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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쉽게 미워하지 않기
  • 환경과조경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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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많은 이들을 미워하며 산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스치는 사람들이 애꿎은 표적이다. 내 어깨를 핸드폰 거치대처럼 쓰는 사람, 더 이상 여유 공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 사람. 평소라면 이해할 법한 일에도 화가 치민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미워할 이유를 찾다 보면 금세 밤이다. 잠들기 직전에야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귓가가 홧홧해진다. 지친 몸은 자꾸 마음을 쪼그라트린다. 보기 싫게 찌그러진 마음의 날은 엉뚱하게도 지하철이나 길거리의 사람들을 향하곤 한다. 갖가지 까닭을 붙여 내가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딸을 둔 친구가 내게 건넨 고백이 떠올랐다. 작은 동물이 면 사족을 못 쓰던 친구는 한동한 강아지를 미워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와 공원에서 쉬다 마주친 행인이 마음을 온통 들쑤셔 놓은 탓이었다. 낯선 행인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친구의 딸을 가리키며 신발을 신고 벤치에 오른 몰상식함을 지적했다. 대꾸할 틈도 없이 저만치 멀어진 그를 공원 입구 부근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산책하던 강아지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다. 땅 한 번 디딘 적 없어 깨끗한 딸의 신발과 벤치와 흙바닥을 신나게 오가는 강아지의 발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강아지가 그렇게 미워졌다고 했다. 작은 동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미움이 커졌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힘없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어린이나 강아지처럼 제 의견을 낼 수 없고 대항할 능력도 없는 경우, 미움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운다. 최근 SNS를 소란스럽게 만든 노키즈관논란 역시 이러한 미움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를 본 관객 중 일부가 아이들의 함성이나 떠드는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싶다며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는 곳에서 어린이를 쫓아내려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더 이상하다. 우리는 꽤나 자주 영화 상영 중 전화를 받거나, 옆 사람과 떠들거나, 의자를 발로 차며 스크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불쾌하지만 참고 넘어가 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게 일반적이다. 핸드폰을 끄지 않은 사람을 상영관에 들이지 않거나, 특정 행동으로 세 번 이상 경고를 받을 시 퇴장시키는 방법 등 극단적인 타개책이 쉽게 대세로 떠오르지는 않는다.카페나 음식점 역시 진상 고객 입장 불가안내문보다는 노키즈존식을 더 쉽게 내건다.

 

노키즈존은 흡연 금지, 주차 금지처럼 구체적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라는 특정 집단을 배제한다. 키즈카페, 키즈관 등 어린이 전용 공간이 생겼지만, 이는 아이와 양육자가 더욱더 따가운 눈총을 받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왜 키즈카페나 키즈관에 가지 않고 이곳에 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눈치 주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셈이다. 이렇듯 공간의 분리는 어렵지 않게 단절로 이어진다. 단절은 무언가를 체험하고 느끼고 배울 기회를 손 쉽게 앗아간다.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몰수당한다. 수많은 조경 프로젝트가 섬처럼 놓인 공간을 주변과 연결하려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립된 공간은 오래지 않아 낙후한다. 공간도 그러한데 사람은 당연하다. 아이는 혼자 다닐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노키즈존은 자연스럽게 아이와 양육자를 함께 사회 밖으로 격리한다. 물론 미성숙한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뛰어다니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무조건 공간 밖으로 밀어내는 건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한때 논쟁거리였던 벤치의 모양으로 이어졌다. 노숙자가 누워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판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팔걸이를 설치한 벤치 말이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앉을 수 없는 높이의 의자가 공원에 줄지어 선 모습을 상상했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 생각했다가 왠지 실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것 같아 무서워졌다.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 대신 진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다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기저귀 갈 곳 없는

 

화장실, 외진 곳에 숨겨 놓은 것처럼 배치한 수유실, 유모차를 끌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보행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쉽게 미워하기보다 불편하게 미워하는 일에 지치지 않고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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