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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비움
    근대적 도시 제도는 태생적으로 밀집 포비아 성향을 가진다. 18세기 산업화와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야기한 정주 환경의 악화는 밀집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낳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곧 도시계획과 제도의 소명이었다. 그 결과 현 도시 제도는 대체로 ‘채움’을 억제하고 ‘비움’을 강제하는 방향성을 가지며, 채움과 비움의 양과 크기에 대해 비율, 최대·최소의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의 도시 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제도, 크기를 정하다’(2023년 5월호)에서 언급했듯, 신도시 계획은 수용 인구와 신도시 규모를 기준으로 공원·녹지의 비율을 설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거 지역에서는 남쪽 대지의 건물이 북쪽 대지에 드는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건물 높이에 따라 이격거리를 만족시키는 계획이 필요하다. 크게는 도시 단위에서 작게는 필지 단위까지, 여러 도시 제도는 채움에 대해 최소한의 비움을 확보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도시 제도가 채움과 비움의 양에 관여하는 것만으로 충 분한 것일까? 채움과 비움의 총량적 비율은 도시의 모습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지만, 채움에 대한 비움의 방식에 의해서도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그림 1). 우리의 도시 제도가 어떤 채움과 비움을 만들어 내는 지 살펴보자. 모아서 크게 혹은 나눠서 여러 곳에, 비움의 배분 근대 도시 제도가 채움에 대해 최소한의 비움을 확보한다면, 그 비움은 도시 내에서 어떻게 배분되어야 할까? ‘그림 1’의 뉴욕과 교외 단독주택지는 밀도와 높이도 매우 다르지만, 비움의 배분 방식도 매우 다르다. 전자는 개별 대지에는 건축물을 거의 꽉 채워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광장과 공원 등 도시에 공동의 비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세한 도시를, 후자는 개별 대지 안에 일정 비율의 비움을 확보하는 것이 우세한 도시를 보여준다. 달리 말해, 비움의 배분 방식 매트릭스에서 꽤 극단적인 위치에 해당하는 예다. 채움과 비움의 균형을 실현하는 배분 방식으로 어떤 것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시의 기후는 물론 긴 시간 형성된 해당 사회의 공간 문화를 거스르는 비움의 특정한 배분 방식이 무작정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 도시 내에서도 중심업무·상업지구냐 외곽의 주거지냐에 따라서, 산이나 하천 등 자연 지형요소의 인접 분포에 따라서, 도시 조직의 특성에 따라서, 채움과 비움의 배분 양태는 달리 평가될 것이다. 우리의 도시에서 채움과 비움의 배분에 관여하는 대표 제도로는 공동의 비움을 확보하기 위한 공원·녹지 설치 기준과 개별 대지 내 비움을 확보하기 위한 건폐율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두 제도가 애초에 비움의 배분 방식을 설정하는 짝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며 목적한 바가 서로 다르다. 광장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공원·녹지 설치 기준은 도시민이 도시공원이라는 어메니티를 공평하게 충분히 누리는가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도시 지역 거주 인구 1인당 6m2로1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이는 총량적 접근으로 대개 시 또는 구, 생활권 등의 공간 단위로 달성 여부를 따지게 된다. 건폐율은 대지 내 위치에 관계없이 최소한의 공지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으로 대지면적 대비 건축물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을 용도 지역에 따라 20~90% 이하로 제한한다. 두 제도의 조합이 비움의 배분 방식 매트릭스에서 어디쯤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도시의 비움에서 어떤 방식의 배분이 우세한지를 절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두 제도가 설정한 기준에서 드러나듯, 도시 공간의 여건에 대응해 공동으로 확보하는 비움과 개별로 확보하는 비움 사이 균형점을 달리 설정하고, 이를 위해 두 제도의 기준을 상호 조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거주 인구가 아닌 주간 상주 인구가 많고 건폐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도심지에 공동의 비움을 더 확보할 제도적 근거는 없다. 대지면적이 작은 저층 주거지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주거지는 실질적인 건폐율의 차이가 현격하지만 공원·녹지 설치 기준은 동일하게 적용된다(그림 2). 이처럼 현 제도는 도시와 개별 필지라는 양 극단의 단위에서 비움의 양을 정할뿐, 도시 내에 비움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만든 나쁜 비움 도시 제도가 채움을 억제해 얻는 비움은 모두 도시 공간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여러 연구자는 어떤 광장과 공원, 블록의 중정과 건물의 전면 공간이 잘 쓰이는지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윌리엄 화이트(William H.Whyte)는 1970년대 뉴욕에서 여러 외부 공간을 관찰해 어떤 곳이 사람들을 모으고 사랑 받는지 분석했다. 적당한 크기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 햇빛을 쬐며 앉을 수 있는 벤치, 아름다운 식생과 수공간 등 매력 요소,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 등이 활력 있는 외부 공간을 만드는 인자로 제시된다.2 이런 특징들을 갖춘 ‘좋은 비움’을 만드는 데는 제도보다는 계획과 디자인의 몫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제도가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맞는 좋은 비움의 조건을 개별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며, 설령 몇몇 지침을 제시하더라도 그 지침을 따르지 않는 좋은 공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쁜 비움’도 개별 계획가와 디자이너만의 몫일까? 우리 도시 공간에 존재하는,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부 공간에는 도시 제도의 몫이 분명히 있다. 토지 수요가 높은 도시에서 대규모 비움을 확보하는 것은 공공 재원과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조성의 타당성과 목적과 활용을 제도 바깥에 둘 수 없다. 