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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도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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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만들기(17); 식물 지지울
덩굴성 식물인 포도나무, 등나무, 담쟁이 덩굴, 아이비는 단조로운 벽면을 아름답게 하고 차폐나 그늘을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요소이다. 덩굴식물이 생장을 위해서는 줄기, 꽃, 열매를 지지할 수 있는 구조물이 필요한데 대표적인 시설이 식물지지울이다.식물지지울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므로 덩굴식물의 특성과 울타리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특히 식물의 무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며, 생각보다 무겁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식물지지울의 패턴과 색은 시각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므로 벽이나 주변의 경관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도구드라이버, 수평계, 햄머, 망치, 톱, 삽, 렌치, 사다리□ 재료목재기둥 및 판재, 철망, 철선, 못, 볼트, 끈, 말뚝
▷ 식물지지대의 기둥 설치① 식물지지대의 기둥을 설치하고자 하는 곳의 위치를 결정한다.② 기초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기둥의 수직여부를 재확인한다.▷ 격자울의 제작① 식물지지대의 프레임을 짜고 여기에 짜여진 목재 격자망, 대나무 망, 네트 등을 연결하여 격자울을 만든다.
▷ 격자울의 설치① 기둥에 제작된 격자울을 설치한다.
☞ 주의사항① 기둥은 방부처리가 된 목재를 사용하고 목재가 지표면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② 격자울은 하중이 적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③ 지지울은 바람에 쉽게 넘어질 수 있으므로 풍하중에 저항할 수 있도록 버팀대를 설치하거나 고정해야 한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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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 환경조경자재 신기술, 신제품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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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의 위치 및 위치별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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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연대기; 태동부터 1980년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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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건설 이명복 차장
건설사 조경담당이 되기까지
청주대학교 조경학과에 다닐 때부터 조경시공업무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마침 군대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이식공사에 참여했다. 당시 분당이 막 조성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산림조합 소속으로 이식공사에 참여했다. 수해가 나서 무척 고생을 한 기억이 아직도 선하지만, 지금 가보면 참 많이 변했다는 점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하며 조경시공에 대한 꿈을 키웠다. 졸업 후에는 동의종합조경에서 7년여 정도 근무하면서 조경시공에 대해 많이 배웠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도 몇 년간 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고향에 적을 두고 있는 시공업체인 원건설에 입사하게 되었다. 건설사에서는 자체 조경공사가 많아 현장 담당자로서 원하는 조경작품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현장을 관리해야 하는데, 노하우는
과거 시공만 담당할 때는 내가 맡은 곳만 책임을 지면되므로 한 군데 집중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공사하는 학교, 아파트단지, 빌라, 골프장 등 다양한 곳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스케줄을 미리 짜게 되는데, 일주일간의 일을 대략적으로 파악해놓고, 바로 다음날의 일정은 전날 꼭 확인하여 일정을 잡는다.
이를 위해서 메모를 중시한다. 늘 수첩이나 적을 것을 갖고 다니면서 메모하고 그 메모사항을 직접 또는 전화로라도 늘 확인한다. 상황에 맞게 각 현장을 계속적으로 확인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먹는다고 직접 혼자 모든 현장을 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혹 다른 분야와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분야라고 해야 건축·토목인데, 그 중에서도 토목분야와 문제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토목에서 공사를 할 때 조경에 대한 배려 없이 기반공사를 해버리면 어려움이 많을 때가 있다. 하지만 토목은 거의 땅에 묻히게 되고 눈에 드러나는 부분은 조경이기 때문에 결국 최근의 추세와 맞물려 조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편이다.
