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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비평(가)의 자리
추위도 잠시 주춤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던 3월 중순, 이종건 교수를 만났다. 새 봄에 『건축평단』이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꽤 오래 전부터 비평지 창간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들어왔지만, 솔직히 녹록치 않은 일이라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비평가 개인이 비평집을 내는 일이야 상대적으로 손쉽겠지만 (물론 이 역시 요즘과 같은 출판 시장의 불황 앞에서는 쉽지 않지만), 지속성을 담보로 해야 하는 정기간행물은 의외였다. 잡지가 유지되려면 필자와 독자, 그리고 책을 출간하고 배포하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가)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우려를 담아 이종건 교수에게 점점 더 짧고 쉬운, 이미지 위주의 지면을 (아니 화면을) 원하는 시대에 비평 전문지의 독자는 어디에 있겠느냐, 비평가들은 어떻게 모였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이 잡지를 유지할 것인지 등등을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가장 기본적인 건축적 문제를 다룰 것이며, 이러한 핵심 과제를 간과한다면 건축이라는 분야와 건축가라는 직능은 바로서기 어렵다고 일갈한다. 독자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이 ‘주인 없는 책’임을 강조했다. 모든 자금은 책을 만드는 데 쓰여야 하며 (그래서 원고료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존재 가치와 운영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세상은 주인(자본가)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지 않는 비평이 자리 잡은 사회다. 주인은 없지만 후원자는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비평서의 존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고 구독을 약속한 것이다.
자본과 독자는 둘째 치더라도, 또 글을 쓰는 비평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너무 자조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예전 건축 잡지사에 다니던 시절, 잡지에 게재될 작품의 비평가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주로 교수님들이) “저는 비평가가 아닙니다” 혹은 (대개 설계를 시작한 교수님들이) “저는 이제 비평을 하지 않습니다” 혹은 심지어 “건축계에는 발언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는데,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전문 분야 내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지 못한 비평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따라서 매체에서는 젊은 건축가를 발굴하는 것 만큼 새로운 비평가를 발굴하는 일도 항상 지난했다. 한편으로는 작품을 게재하기로 한 건축가가 비판적인 비평 원고가 실릴 예정이란 이야기에, 작품을 싣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간신히 설득해 원고를 내보낸 일도 있었다. 반대로 비평가의 날선 (혹은 독단적) 비평에, 편집부에서 필자에게 수위 조절을 요청하는 씁쓸한 일도 있었다. 그만큼 비평의 영역은 마이너한 것이었고, 비평 문화는 좀처럼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건축계에서 『건축평단』의 탄생 배경이 짐작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건축 동네에는 오래된 매체 몇몇이 저물어간 대신, 지난 몇 년간 기존의 매체와 차별화된 몇 가지 매체가 등장했다. 2008년 창간된 격월간 『와이드 AR』은 ‘심원건축학술상’과 ‘건축비평상’ 등을 운영하며 비평과 연구를 독려하고 있으며, 젊은 비평가와 필자, 건축가의 발굴에 힘쓰는 잡지다. 건축을 통한 사회 공동체 활성화를 꿈꾸는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발행하고 있는 「건축신문」은 2012년 창간(연 4회 발행)하여 참신한 기획으로 건축과 다양한 문화예술을 가로지르고 있다. 김용관 건축 사진작가가 이끄는 아키라이프에서 발행하는 『다큐멘텀』은 건축 과정을 이미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하는 건축 전문지로 2014년에 창간되었다.
건축 잡지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중반까지 건축계에서는 월간지 형식의 10여 종의 잡지들이 비슷비슷한 콘텐츠로 잡지를 만들었다면, 최근 새로 만들어진 대안적 성격의 잡지들은 그 형태나 발행 횟수, 콘텐츠의 방향 등을 다양화하며 (형편껏) 꾸려가고 있다. 이 매체들이 모두 비평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체 성격의 다변화는 문화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의 활동 무대가 되어 풍요로운 토양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건축 이론과 역사 관련 모임의 활동도 눈여겨 볼만하다. 2012년에는 목천건축아카이브와 한국 현대 건축 연구를 위한 학술모임인 현대건축연구회가 함께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이란 이름의 포럼으로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모여 건축 이론서를 강독하는 토요건축강독 역시 젊은 연구자들이 여럿 참여하며 몇 년째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건축평단』에 참여한 비평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매체나 모임에서 활동하는 젊은 이론가·비평가들을 꽤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젊은 이론가·비평가들의 건축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활동이 『건축평단』의 탄생에 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미래의 가능성도 꿈꾸게 했을 것이다.
