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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디자인의 발견] Case Study: 거트루드 지킬 색, 질감의 초본식물 화단 디자인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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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기

 

 

아트 앤 크래프트와 거트루드 지킬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식물 디자인 세계를 구축한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영국의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을 꼽게 된다. 그녀 이전의 유럽 가든 디자인은 분명 식물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녀를 기점으로 식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색, 질감, 형태를 이용한 식물의 예술적 심기, 즉 식물 디자인의 세계가 펼쳐졌다. 


물론 거트루드 지킬이 이런 독창적 식물 디자인의 영역을 단독적으로 일궈낸 것은 아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낸 철학가, 예술가들과의 합동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거트루드 지킬의 식물 디자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녀는 1843년에 태어나 1932년으로 생을 마쳤다. 그때의 유럽은 이미 산업혁명(1760~1824)이 휩쓸고 간 직후로 사람들은 일종의 획일적인 대량생산의 경제 논리에 회의감을 가지면서 옛것으로의 회귀가 문화·사회적으로 재조명됐던 때다. 그리고 이 회귀를 이끌었던 가장 큰 문화의 축이 바로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Art & Craft Movment, 1880~1910)이라고 볼 수 있다. 아트 앤 크래프트는 간단히 축약하면 모든 생활용품들을 장인의 예술 감각에 의해 한정품으로 만들던 중세 시대의 공예 예술 감각을 다시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거트루드 역시 이때의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예술인으로 가든 디자인에 있어서도 공예 예술성을 무척 강조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관점이 인위적 예술성보다는 ‘식물의 아름다움’으로 변화가 찾아왔다는 점이다. 거트루드가 살았던 바로 전 시대 17세기의 유럽 정원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서처럼 한 치의 어김없는 형태와 기하학적 패턴, 정교함, 인위적인 예술성이 극치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로 접어들면서 17세기의 풍을 완벽하게 깨는 자유로움, 자연스러움, 낭만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영국 풍경화식 정원의 등장이다. 그리고 거트루드가 살았던 19세기 초가 되면서 다시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일깨운 사람이 바로 저널리스트이면서 원예가였던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 1838~1935)이다. 그는 ‘식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정원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급 아름다움’임을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통제적인 17세기의 바로크 정원과 식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풍경연출에만 급급했던 영국 풍경화식 정원을 동시에 비난한다. ‘식물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이 로빈슨의 철학적 배경을 가든 디자인의 세계로 구체화시킨 사람이 바로 거트루드 지킬인 셈이다. 


독창적인 다년생 초본식물 화단 디자인의 탄생 

거트루드 이전의 정원 속의 식물 디자인은 대부분 교목, 관목을 이용해 특정한 패턴을 만들거나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고, 혹은 캐노피를 연출해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었다. 거트루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른바 초본식물(단단한 줄기와 캐노피를 지니고 있지 않은 다년생 혹은 일년생 풀)을 이용한 화단 디자인을 선보이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초본식물의 꽃의 색을 이용한 화단 디자인은 사실 거트루드 이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이때의 디자인은 식물의 종류가 매우 단조로웠고, 단순히 극단적인 색상의 꽃을 대비시키는 획일적인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거트루드 지킬은 “이런 방식의 디자인은 식물 고유의 아름다움보다는 지나친 화려함만이 있을 뿐이다(The Gardener’s Essential Gertrude Jekyll , Colour Scheme, 2009)”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디자인 기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식물의 색채를 차가운 색감에서 뜨거운 색감 그리고 다시 그레이 색감 등으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지금까지도 식물을 색으로 디자인하는 중요한 노하우로 여겨지고 있다.


NOTE

- ‘화단(Border)’은 담장이나 생울타리 등의 배경이 있는 길쭉한 형태의 식물을 심을 수 있는 별도의 구획된 공간을 말한다.

- 거트루드 지킬이 권장한 화단의 형태는 그 길이가 60m, 폭이 4.2m에 달하는 길쭉한 직사각형이다. 이런 형태의 화단은 이후 롱 보더(Long border)’라는 용어로 불렸고, 거트루드 이후 많은 후배 디자이너에 의해서 활발히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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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트루드 지킬이 제안한 다년생 초본 식물 화단의 형태

 

 

거트루드 지킬의 색의 연출 노하우 

1) 색의 조합이란? 

