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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일간 이슬아
  • 윤정훈 (hoons920@daum.net)
  • 환경과조경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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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정확히 말하자면 편집력에 대한 욕심이 부쩍 솟고 있다. 편집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일정한 방침 아래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신문, 잡지, 책 따위를 만드는 일. 또는 영화 필름이나 녹음 테이프, 문서 따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 개인적 정의는 이렇다. 재미없어 보이는 것도 재밌게, 별거 아닌 일도 대단하게 만드는 일. 여러가지를 한데 모아 구린 건 걸러내고 약간 부풀려,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 좋게 꾸리는 일. 편집자로서 잡지 편집에 관한 능력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건만, 어쩐지 일보다 일상 속 이야기를 편집하는 데 더 관심이 간다. 다름 아닌 이슬아 때문이다.

먼저 이슬아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는 글밥을 먹고 사는 노동자다. 원고료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누드모델, 글쓰기 교사로도 일했다. 그러던 중 학자금 대출 상환 날짜가 다가와 메일링 연재 서비스를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한 편의 글을 쓰고, 자정이 지나기 전 구독자들에게 보낸다. 구독료는 한 달에 만 원, 한 편당 500원 꼴이다. 주로 자신과 주변 사람에 관한 수필을 쓴다. 가족과 애인, 절친이 자주 등장한다. 재밌고 소중한 이야기를 더 잘 쓰고 싶어 논픽션에 픽션적 요소를 더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확히 뭘 쓰는 건데?”라고 물으면 (픽션과 논픽션을 최대한 얼버무리듯 발음하며) “응픽션이라고 답한다. 따라서 실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최대한 왜곡을 피하고자 많이 묻고 듣는다. 1회 정도는 친구의 글이나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작가를 인터뷰한다. 한 달간의 연재를 마치면 다음 시즌을 예고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구독자를 모집한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 “신문방송학 전공했으나 신문도 방송도 잘 몰라 학자금 대출만 이천만 원 쌓여 쓸 줄 아는 거라곤 수필밖에 없어”, “재미도 감동도 없을 수 있습니다등 재기발랄한 문구의 포스터를 SNS 계정에 올린다. 반년간 쌓인 글은 책(일간 이슬아)으로 만들어져 일만 부 넘게 팔렸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슬아에게 구독료를 송금하고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나는 왜 이슬아의 글을 읽는가. 왜 몇 달째 그의 글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가. 우선은 재밌어서다. 성실한 기억력과 탁월한 글발로 가공한 이야기는 잘 만든 한 편의 시트콤 같다. 과장되거나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기 얘기를 아주 재밌게 꺼내 놓을 줄 아는 친구를 옆에 둔 기분이다. 둘째, 오래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몸을 정면으로 통과한 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말하느라 막차를 놓치고 싶었다.”2 “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내가 된다. 그 사실이 지겨워 죽겠을 때가 있다.”3 마음이 동한 문장을 모으면 지면이 넘칠 테니 이 정도로만 하겠다. 셋째, 이슬아의 이야기를 보고나면 나와 주변 사람에 대해 잘 말하고 싶어진다. 1992년생 이슬아는 나와 동갑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두꺼운 인생을 산 것처럼 보였다. 내 시간이 이리저리 흩어진 종잇장이라면 이슬아의 시간은 잘 만든 두툼한 책 같았다. 그래서 글쓰기 능력보다 순간을 스토리로 직조해내는 그의 편집력이 몹시도 탐났다.

지난 시간을 정성스레 다시 쌓아 올리면, 그저 그런 일상과 서투른 감정도 잘 편집하면 나름 뿌듯한 이야기로 남지 않을까. 말 못 하게 창피한 일도 복장이 터질 듯 억울했던 순간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에피소드로 변할지도. 좀 더 정직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 열심히 살고픈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일기를 써볼까? (또 다이어리 값만 날리겠지) 남들에게 보낼 글을 써볼까? (봐줄 사람도 없고 성실하게 쓸 자신도 재주도 없다) 편집의 시작은 일단 자료를 찾는 일. 역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내 절친과 사귀게 된 일, 친해지고 싶었던 여자애의 옷에 검은색 잉크를 쏟아버린 날, 난데없이 춤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 율의 이야기,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맥주 세 잔 끝에서야 들을 수 있었던 스물여덟 살 엄마의 설운 시집살이.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덕분에 압축되어 있던 시간들이 살짝 두터워지는 듯도 했다.

 

1. ‘일간 이슬아는 매일 한 편의 수필을 보내는 메일링 연재 서비스다. 20182월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 이슬아, 일간 이슬아, 헤엄출판사, 2018, p.26.

3. 같은 책,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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