이종건 교수와의 자리가 파할 무렵, 조경 비평의 미래를 위해 한 말씀 부탁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건강하고 비판적인 지식인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반동·저항·이질적 분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토양을 분야의 원로와 주전 멤버들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 바깥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우리의 생각도 바깥에 알려야 한다. ‘생각하는 조경가’가 나오도록, 생각할 수 있는 자극을 주어야 한다. 왜 조경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우리 고유의 조경·정원 문화·외부 공간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역사와 대화하는 그런 긴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건축평단』의 강권정예 편집장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건축평단』 정기구독자들의 95%는 건축 관련자들이지만, 그 나머지는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 교육 공무원, 미술 선생님, 카페 운영자 등 ‘일반인’이라고 한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항상 궁금해 하는 ‘독자의 실체’를 엿보고 잠시 놀랐다. 이를 두고 여전히 책은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낭만적인 자기합리화일까. 강권정예 편집장은 한때 건축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건축 전문 출판사 정예씨(JEONGYE publishingCompany)를 열었다. 대표적 책으로 열정적 건축 저널리스트였던 고 최연숙 편집장의 유고집 『사람의 가치』, 『부산 홍티문화공원 공공예술 프로젝트』 등이 있다. 미리 홍보하자면 부산의 홍티문화공원은 『환경과조경』 5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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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뿌리 이야기
2년 전, 김숨 작가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한 통신사의 영상 뉴스 팀 인턴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정치,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림이 된다’ 싶은 이슈를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는 1차원적인 (그리고 명쾌한) 이유로 대산문학상 수상작 발표 기자간담회를 취재하게 되었다. 한때 문학에 대한 낭만을 불태웠던 시절이 있었건만 그날 나의 정신은 온통 ‘그림을 만드는 데’ 팔려 있었다. 문학상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행사는 유명 연예인이 참석하는 화려한 행사나 정치인들이 핏대 세우며 갑론을박하는 공청회 등에 비하면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포인트가 부족했다. 영상을 채우기 위해 고급스러운 식기, 하얀 테이블 보 등을 클로즈업 하면서 시작한 나의 뉴스 영상을 보고 동료들은 ‘물잔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이라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문학상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인터뷰보다 조명, 식기 등을 먼저 찍고 있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숨 작가는 답변을 할 때마다 정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깊고 고요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게 소곤거리는 듯한 말투, 극적인 표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겸손한 표정, 답변을 하기 전 오래 생각하는 진중한 태도는 내 속을 까맣게 타들어가게 만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결국 집에 돌아와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읽었다. 평소에는 내가 잘 읽지 않는 스타일―평범한 소재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파헤치는―의 소설이었지만 잘 벼린 날처럼 선뜩함이 느껴지는 문장에 홀려 집중해서 읽었다. 나직하고 섬세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던 것처럼.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김숨의 ‘뿌리 이야기’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일었다. 매년 문단의 경향을 대표하는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선정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단이 어쩌면 매우 평범한 소재인 ‘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조용한 소설을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사실 뿌리는 작가들에겐 건드리기 쉽지 않은, 노골적으로 말해서 ‘닳고 닳은’ 소재가 아니던가. 『용비어천가』의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부터 시작해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나희덕 시인의 신춘문예당선작 ‘뿌리에게’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미 많은 작가들이 ‘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진부한 소재가 이제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뿌리’보다는 ‘노마드nomad’라는 단어가 더 섹시하게들리는 시대에 새삼 ‘뿌리’에 대해 고찰하는 그녀의 고집스러움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날 ‘뿌리’에 대해 다시 말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문학적 자서전 ‘울산, 추부, 목동 18번지 그리고 서울’에서 정착한 지 15년이 된 서울이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기이한 곳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작가는 그동안 그녀가 살아왔던 울산, 추부, 대전의 목동 18번지, 서울 중 어느 곳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디에서 ‘뿌리 들린 자들의 공포와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소설에선 철거민, 위안부, 입양아 등 다양한 ‘뿌리 들린 자’들이 등장하지만 역사 문제나 사회·경제구조의 문제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온전히 뿌리들린 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끈질기게 매달림으로써 ‘뿌리’라는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풀어낸다.1 김숨은 소설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전동 드릴처럼 흔들리는 메타세쿼이아 세 그루를 묘사하면서 나무가 그리는 표정에 주목한다. 멸종된 줄 알았던 ‘화석나무’가 세계 곳곳에 이식되어 자라고 있는 극적인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전력투구로 서 있는’ 나무의 표정을 상상하는 작가의 섬세함에 2년 전 보았던 그녀의 이미지가 다시 떠올랐다. 여러 언론 매체와 SNS 상에서는 21세기형 새로운 유목민의 출현에 대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표정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늘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해야하는, 이주移住를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유목민의고단함과 피로함, 낯선 곳에서 느끼는 공포감에 대해.
지난 2월호 특집으로 소개되었던 토포텍 1의 작품을 두고 사람들의 평이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과장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질감을 주는 토포텍 1의 과감한 접근 방식이 자극을 주었다는 평과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이었다. 순응은 지루하다며 도발하고 도전하라고 선언하는 라인-카노의 인터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들의 감각적인 디자인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다. 그중 가장 궁금했던 점은 이주자들의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수퍼킬렌의 야자수가 과연 북유럽 덴마크의 기후에서 정말로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지였다.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찍었을 보도용 사진과는 다르게 인터넷에서 본 최근 사진 속 야자수는 잎사귀가 마르고 색이 바래 볼품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덴마크의 추운 기후에 얼어 죽지 않도록 포대 자루 같은 것을 잎사귀에 씌워 놓았는데 덴마크 사회에서 아직도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고 있는 이주자들의 정체성을 보는 것만 같아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수퍼킬렌이 있는 덴마크의 다문화지역 뇌레브로Nørrebro에 살고 있지만 수퍼킬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한 도시설계가는 나무가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조건에 야자수를 심어놓고 겨울에 포대기를 씌워놓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지적했다.2 폭력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이식한 결과가 아닐까. 지난 2월 뇌레브로 인근에서 일어난 덴마크판 ‘샤를리 테러’는 또 다시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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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족구왕
재미있게 놀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컵 차기’가 유행이었다. 조경학과가 있던 이공관 앞마당과 지금은 조경학과 건물이 된 도서관 앞이 전용 경기장이었다. 커피 자판기의 일회용 컵과 두 명 이상만 모이면 가능한 실내외 구분 없는 레저였다. 한 번은 이공관 옆에 위치한 공학관에서 건축학과 교수님께서 내려다보고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동아리 선배에게 매일 컵 차기하는 저 키 큰 여학생은 대체 누구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나의 족구 기본기는 그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져졌다. 졸업 후 다니던 건축사무소는 잠원동 고속도로 완충 녹지 변에 위치해서 후면에 넓은 주차장과 공터가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농구를 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종목이 족구로 바뀌었다. 서브를 받거나 최전방에서 공격을 하는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패스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주로 했다. 야근을 할 때는 저녁 먹은 후 자동차 라이트를 켜 놓은 채 야간 경기도 했다. 비 온 직후 약간의 물웅덩이가 있던 어느 날 오전이었다. 일하다 창문을 보니 우리 팀 주장이 롤러로 땅을 메우고 있었다. 그의 진지한 동작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는 질척거리는 땅에서 신발을 망쳐가며 그날도 어김없이 족구를 했다. 그러다 앞 사무실이 이사 가는 바람에 비게 되자 그곳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꽤 괜찮은 전용 족구장이 되었다. 실내에서 족구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려나. 실내 족구는 공을 가지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뿐더러 벽과 천장을 활용해서 훨씬 다이내믹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천장의 전등이 모두 깨지고 창문까지 깨지는 바람에 우리의 실내 족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로지 족구하기 위해 출근하는 것 같았던 그 철없던 과장님들, 지금 모두 잘 계신지 궁금하다. 족구 개인사가 길어졌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하고 족구한 이야기를 왜 길게 하는 지 나는 이해해야 한다.
