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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50년 나무 베고 ‘역사탐방로’ 만들어 논란 혜화동 주민들 “내 피부가 잘려나간 심정” 성토
  • 이형주 (jeremy28@naver.com)
  • 입력 2019-06-25 18:19
  • 수정 2019-06-2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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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버즘나무 가로수가 잘려나간 혜화초등학교 앞 도로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민들과 함께 50여 년의 역사를 함께 한 나무 수십 그루가 잘려나가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지난 5월 23일부터 혜화로 보도 폭을 넓히고 가로수를 다시 심는 ‘혜화로 역사탐방로 조성사업’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보행 편의성을 높이고, 물길 흔적 복원으로 북묘로 이어지는 길이자 흥덕동천이 흘렀던 역사적 가치 인식 및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혜화로 인근에 심긴 나무들이 무자비하게 잘려나가고 있다는 지역주민의 제보로 최근 현장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혜화동로터리에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까지 460m 구간 가로에 심긴 양버즘나무 39그루가 잘려나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A씨는 “어릴 때 이 동네로 이사 와 40여 년을 살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나무들이 큰 상태였기 때문에 최소 50년 이상 된 나무들로 추정된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며칠 집을 비운 사이 나무들이 사라진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피부를 자른 것처럼 느껴졌다”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 주민은 “수십 년간 이 동네에서 방앗간을 운영하셨던 90대 할머니가 있다. 그 분이 젊은 시절 혜화동으로 시집 올 때 나무를 심는 걸 보셨다고 하니 최소 60년 이상 되지 않을까 한다. 그 할머니에게는 한 평생을 함께 한 역사가 나무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나무가 갔으니 나도 이제 저 세상으로 가란 의미인가 보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며 사업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혜화로는 나무그늘이 우거져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쉼터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지역주민 B씨는 “혜화동은 오래된 동네라 예전부터 살던 사람이 많다. 우리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이곳을 걸어 다니며 운동을 하셨고, 그 길에서 동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 곳이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다 잘라버리고 역사탐방로를 만든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혜화초등학교 학부모들에 따르면, 종로구가 지난 2017년 10월 연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구청에서 사업을 강행하며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 관계자는 “당시 참석자들이 사업대상지 전체 나무를 베고 갱신하는 부분에 대해서 반대한 부분은 있다. 그래서 의견을 수렴해 나무를 다 베지 않고 위험성 있는 것만 베었다”고 해명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해 관내에서 양버즘나무가 쓰러진 일이 있었고, 올해도 양버즘나무가 많이 넘어져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이번에 ‘혜화로 역사탐방로 조성사업’ 대상지 주변의 수목을 제거하게 됐다는 것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양버즘나무가 속성수라 뿌리가 약한데 위에는 크다. 바람이나 전도 위험이 크다. 거기(혜화로)는 양버즘나무가 밀집돼 있다. 뿌리가 융기가 되다보니 보도 위쪽으로 튀어나온 것도 있고 그래서 제거가 됐다. 양버즘나무 갱신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현재 제거된 나무 외에는 추가로 베지 않고 은행나무 수나무를 심어 가로수를 갱신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혜화로 가로수를 양버즘나무에서 은행나무로 갱신하는 것은 더 안 좋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규화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외래교수는 “양버즘나무가 꽃도 안 피고 너무 커 관리 대책이 안 서니까 은행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등으로 바꿔 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만 지나면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은행나무는 내염성이 약해 눈이 왔을 때 염화칼슘을 뿌리면 매우 위험하다. 지금은 작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더 안 좋은 방향이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오래된 가로수를 갱신하는 데 따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양버즘나무가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수명이 40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수목관리 실태를 기준으로 보면 대교목 중에서는 양버즘나무가 가장 낫다”고 강조했다.


지역주민 B씨는 “혜화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구청에서 동네를 많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선한다면 혜화동이 지닌 전통과 오래된 역사를 같이 가지고 가면 좋겠다. 가로수를 베어버린 것처럼 옛날 사인 다 지워버리고 새롭게 한다면 다른 곳과 차별화되지 않을 뿐더러 동네를 해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주민은 “혜화동은 아이들과 주민이 만드는 거지 구청이 만드는 게 아니다. 역사가 없고 추억이 없고 주민들이 찾는 곳이 아니라면 역사탐방로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듣고 만들었으면 좋겠다. 구청에서 정말 좋은 걸 만드는 거라면 못 나오는 사람들 집집마다 찾아가 설득을 해야 한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설명회 말고,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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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버즘나무 가로수가 잘려나간 혜화로 곳곳의 모습과 잘려나간 나무 잔해. 나무를 자른 그루터기에는 인조잔디 형태의 매트를 부착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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