아무리 비싼 공사를 해보았자,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조경이므로 토목분야에 필요한 것은 정당하게 요구하고 있고, 요즘은 이런 의견이 잘 받아들여진다. 결국은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것에서는 공통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조경에 관심이 많아서, 현장에 나오게 되면 건축물 보다 조경 현장을 더 꼼꼼히 챙기곤 하는데, 이런 것도 현장을 열심히 챙기게 되는 힘이 된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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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광교공원 수경시설 조성공사
공사명 : 광교공원 수경시설 조성공사
위 치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산1-1번지 일원
공원면적 : 25,849㎡(7,819평)
발주 : 수원시 녹지공원과
조경설계 : (주)삼풍엔지니어링
시공 : 솔렌스(주)(대표 이종만)
조경시설물 : 중앙그린월드㈜(대표 김희숙)
수경시설 : ㈜아쿠아텍코리아(대표 장진수)
공사 기간 : 2006년 7월 ~ 2007년 3월
주요 시설 : 음악분수(L=63m), 벽천(L=73m), 물레방아(D=4m), 계류(L=132m), 음악분수 관람석(L=120m, 4단)
기본 방향
광교산 이용객이 연간 400만 명 이상으로 광교공원의 잠재 이용객이 많으나 현재는 야외무대 이외에는 다른 시설이 없어 휴게목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이에 기존 조성된 공원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수원천의 생태유지를 위하여 방류수를 이용하여 수원이라는 도시 이미지에 걸맞은 물 테마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광교산을 찾는 등산객과 수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수원의 명소로 활용한다는 것.
독특한 주제를 도입한 수경시설(음악분수, 벽천, 물레방아, 계류)을 연출하고 다시 수원천으로 합류되도록 하였다. 특히 광교 정수장과의 고저차이로 자연수압에 의한 음수대 담수 및 벽천, 물레방아, 계류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경제적이며 친환경적으로 계획하였다. 또한 벽천 및 계류 주변에 향토 수종과 여러 초화류를 식재하여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음악분수(노래하는 분수)
고사분수와 무빙분수, 에어슈터 안개분수, 회전동력분수 등의 기능을 갖춘 대형 음악분수는 광교공원의 랜드마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음악분수의 구성은 고사분수(물높이 30m)1개소, 대형회전 분수(물높이 10m, 회전반경 90도) 2개소, 소형회전분수(물높이 6m, 회전반경 360도) 2개소, 중앙원형분수(D=8m, 물높이 10m, 개별·그룹제어방식) 1개소, 중앙원형분수(D=16m, 물높이 8m, 그룹제어방식) 1개소, 일열수직분수(L=63m, 물높이 10m, 개별·그룹제어방식)1개소, 일열무빙분수(L=63m, 물높이 6m, 그룹제어방식) 1개소, 좌·우측원형분수(D=8m, 물높이 10m, 그룹제어방식) 각 1개소, 안개분수(L=63m, 그룹제어방식) 등으로 구성하여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연출을 극대화하였다.
또한 칼라변환 LED 수증등으로 조명설치하여 연출에 따른 색상 변화로 야간공연시 경관을 극대화하였다. 음악분수에 사용되는 모든 자재는 부식되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이며, 펌프는 수평으로 사용하는 심정용 펌프로 재질 또한 스테인리스이다. 음악분수는 제어반에 의해 작동되어지며, 제어방식은 자동방식이 아닌 편집방식(특정곡을 최상의 연출로 편집)을 채택하고 있다.
분수대 주위에 설치된 풍속계와 강우계는 자동 운전시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 때 자동으로 분수를 정지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고사분수
30미터로 연출되는 고사분수는 고사노즐 1기와 수중펌프 1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간에는 10개의 수중조명등에 의하여 연출되어 진다. 고사분수는 음악의 클라이맥스나 음악분수가 연출되어지지 않을 때 연출되어지며 이로서 광교공원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원형분수 1
직경 8m로 구성된 ‘원형분수1’은 최대 10m로 연출되는 40개의 개별 제어밸브가 장착된 샤프노즐과 6대의 수중펌프로 운전되어 지며 40개의 조명에 의하여 야간연출이 이루어진다. 6대의 펌프는 개별적으로 작동되어 음악에 따라 서로 다른 물 높이의 분수가 연출될 수 있도록 한다.
원형분수 2
직경 16m로 구성된 ‘원형분수2’는 최대 8m로 연출되는 92개의 샤프노즐과 10대의 수중펌프로 운전되어지며 92개의 조명에 의하여 야간연출이 이루어진다. 10대의 펌프는 개별적으로 작동되어 음악에 따라 서로 다른 물 높이의 분수가 연출될 수 있도록 한다.