영화 ‘족구왕’(2014)은 주인공 만섭이 군대에서 족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족구를 위해 태어난 듯한 체격을 가진 만섭은 사단장배 족구 대회 우승패를 가슴에 안고 제대한다. 다니던 대학교에 복학하자마자 제일 먼저 족구장을 둘러보지만 그곳은 군대간 사이 테니스장이 되었다. 변한 곳은 족구장만이 아니다. 기숙사 선배는 스펙에는 관심 없는 만섭에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며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라고 다그치고, 조교는 족구장을 찾는 그에게 “족구 같은 소리나 한다”라며 비아냥거린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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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경학회장·한국조경사회장 대담
한국 조경의 내일을 준비하다
침묵을 깨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박명권(이하 박): 한국 조경이 큰 변곡점에 접어든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된 두 단체장님을 한 자리에 모셨다. 학계와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조경학회(이하 조경학회)와 한국조경사회(이하 조경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두 단체의 행보에 많은 조경인들이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혜와 뜻을 모아 공동 대응해야 할 문제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임기 시작 후 두 달여 동안 느끼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그 소감을 먼저 들어보면 좋겠다.
김성균(이하 김): 시간이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조경학회장직이 대내외적으로 무척 바쁘다는 것을 실감했다. 석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환영사, 축사 등을 하기 위해 관련 단체의 행사에만 벌써 10군데 넘게 참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있는 조경인들을 만났다. 모두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일례로, 학회장 취임이후 회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밴드를 두 개나 만들었지만 반응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앞으로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이 침묵을 깨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동안의 한국 조경은 정부 주도 사업이나 아파트건설 호황에 편승해서, 큰 노력 없이 성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어렵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조경 분야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터놓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의 필요성도 느꼈다.
황용득(이하 황): 그동안 조경사회에서 임원진으로 활동하며 계속 일을 해왔기 때문에, 특별한 소감이 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추진해 온 여러 사업들을 되돌아보고 18대 회장단이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방향을설정하는 시작점에 서 있다. 조경사회는 그동안 너무 외형적인 활동에 몰두해 왔다. 그러다보니 허약한 체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업계의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성금 마련도 녹록지 않고, 회비 납부 독려도 부담스럽고, 자연히 업계 지원도 자유롭게 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 데, 상황이 나빠지다보니 내적으로 부실한 면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그래서 회장직을 맡게 된 이후, 어떻게 하면 내실을 기할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부실한 시스템을 과감히 개선하고, 단단한 조직을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조금 전에 학회장님이 조경인들의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지난 두 달은 회원들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결집시키고, 단합시키고,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시간이었다.
유목민처럼 새로운 자원을 찾아 떠나야 할 시기다.
박: 아무래도 적극적인 참여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일것 같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어서 그에 대해 논의해보면 좋겠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건설 경기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새로운 탈출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데, 뚜렷한 대안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조경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 각 분야의 변화 속도가 전에 없이 빠르고 유동적이다. 자칫 제대로 된 대처를 적시에 하지 못하면, 크게 후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 조경의 오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황: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상황이다. 어느 날 우리 앞에 뜻밖의 비옥한 옥토가 나타났는데,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정신없이 수확하기만 했다. 언젠가 바닥이 보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노다지를 어떻게 하면 많이 캐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골몰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바닥을 드러낸 순간, 빈 손밖에 가진 게 없게 되었다. 새롭게 씨앗을 뿌리거나 별도의 자원을 발굴하려는 노력 없이 주어진 것을 파먹는 데만 열중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유목민(노마드)처럼 새로운 자원을 찾아 떠나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조경이란 분야가 영원할 것이란 안일하고 막연한 희망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틀을 과감히 모색해야 할 때다.
