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편집자의 서재] 쇼코의 미소
  • 환경과조경 2018년 5월
쇼코의 미소.jpg
최은영 | 문학동네 | 2016

 

 

핸드폰 액정이 반짝인다. “도무지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어.” A다. 엄마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그녀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먼저 닦냐, 밥을 먼저 먹냐는 문제로도 다투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A가 정 없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데, 정작 그녀는 엄마처럼 대놓고 무안을 주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순전히 어머니의 기준에서) 단정치 않은 그녀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기어코 미용실에 가라는 잔소리로 A의 신경을 긁어 놓는다(A의 머리는 컬을 살짝 넣은 단발머리다). 둘은 서로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A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한다. “서로 다투면서도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지. 이렇게까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꼴 보기 싫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역시 좋아하지는 못해도 사랑은 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어쨌거나 엄마가 상처받아서 속상해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속상하긴 하니까. 뭐, 그러니까 좋아하진 않아도 사랑은 하는 거 같아.”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으면 관계를 포기해버리면 좋을텐데, 세상에는 혈연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사이가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해보려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렇게 말한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의 모든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A의 말처럼 “아주 근본적인 부분부터 달라 서로 절충안을 찾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그래서 A는 엄마를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의 입장에 서보는 대신, 그냥 엄마는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 그렇게 하니 도리어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와 인정. 『쇼코의 미소』를 읽는 내내 두 단어가 계속 머리를 떠돌았다. 일곱 편의 단편을 엮은 『쇼코의 미소』의 공통 화두는 ‘이해’다.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이라면,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은 이해라는 키워드를 공감과 유대로까지 확장한다.

 

‘미카엘라’에서 광화문광장에 선 익명의 여성들은 4월 16일 자신들의 딸이 배에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딸 중 하나인 미카엘라는 어느 교회에나 있을 법한 흔한 세례명이다. 주인공의 세례명도 미카엘라다. 어쩌면 나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 친척의 세례명이었을 수도 있던 미카엘라라는 이름이 “그저 운이 좋아서, 내가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음을"(각주 1) 상기시킨다. 이를 깨닫는 순간 나 역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미카엘라 중 하나가 된 듯 했다. 광장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처절하지도 않다. 최은영의 문체처럼 단정하기만 하다. 관조적이기까지 한 문체는 『쇼코의 미소』 전반에 깔려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 ‘비밀’에서도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다루는데, 작가는 결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거나 앞으로 우리는 이래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빈 자리를 보며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기만 한다. 이상하게도 이런 담담함이 등장인물의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몰랐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이해하거나 인정하는 일이 쉽게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쇼코의 미소’의 소유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뒀을 때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각주 2)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소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소유는 “비어져 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각주 3).

 

소유가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두 시간 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하고 싶던 마음은 사랑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소유의 모습에 A가 겹쳐진다. A와 그녀의 어머니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무지 맞는 점이 없는 둘도 긴 세월 부대끼다보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각주 정리

1.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2. 최은영,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p.47.

3. 위의 책, p.47.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