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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사회주의 도시, 평양
  • 환경과조경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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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만주로부터 한반도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고구려 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던 곳이다특히 조선 시대에는 대동강과 보통강을 끼고서 네 겹의 성벽이 건설되었는데석축으로 된 내성 내부에는 평안도 감영과 객사를 비롯한 주요 행정 및 군사 시설이 모여 있었다내성의 규모도 다른 읍성에 비해 큰 편이어서 6,000여 세대의 주민이 내성 안팎에서 상업과 군역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했다그렇지만 개항 이후 성곽 도시로서의 평양은 급격하게 변모해 나갔다경의선 철도가 외성을 관통하고그 한가운데 평양역이 건설되었다또한 내성의 일부가 허물리고 그 주위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거점이 들어섰다숭실학교와 광성학교 등이 바로 이곳에 설립되어 학생들을 교육했다평양은 해방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 식민지기 평양은 다른 한국의 도시들처럼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조금씩 몰려오던 일본인들의 수는 1910년 강제 병합 이후로 일본 군대가 주둔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은 평양역 주변에 정착하여 일본인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평양은 내성 지역의 한국인 구역과 평양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인 구역으로 이분되었다. 1920년대 평양부는 시구 개정을 실시하여 이 두 구역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분리된 도시 구조는 해방 전까지 해소되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이같은 식민지기의 도시 구조는 한국전쟁 동안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오늘날 대동문과 모란봉 부근의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적 유적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고유한 도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전후에 북한 정권은 평양을 철저한 사회주의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전후 복구와 도시계획

김일성은 전쟁 중이던 19511일 평양복구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 그해 5월 평양에 대한 최초의 도시계획안을 완성했다. 이 계획안은 건축가 김정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일성의 배려로 북한의 첫 번째 해외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에 있는 소련 건축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 전쟁이 치열했던 19511월에 귀국해 평양시 복구계획을 맡았다.11951년의 계획안에는 검게 칠해진 도시 블록과 도로망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이 계획안에 등장하는 가장 큰 특징은 김일성이 제시한 것으로, 첫째 일제 식민지기에 형성된 평양의 기형적인 시정하고, 둘째 광범한 근로 인민을 위한 문화 시설과 편의 봉사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2


이렇게 작성된 평양복구계획안으로 김일성은 19525월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전람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대동강 유보도 계획안, 도심 중심부 형성안, 고층 살림집과 대상 공공건물 설계도가 함께 전시되었다.3 이 전람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1953년에 내각 결정 제125평양시 복구재건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이는 전후 평양복구계획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의 기본을 보존하면서 주택, 산업 및 교통의 옳은 배치와 도시 주민 생활의 정상적 건강 조건을 보장하는 주택 구역을 옳게 조직하는 것이다. 대동강을 도시의 축으로 설정하며, 대동강을 따라 구릉 기복 조건에 어울리게 건축물을 배치하며, 김일성광장을 남산 동쪽 기슭에 건설하며, 대동강과 평행되면서 하류에 공장, 기업소를 배치하며, 주택 지구를 녹화하고 도시 주변에 녹지대를 형성할 것 등이다.”4이는 1953년에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평양 도시계획안은 기존의 방향을 충족시키면서 몇 가지 새로운 제안을 담고 있다. 우선 김일성광장에서 시작된 도시 축을 대동강 좌안까지 확장해 더욱 강조되도록 했다. 대동강을 평양 도시계획의 중심 요소로 포함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도시 축을 명료하게 구성한 것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73(20195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이왕기, 북한 건축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서울: 서울포럼, 2000, p.130.

2. 김일성, 김일성 저작집6, 평양: 조선로동당, 1980, p.280.

3. 평양건설전사 편찬위원회 편, 평양건설전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7, p.144.

4. 리화선, 조선건축사 2,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 p.104.

 

정인하는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건축 역사 및 이론 담당 교수다. 1987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한국에 귀국한 이후 동아시아 건축 및 도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과 저작물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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