박: 업계에서 활동하고 계시다보니, 현재 상황을 심각한 수준으로 체감하고 계신 것 같다. 학회장님은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김: 분명한 것은 지난 세월처럼 가만히 있어도 국가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저절로 일감이 생기던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이제는 일감을 새롭게 만들어내야하고, 일감이 있는 곳으로 능동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시기다. 우리만의 실력과 기술을 개발해서 한 차원 높은 질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서 새로운 일을 창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더구나 정책과 법제도에 대한 대응도 부실했다.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법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만을 따졌다. 예를 들어, 과거 일본의 경우 이안 맥하그의 기법을 조경 분야에서 들여와 그에 따른환경 평가의 필요성을 국가에 제안해서 그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조경 업계에서 관련된 일을 상당히 많이 수행했다. 주어진 일만을 하려 했다면 그런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조경 분야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업역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 조경을 대표하는 양대 단체인 한국조경학회(1972년 12월 설립)와 한국조경사회(1980년 6월 설립)의 새로운 회장단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여가 흘렀다(본 대담은 3월 12일에 진행되었다). 본지는 김성균 신임 회장(한국조경학회, 서울대학교 교수)과 황용득 신임 회장(한국조경사회, 동인조경마당 대표)을 한 자리에 모셔, 각 단체가 역량을 집중하여 추진하고 있는 주요 사업에 대해 들어보고, ‘위기론’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조경의 활로 모색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그 해법을 모색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김성균 회장과 황용득 회장 모두 취임 후 ‘해외 진출’을 강조하고 있어, 상호 협력하여 보다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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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풍경화식 정원 퍼가기
#42
그린 핑거스Green Fingers
드높은 정치적 이상과 각종 세련된 건축물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없으면 풍경화식 정원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하ha-ha를 조성하여 전원 풍경을 시각적으로 끌어들인 결정적인 동기는 바로 그곳에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심은 나무가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이백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랜슬롯 브라운이 심었던 나무들이 진가를 발휘한다”1라는 말이 물론 과장되긴 했어도 전혀 사실무근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다. 풍경화식 정원이 만들어지면서 식물 수집과 재배 사업에도 가속이 붙었다. 식물 수집가들이 식민지에서 새로운 식물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으며 식물학과 식물 재배 기술이 성큼 도약한시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식재 기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에 가장 앞장 선 인물 중 하나가 제8대 페트르 남작Robert James Petre, 8th Baron Petre(1713~1742)이었다.
1712년, 런던 사교계를 발칵 뒤집은 스캔들이 하나 있었다. 당시 썩 괜찮은 신랑감으로 제7대 페트르 남작이 꼽혔는 데, 어느 날 그가 사교계의 여왕, 방년 16세의 아리따운 아라벨라 페르모어Arabella Permor(1696~1737)2 양의 머리카락을 한 줌 자른 사건이었다. 그것도 사교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가면무도회에서 많은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아라벨라 양은 그때 연회장 한쪽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페트르 남작이 다가가서는 그녀의 어깨에 우아하게 드리운 머리카락을 한 줌 쥐고 가위를 꺼내 싹둑 잘랐다. 그 전에 두 선남선녀 사이에 무슨 사연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과 청년들이 짓궂은 내기를 한 것이라는 설이 있었다. 둘 사이의 염문이 있었더라도 그 사건을 계기로 끝장이 난 건 물론이다. 아라벨라는 대노했고 두 가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무도회에 참석했던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이 사건을 목격했다는데 ―정말이지 그는 끼지 않는 곳이 없었다― ‘두 가문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그 일화를 장편 풍자 서사시로 써서 발표했다. ‘머리카락 강탈 사건’3이라는 제목의 이 장시는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두 가문을 화해시키겠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포프의 걸작이 한 편 탄생했다.
페트르 남작은 같은 해에 부유한 웜슬레이 가문의 상속녀와 혼인했으며 이듬해에 천연두에 걸려 유복자를 남기고 죽었다. 이 아들이 커서 8대 페트르 남작이 되었는데 그 역시 아버지처럼 서른 살 생일을 맞기도 전에 천연두에 걸려 유복자를 남기고 죽었다.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은 여인의 머리카락 대신 식물을 수집했고 정원 조성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소질을 보였다. 이 8대 페트르 남작은 나중에 식물학의 대부라고 칭송받는 인물이 된다. 그의 업적을 들여다보면 그 짧은 생애 동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보다 식물을 더 좋아했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는 1742년, 29세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손던 홀Thorndon Hall 장원을 수목원으로 재편성해 약 700종의 식물을 길렀으며, 4만 주가 넘는 미국 수목을 도입하여 심고, 여러 채의 대형 온실을 만들어 까다로운 남부 수목을 재배했고, 지인들의 장원 여덟 개를 풍경화식으로 바꾸어주었다. 그 역시 남들처럼 유럽 대륙으로 그랜드 투어를 다녀왔지만 돌아올 때 식물 관련 서적만 배에 가득 싣고 왔다. 이런 방식으로 페트르 주니어는 풍경화식 정원에 다양한 식물을 제공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식물학자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아 미성년자로서 이미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회원으로 추대된 특이한 경우였다.
그러나 그의 최고 주특기는 ‘마치 살아 있는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4 식물 배치법이었다고 전해진다. 수목을 S자 띠형으로 심고 상록성 참나무와 낙우송, 은빛 전나무와 키 작은 주목을 서로 조화시켰으며 호랑가시나무와 회양목을 대비시켰다. 이런 식재법은 “켄트의 조잡한 식재법에 비해 백배나 근사한 효과를 주었다”5는 평을 받게 했다. 그의 나이가 어렸음에도 그를 스승으로 본 젠틀맨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에 필립 사우스코트Philip Southcote(1698~1758)라는 인물도 있었다. 필립 사우스코트는 워번 농장Woburn Farm의 주인이었다. 워번 농장은 레저스 농장과 함께 영국의 장식 농장 중 쌍벽을 이루었던 곳이다.6
템스 강 남부 평야의 가장자리에 있는 워번 농장은 그 자체로는 크게 매력 있는 풍경이 아니지만 멀리 아름다운 월튼 브리지가 바라다보이고 동쪽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 우뚝 서 있으며 북쪽 경계를 따라 번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 곳이다. 번 하천은 농장 전체를 적시고 저택 가까이에 와서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 필립 사우스코트는 이런 주변 환경을 시각적으로 이용함과 동시에 “예술의 힘을 이용하여 평범한 농경지를 장식 농장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7 물론 이렇게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인 공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산책로 루트를 정하기 위해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경로를 걸어보았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8 경로에 따라 보이는 장면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풍경화식 정원의 관건 중 하나는 최적의 산책 경로를 정하는 것이다. 그 전통이 워번 농장에서 탄생했다.