따라서 개별 대지의 비움에 비해 공동의 비움에는 상대적으로 더 구체적인 설치 기준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3’ 기사의 사례는 이를 설계한 디자이너의 역량 부족 탓일까? 동인천 광 장은 교통광장 중 역전광장에 해당하며, 관련 법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은 비움을 만들기에 충분한지 생각하게 된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2. William H. Whyte, 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 Project for Public Spaces, 1980.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 [어떤 디자인 오피스] 공간이오 식물과 함께 깊이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정원이 과시의 수단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면서 정원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비싼 소나무를 식재하는 정원에서 탈피해 내가 심고 가꾸는 한 그루 나무와 한 포기 야생화에 의미를 담고, 꽃이 피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정원을 즐긴다. 정원은 더 이상 화려할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사치스러울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그러나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은 담백한 정원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를 지향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세 가지 기준을 정했다. 공간 구조의 단순화 너무 복잡한 공간 구조는 오히려 공간에서의 감흥을 떨어뜨리며 조잡해 보이게 만든다. 특히 정원을 처음 만들거나 너무 많은 것을 한 공간에 담고자 할 경우,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욱여넣게 되고 완성 후 시간이 지날수록 조잡해진 공간을 보며 후회한다. 공간을 쪼개는 것보다 절제하고 단순화해 공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감흥)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의 감흥이 점점 증폭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식재 우연히 국립수목원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주목을 보고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머리가 띵하게 울린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주목의 자연스럽게 뻗은 줄기와 거친 질감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원뿔형 토피어리 주목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위적으로 뿌리 주변의 줄기들을 잘라 잘 관리하며 키워온 외대로 자란 교목(공사목 스타일)보다는 멋대로 자라난 다간형 교목이나 밑동부터 여러 가지가 나오는 관목은 정원에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더한다. 다간형의 겹쳐진 줄기를 가진 식물은 좁은 정원에서 오히려 깊은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며, 꽃이나 잎의 색깔이 화려하거나 위압적인 소나무가 아니더라도 정원의 감흥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원 디자인에서 다간형 교목이나 관목을 선호한다. 재료의 물성을 살리는 시설물 과도하게 가공한 시설물의 사용을 지양한다. 그러한 시설물은 재료 본연의 물성이 사라지고 인공적 느낌이 강해지면서 검소하거나 세련된 느낌을 반감시킨다. 최소한의 가공과 디자인으로 나무는 나무로서, 돌은 돌로서, 철은 철로서의 본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때, 공간의 편안함과 세련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급적 돌의 물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두께감과 무게감이 있는 디딤석을 사용한다. 나무는 통나무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트렁크 형태의 벤치를 활용한다. 철로는 날렵하고 차가움을 느낄 수 있는 형태의 시설물을 디자인한다.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답게 무채색의 도시적 세련됨이 돋보이게 연출하고자 한다. 공간의 켜와 시간의 켜 공간의 켜, 깊이를 더하다 이오(異澳)에 담긴 뜻처럼 깊이가 남다른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공간의 켜를 쌓아 깊이를 만들어 공간에서의 감흥을 극대화시킨다. 오태현 소장의 ‘오픈 월 링크드랜드스케이프(Open Wall: Linked Landscape)’(2020년 제2회 LH가든쇼)는 투명한 커튼 월과 돌 담장, 그리고 그 너머의 수목들이 수평적으로 겹치며 시각적으로 공간이 깊어 보이게 했다. 이러한 깊이 있는 공간감을 만들기 위해서 설계 단계부터 3D 작업으로 끊임없이 공간을 분석하며 시뮬레이션한다. ‘청초: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하는 정원’(2020년 제2회 LH가든쇼)은 산단풍의 배식에서 굵은 줄기의 단풍나무를 앞으로 배치하고, 가는 줄기의 단풍나무를 멀리 식재했다. 두꺼운 줄기는 더 두껍게, 멀리 있는 가는 줄기는 더 가늘게 보이도록 착시 현상을 이용해 공간의 켜를 깊어 보이게 연출했다. 산속 나무들을 보면 여러 줄기가 겹치며 깊은 숲속의 공간감을 만드는 것처럼. 게다가 안과 밖에서 보는 풍경 프레임에 자연스럽게 식재가 겹치는 경관은 공간의 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간의 켜, 즐거움을 더하다 정원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시간의 켜다. 조성한 직후 완성된 모습을 보며 정원의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더욱 풍성한 재미를 맛보려면 꾸준함이 필요한 가드닝이 필수적이다. 정원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미 많은 이가 공감하고 있다. 사계절로도 부족해 일곱 계절로 정원의 아름다움을 말한 피트 아우돌프가 그랬듯, 정원에 식재된 다양한 관목과 숙근초가 계절마다 변화하는 모습은 다양한 시간의 켜를 만들어 낸다. 한양타워 옥상정원의 여름과 겨울 화단의 모습을 보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상록수는 작은 블루스타향나무 5주가 전부다. 겨울의 썰렁한 경관을 보완하기 위해선 상록수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디자인했다. 우리가 디자인한 정원에 식재된 수십 종의 식물들이 계절마다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들은 시간의 켜를 쌓아가며 정원의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디테일한 설계와 시공 디테일이 살아 있는 설계와 시공은 설계와 시공이 모두 가능한 우리의 장점이자 자랑이다. 