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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 일본의 명원14 에도 시대 초기의 정원(4)
  • 에코스케이프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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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성을 배경으로 두고 큰 못인 교야큐쇼(漁躍沼)가 중심이 되는 겐큐엔 전경

 

겐큐엔

겐큐엔玄宮園은 히코네彦根번의 4대 번주인 이이 나오오키井伊直興(1656~1717)가 엔포延. 5년(1677)에 공사를 시작해서 3년 만에 완성한 히코네번의 하옥부下屋敷(시모야시키) 규어전槻御殿(쓰기고덴)의 정원이다. 규어전에 속한 정원은 겐큐엔과 라쿠라쿠엔樂樂園으로 이분되어 있는데, 이 정원들은 규어전의 조성과 동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정원의 형식을 갖추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겐큐엔이라는 명칭은 11대 번주인 나오나카直中가 이곳에 은거하면서 규어전을 개수한 분카文化 10년(1813)경부터 사용되었는데, 그때의 모습을 그린 ‘현궁원도玄宮園圖’가 전해지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겐큐엔玄宮園의 ‘현玄’ 자는 북쪽을 의미하며, 신이로운 동물인 거북이龜를 상징한다. 따라서 겐큐엔이라는 명칭에는 성의 북쪽에 있는 북원北園이라는 의미와 거북이와 연관된 봉래원蓬萊園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한편, 중국의 궁정에 부속된 정원을 ‘현궁玄宮’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겐큐엔玄宮園이라는 이름에는 지배자의 정원이라는 개념도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겐큐엔은 중국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에 있는 당나라 현종의 이궁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겐큐엔은 중국 산수화의 화제畵題로 등장하는 둥팅호의 소상팔경瀟湘八景1을 모티브로 해서 경관 요소를 도입하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혹자는 겐큐엔이 비와코琵琶湖의 경승지인 오미팔경近江八景을 본떠서 경관을 연출하였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겐큐엔에서 팔경이 의미 있는 개념으로 도입되었음은 정원이 잘 보이는 곳에 경관을 완상하고, 차를 마시기 위해 지은 복합건물군에 ‘팔경정八景亭’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봐도 알 수가 있다.


‘현궁원도’에는 ‘팔경정’ 가운데에서 임지각臨池閣(린치가쿠), ‘봉상대鳳翔台(호쇼타이)’라는 명칭이 보이며, 이들 건물과 더불어 ‘어약소漁躍沼(교야쿠쇼)’, ‘용와교龍臥橋(류가바시)’, ‘학명저鶴渚鳴(가쿠메이나기사)’, ‘춘풍부春風埒(슌부레쓰)’, ‘감월봉鑑月峰(간게쓰호)’, ‘살타림薩埵林(사쓰타린)2’, ‘비량계飛梁溪(히료케이)’, ‘함허정涵虛亭(간교테이)’과 같은 십경十景을 부전附箋으로 적어놓고 있다. 이것을 보면, 당시 겐큐엔에는 팔경이 아니라 십경 혹은 십승十勝을 원내에 조성하고 즐겼던 것을 알 수 있다(谷口徹, 2013).


번주 오오키 때 조성한 겐큐엔은 가신이었던 하우위문何右衛門 마쓰모토松本 또는 하우위문 고시이시越石의 작품이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명석名石과 진귀한 나무들을 구해 와서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의 집에 임시 정원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다음, 그 임시 정원을 오오키에게 보여주면, 오오키가 이것저것 수정하고, 수정이 완료된 후에 비로소 그것을 겐큐엔으로 옮겨서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정을 하였다고 한다. 작정 당시에 하우위문은 노령老齡으로 보행이 곤란하여 야마가고山駕籠3를 타고 공사를 지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한국의 전통수경관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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