사우스코트 자신은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동시대의 증인들이 쓴 방문기가 여러 편 전해진다. 그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마도 토머스 훼이틀리Thomas Whately의 평론서 『고찰Observation』9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워번 농장을 소개하며 “정원의 경계 속에 농촌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아이디어가 여러 번 실천에 옮겨졌지만 워번 농장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10 워번 농장의 3분의 2는 목초지로 소와 양을 쳤고 나머지는 경작지였다. 사실 정원을 별도로 조성할 수 있는 면적이 없었으므로 사우스코트는 순환 산책로circuit walk를 고안했고 이를 정원으로 응용했다. 즉, 산책로 변에 넓은 폭으로 식물 벨트를 조성한 뒤 이것을 정원이라 하였다. 순환로를 설정한 것은 레저스 농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레저스의 경우 농장 그 자체를 목가 정원으로 해석했으므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워번의 식물 벨트에는 당시 보기 힘들었던 각종 진귀한 꽃과 관목이 자랐다. 당시 심었던 식물의 목록이 전해지는데 그 중에는 패모11 등 생소하고 진기한 식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대적 개념으로 본다면 지역 생태계에 어긋나는 식재법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겠으나 당대 사람들은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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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 과거의 도시, 미래의 도시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이 장소의 시간은 언제입니까What Time is This Place?” 이는 규범적 도시론의 대부 케빈 린치Kevin Lynch가 1972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1 장소의 시간에 대해 묻다니, 곱씹을수록 재미있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은 특정 시간에 구현된 물리적 환경일 텐데, 그 안에서 또 다른 시간의 특질을 어찌 찾는다는 것일까?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이러한 시간은 철저히 계획된 시간일까, 아니면 사회적 환경의 특성이나 인간 활동의 빈도로 결정된 시간일까(그림1)? 나아가 공간의 시간성이 아니라 시간의 공간성을 묻거나, 도시 환경 속에서 빅뱅 이론—시간에 따라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거꾸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렸을 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은 한 점으로 수축한다는 이론—처럼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의문이 단지 스쳐가는 호기심이라면 그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설계가, 특히 조경·도시설계가에게 공간에 담긴 시간성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문제다.
린치의 생각을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린치는 시간의 감각이 도시에 새겨지는 과정에서 시간이 의도적으로 선택·편집, 심지어는 왜곡될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테면 한 시점에 만들어진 공간이 서로 다른 시간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심리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 내 장소는 ‘기억의 저장소’”라는 말이 떠오른다(그림2).2 물론 이는 몇몇 이론가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이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이 —물리적 공백 속이 아닌—도시 환경의 변화나 연속된 이벤트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다수 등장했다(그림3).3 나아가 좀 더 규범적인 관점도 있다. 오래된 도시 안에는 기나긴 시간의 시험을 거쳐 살아남게 된 좋은 도시의 DNA가 농축되어 있다. 따라서 유전자 게놈Genom 지도를 그리듯이 전통적인 공간의 특질을 재발견하여 현대 도시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때로는 너무 빨리 변하는 도시 환경에 지친 —그러나 곧 그러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던—현대인들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과거의 도시에서 큰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4
이렇게 시간이 공간에 기록되고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설계를 통해 도시에서 어떤 시간성을 드러내야 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집단적 기억에 대한 공유가 퇴색하는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시간성을 찾으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린치는 이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좋은 도시란 현재의 요구에 충실하면서 —즉 ‘현재성’을 강조하면서—과거 혹은 미래와 적절히 연계되어야 한다. 그가 현재성에 방점을 찍는 이유는 과거에 갇혀 있거나 혹은 반대로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연상하게끔 하는 공간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의 도시는 내가 아끼는 사람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침묵하면서, 기억에서 희미해진 참전 영웅이나 정치인의 조각상에 집착하는가.”5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그림4).
과거를 재현하기
린치가 도시설계 이론가로서 규범적 시간성을 탐구했다면,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공간에 재현된 시간성에 담긴 의도를 파헤치고자 했다. 이들은 ‘어떤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냐’는 질문보다 ‘특정 시간성이 왜 선택되고 표현되는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한 예가 미국 MIT의 로렌스 베일Lawrence J. Vale 교수다. 그는 1999년 논문에서 건축과 도시설계를 통해 한 집단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것을 ‘매개된 기념비mediated monuments’라 일컬었다. 특히 시대 및 문맥과 무관한 상징보다는 특정 시간이나 주체와 연관된 상징에 주목했다. 이러한 예로 1980년대에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바그다드 남쪽 고대 바빌론 왕국의 궁궐터에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건설한 새로운 왕궁을 제시한다(그림5). 이는 단지 크고 화려한 장소를 통해 권력을 뽐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바빌론’ 왕궁의 재현이라는 점이다. 기억을 한번 더듬어 보자. 고대 바빌론은 인류 문명의 발원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융성한 도시였다. 베일 교수는 후세인이 이렇게 특정 시대와 연관된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독재자의 절대적 지위—과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을 정복한 고대 제국의 왕과 동일시되는—를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진행 중이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을 마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라는 고대 문명국들 간의 충돌로 과장하려 했다고 설명한다.6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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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오늘도 그린다, 지겹거나 즐겁거나
0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다
그림(작업, 디자인, 플랜) 그리면서 “난 왜 이렇게 매일매일 그림만 그려야 하고, 지겹게계속 수정과 보완에 이런 소모적인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불평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으면서, 그러니까 무지 지겨워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지나가던 ‘어린이(대리 미만의 직원부터 학부생을 이르는 매우 주관적인 용어)’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게 직업이니까요.”
아… 맞다. 이게 직업이니까 내가 이러고 있구나. 직업이라는 것. 설계라는 것.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었는지 부끄럽기도 했다.그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일에 임하는지 조금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면서 거칠게 드러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관용이 필요한 순간이다.
1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앞으로 서술할 무척이나 주관적인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나의 배경을 소개한다.