설계만 하는 설계사무소는 현장의 모든 상황을 100% 예상하며 설계할 수 없어 늘 아쉬움이 있다. 시공사는 남이 설계한 것을 도면에 의존해 재현하다 보니 설계 의도를 100% 표현하긴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설계와 시공을 같이 작업하다 보니 과도한 도면으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예상치 못한 현장의 상황으로 부족한 설계를 현장에서 보완할 수 있다. 게다가 정원 디자이너가 현장에 상주해 결정해야 할 사항을 설계 의도와 현장 여건에 맞게 결정한다. 현장 경험이 많은 소장의 경험치가 보태져 섬세한 정원으로 완성되어 간다. 설계는 시공 탓을, 시공은 설계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과의 책임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현장에서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수시로 소통하다 보니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며, 클라이언트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언트들이 지속적으로 공간이오를 지원하는 정신적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며 우리의 자신감에 힘을 실어 준다. 식재 설계 식재 설계는 우리의 차별점 중 하나다. 일단 수종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도면을 그리는 방법에도 차이가 난다. 특히 초화를 표현할 때 넓은 면적을 하나의 해치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포트 한 포트 직접 현장에서 식재한다는 상상으로 도면을 그려 나간다. 이러한 식재 계획은 자연스러움을 통한 편안함, 그리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정원 디자인을 위한 기본요소가 된다. 섬세한 식재를 하기 위해 관목, 초화 식재 공사 때는 전 직원이 현장에 출동한다. 단순한 관리자 역할이 아닌 직접 식재하는 가드너 입장에서 현장에 투입되며,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스럽게 위치와 꽃의 얼굴을 보며 식재한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기에 입사한 직원들은 공간이오의 스타일을 익히는 일종의 트레이닝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을 땐 모으고 흩어질 땐 흩어지는 공간이오만의 식재 스타일을 구현한다. 식재 계획과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설물 설계 시설물은 정원의 공간 디자인을 위한 요소로 식물의 섬세함을 돋보이게 해주는 중요한 배경이다. 세밀한 도면으로 계획해 섬세한 시공으로 완성도를 높이려고 한다. 시설물의 디테일한 상세도를 만들어 시공의 완성도를 높이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 공간만의 시설물을 디자인하고 만들기도 한다. 소재의 종류, 컬러와 마감재 선정은 항상 마지막 발주까지 거듭해서 고민한다. 특히 벽 마감재의 컬러 선정은 면적의 크기에 따라 색감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신중을 기한다. 울산권역 정원드림프로젝트 때 고래의 색을 결정하기 위해 세 가지 핑크색을 구입해 직접 테스트해서 결정하기도 했다. 청초 작업 때도 자연스러운 목재의 느낌을 찾아내기 위해 목재상을 수차례 찾아다녔다. 정원 관리 공간이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정원 관리다. 설계하고 시공한 정원을 모니터링하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다만 정원 관리를 제초 작업이나 교/관목 전지 정도로 인식하는 탓에 아직은 가드너로서 정당한 인건비를 청구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정원 사업이 확장되면 정원 디자이너나 정원 컨스트럭터(constructor)보다 정원 유지·관리를 하는 정원 관리 가드너의 수요가 더 부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원 관리는 정원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보살피는 중요한 일이며, 우리는 오랜 관리 계약으로 정원을 지속적으로 완성해 가고 있다. 정원 관리의 하이라이트는 정원 조성 후 과도하게 자라난 식물의 분주나 가지치기와 생육에 맞는 환경에 식재되지 못한 식물들의 재배치에 있다. 정원의 방위와 주변 건물들의 그림자를 고려하며 식재했지만, 예상치 못한 그늘이나 물고임 현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관리계약과 정당한 인건비 책정이 필요하다. 정원 관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관수다. 정원 식물에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양의 물을 공급하는 것이 정원 관리의 기본이다. 우리는 건강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관수 시스템 설치를 권장한다. 물론 초기 비용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기후변화로 생기는 봄 가뭄이나 주기적으로 제 시기에 관수를 못해 발생하는 식물 고사를 막을 수 있어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으며, 설치 후 만족도가 높은 아이템 중 하나다. 우리의 프로젝트 중구 빈집 정원 서울 한복판 구도심에 생긴 빈집의 자투리 공간을 정원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몇 평 남짓한 빈집을 헐어낸 자리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공사 여건이 열악했지만,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좁고 보잘것없는 공간을 편안하고 세련된 정원으로 만들었다. 카페 정원 2020년 우연히 맡게 된 카페 정원은 LH가든쇼에서 선보인 청초의 확장 버전이다. 늘 관심 가졌던 그늘정원을 구현할 수 있어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청초에서 시도해 보았던 음지 식물들을 실제로 넓은 면적에 식재할 수 있었다. 음지 식물로 차분하고 편안한 그늘정원을 디자인했다. 단순한 선형의 동선 외에는 이렇다 할 디자인은 없지만, 식재 자체로 공간의 아우라를 만들어 낸 프로젝트였다. 지하 주차장 위의 인공지반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교목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관목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독립형으로 자연스럽게 자란 관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원이 됐다. 돌이켜보면 매순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클라이언트의 결정은 늘 한결 같았다. 전문가 관점에서 결정을 내려 달라고 하다 보니, 대부분의 결정은 디자이너 몫이었다. 