무빙분수
46미터의 파이프에는 74개의 샤프노즐과 74개의 스윙 시설, 74개의 무빙 모터, 74개의 수중조명 그리고 6대의 수중 펌프로 구성되어 있다. 최대 4미터로 연출되는 무빙분수는 무빙시스템에 의하여 좌우로 연출이 가능하며 음악에 따라 펌프의 회전수를 조절하는 장치와 펌프 대수에 의하여 다양한 연출이 이루어진다.
수직 노즐
46m에 걸쳐 최대 10m로 연출되는 수직 분수는 74개의 샤프노즐과 분사 시스템, 조명으로 구성되었다. 수직분수는 개별적으로 공급되고 제어되는 전자밸브시스템에 의하여 나선형 및 기하학적인 패턴의 물 모양 연출이 가능하다.
안개분수
64미터에 걸쳐 연출되는 안개분수는 200개의 안개노즐과 2개의 마이크로 필터시스템, 조명, 펌프로 구성되었다. 안개분수는 음악분수 연출패턴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며 단독으로 연출되어 분수대 수면에 물안개를 형성하여 신비감을 가질 수 있게 계획한다.
회전분수
회전되는 부분에 별도의 동력원을 설치하여 양방향 회전이 가능하게 연출되는 동력회전 분수와 분사구의 원심력을 이용하여 단방향으로 계속 회전하며 연출되는 무동력회전 분수가 각 2개씩 설치되어 있다. 회전분수는 국내 음악분수에서는 새롭게 도입되는 시스템으로 음악분수 연출패턴을 업그레이드 함은 물론 음악분수 미가동시에도 고사분수와 어우러져 랜드마크의 효과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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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학의 태동 및 성장
지나간 날들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과거의 연장선상에 현재가 존재하고 있고 또 현재의 상황이 앞으로 출현할 미래의 거울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해 본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하겠다.과거의 일은 역사속의 사건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속의 사건들을 기록과 구전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적 사건들은 이른 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구분된다.역사학에서 볼 때, 정사(正史)는 정부 기관에 의해 공적으로 편찬(관찬官撰)된 기록이고, 야사(野史)는 그 이외의 모든 사적 형태로 편찬(사찬私撰)된 기록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사는 진실 되고 믿을 만한 기록이며, 야사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왕조시대의 경우를 보면 야사가 정사보다도 더 정확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정사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해 야사를 남긴 사람들의 역사적 관점이 오히려 객관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야사의 내용들은 정사의 기록에 비해 다소 자유로운 기술방식에 의해 쓰여 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특히 야사는 숨겨진 이야기 혹은 감춰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역사이다.조경분야는 조경이라는 용어로 태동이 된 후 이제 35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한 세대를 지나고 있는 조경분야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미 10년을 기준으로 한국조경학회에서는 조경분야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해 왔다. “조경시공”지가 계획하고 있는 조경야사는 앞으로 계속되어질 속편에 의해, 그간의 조경분야에 관련된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발굴되어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글은 태동기부터 1980년대까지 조경 학술분야와 관련하여 일어났던 주요하고 굵직한 사건들을 중요한 사안별로 한번 정리하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참고로 이글은 한국조경학회지 11권 2호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조경분야 10년 발전약사(문석기), 동지 20권 4호의 한국조경학회 20년사, 한국의 조경 1072-2002(한국조경학회 창립30주년 기념집)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혀둔다.
조경학 이전우리나라에서 조경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임학과의 과목으로 개설된 “조경학” 강좌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쓰여 지고 있는 용어로 조경이 처음 사용된 것은 70년대 초, 정확히는 1972년으로 보여 진다.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내에 조경디자인 전공과정이 1972년에 설치되었는데, 아마 이것이 조경이라는 용어가 오늘의 조경의 개념으로 확대되어가는 최초의 계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시기 이전에도 조경과 관련된 학문적 분야가 현재의 상황에 비교하면 매우 제한적이고 단순하지만 이미 대학에서 학과목으로 개설되어 진행되어 왔다.이른 바 이 시기는 조경학 이전의 시기로서 조원(造園)이라는 용어로 정의되는 조원학의 시대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조원이라는 용어는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서, 일정시대에 그 틀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현대교육의 형성과정을 통해 볼 때 조원이라는 용어는 아마도 일정시대에 사용되었던 용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조원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예로 확인되는 것은 해방 후 대학에서의 조원학 강좌 개설을 통해서 이다. 대학에서의 조원학 강좌 개설은 1945~1946년경에 시작되었다. 이때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에 처음으로 조원학 강좌가 개설되었으며, 1947~1948년경에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에 조원학 강좌가 개설되어 안재준과 이경환에 의해 강의가 진행되었다.1958년 이후에는 조원설계 과목이 서울대학교 임학과에 개설되었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는 여러 대학의 임학과, 원예학과 등의 학과에서 조원학 강좌가 설강되어 강의가 진행되었다.