– 직원들과 함께 먹고 살 것을 걱정하는 조경설계사무소의 생계형 디자이너이자 소장이다:돈이 필요함.
– 주된 클라이언트는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들, 회장님들, 친구들밖에 없다: 클라이언트 폭이 참 좁음.
– 대형 공원 프로젝트 경험이 거의 없다: 조경계의 아웃사이더임.
– 공원보다 공동 주택과 인테리어 경험이 훨씬 많다: 건축하는 친구들 덕분임.
– 조경 설계를 위한 답사나 책보단 각종 취미 생활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취미와 일이 접목되면 좋겠음.
2 일은 벨소리와 함께 온다
휴대전화 벨소리와 함께 일이 시작된다.
일의 개요, 기간, 설계 비용 등이 결정되고 드디어 출발선에 선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념적인”,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조경이 할 일이 아주 많은”, “소장님이 꼭 하셔야 하는” 등의 이런 저런 얘기가 잡다하게 언급된다. 다 좋은데, 생계형 디자이너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얼마짜리 프로젝트인가’이다. 웃으며 욕할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에 대한 ‘욕정’은 입금과 함께 피어난다(6월호에 보완하여 설명하겠다).
3 컨셉은 이름표 같은 것이다
컨셉(concept, 개념, 제목, 설득할 어휘), 소위 의미없는 말장난 같다고 비판받고 있는 이것에 나는 집중한다. 아주 많이.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도 얘기한다. 국적 불명의 언어, 빛 좋은 개살구,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디자이너만의 혼란스러운 텍스트, 너무 어려운 어휘가 아닌가,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컨셉에 집중한다. 한때는 설계공모나 턴키 프로젝트에서 컨셉을 (엄밀히 말하면 발주처에서 심사위원이나 조합원을 쉽게 설득할 수 있도록 만든 쉽고 간편한 제목을) 요구해서 많이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플랜이나 디자인보다 이 컨셉을 만들어내는 데 50% 이상의 에너지를 쏟은 적도 있다. 분양 카탈로그에서 시집까지, 영어에서 라틴어어원까지, 소스가 될 만한 건 모두 살펴 본 적도 있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짜증나서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작가인가 싶기도 했다.
설계가는 그림으로 얘기하고 디테일에서 승부를 걸어야지 이게 도대체가 뭔가 싶기도 했다.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컨셉에 집중했던 그런 시간이 지금의 설계 작업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둥 같은 힘을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직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얼토당토않은 순간의 아이디어들은 컨셉이라는 그릇 안에 조심스럽게 담겨진다. 그릇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디어가 제자리를 찾게 된다. 셰프들이 얘기하는 요리의 플레이팅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컨셉이 명확하다면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면서 힘 있는 하나의 원칙으로,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틀로 작동하리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의견,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 관공서 인허가 문제, 심의위원 의견, 예산 문제, 주변 민원 문제, 현장 문제 등을 헤쳐나가야 할 때마다 말장난에 의미 없다고 했던 컨셉은 나에게 많은 가이드를 제공한다. 그러한 가이드를 제공했던 컨셉은 구체화, 상세화, 실현을 통해 클라이언트에게 그리고 나와 클라이언트가 함께 상상해서 만들었던 장소에 하나의 이름표로 되살아난다.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였고 그 이름이 실현된 결과물과 일체감을 갖는다면,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내가 같은 것을 상상하고 같은 것을 실현해 냈다면, “이것은 하나의 완성품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컨셉이 3분의 2정도 익었다 싶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초기 평면 위주로 시작을 하게 되는데, 다음 네 가지 고려 사항을 뒤죽박죽 섞어 그리기 시작한다.
– 컨셉의 반영(이름표를 붙일 만한가)
– 클라이언트와의 교감(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소화했는가)
– 오버 디자인의 지양(예산 범위 내에 들어오는가)
– 드로잉을 통한 기능과 평면 비례의 추구(평면이 비전문가가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몇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평면은 다른 여러 기능과 역할보다 일단 미적으로 아름답게 완결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클라이언트뿐 아니라 디자이너가 보기에도 어느 정도마음에 들어야 (앞으로 계속 봐야하는 평면도를) 상세화하며 쉽게 발전시킬 수 있다. 평면에서 오차가 적어야 한다. 그래야 상세화 과정에서 구조물과 시설물의 위치 조정으로 인해 평면이 변경되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색연필-빨간 사인펜-검은 플러스펜-색연필’을 순서대로 사용하며 그림을 그려 나간다. 색연필은 점점 진한 색으로 변화되면서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빨간 사인펜은 아이디어가 기능과 접목되는지 검토하는 레이어로 기능한다. 모든 것이 결정될 때 비로소 검은색을 사용하게 되고, 이때 컨셉과 일치하는가를 검증하는 레이어로 마감한다. 검은색 평면에 색연필로 색을 입히면서 녹지와 공간을 (다음 작업을 감안하여) 마무리하는 첫 단추를 꿰게 된다.
우리의 작업은 고맙게도 주로 오래된 대형 건축 회사나 친구인 클라이언트와 함께 진행되어 본의 아니게 건축에 제안도 많이 하고 건축도 우리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는 편이다. 건축법 이외의 건축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이를테면 건축 매스, 입면, 파사드, 컬러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며 진행한다. 따라서 오래 같이 작업한 클라이언트들은 우리가 건축물을 포함한 일체형 디자인을 제안해 주길 바라며, 우리는 때에 따라 건축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5 클라이언트로 변신할 순간이다
이름표가 달린 아름다운 평면(컨셉을 담은 공간 구성 1차 안)이 어느 정도 구성되면 클라이언트와 약속을 잡게 된다. 효율적인 시간 배분과 성격 급한 클라이언트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평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가능한 빠른 시간에 미팅 날짜를 잡는다.
