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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유랑 인 호주] 여행자를 걷게 만드는 다문화도시, 멜버른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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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레이션 스퀘어 전경

 

멜버른 풍경읽기

지난 2008년 10월의 한적한 오후, 인천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 몸을 싣고 11시간의 여정 끝에 도착한 멜버른은 사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호주였다. 이러한 설렘 덕분일까? 빅토리아풍 건축물 사이로 안개 자욱한 아침 풍경은 화려하기보다는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은은했고, 남반구의 초여름 날씨만을 생각하고 공항을 벗어난 나는 하루에도 십 수도가 오르내리는 일교차에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아련하다. 


허겁지겁 옷가지를 추스르고 택시에 올라 도심으로 향하던 당시에는 초당 100원씩 올라가던 미터기가 배낭여행객인 나에게 무척이나 야속했지만, 굽어진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도크랜드(Melbourne Docklands)의 풍광이 언짢은 마음을 어루만질 만큼 환상적이었다. 

19세기 후반, 골드러시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호주 제2의 도시로 거듭난 멜버른은 채광업자와 노동자의 가혹한 탄압으로 태동한 유레카 혁명의 도시답게 거리를 거닐다 보면 멜버니언(Melbournian)이 사랑하는 광장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중심업무지구인 허들 그리드(Huddle Grid)와 버려진 항만시설을 리노베이션한 도크랜드가 유일한 도심일 만큼, 1000만 명이 북적이는 서울에 비해 매우 소박한 풍경이다. 


허들 그리드를 순환하는 35번 트램에 올라 도심 곳곳을 누비다 만나는 고풍스러운 거리나 야라 강(Yarra River)에서 호각에 맞춰 힘차게 노를 젓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멜버른만의 수수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모래알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마저 감미로운 세인트 킬다 해변(St. Kilda Beach)은 그들만의 안식처처럼 평온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석회암 절벽의 아름다운 풍치를 만끽할 수 있는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12사도 바위(The Twelve Apostles)와 원시림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오트웨이 국립공원 내 우듬지(Otway Fly Treetop Walk)도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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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입구와 플린더스역, 세인트폴 성당의 중앙에 위치한 방문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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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예술가의 낙서장인 그라피티 골목

 

멜버른 산책 하나. 페더레이션 스퀘어

지난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지로 우리에게 친숙한 플린더스역(Flinders Street Station)을 둘러보다가 기차역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떠밀려 도착한 곳은 멜버른의 키 낮은 랜드마크인 페더레이션 스퀘어(Federation Square)였다. 3.6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의 이 연방 광장은 호주연방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내가 찾았던 당시의 광장 풍경은 멜버른 최고의 축제인 멜버른 컵(Melbourne Cup)’이 열리던 날이라 그런지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와 대형 전광판을 통해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로 활기찼다. 중심업무지구와 야라 강(Yarra River) 사이의 좁은 부지에 위치한 이 시민광장은 인공지반에 조성된 공공 공간으로,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도시의 연료 공급을 담당하던 빅토리아 가스석유공사와 졸리몬트 철도부지, 프린스 브리지역이 자리하던 산업시설단지였다. 하지만 도시 미관을 해치는 낙후시설로 전락하면서 도심에서 야라 강으로의 접근을 단절시켰다.

구도심 내에는 시민을 위한 만남의 장소와 공공문화시설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정부는 멜버른의 관문으로서 시각적 경관을 회복하고 플린더스 스트리트와 야라 강의 연결을 촉진하기 위한 광장 조성 사업을 추진했고, 두 차례의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영국의 기반을 둔 랩건축사무소(Lab Architecture Studio)와 멜버른 지역 건축가인 베이츠 스마트(Bates Smart)의 컨소시엄의 설계안으로 결정됐다.

 

  

윤호준은 1982년생으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를 거쳐 서호엔지니어링 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조경 계획 및 설계에 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북경공업대학교 성시건축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서호엔지니어링 북경지사에서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환경과조경』과 『스테이플(STAPLE)』의 해외리포터(중국)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지난 2012년에 출간한 『디자인 유랑 인 유럽』이 있으며, 현재 『디자인 유랑 인 아시아』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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