결과 또한 디자이너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했었고, 그 고민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프로젝트라 애착이 많이 간다. 테라스 정원 최근 하이엔드 레지던스가 많이 늘어나며 테라스에서 정원을 즐기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최근에 우리도 이러한 테라스 정원 프로젝트를 맡았다. 심플한 느낌의 백색 건물에 경관 중심의 자연스러운 정원과 이용자 중심의 모던한 정원을 디자인했다. 진주 월아산 작가정원 지난해 진주 월아산 작가정원 지명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공간이오가 처음으로 공모를 준비했던 프로젝트였다.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한 자연 복원을 콘셉트로 디자인했고, 고정희 박사의 식물적용학을 기반으로 식재 설계를 했다. 아쉽게 당선작은 되지 못했지만, 첫 공모전 작품이라 애정이 남다른 프로젝트였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생활정원 2020년 평택역, 2021년 용인시장 그리고 2022년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익산)와 광양시청 앞 광장은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발주한 생활정원 프로젝트였다. 정원작가로 참여해 기본계획과 실시설계를 진행했다. 특히 2022년 전북대 캠퍼스와 광양시청 현장은 설계와 시공을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여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밸런싱 네이처 2022년 제3회 LH가든쇼 해외초청작가 앤디 스터전이 설계한 정원 ‘밸런싱 네이처’를 시공할 기회가 생겼다. 사명감을 갖고 시공했다. 초청작가정원 ‘경외원’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금전을 쏟아부었다. 앤디 스터전의 기본계획만으로 실시설계 없이 현장의 숍드로잉으로 레벨을 파악하는 등 어려움은 많았지만,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주택정원 지난 겨울 동안 설계를 하고 올봄에 시공한 정원이다.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를 준 클라이언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매순간 합리적이며 이유 있는 결정으로 순조롭게 프로젝트가 흘러갈 수 있었던 즐거운 프로젝트였다. 정원의 배경이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요소이기도 한 기존의 대형 수목이 공간에 잘 녹아들게 디자인했다. 공간마다 켜를 만드는 데 고민한 프로젝트였다. 공간이오(空間異澳)는 팀펄리 L&G의 플랜팅 디자인 중심 정원설계와 오스케이프 스튜디오의 공간 디자인 중심 조경설계가 만나 디테일이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정원 공간을 설계, 시공하는 정원 스튜디오다. 정원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자 삶의 쉼이며 공간을 통해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는 예술로 생각하고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간다. 두 대표의 성인 이(李)와 오(吳)에서 발음을 가져왔지만, 한자는 異澳(다를 이, 깊을 오)를 쓰고, 깊이가 남다른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뜻을 담았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통해 세련되면서도 정갈한 정원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 [모던스케이프] 인물을 기념하는 법
    기념과 숭배의 의례는 인류의 오랜 전통으로, 동상은 그 수단이 되었다. 높은 대좌 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 동상은 신전이나 교회에 설치되어 복종 혹은 권위를 상징했다. 이때 동상은 신성한 종교와 같아서 낙서 등의 불경스러운 행동은 용납하지 않았다. 종교와 동일시될 만큼 신성하게 여겨진 동상은 시민 사회의 태동과 함께 국가 권력의 과시용 혹은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용으로 전환된다. 대표적 예가 프랑스의 마리안느(Marianne) 동상이다. 마리안느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혁명과 공화정의 가치를 담았던 가상의 여성으로, 도시와 농촌 코뮌 전역에 동상이 확산된 바 있다. 지금은 마리안느 흉상을 설치하지 않은 관공서가 없을 정도니 프랑스의 대표 동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신생 국가의 경우,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나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을 동상으로 제작해 이용하기도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회쇠크 테레(Hősök tere, 영웅 광장)는 헝가리 건국 1,000년의 역사와 위대한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조성된 곳이다. 광장 중앙의 대천사 가브리엘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회랑이 펼쳐지는데, 이곳에 헝가리 건국에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을 표현한 청동상을 돌기둥과 나란히 세웠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특별한 장소를 동상을 이용해 기념하기도 했다. 1862년 조성된 오스트리아 빈 시립공원(Stadtpark)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모차르트, 안톤 브루크너 등 빈의 저명한 예술가 동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동상은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 급진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때로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영웅을 기념하고, 또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분야의 천재를 기념하며,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간을 압도하는 강렬한 장치로 다채롭게 활용됐다. 한국에서는 동상이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립됐다. 그 중심에는 1966년 8월 11일에 발족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가 있다. 1964년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37인 선현 석고상의 착색, 결락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 위원회 발족의 배경이었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류기현, “‘애국선열’의 거리 만들기”, 『광화문 앞길 이야기』, 서울역사편찬원, 2021, pp.182~196. 서울특별시 푸른도시정책과, 『공원현황』, 서울시, 2010. 전우용,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서울학연구』 25, 2005, pp.89~122. 정호기, “박정희시대의 ‘동상건립운동’과 애국주의”, 『정신문화연구』 30(1), 2007, pp.335~363. 조은정, “한국 동상조각의 근대이미지”, 『한국근대미술사학』 9, 2001, pp.285~287. 에릭 홉스본 외, 박지향·장문석 역,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4. 그림 출처 그림 1~2. 위키피디아 그림 3. 국가기록원 그림 4. 대한뉴스 제468호 장면 캡처, KTV 아카이브