색의 조합이란 단순히 어떤 식물을 어떤 식물과 함께 심었을 때 아름답게 보이는가를 보는 작업이 아니다. 전체의 화단을 생각하고, 이 화단을 어떤 연속되는 색의 배열로 연출할 것인지, 그리고 이 연출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 내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2) 색의 배열 노하우 

① 화단의 시작은 차가운 느낌(cool colour scheme)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연분홍, 파랑, 흰색, 연노랑으로 시작을 하고 

② 그 옆으로 조금 더 진한 색감의 노랑, 빨강, 주황의 색감이 배열되고, 

③ 그 옆으로 가장 진한 색상의 진빨강을 넣되, 여기에 조금은 부드러운 빨강, 어두운 주황을 함께 연출하고, 

④ 그 옆으로는 다시 앞서의 진행을 역순으로 완화된 노랑, 빨강, 주황을 넣어주고, 

 

⑤ 다시 보라, 연분홍 등으로 구성을 하되, 맨 끝 가장자리 즈음에서는 라벤더와 백묘국과 같이 잎의 색상에 흰빛을 띄고 있는 식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3) 차가운 색감의 중요성 

차갑고, 연한 파스텔 톤(연한 분홍, 보라, 파란색, 흰색이 가미된 초록의 잎)의 색감은 아직은 색상이 뚜렷해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눈에 준비 작업을 시킨다. 여기에 먼저 우리의 눈길이 머물게 한 뒤 뜨겁고 강렬한 색감(빨강, 주황, 노랑)을 보게 되면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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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혹은 화이트 가든. 거트루드 지킬의 가장 독창적인 화단 구성 중의 하나인 그레이 가든. 
그레이 가든은 단순히 흰 꽃을 피우는 식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잎의 색상이 완전한 초록이 아니라 여기에 흰색이 섞인 톤을지닌 것으로 그레이 가든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훗날 화이트 가든으로 더욱 많이 불리게 된다.

 

 

거트루드 지킬의 가든 디자인 따라잡기 

 

“식물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색의 연출이다. 그리고 색의 연출은 식물들이 지니고 있는 색상에 대한 시각적인 효과에 대한 공부와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 

“가장 좋은 가든 디자인은 식물의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이고 이게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화단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크기로 여러 개를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각각의 화단은 특별한 계절에 하이라이트 효과를 내도록 구성하고, 하나의 화단에 시간차를 두고 두 번의 절정이 나타날 수 있도록 안배할 수도 있다(Double border의 개념)” 

“식물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식물의 꽃, 잎을 가장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방법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색의 정원은 무엇보다 같은 색이지만 다양한 톤의 연출에 그 디자인의 완성이 달려 있다.” 


거트루드 지킬은 자신의 가든 디자인 철학을 1000편이 넘는 글을 통해 남겼다. 그 안에는 그녀가 지니고 있었던 정원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은 물론이고, 디자인에 대한 철학도 잘 담겨 있다.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그녀의 디자인 원리를 공부 중이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발전되고 진화된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기도 한다. 그녀는 단순히 식물을 심는 장소인 ‘화단’의 개념을 화가의 그림 그리기로 바꾸어 놓았다.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가 거트루드 지킬의 화단 구성법을 그대로 따라 자신의 정원 지베르니 정원을 조성했고, 이 정원을 화폭에 담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화단 디자인의 가장 큰 특색은 ‘색’의 연출이다. 그녀는 자연 상태의 식물이 피워내는 꽃과 잎의 색상에 관심을 가졌고, 이 색을 이용해 ‘그레이 가든’, ‘골든 가든’, ‘블루 가든’, ‘그린 가든’ 등을 연출했다. 그러나 거트루드 지킬을 단순한 화단 식물 디자이너로만 여길 수는 없다. 

그녀는 건축물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식물 디자인의 연출 세계를 끊임없이 제시했다. 건물의 가장 앞에 자리하는 테라스 가든을 단순한 공간적 기능에서 정원 연출의 요소로 탈바꿈시킨다. 계단 틈에 식물을 심고, 테라스 가든을 받치고 있는 벽체에 식물을 심어 정원의 요소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또 정원을 가르는 수로길, 연못 등의 물의 공간 디자인을 연출하고, 여기에 심겨야 할 수생식물 디자인을 선보였다.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위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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