(본 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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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석 광산 지역의 자연회복과 국내에서의 적용방안(1)
석회석은 화학식이 CaCO3으로 탄산칼슘으로 구성된 퇴적암이다. 이 석회석은 토건재료의 기본인 시멘트의 주원료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며, 철강, 농업, 화공원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석회석의 용도를 살펴보면 철강산업, 시멘트, 일반화학공업, 농업의 비료, 식품 및 의약, 토건산업, 그리고 환경치유제 등이다. 석회석은 주 용도인 시멘트 외에 철강산업에서는 제철에 석회석 괴광이 사용되고 소결이나 탈황제 등으로 석회석이나 생석회가 사용된다.일반공업에서는 탄산소다, 카바이드, 유리, 설탕정제, 도자기, 금속칼슘 및 충전재로 사용되며, 그 중에서도 충전재로의 사용이 가장 활발하다. 농업에서는 비료와 토양개량제로 사용되고 식품 및 의약분야에서는 증량제나 희석제 등으로 이용되며, 토건재료 분야에서는 경량기포콘크리트나 팽창·붕괴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대기환경치유제로 습식탈황공정에서는 필수적인 재료이며, 폐수의 중화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한국지질자원연구소 홈페이지). 이와 같이 석회석은 일상생활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총 생산량은 시멘트인 경우 생산량이 적은 1월과 2월에는 매월 약 250만톤, 5월과 6월과 같은 소비가 많은 경우에는 매월 약 450만톤 이상을 생산하여 소비하고 있으며, 2005년도의 경우 년간 4,720만톤을 생산하였다(한국양회공업협회홉페이지).과거의 광업은 생산량을 극대화 시키는 부분에 주력하여 환경과 경관에 대한 고려가 많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변화로 “자연환경과의 공존이 가능한 개발과 조업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광산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도 과거의 저비용으로 고품질의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곳에서 안전, 비용, 품질, 환경을 모두 고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한편 복원은 “훼손된 자연을 훼손되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복원의 대상지는 훼손된 자연이므로 복원이라는 것은 생태적 복원의 개념을 정립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태적 복원이란 “인간에 의해 훼손된 피해지역을 원래 생태계의 종다양성과 역동성으로 되돌리는 과정”, 또는 “황폐된 곳, 손상 받은 곳, 폐석적치장과 같은 인공조성지역 등에 무엇인가가 자라게 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복원과 함께 사용되는 개념으로는 ‘복구’와 ‘대체’가 있다.
(본 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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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조경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필자도 조경공사 현장에서 기획하는 부서에서 열심히 뛰었고 퇴직하기 전에는 잊혀져 가는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서울시 영구문서 서고를 먼지범벅이 되어가면서 약 2년 동안 자료를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곳은 출입통제구역이어서 관련 공무원이 아니면 출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필자가 자료정리에 적임자였다고 자임하며, 필자의 정리가 끝난 약 6개월 후에 영구문서들이 경북 청송 문서고로 이관되었던 점을 미루어 본다면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서울시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만 골라 시대별로 소개하고자 한다.