  • 커넥티드 필드 광교 중심광장 국제설계공모 당선작과 수상작
    지난 8월 1일,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광교 중심광장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청운이엔씨+HEA)의 ‘커넥티드 필드(Connected Field)’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택지개발지구 공공공지에 조성되는 광교 중심광장은 광장, 지하부 문화 시설(테마형 체험 시설, 전시장), 실내정원으로 구성된다. 광장을 통해 새로 마련되는 보행 브리지(공중 보행로)는 도청사가 입지한 북쪽 경기융합타운과 연결되고, 지하보행로·지하차도는 남쪽 수원컨벤션센터와 이어진다. 광장, 보행 브리지, 지하보차도 건립을 통해 지역 규모의 보행축을 완성하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8개 컨소시엄이 공모안을 제출했고, 7월 25일부터 이틀간 2단계로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은 당선작이 캐노피 구조로 독특한 장소성을 구현했고, 수직·수평적 동선 구성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인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입체적 가변형 캐노피로 도시 맥락 속 유연한 대처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광교 중심광장은 기본 및 실시설계를 거쳐 2025년 착공해, 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2,655m2 규모의 입체적 장소로 조성될 예정이다.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당선작과 수상작을 간략히 소개한다. 당선작, 커넥티드 필드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청운이엔씨+HEA 커넥티드 필드는 도시의 핵심 행정 시설과 주변 상업지역을 보다 강력하게 연결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촉매제로서 인근 호수공원과 경기정원의 자연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로써 탄생한 풍경은 랜드마크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도시 보행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도시가 공유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된다. 도시의 흐름을 잇는 입체적 필드: 도시의 평면적 흐름을 수직적으로 변화시켜 입체적인 도시 지형의 흐름을 만든다. 입체적 필드는 문화·근생시설과 더불어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한 그라운드 레벨의 필드, 공중의 또 다른 캐노피 필드로 구성된다. 상부 캐노피 필드는 단순 회랑이 아닌, 보행로와 생태적 자연 공간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공간이다. 곳곳에 위치한 포켓 공간은 휴식 및 소규모 모임, 이벤트를 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를 갖추고 있다. 포켓 공간은 캐노피 루버 시스템과 더불어 지상 광장과 교류하는 입체적 필드를 경험하게 한다. 도시 일상과의 조화: 커넥티드 필드는 광교 시민의 다양한 일상 풍경을 담아내는 곳이다. 경기정원에서 이어지는 공중 보행로는 입체 공중 정원으로서 도시적 풍경의 가드닝 공간 속에서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보행로에서 하부 오픈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라운드 레벨에서는 경기정원과연계된 수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하며 끌어들인다. 아케이드의 상가 이용객들은 캐노피 하부의 그늘에 모이고 거닐며 휴식을 즐긴다. 지하보차도를 통해 컨벤션센터를 지나 호수광장을 향해 걷고 뛰며 도심 속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사계절 내내 식물이 가득한 실내정원, 지하에 위치한 운동 시설과 전시 시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더욱 풍성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커피와 도서관
    소소한 일상이 한 편의 영화가 된다면 어떨까. 짐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2006)는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이들의 일상을 11개의 단편으로 담아낸다. 사촌 간의 미묘한 질투와 손님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종업원,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배우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커피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자는 커피와 담배가 어지럽게 놓인 지저분한 테이블이 자꾸 나와서 금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지루해서 다 보기가 힘들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자꾸만 보면 담배가 당긴다고 하더라. 비흡연자라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커피와 담배를 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꾸밈 없는 일상을 보는 소소한 재미가 들었다. 농담과 수다, 오지랖과 질투 등이 교묘하게 뒤섞인 관찰 예능이라고 할까. 내가 만약 영화감독이 된다면 이러한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 제목은 ‘커피와 도서관’. 짐 자무쉬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하지만, 대개 영화감독이나 소설가들의 데뷔작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하지 않나. 그래서 내 첫 영화도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개봉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겠지만 영화의 얼개가 되어줄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커피와 도서관에 얽힌 첫 에피소드는 사실 상습적 연체와 관련이 있다. 