. 그러나 공원 전체 면적의 92%가 사유지로 부지 매립 문제와 앞산공원 개발과 병행으로 실시에 따른 대구시의 재정난으로 인해 공원 조성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77년 5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원됐다. 1970년대에 수립된 도시공원 조성계획은 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풍경지와 명승지에 구상됐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대규모 공원으로 계획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 등으로 도시가 거대화됨에 따라 도시의 기초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공원 또한 보다 발전적 방향으로 계획되는 점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의 공원조성계획은 시대적 상황과 재정적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수립되어 결국 재정적 문제 등으로 공원 조성은 계획 기간 내 완공하지 못하게 됐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정연, 정태열,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 『한국조경학회지』 41(3), 2013, pp.72~82. 정태열은 경북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랜드스케이프연구소(TLA)에서 11년간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쿄공업대학에서 공학박사(경관공학)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에서 소울랜드스케이프(SLA)를 창립해 일하다가 2012년부터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역사적 공간에서 찾는 중이며, 풍경을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 정태열
  •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석류나무, 콩국 냄새, 오페라, 고요하고 바람이 정체된 밤공기. 대구의 골목길 인상들이다. 사뭇 소박하다. 대구란 도시는 한 쪽으로 치우치는 정치색을 제외하고는 딱히 뭐라 연상 작용이 없는 곳이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랄까.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올 일이 생기지 않는 도시. 부산, 제주, 속초처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 근처도 못가는 무척 심심한 도시다. 대도시지만, 그 흔한 호텔 체인도 없다. 노보텔이 있다 없어지고, 최근에 매리어트가 하나 생겼다. 아마 한국에서 재미없는 도시 뽑기 경기를 한다면 1, 2위를 다툴 만한 라이벌은 대전 정도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골목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냐 묻는다면, 그런 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잠자코 걸어볼 수는 있다고 하겠다. 대구는 무채색의 도시다. 약간 거무스름한 회색이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요함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늦여름이었고,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근처 골목을 돌아다녔다. 마치 도시만 남겨두고 모든 사람들이 휴거해 버린 분위기는 적막함 이상의 정체된 흐름이었다. 분지라 그런가. 고요함에도 색이 있다면 아마 검회색일 것이다. 일전에 대구의 어바니스트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근대골목지도라는 걸 만든 역사 연구가인 권상구에게 외지인으로서 느끼는 대구의 도시색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동안 대구시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도시 브랜드가 ‘컬러풀 대구’였는데, 나는 이 말이 더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정치적 쏠림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인지, 아니면 지루한 도시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인지, 다양성에 대한 뜬금없는 강조라니. 목표와 현실이 이렇게 수만 광년 떨어져 있어도 되는 것인가. 대구는 채도가 낮은 도시고, 굳이 그걸 감출 필요가 없다. 단단한 무채색은 세련되고 깊다. 요즘 대구에서 오픈하는 새로운 상업 공간들은 꽤나 감각적이고, 그건 블랙으로 요약된다. Green is the new black(초록이 새로운 표준이 되다)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나무조차도 회녹색이다. 조용히 골목을 걸으면서 메뉴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괜찮은 카페에서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것.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팁이다. 낮에는 더위 탓에, 어느 정도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는 것을 권한다. 습기에 눅진해진 공기 사이를 헤쳐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대구는 천만그루 나무 심기 등 나름 도시 녹화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생활자로서 특별히 무성한 도시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오히려 나에게 대구의 일반적인 골목은 가끔 촘촘히 박혀있는 붉은 석류열매와 함께 연상된다. 예전에는 사과가 유명했다고 하지만, 이제 대구와 사과를 연관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주택가를 걷다보면 종종 만나는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석류다. 붉게 익은 석류와 땅에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과육은 아마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 아래에서 평상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석류는 이란 근처의 중동이 고향이니, 한반도에서는 무조건 남부 수종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적은 대구에서 잘 적응했다. 팔공산과 비슬산 줄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은 기후 외에도 독특한 역사적 궤적을 만들었다. 대구 시내는 한국의 대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겪지 않은 곳이다. 미8군 사령부의 제공권 덕에 폭격이 덜하기도 했고, 육상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 한정되었기에 연합군이 지켜낸 마지막 요충지였다. 부산의 경우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난개발이 진행된 것과 달리 대구는 일제가 계획한 도시 구조를 이어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섬유가 주축이 된 공업화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또한 성서와 서대구 지역에서 꽤나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초량 일대에 남아있던 적산가옥이 빠르게 소실된 부산과는 대조적으로, 대구는 군산과 함께 상당량의 일식 가옥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북성로 일대는 일본식 상점가인 마치야에서 해방 후 소규모 공업사 골목으로, 최근에는 다시 예전 가옥의 복원을 통한 재생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재활용하여 금속과 전기, 공구 등을 취급하는 제조업이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목조 적산가옥에 자리 잡게 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건물 안, 온갖 기계의 굉음과 기름때가 거뭇거뭇한 설비 사이에서 작업 중인 수작업 장인들, 일명 브리콜레르bricoleur. 이들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소위 국가적으로 창조경제를 외치던 때였다.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규모 공업사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일찍부터 일종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기능해 온 셈이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려 가면 물어물어 그걸 제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북성로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발명이나 디자인, 혹은 그저 만들기에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이곳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을지로나 성수동, 부산의 신암로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막상 북성로에서 뭘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업주들이 고령화되어 현장에서 통용되는 은어와 그들만의 용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화된 검색 도구가 없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허탕을 칠 때가 많다. 권상구는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요즘 우리가 알아들 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낸 책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단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단순히 지적 취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자와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맥이 끊어질 손기술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후계자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이다. 적산가옥이라는 과거의 유물보다 거기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북성로 서쪽 끝 지점은 유서 깊은 달성공원이다. 대구의 종가집이라 할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일제가 신사와 동물원으로 바꾸었다. 한강 이남의 창경궁 정도가 되겠다. 지금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탑골공원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역시나 매일 새벽에는 도로변과 인근 골목에서 장터가 열린다. 오전 4시부터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둑어둑한 길에서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차량 통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도로는 사람들로 붐벼 널찍한 프롬나드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전문 상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뱀파이어처럼 새벽 시장은 해가 뜨면 파장 분위기가 된다. 주변 상권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들이키곤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환경관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외 설계사에 근무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공과대학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식물벤처기업 에어리 대표를 맡고 있다.
    • 최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