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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집에서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 김모아 (more-moa@naver.com)
  • 환경과조경 2020년 10월

 

팔뚝을 시원하게 드러낸 반소매부터, 가벼운 카디건, 도톰한 재킷까지 거리를 채운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보면 간절기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 겨울까지를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확진자 수가 치솟아 소소한 가을 나들이를 취소해야 했던 나를 위한 위로다. 또 놀랍게도 크리스마스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본래 취미도 얄팍한 데다 나돌아다닐 수 없게 되며 일상이 단조로워진 탓일까, 요즘 이 짧은 지면을 채울 글감 찾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지겹겠지만 양해를 구한다. 또 코로나19 이야기다.

포스트 코로나, 도시의 안녕을 묻다의 기획은 꽤 오래전부터 틀을 그리기 시작해 바이러스 확산이 잦아들던 무렵에 완성됐다. 발 빠른 기획은 아니지만 오히려 사태를 차분히 바라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긴 글로는 현재를 담담히 진단하고, 짧은 글로 다른 이들의 일상과 산뜻한 상상력을 더한 미래를 엿보게 할 셈이었다. 의도가 잘 전달된 건지 터무니없이 파괴적이거나 비관적인 이야기 대신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도착했다. 그간 각종 심포지엄에서 오간 시끄러운 이야기가 머리와 마음을 지치게 만든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보낸 매일을 살피다 보니 문득 상상력이 발동됐다.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심화된다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과연 집에서도 잡지를 만들 수 있을까?

2020820, 회사 단톡방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집에서도 회사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재택근무를 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주세요.” 곰곰이 따져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우선, 업무에 적합한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 우리집에는 성능 좋은 데스크톱 PC가 없다. 에디터라 하면 보통 한글, 워드처럼 문서 작성 프로그램만 취급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간단한 이미지 편집이나 도면 정리도 내 몫이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무거운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릴 수 있는 사양 좋은 컴퓨터는 필수다. 모니터 두 대를 쓸 수 있으면 금상첨화. 그런데 회사에 있는 PC를 집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당장 좁아터진 방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다.

다음은 편집의 문제다. 레이아웃을 고민하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면 디자이너의 자리 뒤에 모여 의논을 하곤 한다.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것보다 즉석에서 사진 크기와 위치를 변경하며 대안을 실험해보면 무엇이 더 나은지 명쾌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에디터가 한 공간에 있지 않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면 공유 프로그램으로 의견을 나눠야 한다. 게다가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교정도 쉽지 않다. 데이터에 불과했던 글과 사진이 종이 묶음으로 재탄생되기까지 편집부는 세 차례 정도의 교정을 진행한다. 이 과정은 모두 종이로 출력해 이루어지는데, 신기하게도 모니터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와 비문, 미묘하게 엇나간 편집의 문제점들이 종이에서는 발견된다. 각종 이미지와 사진의 색감을 함께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의 집에 같은 컨디션의 프린터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교정지를 주고받는 일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다. 교정 부호가 빼곡한 교정지를 스캔해 다른 에디터에게 보내면, 이를 출력해 새로운 교정 사항을 덧붙이고 또다시 스캔해 디자이너에게 전달한다. 좀 번거로운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뽑은 난제는 의사소통이다. 화상 프로그램을 사용해 편집 회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우리가 주고받는 비언어적 표현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잠깐의 침묵이나 미묘한 표정 변화로 전하는 완곡한 부정과 난감함.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랜선을 타고 흐르지 못한다. 결국 방식을 따지기 전에 필요한 건,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과 이를 불편함 없이 전할 수 있는 수평적 소통 문화가 아닐까. 소통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제를 돌리자면, 연재 꼭지 중 하나가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눈치 채지 못했다면 이십여 쪽 전을 슬쩍 둘러보고 오면 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문체를 통일하고 있는 지면에서 낯선 비격식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말을 건네는 듯한 해체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는데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독자의 피드백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 지친 필자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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