이제부터 클라이언트와 지난한 설득과 협의와 후속 작업(도면, 보고서, 보고, 예산서, 감리 계획)이 시작된다. 앞선 프로세스가 ‘생계형 디자이너 모드’였다면, 이제는 ‘클라이언트 모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할 단계다.
나는 이 프로세스에 진입하면 클라이언트와 수많은 화제(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신변잡기 등)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를 많이 알고자 한다. 가능한 기호(선택의 기준, 좋고 싫음, 디자인풍)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하나의 뇌와 눈을 갖고자’ 애쓴다. 클라이언트의 눈으로 대상을 다시 보고 검증 하고자 한다.
클라이언트는 지금 상황에서, 내가 돈을 쓴 이 공간이 돈 값을 할 것인가? 내가 선택한 이 디자이너가 사기꾼 아닌가? 내가 지인들에게 자랑스러워 할 정원과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마구 얘기한 것들이 전문가가 보기에 쓰레기 같은 의견인가? 내가 상상했던 것이 나올 것인가?
내가 한 상상이 맞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클라이언트로 변신하려는 시도를 통해 위의 걱정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데니스 레스던(Denys Lasdun)이라는 디자이너의 말로 이 단락을 마무리한다. “우리의 직업은 클라이언트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기보다, 그가 원한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주는 것이다.”
6 산이 없는 12월이었다
그런 설계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하늘과 땅이 붙어있는 이국의 어느 곳에서 사무실 개소를 고민했다. 지평선만 보이는, 즉 ‘산이 없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사무실 개소에 대한 플랜을 구체화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국제 설계공모에 참가해보기로 했다. 거칠게 손발을 맞춰보면서, ‘사무실을 열어도 뭐 죽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쉽게 쉽게 했다. 설계공모 팀 등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팀명을 정해야 한다. 깔끔하게 팀원들 성의 이니셜을 조합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L: 故이광빈
L: 이강훈
O: 오형석
S: 손방
Y: 유선근
K: 김아연
이렇게 ‘L2OSYK’가 설계공모 등록 아이디가 됐고, 손발은 잘 맞췄고, 당선은 안됐고, 로직은 탄생했다. 이렇게 디자인로직(LOSYK)이 2005년 5월에 시작됐다. 이강훈은 현재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음 호에는 프로젝트 별로 발생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다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하였다. 만 10년 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 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하였고,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되었으며, 세종문화회관 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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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권병현
미래숲 대표, 전 주중 대사
지금 중국은 의심할 바 없는 ‘세계의 공장’이다. 세계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2010년 이후에는 최대 생산국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의 격차 또한 다른 나라들과 해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값싼 토지, 느슨한 환경 규제에 의존해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중국의 환경 문제는 단순히 자국 내 문제로 치부될 수 없는 성격을 띤다. 지금 중국의 경관을 결정짓는 것은 세계 시장의 변화, 곧 인류의 가파른 소비 성향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널리 알려진 캐시미어의 비극이다. 캐시미어는 일반적인 양털과 달리 캐시미어 염소의 목덜미 부근에서만 자라는 짧은 털duvet로서, 급격한 온도차로부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바깥쪽의 거친 털 사이에서 촘촘히 자라는 미세한 섬유다. 털을 깎아 만드는 울과 달리, 캐시미어는 양치기들이 조심스럽게 빗질해 수확한다. 중국 내몽고內蒙古 지역은 예로부터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상품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기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캐시미어를 활용한 사치품 수요의 급증은 이 지역의 삶의 방식과 경제에 급격한 변동을 가져왔다. 가격의 급등과 외부로부터 유입된 투자 자본은 전통적인 형태의 이동식 방목이 유지해 오던 염소의 적정 비율과 수의 균형을 깨고 초원을 황폐화시켰다. 드넓은 초지는 사막으로 바뀌고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나갔다. 사막화로 인해 소실된 마을이 약 2만5,000개로 추산된다.
한편 중국의 서부는 일찍이 각종 중공업 기지를 건설하는 데 따른 에너지원을 충당하기 위해 광대한 면적의 숲을 벌채해 왔다. 사막화방지협약에 제출된 2006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의 사막 면적은 정확한 통계를 얻기 힘들지만 전체 국토의 약 27%로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초지의 경우 1980년대 이후 해마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까지는 매년 서울의 네 배 크기로 사막이 확대되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쿠부치库布其 사막은 베이징 서쪽 400km 지점까지 전진해 왔다. 한국으로 날아오는 황사의 약 40% 가량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황사에 의해 시민들의 건강과 도시 기능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으며, 급기야는 베이징 천도에 대한 논의까지 이르게 되었다.
