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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가시나들
  • 김모아 (more-moa@naver.com)
  • 환경과조경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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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마지막 주말은 코다 소재를 고민하는 날이다.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징징거리는 내게 친구 A는 곧잘 조언한다. “원래 남 얘기가 제일 재밌어. 네 얘기 팔아서 글 써.” 팔 것도 없다고 투덜거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반박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에 가장 창피했던 이야기를 해. 그런 거 재미없어하는 사람 없어.” 성큼성큼 가까워져 오는 마감 날짜에 마음이 조급했지만, 부끄러운 일화를 풀어놓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대신 자신 있게 내놓기에는 조금 민망한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렵다. 같이 있으면 어색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좋을지 몰라 몸이 굳는다. 장남인 아버지와 장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첫 손녀로 태어나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으면서도, 방글방글 웃으며 재롱 한 번 떨 줄 몰랐다. 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건물에서 지낸 지도 10여 년, 나는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살가운 농담 하나를 못 건넨다. 남들도 그러겠거니 하며 지내던 중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가슴을 푹 찔렀다. 군데군데 들풀이 자란 소박한 밭길, 나란히 선 배우와 아이돌들이 간단한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학교를 안갔어, 아니 못 갔어!” 곧이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가시나들’,1 함양군의 다섯 할머니가 등장한다. “학교를 관뒀어!” 율동이라기엔 어설픈 손짓과 발짓이지만, 열심히 노래하며 춤추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어릴 때 마을에 한글 알려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찾아갔는데 가시나가 글을 배워서 뭐할라꼬라며 쫓아냈습니다. 처음 지하철이 생겼을 때도 글을 모르니 하루 종일 지하철만 타다가 파출소에 갔습니다. 아이들 책가방 챙길 때도 눈치로 어림잡아서 골라주는 게 속상했습니다. 다 늙어서 배우면 얻다 쓰겠냐고 하는 데 나는 모르고 살기가 서러웠습니다.”2 함양군의 할머니들은 더 이상 서럽게 살고 싶지 않아서 배우고 싶다. 그렇게 인생의 지혜는 풍부하지만 한글은 모르는 70~80대 할머니와 한글은 대충 마스터했지만 아직 인생은 잘 모르는 20대 연예인이 짝꿍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한글을 공부한다. 동고동락하는 다섯 짝꿍의 한글 공부는 교실을 벗어나서도 계속된다.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글 외의 어떤 것들을 서로에게 배우기도 한다. 할머니의 텃밭에 자라는 엇비슷해 보이는 식물에는 각기 다른 이름이 있고, 진달래꽃을 따 물고 숨을 들이쉬면 달곰한 꿀물이 입안에 퍼진다. 함양군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대의 할머니가 활약하는 유튜브 영상을 함께 보고, 이를 따라하기도 한다. 나란히 앉은 둘은 50여 년의 세월 훌쩍 뛰어넘어 자신이 배워온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짝꿍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숙제를 받은 할머니가 짝꿍의 얼굴형은 이뻐요”, 눈썹은 이뻐요”, 눈은 크고 이뻐요”, 코는 샐쭉 하이 이뻐요”, 입술도 오목 하이 이뻐요라고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문득 나의 할머니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가시나들은 2%대의 높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프로그램을 애정으로 지켜본 시청자들이 게시판을 통해 정규 편성을 요청하고 있지만, 동시간대에 막강한 라이벌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함양군의 다섯 할머니는 짝꿍 없이 일상을 산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달력을 보고, 종착지를 기사에게 묻지 않고 버스에 오르고, 그리운 아들에게 혼자서도 전화를 걸 수 있다.

방송이 끝난 후 나는 종종 어떤 풍경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점 푸드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 문을 나서는 노부부, 무릎을 두드리며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 볼라드에 위험하게 걸터 앉는 할아버지, 계단 참에 난 작은 창으로 골목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며 세상을 구경하는 나의 할머니. 소비하지 않으면 공간을 사용할 수 없는 시대, 편리함을 목적으로 한 기기는 노년층을 참 쉽게 밖으로 밀어낸다. 가뜩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나의 할머니의 행동 반경은 나이를 먹을수록 좁아져 간다. 세대 간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 ‘가시나들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의 준말로, 지난 519일에 시작해 69일에 종영한 MBC의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이다.

2. ‘가시나들’ 3회에서 소개된 박무순 할머니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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