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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 일본의 명원25 에도 시대 말기의 정원(3)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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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나엔 전경

 

시카나엔

시키나엔識名園은 외국 사신에 대한 접대와 국왕 일가의 보양保養을 위해 지은 류큐琉球 왕가 최대의 별저이다. 그러한 목적성 때문인지 시키나엔은 탁 트인 조망을 얻을 수 있도록 높은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 류큐국의 수도인 슈리성首里城의 외항 나하那覇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별저의 3면은 축산으로 보강하고 나무를 가득심어 험한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했고,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풍부한 용수를 얻을 수 있는 천혜의 장소성까지 지니고 있어 풍수적으로 길한 땅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류큐 왕가의 별저는 시키나엔과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다옥어전茶屋御殿이 대표적이다. 다옥어전은 슈리성의 동쪽에 있는 까닭에 동원東苑(토엔)이라고 불렸고, 시키나엔은 슈리성의 남쪽에 위치해 토엔과 대조적으로 남원南苑(난엔)으로 불렸다. 시키나엔은 본시 청나라에서 보낸 책봉사冊封使의 영접을 위해서 조영된 영빈관으로 가경嘉慶5(1800)1에 쇼온왕尙溫王(상온왕)의 책봉을 위해 청나라 황제가 보낸 정사正使 조문해 趙文楷와 부사副使 이정원李鼎元을 영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사쓰마薩摩 번주였던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도진가구)는 케이쵸慶長 14(1609) 류큐를 공략한 공로를 인정받아 막부로부터 류큐를 영토로 배령拝領받았다. 시마즈는 아마미 제도奄美諸島만 직할령直轄領으로 삼아 다스리고, 오키나와沖縄 본도本島 이남에 대해서는 류큐 왕국이 독립 국가의 체제를 존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렇지만 시마즈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는 류큐국을 사쓰마번의 관리하에 두어 섭정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류큐국의 왕위 계승까지 철저히 간섭했다. 실제로 류큐 왕가인 쇼가문은 시마즈 씨로부터 왕위 계승의 허가를 받은 다음 당시 류큐를 지배하던 중국의 황제에게서도 류큐 국왕으로 책봉되는 이중 절차를 밟아야 했다. 바로 이때 중국 황제가 보낸 책봉사를 영접했던 곳이 시키나엔이었다(西桂, 2005).

 

시키나엔은 3면이 축산과 식재로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에 동서 약 150m, 남북 약 50m의 대규모 못을 조성해 정원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 못에는 2개의 섬을 만들었는데 하나는 2개의 아치교에 의해서 연결되는 중도中島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풍 정자四阿인 육각당이 있는 섬으로 이 섬 역시 아치교로 연결되도록 했다.

 

류큐 왕국은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입지성 때문인지 건축과 정원에서 일본 양식보다는 중국적 양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시키나엔의 경우에도 어전의 건축 양식이나 정자의 건축 양식 그리고 석교의 형태와 디테일에서 중국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류큐 석회암을 사용하여 못의 호안을 축석하고,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을 다수 도입해 장식한 것을 보면 중국이나 일본의 양식과 또 다른 류큐만의 독자적인 경관성을 살필 수 있다. 이처럼 정원의 디테일에서 중국풍이나 류큐의 독자적인 양식이 보이기는 하지만, 정원의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에도 시대 일본 본토의 다이묘大名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작정 기법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못 주변을 회유하며 정원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지천회유 양식은 일본의 독특한 정원 양식이어서 시키나엔의 조성에 일본 정원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원의 남쪽에는 중국 사신이 권경대勧耕台라고 이름을 붙인 전망대가 있어 나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가 있다. 예전에 현재의 나하시가 경작지였을 때 왕이 이곳에 서서 농부들을 격려하고 농사를 권장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왕은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농지를 보면서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을 가졌을 것 같다. 중국에서 온 책봉사들도 권경대에서 보이는 경작지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시 키나엔은 정원 내부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대상까지도 포함한 정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개념의 차경 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못의 남쪽에는 배를 대는 주양장舟揚場(후네아게바)이 있다. 주양장은 왕과 그 일가들이 못에서 뱃놀이하던 배를 대기 위한 곳이다. 뱃놀이는 동아시아 3국의 정원에서 흔히 행해졌던 것으로 특히 중국의 정원에서 뱃놀이를 즐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주양장 역시 중국 정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키나엔에 주양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시키나엔은 단순히 지천회유식 정원이 아니라 지천주유식 정원을 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못의 수원은 육덕천育德泉(이쿠토쿠센)이라는 이름의 샘에서 용출하는 물이다. 육덕천은 왕이 마시던 샘물인데, 바닥의 2곳에서 많은 양의 물이 솟아오른다. 육덕천의 둘레는 류큐 석회암을 사용해 돌 모양 그대로 이를 맞춰 쌓았다. 이러한 쌓기 방식을 아이카타 쌓기あいかた라고 하는데, 류큐의 독특한 축석 방식이다. 육덕천으로부터 입수된 물은 못을 한 바퀴 돌아 롱구滝口(타키구치)를 통해 폭포 형식으로 떨어진다.

 

시키나엔에서 볼 수 있었던 옛 경관 가운데에서도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은 특별했던 모양이다. 봄에는 못의 동쪽에 조성한 매림에 매화꽃이 만발해 봄을 알렸고, 여름에는 샘 주변에 등나무 꽃이 지천이었으며, 가을에는 도라지桔梗(길경)꽃이 가득 피어 그야말로 별천지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모습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두 파괴됐고, 그 후 쇼와昭和 50(1975)부터 정비가 진행돼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이 정원은 2000년에 유네스코가 구수쿠グスク 유적 및 류큐 왕국琉球王国 유적을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일본의 국가지정 특별명승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한국의 전통수경관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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