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 조경] 도시 녹지, 조경의 플레이그라운드
  • 고정희 (jeonghigo@gmail.com)
  • 환경과조경 2019년 6월


고정희.jpg

바우하우스의 격한 움직임에 자극받아 표현주의와 입체파 미술의 방법론까지 차용해가며 우리도 바우하우스처럼 새로운 정원 예술을 창조하려던 몸부림은 브라질의 부를레 막스나 멕시코의 루이스 바라간 등 발군의 예술가들이 나타나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진정한 정원 혁명은 이런 화려한 무대 뒤편, 도시 전체에서 따로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과 거의 시기를 같이해 변화하기 시작했으나 매우 서서히 진행됐기에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백 년이 지난 1980년대에 비로소 지난 세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 들어 바우하우스 10 0 주년 기념행사들을 준비하며 조경계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재삼 확인되었다. 심지어는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던 변화를 제2의 정원 혁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의 혁명은 영국 풍경화식 정원을 말한다.

 

신세계의 지옥, 산업 도시가 도시계획을 부르고 제2의 정원 혁명을 초래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세기 정원의 가장 큰 변화는 정원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일어났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일어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와 큰 관계가 있다. 특히 도시의 팽창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도시 인구의 비율이 몇 곱으로 증가하고 도시가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짐으로써 도시 재정비, 즉 도시계획이 불가피해졌다. 도시계획은 건축가뿐 아니라 정원사의 일에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 주 활동 무대가 개인의 영지에서 도시로 이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배층을 위해 일하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시민 사회 전체의 용역을 받는다는 새로운 신분과 사명을 얻게 되었다

이는 사회적 책임을 동반하는 위치였으며 이에 따라 직업관도 달라졌다. 변화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 하루아침에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한 건축가들과는 달리 평생 자연의 원리를 익히며 살아온 정원사들은 겸허했고, 하루아침에 정원을 갈아엎고 새것을 만들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데 골몰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화와 혁신이 이루어졌다.

지배층을 모시는위치에서 도시 녹지를 조성하는 전문가로, 건축가와 나란히 도시설계를 책임지는 위치로 신분 상승하고 보니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전통적인 정원사 교육만으로는 충족이 어려운 과제였고 특히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건축가들을 만나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겠지만,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기존의 2년제 고등정원학교가 있었으나 1929년 베를린 농과대학에 조원 석사 과정이 설치되면서 드디어 대학 교육의 막이 열렸다. 긴 개혁의 과정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이는 대단히 근본적인 변화였다. 이로써 정원의 사회화 과정,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20세기 말에 들어서야 비로소 사회화, 민주화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정희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