권병현 미래숲 대표는 주중 대사로 재임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부치에 폭 800m, 길이 15km의 녹색 띠, 즉 녹색장성Great Green Wall을 만들어 사막의 진출을 막는 것이 가능함을 중국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학자들은 이동식 사막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앙이고 무모한 일이라며 말렸지만, 희수의 나이에도 식을 줄 모르는 권병현 대표의 신념과 열정은 불가능에서 희망의 씨앗을 틔웠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UNCCD)은 그간 미래숲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10억 그루 나무 심기Billion Trees in Desert 운동을 함께 시작했고, 처음에는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던 중국 정부도 이제는 오히려 더욱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공청단을 주축으로 중국은 2050년까지 4억 헥타르에 달하는 숲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유엔은 권병현 대표를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 챔피언Sustainable Land Management Champion’ 및 ‘건조지 대사Drylands Ambassador’로 임명해, 미래숲의 녹색장성을 통한 그의 값진 경험을 사하라 남부 사헬 등 전 세계적으로 사막화가 심각한 곳을 복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권병현 대표를 매개로 한 한중 협력 사업은 지금까지 약 2천8백만 그루의 나무를 식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적인 환경인만큼 나무의 생존 여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다. 지금까지 다양한 수종에 대한 실험을 통해 백양나무와 사류沙柳나무를 주로 식재하고 있다. 잎이 없는 막대기 형태의 가지에 수분 억제제를 도포하고 1m 이상 깊이에 식재한다. 또한 바닥에는 나뭇가지 단을 격자형으로 깔아 바람에 저항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구의 이동을 최대한 저지시키는 방법을 이용한다. 쿠부치는 인근 황하 지류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지하 수고가 높아, 그나마 유리한 환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은 그 어떠한 생명체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황량해 보이지만, 미래숲의 녹색장성 사업은 면밀한 관찰과 끈질긴 실험,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60~70%에 가까울 정도로 경이로운 활착율을 달성해 왔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전시해 왔다. 저서로 『시티 오브 뉴욕』(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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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철이 그리는 수묵화
철1은 1,535˚C 이상에서 녹습니다. 불순물의 함유량에 따라 다르지만요. 인류가 불을 다루게 되면서 철기 문화가 시작되었고 두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뛰어넘는 혁명이 되었죠. 온도 조절 기술은 철의 제조와 가공 기술을 발전시켰고 사회의 발전 또한 가속화했죠. 철의 대량 생산과 함께 시작된 산업 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삶의 질은 철과 함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그 쓰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해서 지금도 우리는 철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높은 강도를 요구하는 시설이나 강한 힘으로 버텨야 하는 부품에 쓰이고 그것을 연결하는 작은 부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죠. 대개 설계 도면을 작성할 때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성품을 반영하고, 이를 시공에 옮길 때는 공사 현장으로 전달된 부품을 단순 가공·조립하는 과정이 반복되죠. 재료의 성질 자체보다는 목적에 맞는 제품의 완성과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재료)을 기능이 아닌 재료의 시간적 속성, 물성 따위의 감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철과 철을 담고 있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작업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철은 광석에서 유용 광물useful mineral을 분리해 내는 선광mineral dressing과 제련 공정을 통해 태어나는데, 제련된 금속이 필요한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공공정이 필요합니다. 주조casting는 만들고자 하는 모양의 공간을 갖는 틀(주형)에 금속을 부어 넣고 굳히는 작업이고 소성은 금속에 열과 힘을 가해 변형하고 모양을 만드는 것이죠. 그 외에는 단조forging, 압연rolling, 인발drawing 등이 있습니다.하지만 순수한 철은 강도가 약해 구조용 재료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탄소를 더해 합금으로 만든 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이죠. 탄소의 함유량에 따라서 철을 강鋼, 순철純鐵, 주철鑄鐵로 나눌 수 있는데, 조경 소재를 만들 때는 대개 강도가 높고 가공하기 좋은 ‘강’을 활용한 판재나 선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단점이 하나있어요. 바로 녹rust입니다.
녹스는 건 철이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산화되는 걸 의미하는데 그 과정에서 철의 색이 바뀌게 되죠. 결국 녹슬지 않게 하려면 철이 공기 중의 기체와 반응하지 못하도록 도료(방청 혹은 마감용)를 사용해 막을 쳐야 합니다. 내구성을 위해 재료의 성질을 가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철의 순수하고(?) 숭고한 맛은 사라질 수 있죠. 물론 일부러 겉을 치장해서 다른 효과를 얻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철에 크롬과 니켈 등 부식에 강한원소를 첨가한 합금입니다. 이름 그대로 녹슬지 않는 철을 뜻하지만 사실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녹이 슬기도 해요.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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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서울대학교 미술관
지금은 자주 봐서 익숙해졌지만 이 심상치 않게 생긴 건물이 교문 옆에 처음 세워졌을 때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괴상하게 생긴 건물이 학교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고, 꼭 하나 장만하고 싶었던 거장의 작품을 ‘득템’했다며 기분 내는 사람도 있었다. 2005년도에 완공된 서울대학교 미술관 이야기다. 밑면이 사선으로 잘린 직육면체를 코어 구조가 받치고 있는 이 미술관은 유글라스U-glass 마감 덕에 가볍게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물과 주변 지형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외부 공간은 매우 흥미로운 공간감을 품고 있다. 건축의 네 면을 따라 각각 독특한 공간 유형이 발생했는데, 아쉬운 점은 이를 신경 써서 정교하게 드러내지 않고 거칠고 투박한 상태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을 돌면서 차례대로 풀어보도록 하자.
미술관의 입구 광장은 거대한 처마 공간이다. 이 처마의 길이는 20m이고, 높이는 4m에서 9m까지 달한다. 건물 파사드의 끝부분을 뒤틀어 살짝 들리도록 처리해 관악산을 더욱 시원하게 품는 시야를 제공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곳이며, 비가 오는 풍경을 즐기기에도 적당한 장소다. 사용된 재료에도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비상설로 유명한 조각 작품이 배치되기도 해 미술관의 진입 광장으로는 손색이 없다. 다만 답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디 포장을 대체한 판석 포장이 기존 미술관 재료와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는 점은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미술관의 동쪽 면은 지형과의 관계를 고려해 좁은 통로로 계획되었다. 서쪽 면의 통로는 외부와의 연결이 원활해 유동 인구가 많지만, 동쪽 면의 통로는 다소 후미진 곳이라는 인식을 준다.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기에 확실히 불리한 상황이지만 잘만 다듬으면 독특한 장소로 거듭날 기회가 엿보이기도 한다. 폭 2.2m, 높이 2.8m, 길이 20m의 좁은 보행 터널은 빛과 관련된 흥미로운 건축적 체험을 제공한다. 어쩌면 계단을 통해 하강한 후 터널을 지나 숨겨진 비밀의 정원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 비밀의 정원이 더욱 매력적인 서프라이즈가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했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