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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시니어가 소비하는 도시
  • 김모아 (more-moa@naver.com)
  • 환경과조경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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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편히 돈 버는 일은 못해 볼 사람들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을 덕담처럼 주고받는 요즘에는 저만한 악담이 없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TV에서 부동산 중개 예능(‘구해줘! 홈즈’, MBC)을 보다 돌연 화가 치민 우리 엄마, 수신인은 위층에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우리 집이 선 땅은 내가 걸음마를 떼던 시절만 해도 어마어마한 경사의 오르막이 있던 곳이다. 그 중턱에 페인트가 죄 벗겨진 대문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첫 보금자리였다. 철문에는 한국전쟁 때 군인들이 개머리판으로 찍어 남긴 섬뜩한 흔적이 있었고, 마당 한가운데 콘크리트를 발라 만든 수도는 방공호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목조 건물답게 겨울이면 온몸을 얼게 했던 그 집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며 허물어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보상을 기다리며 근방을 5년 정도 떠돌고는 마침내 입주한 아파트에서 채 2년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딸에게 일언반구 없이 헐값에 집을 팔았다. 대신 집장사가 마구 지어 천장 수평도 맞지 않고, 겨울이면 곰팡이가 피는 다세대 주택 하나를 얻었다. 1년만 참았으면 더 좋은 값을 받고 집을 팔았을 거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 엄마도 부모님이 아파트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안다. 도통 엘리베이터 조작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며, 재래시장을 좋아하고, 소일거리인 고물 해체 작업을 할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한 두 분에게 아파트는 보기 좋은 감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적당히 낡고 한적한 이곳의 풍경에 훨씬 편안하게 녹아든다.

얼마 전 이 조용한 동네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한 블록 건너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외곽에서부터 골목을 타고 개인 베이커리, 카페, 향초 공방 등 이곳과 통 인연이 없어 보였던 가게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심 반가웠지만 아쉽게도 힙함과 인스타그래머블을 내세웠던 상점들은 오래가지 못해 문을 닫았다.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낮았던 것도 아니고, 성수동 같은 뜨는 동네보다 인테리어가 뒤처지지도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힙과 인스타그램이 통하

는 곳이 아니니까. 사람들을 유혹할 독특한 산업 생태계나 볼만한 문화 자원도 없고,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선 주택과 빌라에서는 어떤 특색을 느낄 수 없다. 아침이면 젊은이들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학교, 직장으로 떠나버린다. 월세야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지만 주말 장사만으로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상품을 소비해줄 사람은 은퇴 후 적적하게 시간을 보내며 동네를 산책하는 50~60대 정도다. 그들이 어떤 설명도 없이 아인슈페너, 생크림 산도, 뚱카롱 등 생소한 메뉴를 무심하게 적어 놓은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설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달의 특집 밀레니얼이 만드는 도시가 진단하듯, 밀레니얼은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며 도시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는 세대가 있다.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0~60대가 그 주인공이다.트렌드 코리아 2020(미래의창, 2019)는 이들을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라 명명했다. 이 세대는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탈피해 자아 찾기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사용해 능해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한다. 규모 또한 전 인구의 28%를 차지해 상당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구매력도 크다. 이들은 머지않아 밀레니얼이 만든 도시를 소비하는 주축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도 세대를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세대를 잇고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만드는 일에서 찾는 공유를위한창조’, “청년은 일종의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는 세대이며 “50대 이상에게도 어반플레이의 프로젝트와 공간을 알리는 게 목표라는 홍주석 대표(어반플레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들이 그리는, 모든 세대가 소비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단언할 순 없지만 왠지 이들이 내놓은 답이 골목을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채운 뉴트로 콘셉트의 공간은 아닐 것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야기했듯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경향에는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에 내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1이 묻어 있으니까. 필름 카메라, 카세트테이프 등 디지털 네이티브가 맛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 역시 언젠가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 오래된 것을 무조건 쓴다고 뉴트로가 되는 건 아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다리 역할을 하기에 지금 유행처럼 번져 있는 뉴트로는 조금 가벼워 보인다.

 

1. 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역, 『레트로토피아: 실패한 낙원의 귀환』, 아르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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