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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기법] 그늘정원 조성 기법(2) 그늘식물의 생태와 경관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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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바람꽃

 

 

음지(full shade)에 서식하는 식물을 그늘식물 또는 음지식물(full shade plants)이라고 한다. 자연에서 음지식물은 대부분 숲 속에 분포하는데 그중에서도 음수림의 식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숲은 기후대에 따라 다른 천이과정을 보이는데 여기서는 온대림의 음수림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음수림은 대표적인 음지다. 키가 큰 교목들이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어 숲은 늘 그늘이 진다. 단풍이 지는 늦가을부터 새순이 나오기 전인 이른 봄까지를 제외하면 숲 안으로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시간은 거의 없다. 햇빛은 겹겹이 놓인 나뭇잎 사이를 거치면서 점차 옅어지고 순해진다. 

 

 


식생의 천이과정에서 보면 음수림은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다. 천이란 일정 지역 내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식생의 변이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나지에서 시작해 음수림에서 완성된다. 


극상림 또는 원시림으로 불리는 이 숲은 또 다른 교란으로 계속되는 순환과정을 밟아 나가지만 천이과정 중 가장 안정적인 완성형의 구조를 지닌다. 


음수림의 가장 큰 특징은 과도한 경쟁 구조가 아닌 생물 간의 안정적인 공존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음수림의 식물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햇빛과 유기물ㆍ수분 등을 나눠 쓰는 지혜를 터득했고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만큼의 분량 그 이상을 탐하지 않는다. 숲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 간의 관계 맺기 속에 보이지 않는 규율과 질서가 있고 이로 인해 조화로운 균형을 만들어 낸다. 


음수림의 이러한 특징은 형태적으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선 잡목림이나 양수림에 흔히 나타나는 공격적인 덩굴성 식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서로 치열하게 우위를 다투며 비슷한 크기로 성장하는 경쟁적인 모습이 아닌 뚜렷한 식생의 층위 구조를 보인다. 


숲 내부는 교목층, 아교목층, 관목층, 초본층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며 그 안에서 지나치게 도드라지게 성장하거나 근경을 길게 뻗어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하는 식물은 없다. 


음수림 내부에 들어서면 우리는 다른 시간대의 숲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숲 안은 형용하기 어려운 평온함과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하고 오래된 나무는 선각자가 지니는 경외감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음수림 내부의 엄중한 질서 즉 생태적 균형(Ecological Balance)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숲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대부분은 나무의 수간부(Trunk)다. 음수림에는 무성하게뻗어나는 잡목들이 없고 시간이 더해지면서 나무는 일정한 굵기 이상으로 커진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적당한 간격이 유지되고 간격이 주는 여백 안에서 멀고 가까운 곳에서 겹쳐지며 만들어 내는 선의 형상은 그 어떤 동양화보다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숲 내부는 바람의 영향이 적어서 습도가 높다. 오랜 시간 퇴적된 낙엽과 유기물들은 풍성한 부엽토층을 형성하고 있다. 가지각색의 이끼와 버섯, 수많은 양치식물이 지천으로 가득하고 1000여 종이 넘는 숲 속 야생화가 숲 이곳저곳에서 자라고 있다. 


숲 속 야생화들은 그늘정원에 이용되는 대표적인 음지식물이다. 단아한 형태와 부드러운 질감의 잎, 맑고 은은한 색감의 꽃은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화려한 꽃은 그 아름다움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손을 뻗어 꺾도록 하지만 숲 속의 꽃들은 시공간이 멈춘 것처럼 멍하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우뚝 솟아난 나무기둥 사이로 이른 봄 눈밭을 뚫고 피어난 바람꽃과 복수초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극상의 음수림은 없다. 그러나 깊은 산이나 계곡 사이로 산불이나 벌채 등의 영향을 적게 받은 원시림에 가까운 음수림이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숲을 찾아가 숲이  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체험하기 바란다. 


숲의 생태와 경관을 익히면 그늘정원을 만드는 일은 아주 간단해질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부대끼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생물들이 삶의 지혜와 순리를 익혀 나누고 공존하는 숲의 미덕을 느껴보길 권한다. 