제 1 · 2공화국시대(1945∼1961)이 기간은 1945년 8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이승만, 장면 정권시대(1년)의 약 16년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해방, 미군정치하, 주권국가 탄생, 6·25한국전쟁, 4·19혁명 등 우리민족 역사상 가장 격변의 시기였다.광복이 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속속 귀국하기 시작하였는데 백범 김구선생이 항일투쟁을 하다가 중국에서 돌아가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 유골을 모셔와 1946년 7월 6일 국민장을 치른 후 효창공원에 안장하였다. 김구선생은 자서전에서 애국지사의 묘소를 직접 잡았으며 제일 위에는 안중근 의사를 모시기 위해 비워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해인 1947년 9월에는 항일투쟁애국지사 이동녕, 차이석 의사가 안장되었으며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피격되어 7월 5일 본인 자신도 효창공원에 묻혔다. 1956년 5월 4일에는 종합경기장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착공식을 거행하였지만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회장 김창숙)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반대에 부딪쳐 결국 소규모 축구장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고 1960년 10월 12일 개장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연유로 정적공간인 애국지사 묘역과 동적공간인 효창운동장이 공존하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발생되고 말았다.1946년 8월15일 서울시 직제에 “공원위원회”를 두는 직제가 발표되었다. 미군정 당국의 “서울시 헌장” 에서 경성부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하여 독립시켜 서울시로 개칭하고 이것을 특별자유시(特別自由市)라고 하며, 서울특별자유시의 직제는 3관, 1처 8개 부, 5개 위원회를 두는 내용이었는데 5개 위원회 중의 하나가 “공원위원회”였다. 공원위원회는 시장이 임명한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4년간 보수 없이 일하고, 위원회에서 일할 공무원(서기관, 공원감독자)을 직접 임명하며 공원 · 광장 · 길(보도) · 운동장 · 레크리에이션 센터 · 놀이터에 대한 통제 · 관리 · 감독의 권리를 갖는 막강한 기구였다. 그러나 신생국에서 강력한 행정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행되어보지도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한국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 8월 5일 서울시는 전재복구계획으로 “수도재건방침 12개항”을 발표하였는데 조경분야에 해당되는 사항은 남산·북한산에 시립공원 설치, 올림픽운동장 설치, 창경원의 동물원 재건 그리고 토지구획정리사업 재개 등 4개항이다. 그러나 세부자료가 없어 당시 신문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남산시립공원조성계획에 따라 1956년 8월 15일 약 25m(81척)에 달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신입상(全身立像)동상이 건립되었는데 이승만대통령 탄신 80회임으로 81척의 높이로 제작되었다. 동상의 건립비는 2억6백만 환으로 전국 극장에서 입장자 한사람 당 20환씩 1년간 모은 것이었다. 1959년 11월 18일에는 남산 정상에 팔각 정자를 짓고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정(雩南亭)이라고 명명하였다. 낙성식 때 서울시장(임홍순)은 “이 정자는 이대통령의 은덕을 길이 전하고 시민의 관광지로 삼고자 지은 것”이라고 축사를 하였다. 이같이 남산시립공원조성은 이승만대통령을 우상화하는 시설들로 채워졌는데, 동상은 4·19혁명 때 파괴되어 흔적도 남아있지 않으며(현재 남산식물원앞 분수대 자리) 우남정은 팔각정으로 명칭이 바꿔 그대로 남아있다. 북한산시민공원 조성은 자금난 등으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국회의사당 건립 계획도 위치가 남산공원 내로 선정되었다. 국회는 정부수립 후 중앙청 의사당을 사용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앙청이 심하게 파손되어 태평로에 있던 문화극장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의사당 건립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1955년부터 국회의사당 신축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그해 5월 5일 국회운영위원회 안에 “국회의사당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상지를 물색하였는데 중앙청 내, 종묘, 사직공원, 남산공원, 장충단공원이 거론되었지만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종묘를 최적지로 주장하였으나 이승만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58년 11월 29일 서울의 중심지이며 지역이 광활하며 전망이 좋고 주위환경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짓겠다고 국회(운영위원회)가 발표하였다. 그해 5월 25일 국회의사당 건설계획안을 현상 공모하였는데 일본에 유학 중이던 김수근 외 4인의 작품이 당선되었으며 그 범위는 조선신궁의 부지를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현재 어린이놀이터부지는 진입광장, 현재 백범광장부지는 대칭 녹지조성,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 주변과 남산도서관이 있는 부지에는 국회의사당 본 건물을 짓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대대적인 남산파괴 계획이었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