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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그녀들
  • 김정은 (lalart@hanmail.net)
  • 환경과조경 2018년 1월

새해 첫 호부터 큰일이다. ‘그녀들’이란 제목만 있는 빈 모니터에서 커서가 깜박인다. 100년의 시차와 머릿속에 떠도는 단상들을 어떻게 매끈하게 이을 수 있을지 대략난감이다. 몇 시간 후면 인쇄기가 돌아가야 한다. “안 써질 땐 무조건 쓰라”는 못된 옛 선배의 조언에 따르기로 한다. 한 달 동안 내가 만난 여자들 이야기다.

 

HLD가 2018년 신년호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간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환경과조경』 2016년 5월호 pp.84~87 참조) 그리고 한강예술공원 조성사업 쇼케이스(『환경과조경』 2017년 5월호 pp.72~75 참조)에서 그 일면을 확인하긴 했지만, 이번에 소개한 두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2월 초, 비평을 맡은 허대영 소장과 이해인 소장을 만나 현장을 답사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미리 보내준 상당한 분량의 도면과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었듯, 남다른 디테일을 얻어내기 위한 집요함이 느껴졌다. 이해인 소장은 귀한 다간형 자작나무를 구하기 위해 산을 헤매고 다녔고, 통석 벤치의 면별로 다르게 적용한 마감 방식을 정확하게 얻어내기 위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샘플을 어떻게든 구해 시공자에게 전달하고, 원하는 포장 패턴을 그대로 시공하기 위해 잘못된 사례의 경우의 수를 일일이 체크하며 도면을 만들었다. 그 노력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이해인 소장은 설계 이후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해외 프로젝트에서 도면에 최대한 상세하게 의도를 표현하던 습관이 국내 프로젝트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칼럼 “1.5년 보고서”(『환경과조경』 2017년 6월호 p.13 참조)에서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생 설계사무소가 겪는 어려움과 낮은 설계비 문제를 담담하게, 그러나 조곤조곤 지적했던 그녀다. 당시 이해인 소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푸념으로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노력이 꽤 돌파력 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설계를 할 때는 낮은 설계비 핑계를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 낮은 설계비가 직원들이나 컨설턴트의 공짜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설계비 책정은 최대한 꼼꼼하게, 가격 협상은 때론 공격적으로, 과중한 추가 업무에 대한 불평은 최대한 전문적으로 하려고 한다. … 낮은 설계비와 짧은 설계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삽질을 줄여야 연구할 시간이 나온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HLD는 매주 지식 공유 세션을 갖고 있다.”

HLD와 함께 작업했던 한 큐레이터는 쉽게 타협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해인 소장의 끈질김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공간의 완성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행을 뛰어넘는 ‘지속적인 용기’가 필요한 현실이 조경가로서 이해인 소장의 행보를 눈여겨보게 한다.

 

그리고 만난 여자는 100여년 전의 인물들이다. 12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시네마 스케이프의 필자인 서영애 소장의 사무실에서 조선희 작가(『씨네21』 초대 편집장)의 장편 소설 『세 여자』(한겨레출판, 2017)의 작은 북 토크가 열렸다. 소설의 주인공인 허정숙과 주세죽, 그리고 고명자는 모두 실존 인물로, 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함께한 혁명가다. 조선희 작가는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상상력으로 빈틈을 메워가며 세여자를 복원해냈다. 나에게 한국 공산주의도 낯선 역사인데, 그 시대를 통과한 여자들의 존재는 더더욱 낯설다. 많은 이들이 그녀들의 동지이자 파트너였던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의 이름까지 들어야 비로소 관심의 단서를 잡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세 여자』는 영웅 소설이 아니다. 사실 광복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의 측근이 된 허정숙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여자는 외롭게 죽기도 했고, 지금은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 그녀들이 과연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조선희 작가가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고백하는 문장은 나에게도 긴 여운을 남긴다. “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존재가 전제되어야 드디어 여성이 포함된 역사의 이해가 시작되지 않을까. 허정숙은 여러 차례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며 세간의 구설수에 올랐지만, “응징당하지 않은 못된 여자”였다는 점에서 시공의 거리감을 뚫고 현재에도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금기에 도전했던 화가 나혜석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떠올려보라. 조 작가는 허정숙이 김일성에게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특정한 파벌에 속하지 않았던 점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겼다는 점을 꼽는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침묵으로써 말 통하는 동료의 자리를 얻으며,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을 쉽게 재단하곤 하지만, 소위 못된 여자가 추락하지 않는 소설의 엔딩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이달에 마지막으로 만난 이가 용산공원 기획전인 ‘균형 긴장 모색’ 전의 전수현 총괄 기획자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그녀는 여자로서 일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답을 고르는 나에게 그녀는 건축 동네에서 여성 건축가 전시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설계사무소를 대표하는 소장뿐만 아니라 실장급의 작업까지도 소개한다는 것이다. 조경 분야에서도 여성 조경가를 조명하는 전시나 기사를 준비한다면 시너지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도 주었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여성 스스로에게는 달가운 일일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문득 조선희 작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지쳐 사라지기 전에 “여기 이런 조경가들이 있다”는 존재의 인식이 먼저 필요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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