학창 시절, 공부하러 도서관은 가는데 막상 가면 하기는 싫어서 교과서 대신 도서관 책을 잔뜩 빌려놓고 맨날 반납일을 까먹거나 덜 읽어서 늦게 반납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연체료를 내고 남은 동전들로 주머니가 가득했고, 짤랑거리는 동전을 처리하려고 도서관 자판기 밀크커피를 연신 뽑아 먹었다. 미어캣처럼 도서관을 괜히 어슬렁거리는 동지(?)가 눈에 보이면 괜히 한 턱 쏘는 척하면서 자판기 앞으로 데려가서 같이 밀크커피를 마셨다. 한약방 벤치에 앉아서 근황 나누는 할머니들처럼 소소한 농담을 곁들이면서. 그때 공부를 좀 할 걸 그랬나 하며 후회하던 시절도 있었다. 백수라 쓰고 취준생이라고 읽던 그 시절, 집에서 빈둥거리기 싫어서 동네 근처의 정독도서관에 매일 같이 출석 도장을 찍었다. 시간이 많으니 책이나 원 없이 읽자는 마음도 있었지만, 구내식당 밥맛이 꽤 내 입에 맞았고, 점심 먹고 매점에 들러 캔커피 하나 들고 도서관 앞마당을 산책하곤 했다. 재잘거리며 서로를 앵글에 담는 연인들, 점심시간 잠시 틈을 내 등나무 퍼걸러 아래에 앉아서 책을 읽는 직장인, 천진난만하게 팔을 휘두르며 뛰어노는 꼬맹이들을 보며 괜히 왠지 모르게 공간의 ‘활기’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요새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종종 일부러 짬을 내서 또 도서관에 간다. 한 재단이 유료로 운영하는 회원제 도서관인데, 약 2만여 권의 문학 도서를 구비하고 있다. 술자리 두어번 안 가고 아낀 돈으로 가입하면 1년 간 이용이 가능하다. 공간을 둘러보면 예술적 취향이 대단한 장서가의 서재를 구경하는 기분이 난다.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과 문학, 철학 서적은 물론 작가별로 책을 구분해 둬서 장르 구분 없이 작가의 전작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천득 선생님의 전작도 읽을 수 있고,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또 입구의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들어가면 금상첨화라고 할까. 저녁에는 카페에서 칵테일도 판다고 하더라.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칵테일과 도서관도 꽤 좋은 조합일것 같다. 물론 두 발로 갔다가 네 발로 나오는 불상사가 있으면 안되겠지만. 생각해 보면 커피를 마시며 즐겼던 도서관이 내게 일종의 케렌시아(Querencia)였는지도 모른다. 투우에 출전하는 소가 결전을 앞두고 케렌시아란 장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결전을 준비했던 것처럼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도서관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밀크커피로 시작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오기까지 꽤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나 늘 함께 해준 도서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너의 영원한 동지 올림.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뭘 써야 하는지 또렷해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머릿속이 복잡해서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주제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문장 사냥을 나간다. 억지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전시를 보러 간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유튜브 프리미엄 회원의 혜택도 벗어던지고 영상 앞뒤에 붙는 광고를 들여다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영 의욕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괜히 지난 30일을 되돌아보기나 했다. 한때 영원히 기억되는 장소를 만드는 방법은 이야기 속에 공간을 넣는 것이라 믿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에 공간을 녹여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남들은 어떻게든 듣지 않으려 하는 1교시 수업을 골라 신청하고 남는 시간에 곧잘 영화관에 다녀왔다. 인물 관계의 촘촘함이나 서사, 대사도 중요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분위기의 배경이 있으면 그걸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귀신이 출몰한다 해도 ‘장화, 홍련’(2003)의 목조 건물에 하루정도 머물며 아름다운 벽지를 낱낱이 뜯어보고 싶었다. 졸업작품으로 회현시민아파트의 골조를 남겨 수직 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5)에서 죽은 아내 미오가 돌연 나타난 숲 속 폐공장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렸었다. 힘있게 마구 번성한 자연이 부셔져 가는 콘크리트 골조를 삼키는 듯한 모양이 좋았다. 물론 이제 영화 속 배경 대부분은 온전한 장소가 아니라 카메라 시점에 따라 조각을 낸 세트라는 걸 안다. 그래도 여전히 길을 걷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공간을 만나면 심장이 뛴다. 기차역, 특히 이제는 열차가 니지 않는 폐역도 그중 하나다. 진주에 가는 KTX는 띄엄띄엄 있었다. 가는 데만 서너 시간을 잡아먹으니 새벽 열차에 올라야 했다. 돌아오는 기차가 빨리 끊기는 터라 출발 전부터 마음이 급했다. 틈틈이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아보며 「한겨레」의 ‘서울 말고’ 연재를 떠올렸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꽤 재수 없게 느껴졌다. 도착한 철도문화공원은 기대한 것만큼 고즈넉하고 단정했다. 계획안으로 보았을 때는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맹꽁이 서식처에서 느껴지는 야생적인 자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버려진 선로가 무성한 풀에 덮여 있어 꼭 자연이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을 잠식해버리는 듯한 풍경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용과 유지‧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공간은 장소가 아닌 이미지로 남아버린다는 것도 이제 안다. 하얀 구름을 돋보이게 해주는 청명한 하늘은 좋았는데, 예상보다 강렬한 햇빛이 문제였다. 숨을 쉬는 건지 뜨거운 증기를 마시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무 그늘에 숨어 드론을 날릴 때마다 그 열기를 해치고 나가는 작은 비행체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어야 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시기를 넘어 끓기 시작했다는 지구 열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친구 L은 홀로 해운대를 다녀왔다. 