그늘음지식물의 특징 

음지식물은 수목과 초본의 경우 그 특징이 조금 다르다. 수목의 경우 음지식물 즉 음수라고 부르는 나무들은 발아부터 초기 성장기까지는 음지에서 서식하지만 성목이 된 이후에는 대부분 양지에서 자란다. 여기서는 다 자란 이후에도 교목층 아래 놓이는 초본층과 관목층을 중심으로 음지식물의 특징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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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Y계곡

 

 

1) 잎과 줄기가 부드럽다 

숲 속은 강한 바람이 없고 공중 습도가 높다. 직사광선도 거의 없고 초식동물에게 공격을 받는 일도 드물다. 때문에 음지식물의 잎과 줄기는 연약할 만큼 부드럽다. 이것은 양지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형태적 특징이다. 만약 식물에 대한 정보가 없고, 잎과 줄기가 부드럽다면 강한 바람과 뜨거운 오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식재하기를 바란다. 


2) 지나치게 커지지 않는다 

음지식물은 적은 양의 빛 아래에서도 효율적으로 나눠 쓰는 데 적응한 식물군이다. 따라서 이웃하는 식물과 경쟁하며 보다 높게 자라기 위해 무리하게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무성하게 자라고 번져가는 양지식물과 달리 음지식물은 제자리를 고수한다. 화단에 앵초를 심어 몇 해가 지나도 앵초는 그 자리에서 분얼 숫자만 늘릴 뿐 위로 커지거나 주변으로 확대되는 일이 없다. 배식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이러한 성장 속도나 특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3) 땅속 뿌리줄기(근경)가 없거나 짧다 

식물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동물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식물도 영역을 확장하거나 보다 나은 서식지로 이동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뿌리줄기다. 뿌리줄기는 땅속으로 자라는 줄기를 말하는데 양지식물의 경우 뿌리줄기를 길게 뻗어 

더 나은 환경(특히 광조건)을 탐색하고 적합한 서식지를 찾으면 그곳에서 새잎을 내서 성장한다. 그러나 안정된 숲 속 생태에 적응한 음지식물은 이러한 뿌리줄기가 필요 없다. 설령 그 형태가 남아 있다고 해도 매우 짧게 나타난다. 단 조릿대(Sasa) 종류는 예외적으로 근경이 발달하는 식물임에도 음지에서의 적응력이 뛰어나 때로는 음지식생을 장악하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 조릿대 종류를 식재할 때는 독립적인 화단에 단일수종으로 식재하거나 식재지 하부에 시트를 설치해 근경이 뻗어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4) 비교적 천천히 자라며 여름철까지 크기 변화의 폭이 작다 

원추리와 같은 양지식물은 여름철이 되면 키가 더욱 커지면서 무성해진다. 그러나 맥문동(Liriope)이나 둥굴레(Polygonatum) 등의 음지식물은 봄에 순이 나와 성장하고 나면 그 후 크기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간혹 이러한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양지식물과 음지식물을 혼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장 후 크기가 맞지 않거나 양지식물이 음지식물을 뒤덮어 미관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5) 발아 후 꽃이 피는 성묘가 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류가 많다 

일반 야생화의 경우 발아에서 개화까지 약 1~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얼레지, 복수초, 바람꽃류, 앉은부채, 복주머니란, 연영초 등과 같은 음지의 다년생 초본식물은 최소 4~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또한 극상림의 안정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6) 털이 거의 없다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나는 털은 혹독한 건조나 추위, 바람, 염분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기관으로 숲 속에 자라는 식물에게 필요하지 않다. 다만 앵초 등과 같이 일찍 피는 봄꽃이면 식물 전체에 털이 나 있기도 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 없어진다. 



김봉찬은 1965년 태어나,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였다. 제주여미지식물원 식물 과장을 거쳐 평강식물원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식물원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7년 조경 업체인 주식회사 더가든을 설립하였다.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과 고층습원 조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 이사, 제주도 문화재 전문위원, 제주여미지식물원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조성 사례는 평강식물원 암석원 및 습지원(2003), 제주도 비오토피아 생태공원(2006), 상남수목원 암석원(2009),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원(2010),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2012) 및 고층습원(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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