아무래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바다와 작별을 해야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모래사장 위에 깐 돗자리에서 튜브를 불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휴대폰 갤러리에서 올해 다녀온 부산 바닷가의 사진을 뒤적이며 아쉬워했다. 인간들이란, 하고 중얼거리며 회피하다가 오후에 교정을 보던 ‘새책’ 지면에 얻어맞았다. “환경운동의 여러 방향 중 인간 혐오라는 극약처방은 내 옆의 가난한 이웃보다 북극곰에게 더 공감하기 쉽게 했을 뿐 아니라…….”(125쪽) 요즘 나는 날 오롯한 개인으로 느끼지 못한다. 나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며, 여성이고, 자연 파괴에 일조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 있으며, 노동자 계급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비장애인이다. 그래서 내가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도 몇번씩 죽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손가락이나 다리 하나가 사라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졌다가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면서 다시 신체의 감각이 돌아오는 걸 느낀다. 해결할 방법 없는 슬픔이 무력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이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각주 1.안희연의 시 ‘소동’의 첫 문단 일부.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 슬픔을 보이
  • [PRODUCT] 360도 파노라마 경관이 매력적인 ‘투명 돔’ 아늑한 투명 돔에서 즐기는 캠핑
    무료한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가족 단위 캠핑 문화가 확산되고, 각종 매체에서 캠핑 문화를 조명하면서 캠핑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디자인파크의 레저시설물 브랜드 ‘캠프4(Camp4)’는 이러한 캠핑 문화에 주목하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활용한 독특한 시설물로 신개념 캠핑 공간을 제공한다. 투명 돔은 360도 파노라마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돔 형태의 파빌리온으로 야영객들에게 새로운 캠핑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기능적인 측면도 우수하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일반 유리보다 200배 높은 내구성을 가진다. 표면 UV 처리로 자외선을 차단하고, 3T 설계로 소음을 차단해 비와 눈 등의 외부 영향 없이 자연 속에서 아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캠핑장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원형 돔에 LED, 커튼 등을 설치하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리조트, 호텔 등의 투숙객에게 작은 편의 공간을 제공하거나 수영장, 카페 등의 이용객에게 무박 피크닉 또는 자연 친화적인 캠핑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색적인 포토존으로 이용할 수 있다. TEL. 1577-2243 E-MAIL. www.camp4.co.kr
  • 남악신도시 모아엘가2차
    남악신도시는 전남 영암호 주변의 목포시와 무안군에 걸쳐 개발되고 있으며, 전라남도청과 각종 유관기관이 이전되면서 행정타운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는 서남부권의 신도시다. 모아엘가2차는 40% 이상의 풍성한 녹지율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남악지구를 관통하는 남창천의 지천과 인접해 이후 조성될 어린이공원과 경관녹지까지 단지의 경관요소로 담아내는 녹색주거단지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조경은 풍부한 녹지를 기반으로 남도의 기후조건을 활용함으로써 상록활엽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매립지인 대상지 특성과 무안의 지역적 상징체계를 접목하여 연꽃을 테마로 공간 및 통합시설물계획을 진행하였다. 특히 연꽃의 이미지를 활용해 단지 곳곳에 배치된 엘가퍼골라는 브랜드이미지가 성장하고 있는 모아엘가의 새로운 조경요소가 될 전망이다. 연화운무(蓮花雲霧) 무안의 상징인 백련과 영암호의 운무를 테마로 한 중심공 간으로, 보행자출입구에서 인접공원까지 단지 중심축을 따라 풍성한 녹지를 확보하고 산책동선을 조성했다. 주민복지시설 전면에는 연꽃을 형상화한 커뮤니티 쉼터엘가퍼골라를 조성하고, 녹지축의 종점에는 생태계류와 작은 석가산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공원으로의 경관적, 물리적 연결성을 높였다. 돌 틈 사이의 안개분수가 만들어내는 운무가 계류와 어울려 운치를 자아낸다. 녹색주거 조금 떨어져서 단지를 바라보면 주거동 사이의 녹지축이 훤히 보인다. 주거동의 측벽이 노출되는 부분에는 낙락장송 을 군식하여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짙은 초록의 스카이라인에 먼저 눈이 가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 단지 입구로 들어서면 잘 생긴 소나무를 뒤로하고 후박나무 가로수와 제주팽나무 등 짙은 녹음수가 푸르름을 더한다. 단지 내 녹지들은 마운딩 처리가 되어 공동주택단지의 인공지반환경 특성상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식재토심을 최대한 확보하였다. 또한 하층식재에 특별히 공을 들여 토양유실을 방지하고 입체적인 녹지경관을 유도하고 있다. 녹색그늘 모아엘가는 외부공간 활용 측면에서도 시설보다는 식재에 훨씬 비중을 많이 두었다. 휴게공간에도 퍼골라와 같은 시설물보다는 가급적 녹지를 늘려 그늘식재를 활용한 쉼터로 조성했으며, 운동공간 역시 포장경계를 없앤 친환경 흙포장을 도입해 자연스럽게 인접 녹지와 어울리도록 하였다. 건강산책로 단지의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르고 있는 남창천의 지천은 경관녹지와 어린이공원으로 조성되어 녹지의 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으며, 인접한 중고등학교까지 연결되어 학생들의 등하굣길로 이용되고 있다. 건강산책로는 이 녹지의 켜를 이어 남북방향으로 단지 내 주요 외부공간들을 연결하고 있으며, 어린이공원과는 직접 연결되어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Architect _ Moa Housing Construction Co., Ltd Landscape Architect _ Gaia Global Co., Ltd Location _ Apartment Houses Block 21, Namak-ri, Samhyang-eup, Muan-gun, Jeollanam-do Area _ 28,406m2 Landscape Area _ 12,100m2 Completion _ 2013. 09. Photograph _ Park, Sang Beak Editor _ Lee, Hyeong Joo T ranslator _ Ahn, Ho Kyoon
    • 이형주
  • [에디토리얼] 조경학 교육인증제, 첫걸음
    이번 달 기획 지면의 출연진은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젊다. 특집 ‘캠퍼스 톡담, 배움을 설계하다’에 여섯 개 대학 조경학과 학부생 여섯 명을 초대했다. 경희대 강다연, 계명대 김은주, 서울대 권효진, 서울시립대 신진호, 전남대 정세영, 한경국립대 안태경은 편집부가 던진 여섯 가지 공통 질문에 이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공들여 쓴 각자의 답변을 서로 돌려본 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활기찬 토론을 벌이며 생각을 나눴다. 강의, 설계 스튜디오, 커리큘럼, 캠퍼스 일상, 외부 활동, 사회 이슈 등을 둘러싼 이들의 생각이 모든 조경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조경 교육의 현실과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 과제의 단서를 파악하게 해주는 생생한 자료로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학생의 이야기는 얼핏 읽으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행간에는 기성 조경(학)계의 안일한 현실 인식과 틀에 박힌 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성장 배경과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짚고 있는 문제가 설계·시공 실무 현장과 유리된 교육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특집이 조경 교육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전국의 교수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조경의 역사와 조경 교육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 두 갈래의 50년은 과연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을 이뤄왔는가. 별도의 지면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일 테지만, 그간의 조경 교육이 전문직능(profession)이자 학문분과(discipline)인 조경(학) ‘전문 교육’ 실천의 목표, 체계, 내용 정립에 소홀했다는 점만큼은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학교는 다양성과 다각화를 추구하면서, 또 일부 학교는 학부 중심 교육보다 대학원 중심 연구에 비중을 두면서 조경학과의 중심에서 조경(학) 자체가 흐릿해진 상황이라는 진단도 가능할 것이다. 교수 연구성과의 양은 늘었지만 그러한 성과가 막상 조경 실무의 질적 발전이나 졸업생의 조경 관련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역설. 폭넓은 스펙트럼인가, 조경(학) 없는 조경 교육인가. 한국 조경 교육 50년 역사가 배출한 조경가가 과연 몇 명인지 꼽아본다면, 기성의 조경 교육을 교정하고 다음 50년의 새 교육 기반을 구축할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경의 전문성 자체를 교육의 중심에 두고 전문 교육과 전문 학위, 면허로 이어지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조경학회는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가협회와 힘을 합쳐 (가칭)‘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9월부터 심층 연구와 토론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필요성과 목적은 대학 조경 교육의 정상화와 정체성 정립, 교육-학위-면허의 연속적 체계 확립, ‘조경사’ 제도와의 연동, 국제적 기준의 조경 교육의 내용과 질 확보, 인구 감소에 따른 조경학과 폐과 위기 대응 등 다양한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조경진흥법’에 기반한 ‘제2차 조경진흥계획’(2022)의 과제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설계 자격 제도 (가칭)‘조경사’의 필요조건은 교육인증을 받은 조경학과 졸업이다. 교육인증제와 조경사 제도가 원활하게 맞물리면 조경 교육과 실무의 유기적 관계가 비로소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경학 교육인증제는 조경 교육과 실무의 전문성과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위원회는 우선 1단계(2023~2024)로 각 학교의 교육 현황(교수, 학생, 교육과정, 성과, 취업, 시설 등)을 조사하고 국내외 사례 연구에 착수하며, 인증 기준과 절차(인증기관, 자격, 교육과정, 인증 평가 기준과 절차 등)에 관한 연구에 나선다고 한다. 2단계(2025~)로는 다양한 형식의 토론과 공론화(워크숍, 세미나, 심포지엄 등), 인증 기준과 절차 심화 연구, ‘조경사’ 자격제와 연계 추진 등을 전개한다고 한다. 본지는 오는 11월호 특집으로 조경학 교육인증제를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환경과조경』의 베테랑 에디터인 김모아 기자가 이번 8월호부터 격월로 인터뷰 지면, ‘오늘의 대화, 어제의 재구성’을 꾸립니다. 김 기자는 “조경의 한복판에서, 혹은 조경의 언저리에서 독특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내밀한 대화까지” 나눌 것이라고 합니다. 첫 인터뷰이는 조경가이자 만화가인 김수린입니다. 새 지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풍경감각] 버스 유람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지하철역이 가까웠던 이전 작업실에서는 붐비고 밀리는 버스로 발걸음이 선뜻 향하지 않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바닥이 흥건하고 축축한 공기가 유리창을 뿌옇게 가렸다. 그래서 화창한 날씨, 한산한 시간만을 골라 버스에 올랐다. 지금 작업실은 서울답지 않은 한적한 구석. 북한산 자락이고 다다음 정류장이 종점이기에, 창밖은 푸르고 버스 안은 늘 한적하다. 버스 출입문 바로 앞자리에 앉는다. 어쩐지 동승자가 되는 기분이 들어 기사님에게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좁은 도로에 햇살이 내리쬐고, 내놓은 플라스틱 화분에 코스모스며 해바라기 따위를 가꾸는 작은 집과 가게를 지난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닮은 작은 건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빌딩이 가득한 곳에 도착한다. 이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면 이제는 어디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의 가장 바깥으로 옮겨간 만큼 이동 시간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환승을 많이 해야 한다고. 내가 먼 길을 왔으니, 이제 네가 우리 동네 놀러 올 차례라고. 그렇지만 실은 나쁘지 않다. 짧은 버스 유람을 하고 오는 길이니까. 이게 외딴곳에 사는 매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